정보와 지식으로 표현되는 텍스트의 흐름을 일종의 순환도로에서의 운행 활동으로 본다면, 수로는 다름아닌, 인간으로서의 원초적인 것들, 이를테면 감정, 성향, 습속, 습관, 편견, 폭력 등등의 혼합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하나의 페이지 그 자체가 보여주는 것은 정보나 지식이라기 보다는 이 공간에 흐르고 있는 사람들 각각의 개인성의 무궁무진한 방향으로의 혼합된 움직임입니다. 우리는 이를테면, 혼탁하고, 지저분하고, 건데기가 둥둥 떠다니고, 마시고나서 탈이 많은 물을 우리의 소화기 속에 흘려넣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수로라는 것은, 바로, 감성적 접촉에 목마른 노스모키안들에게 보다 순도높고 깨끗한 관계의 흐름을 수시로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이 공간의 틀을 형상화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로는 시멘트 혹은 아스팔트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한번 굳어진 뒤에는 그 형틀을 깨기 어렵고, 그것은 이제 누군가에 대하여 보수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 됩니다. 그러한 몇가지 단점을 제외하고는, 도로는 매우 편리한 교통수단입니다.
이에 반하여 수로는 물이 있어야 그것이 수로가 됩니다. 물은 여러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물은 정형이 없습니다. 물만큼 서로 뒤섞이고, 본질을 공유하고, 서로 집합되는 사물도 없습니다. 물은 인위적으로 채워지지 않죠. 비에 의하여 그 량이 불어나기도 하고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서 물이 없거나, 물이 너무 넘쳤을 경우는 수로로서의 기능을 상실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끔은 수로를 통하여 오염된 물질이 흘러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할 경우 물은 그것과 섞이여 그것의 독성을 희석시켜주고 얼마 후에 다시 맑은 물이 채워지게 됩니다. 이것은 인위적으로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 물에 의해 채워지게 됩니다.
수로는 도로보다 편리하지 않은 교통수단입니다. 도로는 앞에 있는 것을 부수고 평평하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면, 수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경우도 있지만, 기존의 강을 이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강은 그 속성상 많은 굴곡이 있습니다. 굴곡을 감싸안고 또는 그대로의 굴곡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수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조절해줍니다.
물이 어느 공간에 담겼을 때는 그것이 수로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물이 수로에 유입되면 물은 자연의 질서에 동화되게 됩니다. 즉, 한 방향으로만 흐르게 되는 것이죠. 수로 안의 물은 출렁이며 자연스레이 흐르게 됩니다. 물이 한 방향으로 수로를 따르는 것을 어떤 규칙이나 제약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물은 몇번 출렁거린 다음 자연스럽게 자연의 법칙을 따르게 됩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수로를 따라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그것이 어떠한 소음으로 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이 경쾌한 소리는 바로 물이 흘러가고, 물이 바다를 향하여 흘러가고있고, 또 새롭게 채워지고 있다는 신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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