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강 선유도 ¶
양화대교와 성산대교의 사이에 다리(선유교)가 있는데 이곳을 따라 걸어가면 선유도를 갈 수있다. 단, 차량이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차를 이용하실 분은 적절한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다리를 건너야 함.
제일 가까운 전철역은 당산역과 합정역(그래도 한참 걸어야 함. 어차피 걷는 거 싫어하는 분은 선유도 안에서도 계속걸어야 하니 안 가는게 좋을 듯). 버스 는 107-1, 125, 128, 160, 303, 326, 700-1, 914번을 타고 양평 한신아파트 앞에서 에서 내리면 될 듯.
안에 있는 시설들은 무료로 이용할수 있고, 먹을 것은 미리 준비해서 가야 할듯.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다니기 좋음.
제일 가까운 전철역은 당산역과 합정역(그래도 한참 걸어야 함. 어차피 걷는 거 싫어하는 분은 선유도 안에서도 계속걸어야 하니 안 가는게 좋을 듯). 버스 는 107-1, 125, 128, 160, 303, 326, 700-1, 914번을 타고 양평 한신아파트 앞에서 에서 내리면 될 듯.
안에 있는 시설들은 무료로 이용할수 있고, 먹을 것은 미리 준비해서 가야 할듯.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다니기 좋음.
선유도에는 원래 선유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었습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 선유봉이라는 걸작이 있지요.
선유도는 한강의 대표적인 경승지로 꼽혔으나, 1925년 대홍수 뒤 일본이 비행장을 건설하며 선유봉의 돌을 깨내기 시작했으며, 해방 뒤 미국과 한국 정부가 건설 사업을 위해 돌을 캐 봉우리 등이 거의 다 파괴됐습니다. 65년에는 그 위로 양화대교가 지나고, 선유정수장이 설치됐습니다.
선유도공원은 프랑스 2000년 위원회와 서울시가 공동 추진한 사업입니다. 선유도에 친환경적, 생태적 공원을 만들었고 2004년 5월에 오픈했습니다.
선유도공원을 디자인한 불란서 건축가 뤼디 리치오티는 아마 우리에게 선유봉을 오르는 느낌을 되돌려주고 싶었나 봅니다.
사진에 나온 선유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입니다.
선유교로 가는 길은 특이합니다. 이중의 높이로 두 단으로 되어있지요. 난간 쪽은 낮고, 가운데는 높습니다. 넓고 시원스런 시야를 주면서 동시에 안전을 보장합니다.
선유도공원에는 과거의 흔적이 많습니다. 과거의 켜가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현재와 조화를 이룹니다. 현재의 새로움은 이 과거가 있기 때문에 새로울 수 있습니다. 리치오티는 구청직원들이 정수시설들을 파괴하고 치우는 것을 쫓아다니며 말리기 바빴다고 합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레거시 시스템 등에 관심있는 분들은 꼭 가보시길 추천합니다.
--김창준
위 글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만 보고 무작정 선유도를 갔다 왔습니다. 그래서 왜 시설들이 깨져 가는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었지만... 정수장을 완전히 헐어버리는 대신 그 구조물의 일부를 (반성의 차원에서?) 고스란히 공원으로 전환해 놓은 역발상. 멋진 곳이었습니다.
위 사진과 같은 모습의 선유교를 볼 수 없었다는 게 아쉬웠습니다. 조명이 2003년 장마 때 물에 잠겨 버린 이후로 켜지지 않는다는군요. (2003년 8월 기준)
--PuzzletChung
--PuzzletChung
드라마 네멋대로해라의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2004.7.17 - 8.28.(매주토요일) 네멋대로 해라 2차 상영회가 다음까페 '네멋30'에 의해 예정돼 있니다. --Astro
2. 선유도 연꽃이 예뻐요 ¶
선유도의 멋진 하늘과 벽
흰 연꽃
둘다 제가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올리는 지 잘 모르겠어요-_-;;
선유도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가면 좋아요. 멋진 사진 찍으러 가기도 하죠.
