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서의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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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의 발전론에 대한 난도의 견해

박정희 컴플렉스라는 말을 만들어보자. 이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박정희 대통력 식으로 밀어붙여서 이루어진 것이니, 그 수혜자인 우리들은 괜히 딴지 걸지 말고 닥치고 가만있어라. 난도를 비롯한 민주화세력(-_-;)들은 이러한 어른들의 윽박지름에 심정적인 반발심을 가지면서도, 한 마디로 반박할 말을 가지지 못 해 속태우고 있었다. 박정희의 위대한 경제발전 업적은 그만한 업적을 이루지도 못했고, 그 업적의 수혜자이기도 한 우리들에게 영원히 컴플렉스로 남을 것인가?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 Development as freedom난도의 박정희 컴플렉스를 속시원히 깨뜨려 주었다.

리테제 Lee Thesis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싱가폴의 전 수상 이광요(Lee Kwanyu) 총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말이다. 이광요 수상은 싱가폴이 일본과 말레이지아로부터 독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후, 싱가폴을 수십년동안 통치하며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해내었다. 리테제란 이처럼 저개발국가가 단시일 내에 개발상태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능력있는 지도자의 독재를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정희 컴플렉스랑 비슷하다.

그런데 아마티아 센에 의하면, 리테제는 거짓이다. 한국, 싱가폴,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훌륭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은 능력있는 독재자가 잘 지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수준이 높고 보건위생에 대한 관념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인민들의 자유로 이어졌고, 그 자유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인도나, 남미, 사하라 사막 이남의 여러 나라들이 저개발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은 그 나라들에 독재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과 위생이라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같은 물질적 조건을 가진 많은 나라들에게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사이에는 강한 상관관계가 나타난다.

이러한 센의 논의에 따르면, 박정희 컴플렉스는 근거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박통이 그렇게 찍어 누르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더 빨리 성장했을 것이고, 경제구조도 더 빨리 성숙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평등한 삶을 누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주목할 가치가 있는 그의 주장 또 하나 ; 기근은 독립된 민주정부가 자유언론의 제어를 받는 나라에선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근이 매우 치유하기 쉬운 재앙이며, 민주정부는 그것을 치유할 강한 유인을 가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생길 수 있었던 것은 부르죠아의 성장과 그들의 이권을 탐하기 위한 대중선동이었다. 가만히 놔뒀으면 잘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루소식 로망에 불과하다. 세계의 영웅집에 항상 등장하는 페리클레스에 관한 이야기를 보라. 우리가 항상 민주주의를 논할 때, 아테네를 꼽는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페리클레스와 그에 의해 이루어진 경제적 성장때문이 가능했다. 배고픈 민주주의란 불가능하다. 굶주린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naya
경제성장 없이 민주주의가 없다는 naya님의 말씀은 맞습니다. 다만 독재와 재벌위주 산업정책이 경제성장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거죠. 아마티아센이 매우 다양한 논거를 들고 있으니 한 번 책을 살펴보시고 나서 말씀을 하셔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난도
그렇군요...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긁적.. --n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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