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가 작가 이문열씨와 동양철학 연구자 김용옥씨를 비평한 <이문열과김용옥>을 펴냈다. 지은이는 이 두 사람에 대해 이미 계간 <인물과 사상> 등의 지면을 통해 몇 가지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책은 기존의 글을 단순히 묶은 게 아니라, 많은 부분을 새로 집필하고 기존의 글에도 시각의 일관성을 부여해 ‘완성도’를 높인 저작이다.
두 사람은 “1948년생 동갑내기”라는 우연한 공통점과 “최근 한국 사회에 뜨거운 논쟁의 회오리를 몰고 온 대단히 유명한 지식인”이라는 점 이외에는 별다른 공통분모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은이는 두 사람의 행보와 이들을 둘러싼 담론에서 ‘문화특권주의’와 ‘지식폭력’이라는 사회현상을 추출해낸다. 지은이가 보기에 두 사람은 “의외로 한국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귀중한 텍스트”다. 지은이는 이번 저서에서 두 사람에 대한 개별적인 인물비평에 머물지 않고 이를 한국사회에 대한 이론적 해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먼저 그가 말하는 ‘문화특권주의’란 “문화 분야 종사자들이 정치경제 분야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권리는 누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정서”를 말한다. 사람들은 흔히 문화권력이 “정치·경제적 권력처럼 거대하지도 추하지도 않고 거친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로, 문화권력에겐 매우 관대한 경향이 있다.” 문화권력은 여론에 끼치는 영향력의 면에서는 정치·경제적 권력을 능가하면서도, 자기 발언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문화권력은 지금까지 유별나게도 면책특권을 누려왔다. 이런 기현상을 지은이는 ‘문화특권주의’라 부른다.
작가 이문열씨의 ‘정치비평’은 좋은 예다. 그는 작가이면서 신문 칼럼을 통해 숱한 정치적 발언을 해왔다. 지난해 2월에는 총선연대를 ‘홍위병’에 빗댄 칼럼으로 논란을 빚었고, 지난 7월엔 국세청의 탈세혐의 언론사에 대한 검찰 고발 발표를 생중계한 방송사들이 “‘나치의 대 국민 선전선동’을 연상시킨다”고 한 칼럼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이런 정치적 발언들이 구체적 근거가 없는 논리적 비약에서 나온 것임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받은 바 있다. 먼저 이씨는 ‘홍위병을 돌아보며’란 칼럼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현재까지는 정부나 여당이 총선연대의 조직과 활동에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시민단체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중앙일보> 2000년 2월8일치) 문화비평가 진중권씨는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란 기고문을 통해, 예단과 비약에 기초한 이씨의 어법을 그대로 이씨에게 되돌려준다. “젖소부인과 이문열 사이에 내연의 관계가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한마디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다.”(<중앙일보> 2000년 2월11일치) 진씨는 이 짓궂은 비유를 통해 “아무쪼록 (이문열씨의) 그 언어폭력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한지 체험해보는 귀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문열-젖소부인 관계론’이 명쾌하게 보여주었듯, 지은이는 이문열씨의 무책임한 정치적 발언들이야말로 “부실한 개그”이자 ‘문화특권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문화특권을 누리는 이들은 ‘지식폭력’에 크게 의지한다. ‘지식폭력’은 “삶의 실질과는 무관하거나 큰 관계가 없는 현학적 지식 또는 제도적 지식 자격증으로 그걸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 고통을 그들의 책임으로 돌리게 만드는 ‘상징적 폭력’”을 의미한다. 지은이는 이씨와 김씨 두 사람이 모두 비범한 재능을 지녔음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젊은 시절엔 ‘지식폭력’의 희생자였다. 이씨는 비참한 가난으로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지식폭력’을 당했고, 김씨는 “학력 자본이 매우 강한 집안에서 케이에스마크(경기고-서울대)를 달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식폭력’을 당했다.” 두 사람은 이런 지식폭력으로 인해 ‘한’을 품고 “세상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지식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한다. 가령 지은이는, 문학평론가들의 논의에 기대어, 이씨의 작품을 채우고 있는 ‘서구적 교양주의’를 지적한다. 이 서구적 교양주의는 독자들의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켜주는 장치이자, 이씨가 독자들에게 지식폭력을 가하는 통로이다.
