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aments Betrayed |
"살만 루시디"라는 작가가 호메이니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게끔 만든 책이 무엇이었는지 혹 아는가? 오래전 뉴스여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 때의 이슈는 과연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의 문제나 타인들의 종교를 모독하는 것이 올바르냐 아니냐의 문제에 더 포커스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그 소설의 제목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질 빈도가 더 많았을 것이다. 살만 루시디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큰 명성을 얻고 있지는 않다. 밀란쿤데라, 많이들 알고 있다. 그런 그가 중점적인 시사 포커스를, "살만 루시디"라는 인물과 유럽 소설이라는 화두에 둔 소설적 에세이를 여러차례에 걸쳐서 의도적으로 내보내는데, 치밀하게 씌여진 그 에세이들은 한권으로 뭉쳐서, "사유하는존재의아름다움"이라는 한권의 책을 이루게 된다.
이 책에서 그가 의도적으로 역설하고 있는 것은 살만 루시디의 소설을 이단서적으로 몰아붙히는 호메이니의 무지몽매함만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확실한 역할을 해왔던 유럽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이제 더이상 변명하거나 옹호할 수 없는 유럽의 무력함을 오히려 더 비틀어 꼬집고 있다. 이 책속에서 독자는 많은 인류의 오해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진실과 사실을 말하는 쿤데라의 강력한 역설을 아주 즐거운 예시들과 더불어 계속해서 이해하고 공감해 나아갈 수 있다. 루시디의 입장을 옹호하고, "창작의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지식인들은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정작 그소설을 읽은 지식인들은 드물었다. 마치 추문을 대하는 태도와도 같이, 그들은 그책의 내용따위는 관심없이, 자신의 입장을 이 사건을 빌어 공공연히 외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얼마나 "관용적"인가? 난 얼마나 "자유주의자"인가? 훌륭하지 않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적어도, 루시디의 그 소설의 제목과 줄거리, 형식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카프카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오해가 풀리고, 체코의 야나체크가 누구이며, 스트라빈스키가 뭣에 집중하던 작곡가였고, 유럽 소설의 원류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심장 토론이라는 것에 담겨진 폭력적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라블레로부터 비롯되었던 유럽 소설의 역사에 대한 간추린 보고서이자, 클래식의 이해에 대한 속성 교본이자, 문학 이해에 대한 심도있는 해석의 혜안을 가져다 준다. 그것이 특수화된 언어가 아니라 메타포로 점철이 된, 보다 이해가 용이한 언어면서도, 보다 정확하다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전율로 울려져온다.
Testaments Betrayed라는 원제를 바탕으로 책을 이해하자면, 다름아닌 중점적인 에세이의 공격 타켓은 원작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창작물을 변형하고 왜곡하고, 비역질을 해대는 온갖 무지한 '배신'행위들이다. 물론,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피상적 문화산물 소비자, Roman까지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 '비역질'을 거의 일상화된 방식으로 날마다 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은, 너무 쫄 필요는 없다. 원작자의 입장으로서의 밀란쿤데라는 직접 그 작품 자체에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미치고자 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비판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오해는 인간 문화의 지렛대 중에 하나이기까지 하니까. 원작에 대한 몰이해는 몰이해 자체로만 끝나준다면, 그 해악은 대단히 큰 것은 아니다.--Roman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 상하 두권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있더군요. 워낙에 화재가 된 책이니까 제목을 보고 얼씨구나~하고 사들었지만 헉! 너무 복잡해....라며 초반부에 새파랗게 질렸다지요ㅠ.ㅜ 그리고, 글쎄, 그렇게 알라에게 모독적이었나? 싶기도 하고...알라보다는, 마호멧에게 모독적이지요(무슬림한테는 똑같으려나..) 아직도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이페이지를 보니 문득 보다가 던져놓은 그 책이 기억나네요. --황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