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V 사상 최대의 히트작 중 하나인 춤추는대수사선 시리즈의 극장판 2편. 상당히 울퉁불퉁한 각본에도 불구, 일본 역대 영화 중 흥행 2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며 2천만명에 달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영화만 놓고본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브릿지를 봉쇄하라 ¶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브릿지를 봉쇄하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일본의 모든 영화중에서 역대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입니다. 무려 2천만이나 달하는 관객 동원은 무시할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영화는 그렇게 대단한 영화가 아닙니다. 특히 중반 이후의 각본은 꽤나 저열합니다. 마치 영화의 초반과 중반을 서로 다른 각본가가 쓴 것처럼, 영화 후반의 각본은 억지논리에, 엉성한 전개, 신파조에, 덜컹거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대사로 가득합니다.
초반부의 팽팽하면서도 화려한 연출이나, 돈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한, 그러나 돈을 헛되이 쓰지 않고 세련된 기교로 만들어낸 시각적인 장면들은 뛰어 납니다. 이런 각본의 대사를 가지고 연기하는 배우들치고는 연기도 괜찮은 편이며, 단역에서 주연, 원로배우, 중견배우에서 신인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매력적이고 멋있고 예쁜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러나 이런 영화의 많은 장점들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나 로드리게즈의 영화처럼, 영화의 B급 내용들과 오히려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화는 분명히 A급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이런 장점들은 조금도 어울리지 못하는 영화의 주제(라고 내세우는 것)와 각본, 특히 각본에 적혀있는 대사들에서 완전히 망가지고, 결과적으로 장점들은 가려집니다.
gerecter는 영화를 같이 본 사람과 대화하는 중에, 이 영화는 일본의 조폭마누라-성 영화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흔히 "조폭마1탄"이라고 불리우는 조폭마누라 1탄은 엉성한 편집과 더 엉상한 중심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될 정도의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흥행이라는 지극히 상업적인 면만 놓고 봅시다. 수백억씩 들였다가 왕창 망해버리는 "원더풀데이즈"의 제작사와 대강 쓱쓱 찍은 "조폭마누라"가 동원하는 관객수를 보면 "조폭마누라"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조폭마누라는 몇몇 격투씬의 연출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류의 한국영화의 발전이라 할만한 기술적인 세련됨이 두드러지긴 합니다. 어림없는 연출과 제작으로 많이 흐트러지긴 했지만, 영화 음악의 사용이나 연기력, 세세한 연출등은 그 이상한 대사들과 줄거리에 비하면 뛰어난 편입니다. 그렇다고해도, 전체적인 영화의 가치는, 정신 똑바로 보고 쳐다보면, "LA 2013"이라든가 장끌로드 반담, 척 노리스 등이 자식들 분유값 벌려고 만든 트래쉬무비들 보다 조금도 더 나을게 없습니다. 내용도 설득력이 없고, 감동도 주제도 부족하고, 재미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왜 관객들은 그렇게 많이 들었을까요? 조폭마1탄에는 분명히 뭔가가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망한 조폭마2탄에는 그 "뭔가"가 없었고요. 어림없는 각본과 연출이, 영화의 장점들을 다 없애버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묘하게 끌어모으는 그 무엇인가 말입니다. 춤추는대수사선2는 조폭마1탄 보다는 훨씬 더 그 무엇인가를 간단하게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왜 일본인들은 춤추는 대수사선2 에 열광하였는가? ¶
말할 것도 없이 드라마 시리즈 "춤추는 대수사선" 때문입니다. "춤추는 대수사선"은 아주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은 경찰들이 블록버스터스럽게 나오는 서스펜스 가득한 액션물이면서도, 결코 자동차 추격전, 대규모 총격전 따위가 중심인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춤추는 대수사선" 드라마는 서스펜스 넘치는 극의 중심 사건을 긴박하게 전개하되, 극의 중심은 세세한 경찰 인간 군상을 그리는데 있었습니다.
관료사회와 같이 경직되고 책임감 없고 나태한 사람들, 낙하산 인사, 인물간의 경쟁과 갈등,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 독특한 만화적인 캐리커쳐 캐릭터. 이런 것들을 그다지 거창하지 않게, 그러나 개성있게 희화하는 독특한 재주가 있는 드라마였습니다. 그러면서 드라마의 연출은 기가막혔고, 형사물 특유의 스릴과 박력은 잘 살렸습니다. 보기좋은 배우들과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더군다나 음악이야말로 화룡정점이었습니다.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는 단 11회로 끝마친 미니시리즈였고, 덕분에 안타까워하는 일본의 매니아들은 넘쳐났습니다. 오타쿠니 매니아들이니 하는 성향이 가장 극단적인 나라에서, 가장 상업적인 후지TV가 만들었던 미니시리즈였던만큼, 또 드라마의 제작진들이 의욕도 있었기에 이 드라마는 "특별판" "외전" 같은 것들을 많이 만들어내게 됩니다. 덕분에 매니아들은 더욱 늘어났고, 많은 사람들은 "춤추는 대수사선"의 등장인물들에게 아주 애착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 완간서 최악의 3일"이 개봉되자, 이런 매니아들의 사랑은 급물살을 탔습니다.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에 열광하여 그 등장인물들에 애착에 빠진 사람들은 TV 시청자 몇천만명들이었고, 그들은 "반가운 완간 경찰서의 캐릭터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꺼이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완간서 최악의 3일"이라는 부제를 보시고, 그 예고편을 한 번 보십시오. 드라마 캐릭터에 애착을 느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챙겨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스타트렉 엔터프라이즈호의 탄생"이라든가, "옥탑방 고양이, 3일만의 이혼" 같은 것의 인기를 상상해 봅시다. 게다가 "춤추는 대수사선"은 훨씬 인물의 성격이 강조된 드라마이고, 개봉된 나라는 일본입니다.
