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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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nerHeisenberg에 의해 고안된 이론

많이 볼 수록 전자에 큰 영향

양자역학이론의 대전제로 오랫동안 철학자들과 물리학자들을 매혹해온 것은 '관찰이 그 대상의 실재에 영향을 준다'는 명제이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거비츠 교수팀은 최근 정교한 실험을 통해 쳐다보는 정도가 많을수록 전자가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양자 상태의 전자는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동시에 지닌다. 전자가 파동으로 존재할 때 그 진행 경로에 작은 틈새들이 있는 장애물을 놓으면 전자는 장애물의 여러 틈새를 동시에 지나 장애물 저편에서 다시 합쳐지는 현상을 보인다. 이를 간섭 현상이라 부른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런 간섭현상은 오직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때에만 일어난다. 관찰자가 틈새를 지나는 입자를 쳐다보는 순간 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전자는 어느 한 틈새만을 지나며 다른 틈새는 더 이상 통과하지 않는다. 관찰이 진행되는 동안 전자는 입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쳐다보는 것이 실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현상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팀은 사람 대신 정교한 전자탐지기로 관찰을 했다. 틈새로 지나가는 전자를 감지하는 이 탐지기는 전기전도도나 전류량을 바꿈으로써 감지 용량을 조절할 수 있다.

연구팀은 "관찰이 간섭을 없앤다는 이번 연구 결과는 정보의 전송 때 도청을 막는 데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즉 도청자가 귀를 기울이는 순간 간섭 현상이 사라지는 점을 이용해, 정보를 받는 사람은 즉각 정보가 어딘가로 누설됐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된다는 것이다.



-> 흠 이것은 그냥 "본다" 라고 하면 이해가 잘 가지 않을 것만 같고, 본다라는 행위 자체를 이해 해야만 이해가 쉬울 것 같아 덧붙입니다.;;;;

우리는 "빛" 을 봅니다. 그런데, 물체를 그냥 "본다" 하여서, 물체가 닳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지요.
그런데, 사실은 보기만 해도 닳습니다. 사실은 저절로 양자의 불확정성에 의하여 이것이 광자를 내뿜어서, 그것이 눈에 들어와 감지를 하는 것이지요. 즉, 물체를 이루는 광자의 일부가 눈으로 입자와 파동의 형태로 들어오는 것입니다.(정확한 표현인지.. 잘모르겠지만;;)

그래서 단순히 보기만 하는 행위는, "원자 레벨" 에서는 양자 수준의 정확도는 무시했으므로(또는 측정 불가했으므로), 물체가 닳지 않는다 라고 상식화 되어 있었지만, "빛" 이란 놈 자체가 양자레벨 수준에서 기술되는 놈이기 때문에 빛 에너지가 물체에서 빠져나간 만큼 그것이 미치는 모든 변화들의 결과로 실험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관찰이라는 것은 공짜라고 알고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겐 낭패가 아닐 수 없죠...

불확정성 원리의 좀더 깊은 의미

단순히 관찰 행위가 그 대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했다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생물학이나 기타 다른 분야에서의 불확정성 원리는 이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물리학에서의 불확정성 원리는 좀 더 심오하다.

양자역학에서 측정 이라는 행위는 단순히 존재하는 어떤 값을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전자의 위치를 측정했는데 전자가 A라는 지점에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면 이것은 전자가 원래부터 A라는 위치에 있었다는 의미도 아니고, 어떤 위치에 존재하고 있다가 측정하는 순간 A라는 지점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측정”이라는 작업이 있기 전 까지 “전자의 위치”라는 것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다가, “측정”이 행해지는 순간 A라는 지점으로 위치가 결정되었다고 봐야 한다.

보통 불확정성 원리의 예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양자역학에서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은 동시에 결정조차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양자역학의 초기에는 저명한 물리학자들조차 이런 생각에 반대했으며, 아인슈타인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값을 측정할 수 있건 없건 “어떤 값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어떤 관련되는 값을 계산해 보면 일반적인 양자역학적 방법으로 계산한 값과 충돌한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실험 결과는 항상 양자역학적인 계산 쪽에 훨씬 가까운 값을 내놓고 있다.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쉬운 설명

식물의 불확실성 이론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다시 느끼고 있다. 마치 소립자 물리학자들이 Werner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서 한계를 느낀 것처럼, 생태학자들은 '식물의 불확실성 원리'에 의해서 자연에 대한 기본적인 한계를 받아들여인 다는 비유를 들고 싶다. 카나다, 알버타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야생 식물이 환경과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기록하는 것 자체가 야생 식물에 영향을 준다.

James Cahill 연구팀은 야생 식물을 관찰하는 것으로 야생 식물이 곤충에 잡아먹히는 정도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는 생태학자들이 식물과 환경 사이의 모든 자연적인 상호작용을 기록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의 한계는 소립자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났다. 독일의 물리학자 WernerHeisenberg는 1927년에 불확실성 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불확실성 이론은 소립자의 모든 고전적 성질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와 같은 변수들은 그 중 하나를 측정하는 것으로 인해서 다른 하나의 측정을 교란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몇 개월 동안 현장 조사를 하면서 관찰한 식물의 절반이 병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생태학 연구에 '중립적인 관찰'이 가능한 가에 관해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자연적인 것인지 아니면 관찰자의 존재에 의한 것인지에 관해서 의문을 가졌다. 연구팀은 8주 동안 매주 6종류의 일반 잡초를 대상으로 막대기로 건드렸다. 이는 관찰하는 행동을 흉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인도 대마(Apocynum cannabinum)의 경우에는 막대기로 건들이지 않은 다른 식물들에 비해서 곤충에 의해서 더 많이 먹혔다. 유황 양지꽃(Potentilla recta)의 경우에는 더 적게 먹혔다.

식물을 찌르는 것으로 곤충이 식욕이 변하게 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곤충을 유혹하거나 멀리하게 하는 화학 물질의 분비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얘기

프로그래머들 중에는 언제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버그를 하이젠버그(Heisenbug)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디버거를 붙이면(관찰)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 ^^ 대부분은 다른 버그들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머의 실수 때문에 생기는 버그이고, 악명과는 달리 디버깅이 아예 불가능한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하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CPU가 고도로 집적화되다보니, CPU 회로 안에서 전자 터널링 현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워낙 복잡해지다보니, 어쩌면 불확정성보다는 불완전성이 적용되는 것일 수도 있구요. --류광
보통 '이 cpu 는 0.xx 미크론 공정을 사용했다..'라고 할때의 0.xx 는 트랜지스터의 channel width를 말하는데. 이 channel width를 계속 줄여나가다보니 기존의 디지탈 회로에서는 무시해도 괜찮았던 아날로그적인 특성들이 나타나면서 연구자들이 골머리를 썩고 있습니다.


"그렘린"이란 몬스터는 불확정성을 다분히 신화적이고, 낭만적으로 해석한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몬스터를 생각하게 된 것은 전세계에 비행기가 날아다니게 된 이후라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중에 영국군 파일럿들은 자신의 비행기가 이해할 수 없는 고장을 보이면, 그렘린이 장난을 치기 때문이라고 말했었다 합니다. 그렘린은 원래 산 정상에 살았던 특성 때문에 상공의 비행기에 매달린다고 생각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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