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니체를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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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니체를 읽는가? - R.J. Hollingdale (1967년 10월 21일) 우상의 황혼 편집자 해설에서 (청하)


왜 니체의 책를 읽는가? 그것도 한 권이 아닌 여러 권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읽어야 할 책은 니체의 책 말고도 많다. 또 세상엔 책읽는 일 말고도 많다.

니체는 한가닥 이성과 자유 의식 이상으로 값비싸게 사들였던 것은 없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지금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서광(曙光)의 잠언 18에서 쓰고 있다. 그는 또 권력에의 의지에 부칠 서문의 초고에서 더도 말고, 생각을 자극하는 한권의 책 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니체의 책들을 읽는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니체의 책들은 생각을 자극하는 특유의 과정을 제공해 준다. -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신의 독자성이야말로 그가 무엇보다 강조하여 가르친 것이었다. 그는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학문을 우선시 한다기 보다 애지(愛智)로서의 철학, 정신을 활동하게 하고 생산적이게 만들고, 원활하게 만드는, 하나의 자극제로서의 철학을 가르쳤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그 인간 이성의 작은 일편이란, 값비싸게 사들여진 것이기도 하지만 쉽사리 잃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인류가 그 이성을 잃으면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이 도대체 얼마나 남을까. 그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지 않는 한 우리는 어쩌면 정말 그것을 잃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성을 잃어버리는 편이, 아니면 적어도 그것을 감퇴시키거나 억제시키는 편이 자기네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뚜렷한 인간혐오자가 아닌 한 그보다 더 잘못된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격동의 세계에서는 도처에서 지성이 수세에 몰려 있다. 그래서 그것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투쟁을 해야 할 판이다. 무엇으로 오늘날의 시대를 특징지을 수 있을까? 감정의 과잉. 감정의 끊임없는 자극. 그리고 그것을 더욱 더 자극받게 만들고 싶은 욕구. <이성>적인 것이 아니고 순전히 감정적 반사로서 민족주의와 반민족주의. 또 가장 어리석은 정념과 탐욕과 원한을 빤히 들여다 보이게 감추고 있는 <이데올로기들>. 궁극적인 증거로서의 <증오>(이를테면 전쟁에 대한)와 <사랑>(이를테면 평화에 대한). 물론 그것들도 증거가 되기에는 터무니 없는 것이라 단 한가지 체험만으로도 그 양극성을 뒤집어 엎고 하룻밤 새에 부정을 긍정으로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사적인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감정에 대한 끊임없는 호소. 그것도 지나치게 엄격한 양육을 받은 것에 대한 반발로서가 아니라 - 20년대에는 그것이 핑계가 되었지만 요즘 누가 어디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라나는 가? - 두뇌로부터 <가슴>으로의, 그리고는 더 아래로의 도피로서. 더 많은 자유의 요구로 표현되는, 어떤 특정한 감정에 사로잡히고 싶은 욕망. 감정의 진짜 반대는 사고(思考)임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가 <죽음>이라고 믿는 <감수성의 숭배>. 이성이 이처럼 더럽혀지고 있는 데에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수소폭탄이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들 한다. 그러는가 하면 역사를 통틀어 이 시대만큼 음악성을 가진 시대가 없었다. 때로는 지성이 리듬 속에 녹아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니체의 책들은 무엇보다 그러한 용해를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니체를 읽는 세번째 이유는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떤 딱 한가지 주제에 관해서 합당한 의견에 이르기는 아주 어렵다. 충분히 깊게, 충분히 오래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데이터도 충분치 못한 상태에서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한 자기 고유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종의 의무감에서 하나의 의견을 찾아내며 결국 한 가지 의견을 찾아내고 만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자기들의 의견을 죄다 완전히 타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애매한 것을 못견뎌 확실한 것을 찾아나서는데 그것을 또 너무 순식간에 찾아낸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어떤 사람의 생각에 감복한 나머지 그 사람과 같이 되기 위해 그의 의견을 채택하는 수도 있다. 많은 의견들이 인접한 환경에 영향받아 생겨난 일종의 겉치레 치장에 지나지 않는다. 흡사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나 도회지 사람의 희멀건 얼굴 꼴이다. 사실 합리적인 사고와는 전혀 관계없는 의견들을 얻는데도 오만가지 방식들이 있다. 물론 니체의 의견만이 합리적인 의견이고 모든 사람이 다 당장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니체를 읽었으되 아주 불행하게 읽은 셈이 된며 요령부득의 독서를 한 셈이 된다. 니체를 읽는다는 것, 그를 단호히 거부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 --- 그것이 한결 핵심적인 일이다. 더 나아가 그가 왜 옳을 수도 있는가를 알고, 어떠한 사고 방식에서 그의 의견과 같은 것이 나오는가를 아는 것, 또 얼마나 많은 사고방식들이 있을 수 있는가를 아는 것, 요컨대 편협성을 버리는 것, 그것이 더 핵심적인 일이다. 한가지 이상의 의견을 옳다고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자기가 태어난 곳을 막무가내 떠날 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니체가 어떤 문제를 한 가지 이상의 관점에서 생각하려고 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생각했던가를 말해 주는 두 가지 예가 있다. 데카당스와 민주주의를 생각했던 방식이 그것이다. 데카당스 decadence (니체는 늘 불어를 사용한다)는 이 책에 실린 두 가지 저작에 공통되면서 동시에 강박적으로 보이는 주제다. 그는 도처에서 데카당스를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가치 평가의 배후에도 있다. 여기서 그 말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 보다는 「데카당스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타락했다는 의미로 분명 데카당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네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점점 더 강하고 점점 더 빈번한 자극」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 피폐상을 이용함으로써 득을 얻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또 그것을 공격하고 비방함으로써 득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들도 데카당일까.. 그리고 관능적 자극이 이전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점점 더 강해져야 하는 사회에 대해,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든 <유행>이라는 것이 유행으로 남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여전히 주목을 끌기 위해서는, 거의 시시각각으로 변해야 하는 사회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현대의 <관용>은 긍정적인 어떤 것일까 아니면 관심의 결여일까.. 아니면 새로이 등장한 해로워 보이는 어떤 것에 대한 자기 벙어 능력의 결여일까.. 우리 사회는 정말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타락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 문제로 넘어가자. 니체는 반민주주의자로 알려져 있거니와 그 점에서 그는 현대 세계의 일반적인 추세를 거스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에 대해서도 찬성하거나 반대할 필요는 없다. 니체는 자신의 도덕적 이론을 비판받았을 때 「우이가 과연 더 도덕적이 되었는 가」하는 물음으로써 응수했었다. 아마 우리도 그처럼 우리가 과연 더 민주주의적이 되었는지, 그리고 실제로 민주적이 되기를 우너하고 있는지를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말 모든 점에서 다른 모든 남녀들이 우리와 동등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정치적 민주주의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산업적 민주주의와 구별될 수 있을까.. 사실상의 지배자는 누굴까.. (우리일까..) 우리는 현대 과연 상의 황혼그리스도가 씌여진 1888년 보다 문화 민주주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화적 능력에 있어서 사실상의 평등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 있는 것일까.. 영국 ,잠비아, 레닌그라드, 보스턴, 마사츄세츠에는 얼마나 많은 사회 민주주의가 있을까.. 우리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금보다 덜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무엇이든 지나치게 많은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해서는 니체도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고찰해 보는 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80년전과 마찬가지로 아직 대답이 내려지지 못한 수많은 실제적 이론적 <물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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