그리하여, "춤추는 대수사선 극장판 완간서 최악의 3일"은 일본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 자체도 중간 이상은 되는 꽤 괜찮은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이야, 드라마에서 보던 아오시마 형사, 스미레 형사, 마시타 경관, 유키노 경관을 또 보니까 정말 반갑고 즐겁더라"하는 느낌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학습이 되었습니다.
1998년 영화의 개봉후, 5년이 지났습니다만, 후지TV는 "심야에도 춤추는 대수사선"이니, "춤추는 대 서울선"이니 해서 아직도 뇌리에서 춤추는 대수사선을 지우지 않게 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차에, 드디어 2003년 "춤추는 대수사선 2"가 개봉된다고 합니다. 5년 동안 완간서의 관할 구역은 동경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도심으로 어마어마하게 성장해버렸고, 5년동안 몇몇 캐릭터들이 승진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자, 호기심은 땡깁니다. 마케팅 팀은 계속 감질나게 살짝살짝 정보를 내놓으면서 바람을 잡습니다. 극장판 1편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절감한 관객들은 개봉날짜를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리고, 온 일본이 열풍에 휩싸이며, 2천만이 넘는 관객들이 영화관에 왔던 겁니다.
그래서, 영화를 열어보니 ¶
영화의 시작과 초반은 오락영화에 있어서 대단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영화가 그려내는 세련된 시각적 연출의 대표적인 것들은, 대도시 동경을 잡아내는 좋은 장면들입니다. 멋진 은막관광이라고 할만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지루할 정도의 시간을 소모하지는 않습니다. 경찰 제복,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일반 복장의 형사들을 잘 섞어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경찰서를 만들어낸 장면도 미술적으로 대단히 보기 좋습니다. 더군다나 시끄럽고 복잡하게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이 화이트 컬러 오피스의 상징처럼 움직임이며 만들어내는 모습은, 60년대 뉴욕 배경의 영화들을 연상시킬만큼 화사하고 신선하며, 호흡도 좋습니다.
도입부에 있는 크루즈 선박을 배경으로한 SAT의 활약 은 재미있지만 내용자체는 많은 만화에서 보던 진부해 빠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장면의 연출은 1급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능가할만큼 매끈하고, 스케일이 크고, 즐겁습니다. 아니, 그런게 뭔 상관입니까. 시작하고 조금 뜸을 들이더니, 드디어 수많은 관객들이 반가워할 아오시마 형사가,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나지않습니까? 그리고 와쿠 형사, 유키노까지. 그리고나서, 타이틀롤과 함께, 변함없이 "춤추는 대 수사선"의 주제곡 음악이 나오면, 많은 관객들은 벌써 "와아-"하고 감탄합니다.
이후의 초반은 보기 좋습니다. "도시락 준비"라든가, "서장 스캔들"같은 이야기들은 드라마에서 효과가 좋았던 것을 재탕하는 것이지만, 살짝 달라진 배경에서 재탕을 하니 진부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겹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이 "춤추는 대수사선" 드라마 시리즈 재미의 핵심요소입니다. 속물스러움에 빠진 내용을 던져주고, 캐릭터가 강한 많은 인물들의 반응을 속도감있고 적당히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것은 영화의 초반부에서도 잘 살아납니다.
그러면서 점차 살인 사건들이 꼬여들어가고, 무진장 거창한 경시청에서 나온 인사들이 폼을 잡고, 뭔가 대단한 역할을 할듯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시스템"도 등장합니다. 예전에 재미있던 드라마의 요소들이 참신한 배경에서 다시 속속들이 건재한 것이 보이는데, 이렇듯 많은 사건들이 얽혀 긴장감, 기대감도 높아집니다.
참신함의 요소는 다른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키노를 연기한 미즈노 미키 같은 배우는, 원래 "춤추는 대수사선" 드라마 당시에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은 캐릭터였습니다만,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TV물의 성공으로 지금은 거물급 배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춤추는 대수사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당히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덕분에 이 배우의 팬들이건, 이 드라마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세월의 맛이 묘하게 다른 각도에서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마도, 영화가 형편없어지는 분수령은 이 기대감의 최고조인 카지노에서의 대치 장면이나, 그 다음인 스미레 형사가 "우리가 하는 일도 가치가 있는 것이었어"하면서 초록색 점퍼를 보고 깨닫는 장면일지 싶습니다. 후자의 경우, 어떤 관객이 돋는 닭살을 잠재울 수 있겠습니까. 그 이후로 영화에는 초등학생용 인형극이나 80년대 반공교육 만화영화식의 어림없는 민주시민 교육용 대사들이 철철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감정의 과잉은 넘쳐납니다.