그러나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생하고요, 겨울엔 선유도에서 가장 멋진 연꽃을
볼 수가 없어서 요즘에 가는 걸 추천합니다.
겨울엔 선유도 말고 선유도에서 좀더 여의도 쪽으로 가면 서강대교 밑에
밤섬있거든요. 밤섬은 못들어가게 되어있으니 겨울에 11월에서 2월달 정도에는
밤섬철새조망대 가는 게 좋아요. 그곳은 밤섬 앞에 그러니까 한강변 여의도에 있는 조금한 장소인데요,
설명해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좋아요.^^
둘다 제가 찍은 사진인데 어떻게 올리는 지 잘 모르겠어요-_-;;
선유도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가면 좋아요. 멋진 사진 찍으러 가기도 하죠.
그러나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생하고요, 겨울엔 선유도에서 가장 멋진 연꽃을
볼 수가 없어서 요즘에 가는 걸 추천합니다.
겨울엔 선유도 말고 선유도에서 좀더 여의도 쪽으로 가면 서강대교 밑에
밤섬있거든요. 밤섬은 못들어가게 되어있으니 겨울에 11월에서 2월달 정도에는
밤섬철새조망대 가는 게 좋아요. 그곳은 밤섬 앞에 그러니까 한강변 여의도에 있는 조금한 장소인데요,
설명해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좋아요.^^
이건 밤섬철새조망대에서 망원경 접사로 찍었던 오리들과 까치들.^^--7744
3. 고군산군도 선유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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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는
수정같이 맑은 물, 곱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하는 모래밭, 바위섬에 부딛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사이로 아름아름 유서와 전설이 배어있는 고군산군도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길이 1.2킬로미터 폭 50미터 규모의 명사십리 모래밭을 가진 서해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주변의 경관은 신선이 감탄하며 즐겁게 놀 정도라고 할 만하다.
선유도는
수정같이 맑은 물, 곱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하는 모래밭, 바위섬에 부딛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사이로 아름아름 유서와 전설이 배어있는 고군산군도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길이 1.2킬로미터 폭 50미터 규모의 명사십리 모래밭을 가진 서해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주변의 경관은 신선이 감탄하며 즐겁게 놀 정도라고 할 만하다.
유래 및 전설
선유도는 행정편의상 1, 2, 3구로 구분하고 있으나 실제 지명은 지형과 연관되어 지어진 이름이다. 선유도 북단에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는데 그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선유도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선유도의 수군 절제사가 진을 치고 있었던 진말(본 마을)이 있으며 통정대부까지 벼슬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통리(일명:통개)라 부르며 주민들이 촌락을 새로 형성했다하여 샛터라하고, 본마을과 밭을 사이에 두고 있다하여 밭너머를 한문으로 전월리(田越里)라 부른다. 남쪽의 산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남악리(南岳里)라 부르고 있는 등 총 5개의 자연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선유도 주위를 둘러싼 무인도로는 쑥섬(일명 닭섬), 앞삼섬(3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장구삼섬(장구모양으로 생긴 섬이라고 해서), 쥐삼섬(쥐가 기어가는 모습)등이 있으며, 이중 장구삼섬은 선유도의 바로 앞에 있는 무녀도의 무녀봉과 한쌍이 되어 무당이 춤을 추고 장구치는 모습의 형상을하고 있다고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다.
선유도는 본래 '군산도(群山島)'라고 불리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려·송무역로(麗·宋貿易路)의 기항지(寄港地)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해안 연안항로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군산도(현 선유도)에 수군진영이 창설되었고 세종초기에는 이곳의 군산진이 옥구현 북쪽 진포로 이동하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 가므로써 이곳을 '고군산도'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군제도의 변천에 따라 이곳의 수군진은 존폐를 반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선조 2년(1569)에는 이곳에 수군절제사를 두어 인접한 8개군을 관할케 한 일이 있었고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잠시 육지로 피난하였다가 다시 선조 33년(1600)에는 이곳에 감사를 두어 수군절제사가 통할 당시의 동일지역을 관할케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인조 2년(1624)에는 별장진을 두었고, 숙종 원년-9년(1675∼1683)에는 고군산진을 각각 신설하기도 하였다.