김씨에 대한 평가는 조금 다르다. 그는 우선 김씨가 ‘지식의 대중화’ 또는 ‘지식의 민주화’를 위해 애를 쓴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걸핏하면 ‘하버드’와 ‘동경대’를 들먹이는 김씨의 자기과시는 사람들을 공연히 주눅들게 만드는 불편한 지식폭력이다. 이씨가 “문화특권을 이용하여 지식폭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문화권력”인 반면, 김씨는 “지식폭력과 문화특권의 전복을 시도하는 유사종교적 문화권력”이라는 게 지은이의 시각이다.
강준만 교수의 작업은 스스로도 말하고 있듯 ‘상식’의 전선에서 이뤄져왔다. 진정한 싸움은 본디 상식의 차원에서 벌어진다. 세상을 지배하는 상식이 바뀔 때 비로소 세상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권력에 아부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지식인 사회의 ‘상식’인 사회에서, 극우적 언론의 역겨운 행태를 고발하지 않으면 탈날 것 같다고 믿는 게 ‘상식’으로 바뀔 때, 진정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의 고군분투는 ‘상식’이야말로 기득권층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장 치명적인 전선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문열과김용옥,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전2권, 각 8500원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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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과 김용욕을 비교해서 책을 낼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별로 기분이 좋지를 않군요. 읽어보기도 전에, 강준만 교수의 수준이 그 정도였던가...하는 생각만 드네요. 아말감
역시 강준만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문열이나 김용옥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지적 수준을 높인 동시에 조금 다른 차원으로 정치적인 감각은 좀 부족한 것 같군요(아말감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책제목의 선정). 또는 우리가 모르는 음모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위의 요약만으로도 적절하게 김용옥이 하고자 했던 주장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김지하(가 신문일간지에 투신자살을 반대하는 글을 실었을 때 공주교도소에 있던 20여명의 정치범중에서 유일하게 저만이 공개적으로 그의 주장을 지지했습니다.)가 뒤편으로 물러난 것처럼 이문열 또한 그렇게 되지 않을까하여 조바심이 납니다. 사실 김용옥 역시 1986년 모대교수로서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서 양심선언을 발표함으로서 그의 행보를 제약한 경력이 있습니다. 그의 양심선언의 내용과 의도는 이해하지만 역시 학자는 학자이지 정치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이회장이 그의 월세 수천짜리 빌라사건을 수습하기 위하여 쓰레기 청소일을 하거나 청중에게 절을 하거나 하는 이미지 조작하고는 거리가 먼 선비시대에 이문열과 김용옥은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김용옥은 자신의 학문경력을 여타 허접학문가들의 권위를 평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적으로 난 일반대중과는 다르다는 측면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말입니다. 즉 강준만의 지적은 그 정도로 해석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아무개
이문열과 김용옥을 "비교"했다기보다는 그 둘 "각자의 영역"에서 그들에게 분명히 존재하는(물론 차원이 엄청 다르다하더라도) 그 "권력적" 혹은 "권력화된" 측면이라는 공통성을 찾아 지적했을 뿐인 것같아요. --우산지식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한다는 지적이 흥미롭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이 과정을 밟고 있는 듯 해서... -Felix
쩝 왜 책제목을 그렇게 정했을까? 한국사회의 지식특권층의 문제라고 제목을 정하면 너무 노골적이다라고 생각했거나 잘 안팔릴 것이다고 판단했거나 둘 중에 하나일 터인데, 아마도 책제목은 출판사의 입김이 강할 터이니 후자가 아닐까생각합니다. 당시의 김용옥에 대한 비판이나 인용이 많이 인기가 있었고, 또한 이문열 역시 비평가라면 한번쯤 입을 대고 싶은 인물이니..... --이정호
2003/2/4 이문열씨 인터뷰 : <인터뷰>‘나의 보수’는 세상이 말하는 보수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