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진중권, 김정란, 박노자, 노혜경, 김동춘, 김민수 등이 중심이 되어 엮는 사회과학 격월간 무크지. 책의 제목 그대로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의 얘기, 안티조선, 지식인들의 사회비평 등의 여러 담론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를 많이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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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점차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요구한다. 표면적으로는 관용의 시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의 실상은, 남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타인의 침입을 두려워하는 불완전한 관계망이 아닐까. 타자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만 손을 맞잡는 타자를 두려워하는, 타자를 욕망하지만 타자를 관용할 수 없는, 닫힌 관계망. 힙합 청바지에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한 젊은이를 떠올려보라. 오늘날 어느 거리에서나 마주치는 젊은이의 모습이지만, 그가 이어폰을 빼고 큰 소음을 내며 거리를 어슬렁거린다면 우리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까. 몰래 카메라에 찍힐까 두려워하는 것과 훔쳐보기의 은밀한 욕망도 마찬가지이다. 사방으로 너무 열린 공간은 언제든 타자가 침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낳고, 열려 있으되 쉽게 다가갈 수 없는 타자를 향한 병적인 열정이 다른 방식의 관계를 추구하게 만드는데, 이 지점에서 몰래카메라의 두려움과 훔쳐보기의 열망이 일그러진 채 만나는 게 아닐까. (p.75)
9호 ¶
BEST 읽어볼 거리 : 후기 자본주의와 인간 노동 - 강수돌 (p.119 ~ p.137)
국내에서는 '외노'의 문제가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 시민 운동가의 주요 화두 중의 하나가 드디어 됐지만, '성공적인 위기 극복' - 실제로는 신자유주의적 기업 매각 - 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서방 대형 언론들은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유린 사태를이전과 같이 지속적으로 외면했다. '외국인 노동자 취업 허가제'를 굳이 도입하지 않아도 노동자의 출신국에서는 한국 이미지에 문제가 어느 정도 있을 뿐 '선진국'에서의 인지도에는 치명타가 아닐 거라는 생각, 19990년대 중반부터 한국 관룐 사회 상층부에 자리잡은 사대주의적인, 백인 우월주의적인 '상식'은 현재의 구미 중심의 '세계촌'을 감안하면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었다. 구미 세계의 '주류'를 보수파가 아닌 진보가 차지했다면, 청와대와 세종로, 과천의 '해바라기'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금처럼 오만하고 무관심할 수 있었겠는가? (p.153)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역설이 발생하였다. 한국에서는 미등록 노동자 수가 합법 취업자 수보다 훨씬 많고, 미등록 노동자가 합법적인 산업 연수생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러한 사실은 생산 기능직 외국인력이 유입된 1980년대 후반부터 줄곧 지속되어왔다. (p.160)
이들 산업 연수생들이 파업을 통해서라도 관철시키려 했던 요구 조건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원초적인 수준의 요구다. 세원전기의 경우 요구 조건은 한달 임금 350달러 (약 42만 원, 최저 임금법 위반)을 전액 원화로 한국에서 수령할 수 있게 할 것과 연장 근로수당과 휴일 근로수당을 지급할 것, 그리고 계약서상 식대와 생필품비를 전액 지급할 것 등이었고, 동아타이어의 경우는 법정 최저임금 인상분(약 5만 원)을 식비 명목으로 공제하는 것을 중단하고 무료 숙식으로 규정된 계약서 내용을 지키라는 요구였으며, 산성(주)의 경우는 형이 사망한 동료 연수생이 형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1년에 한 달간 쉴 수 있게 되어 있는 계약서 조항을 적용해서라도 일시 귀국하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이 정도의 눈물겹도록 소박한 요구조차 정상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결국 파업 투쟁까지 이르게 된것이다. (p.185 ~ p.186)
월급은 고작 3만 원에서 40여만 원 정도다. 또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산업 재해를 당했을 경우에도 합법 체류자(산업 기술 연수생)는 산업 재해 보상을 전혀 받지 못하고 상해 보험으로 1,500만원 까지를 받을 수 있지만, 불법 체류자의 경우에는 노동부의 산업 재해 보상과 회사측의 민사 보상을 동시에 받을 수 있고, 불법 체류 사망자의 경우 총 1억 원까지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모순은 연수생은 합법 체류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일 뿐이기에 노동자로서의 보상을 해주지 않고, 불법 체류 노동자는 체류는 불법이지만 노동자로 인정을 하여 산업 재해 보상ㅇ을 해주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p.197)
우리 정부는 이들이 불법 체류를 하며 일을 하닥 죽거나 다치는 산업 재해를 당해도, 임금을 아무리 체불시키고 주지 않아도, 사업주는 처벌도 하지 않고 외국인은 강제로 출국을 시켜버렸다. 이들이 체포되면 법무부는 한 달에 10만 원꼴로 불법 체류 기간에 대해 과중한 벌금을 물리고 강제 출국을 시켜왔다. (p.198)
우리(서울 경인 지역 평등노동조합 이주노동자지부) 조합원 S씨는 당당히 이야기 한다. "불법 인간들의 불법 노동을 먹고 자란 한국 경제는 다 불법이다"라고...(p.210)
그런 반면, 비두 동지와 꼬빌 동지의 연행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자 이들을 서둘러 내쫓기 위하여 강제 퇴거 명령서에 이의 신청할 기회도 박탕한 채, 항공권도 사주고 본인들이 서명하지도 않은 여행자 증명서에 서명까지 날조해가며 추방하려고 서두르다가 덜미가 잡힌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현재 '공문서 위조'협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이제까지 국민들의 감시와 관심에서 벗어나 외국인들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던 출입국관리 행정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p.222)
연수생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찍히면 '고용 중지'의 위협을 받는다. 이는 곧 '퇴거(추방)'를 의미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묵묵히 일할 수밖에 없도록 구조적으로 강요당하고 있다. (p.223)
우리는 많은 이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노동 시장의 개방을 이야기하는 것으 ㄴ아니다. 신자유주의하에서 강화되는 세계 자본의 이동과 노동력 이동의 촉진이 결코 제3세계의 민중과 노동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의 필요에 의한 노동력 이동의 촉진은 오히려 제3세계 민중을 국제적인 산업 예비군으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고, 유입국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과 고용 불안이라는 공통적인 위협에 더욱 심하게 내몰리고 있다. (p.225)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가 일하는 것은 범죄다. 하지만 사장이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노동자에게 월급을 안 주고 때리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불법 노동자에게 불법 행동을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이 사회는 말하고 있다. '너희 이주 노동자, 불법 노동자는 그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권리도 없다'고 사회는 말하고 있다. (p.238)
이 세상에서 말과 정서의 고향을 이유 없이 떠날 사람이 없는 것은 마치 파업을 하고 싶어서 하는 노동자가 없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제 3세계에서 끝없는 유민의 대열을 낳으면서 그것을 오직 그들 자신의 잘못 탓으로 돌린다. 파업을 오직 파업 노동자들의 잘못 탓으로 돌리듯이. (p.252 ~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