진말동산에는 당시의 동헌건물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1932년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졌고 그 유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선유도는 행정편의상 1, 2, 3구로 구분하고 있으나 실제 지명은 지형과 연관되어 지어진 이름이다. 선유도 북단에 해발 100여m의 선유봉이 있는데 그 정상의 형태가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하여 선유도라 불리워지게 되었다. 선유도의 수군 절제사가 진을 치고 있었던 진말(본 마을)이 있으며 통정대부까지 벼슬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통리(일명:통개)라 부르며 주민들이 촌락을 새로 형성했다하여 샛터라하고, 본마을과 밭을 사이에 두고 있다하여 밭너머를 한문으로 전월리(田越里)라 부른다. 남쪽의 산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남악리(南岳里)라 부르고 있는 등 총 5개의 자연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선유도 주위를 둘러싼 무인도로는 쑥섬(일명 닭섬), 앞삼섬(3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장구삼섬(장구모양으로 생긴 섬이라고 해서), 쥐삼섬(쥐가 기어가는 모습)등이 있으며, 이중 장구삼섬은 선유도의 바로 앞에 있는 무녀도의 무녀봉과 한쌍이 되어 무당이 춤을 추고 장구치는 모습의 형상을하고 있다고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다.
선유도는 본래 '군산도(群山島)'라고 불리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려·송무역로(麗·宋貿易路)의 기항지(寄港地)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해안 연안항로의 거점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국초부터 군산도(현 선유도)에 수군진영이 창설되었고 세종초기에는 이곳의 군산진이 옥구현 북쪽 진포로 이동하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 가므로써 이곳을 '고군산도'라고 호칭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군제도의 변천에 따라 이곳의 수군진은 존폐를 반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선조 2년(1569)에는 이곳에 수군절제사를 두어 인접한 8개군을 관할케 한 일이 있었고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잠시 육지로 피난하였다가 다시 선조 33년(1600)에는 이곳에 감사를 두어 수군절제사가 통할 당시의 동일지역을 관할케 하였던 것이다.
그 후 인조 2년(1624)에는 별장진을 두었고, 숙종 원년-9년(1675∼1683)에는 고군산진을 각각 신설하기도 하였다.
진말동산에는 당시의 동헌건물이 보존되어 있었으나 1932년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어 없어졌고 그 유지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특히 선유도는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에서 크게 승첩을 거두고 이곳 고군산도에 찾아와 열하루동안(1597 9.21∼10.3) 머물면서 명량해전의 승첩을 조정에 보고하기 위한 장계를 초안하여 서울로 보냈고, 왜란 중에 아산 본댁이 왜적들에게 분탕질을 당해 잿더미가 되어 버리고 하나도 남은 것이 없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 등 충무공의 통한이 서린 유서 깊은 고장이기도 하다
이곳의 수군진터에서 동편 건너, 망주봉 아래에 있는 오룡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제신당으로서 그 옛날에는 이곳에 기항하는 항해선들도 해로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선유도는 연안해로의 거점이요 관방의 요충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관도 빼어나서 고군산 팔경이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니 과연 신선이 노닐만한 선경인 것이다.
이곳의 수군진터에서 동편 건너, 망주봉 아래에 있는 오룡묘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제신당으로서 그 옛날에는 이곳에 기항하는 항해선들도 해로의 안전을 기원하는 기도처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선유도는 연안해로의 거점이요 관방의 요충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관도 빼어나서 고군산 팔경이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니 과연 신선이 노닐만한 선경인 것이다.
한번도 못 가보았는데 멋지네요. 다음에 한국 들어가면 가봐야겠네요. 선유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링크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david 2006-06-06
작년 5월에 오픈했습니다.를 2004년 5월에 오픈했습니다.로 바꾸었는데 2004년이 맞겠지요...? --세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