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소녀의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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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월 22일자 '만물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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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마을이었지만 부녀는 오순도순 살았다. 작년 가을, 이들에게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때묻지 않은 ‘산골소녀’를 때묻은 도시인들에게 보여주자는 취지는 좋았다. 문제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순진한 부녀를 실험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전기를 끌어오고 컴퓨터를 설치하고…. 소녀는 신기해 했지만 아버지는 밖에 나와 담배만 뻑뻑 피웠다.

이동통신업체가 ‘산골소녀’를 광고에 출연시켰다. 친구나 친척을 만나려면 마을로 내려가야 하는 산골에서 휴대전화는 그야말로 문명의 이기라는 선전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소녀는 친척과 전화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친구들이 이 안에 있다고 아버지에게 자랑한다. 이 광고에서도 왠지 아버지는 쓸쓸해 보였다. 문명과의 만남이 어쩐지 겁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산골소녀’의 생활이 며칠간 TV로 방영되자 여기저기서 돕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후원인들의 주선으로 소녀는 흙을 밟고 풀벌레 소리를 벗삼던 오지를 떠나 아스팔트와 시멘트 숲으로 덮인 서울에 왔다. 산골의 애환을 소녀의 감성으로 담아낸 글을 모아 ‘꽃이 피는 작은 나라’를 펴내기도 했다. 소녀는 검정고시 공부를 해 대학에 갈 꿈에 부풀었다.

외동딸이 도시로 나간 후 산골에 홀로 살던 아버지가 지난 12일 숨진 채로 발견됐다. 왼쪽 쇠골에 깊숙한 상처가 난 데다 콧등에 피가 흐른 것으로 미루어 누군가에게 타살된 것이다. 아마도 범인은 딸이 받은 광고출연료를 탐낸 강도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이번엔 아버지처럼 믿었던 후원회장이 소녀의 출연료와 인세를 횡령해 구속됐다. 소녀는 “도시가 무섭다”며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고 한다.

누가 이 소녀를 비극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는가. 알량한 문명과 조우하지 않았다면 부녀는 산골에 묻혀 도란도란 살았을 것이다. 결국 TV가 소녀를 도시로 끌어내고, 통신회사가 상업목적에 이용하면서 인면수심의 추악한 인간들이 그들을 나락에 빠뜨린 것이다. TV의 환경다큐멘터리가 환경을 망친다는 학자의 지적처럼 무소불위의 TV와 상업주의가 한 가정을 망친 가슴 아픈 사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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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이영자라는 소녀가 인간시대인가 뭔가에 방송되고, 후원인들이 공짜로 전화도 달아주고, 인터넷 연결도 해주는 모습을 마치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타리인양 미화하는 모습을 보고, 이에 관해 아무개씨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아무개씨는 그런 것에 대해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눈치였고 나의 기억이 틀렸다면 죄송 -- 나는 "세상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자꾸 끄집어 내려고 한다"며 슬픈 현실을 탄식했다. 결국 우리는 이런 기사를 보고서 혀를 끌끌 차면서 여전히 문명인의 고자세와 품위를 유지하며 주변에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듯한" 사람이 있으면 선심쓰는 척하며, 혹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감동하며 그들을 변화시키려 한다 --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맞추어 놓는 것이다. 그제서야 우리는 만족한다.김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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