대단히 그럴듯할 것 같은 꼬여 있던 사건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갈등 구조도 아무런 설득력이 없습니다. 입체적인 인물일 것처럼 분위기를 잡던 책임자 관리관은 형편없이 망가지면서 싸구려 단순 악역 캐릭터로 전락해 버립니다. 인질극도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아무런 가치없이 쓰이고, 더군다나 범인들의 정체도 김새어 나갑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검색한 것의 프린트 물을 뽑아 보여주면서, 엄청나게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조직이 어쩌니, 리더가 어쩌니 하는 말들도 조금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세상에, 그럼, 이 경찰들은, 망나니 조직이 두목, 부두목, 행동대장 체계를 쫘악 갖추고 있어야만 상대해 줍니까?) 인물들의 반응들은 이상하고, 대사들은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망가지는 대사들의 압권은 SAT 대장의 마지막 대사와,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범인들이 하는 대사들입니다. 특히 범인들의 마지막 대사는 아주 성의가 없습니다. 이들이 이런 말도 안되는 대사를 차례로 펼치는 것은, 작가가 쓴 어림없는 조직문화 강론에 대해 아오시마 형사와 토론을 통해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으로, 비장한 분위기와는 달리 무척 성의없는 각본에 연출로 보입니다. "춤추는 대수사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 의식을 정리해 주기 위해서 뭔가 "큰 것"을 하나 집어 넣으려다가 실패해버린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극의 흐름과 현실성에 어울리지 않게, 무리한 듯 합니다.
조금만 다듬으면 꽤 그럴듯한 장면일 수도 있었던, 혈액을 구한다는 연설장면이나, 와쿠 형사의 눈물 장면도 앞 뒤 장면의 연결이 설득력이 없고, 또 지나치게 어깨에 힘들어간 분위기 연출은 그저 감정의 과잉일 뿐, 극적인 감동을 줄여버립니다. 초반에 아주 거창했던 "빅브라더 시스템"은 뭐 별 언급도 하지 않고 "언제 그런게 있었냐?"하는 식으로 흐지부지 됩니다.
끝으로, 모든 사건들을 억지로 맺음하기 위해서, 헌혈차 앞에서 체포하는 장면은 허탈하고, 그야말로 성의없는 대강 마무리입니다.
시작과 초반이 좀 좋다고 해도, 영화만을 놓고 봤을 때, 이런식으로 중반 이후가 흘러가는 영화가 괜찮을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보든, 영화는 평균 혹은 그 이하입니다.
그런데도, 아주 재미있게 보려면 ¶
노스모크가좋은이유를 잘 못살리면서 혼자 잔뜩 적었습니다만, 영화/드라마 보신분 들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걸 소재로 삼아 영화/드라마 일반에 관한 논의하기가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독립적으로는 그렇게 괜찮은 영화는 아니지요? -- gerecter
독립적으로는.......그렇지요. 저영화는 아무리봐도 팬서비스입니다.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라기보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봤을거고, 대사나 소품, 인물, 상황등을 보면서 "아아~ 저건 어디에 나왔던 뭐의 패러디다!!"에 정신이 팔려있었을테니(.....접니다^^;) 영화자체가 어떤지는 머리속에 남아있지도 않을겁니다. --황원정
AnswerMe 어쩌면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를 것 같지만.. 무로이에게 사투리 관련해서 물어본 것은 무슨 뜻인가요? 일본어는 하나도 모르니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litconan터널의 이름 "카와타"입니다. 그걸 아키타 사투리로 해보라고 했더니, 무로이는 "카만다"라고 했습니다. 그게 범인들이 속삭인 소리중에 섞여있었다....뭐 그런거죠. 그런데 메이킹 필름을 보면, 무로이 역을 한 야나기바 토시로는 촬영이 끝난 마지막날 이런말을 합니다. "카와타는 아키타 사투리로도 카와타에요!(웃음)" ...어차피 그 영화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게 많다는건 서로 다 알고 있었습니다. 메이킹 필름을 보면 자기들끼리 그런 말을 합니다. "어차피 이상하니까 괜찮아"......순간 얼마나 웃었는지. (뱀발;이 영화때문에 유명해진 아키타 사투리로 "혼지나스 혹은 혼지나스 도모(바보라는 뜻)" 가 있습니다. 그리고 무비2의 무로이가 시상식장에서 마지막에 웃으면서 한 말(카닷빠리코이데, 라고 했습니다)은 "그녀석이 이런데 올리가 없지"가 아니라 "고집쟁이같으니라고"입니다. 아키타 사투리죠. ....아마, 번역자가 사투리를 몰라서 만들어낸 말이 아닌가합니다.) --황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