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종교성 자체를 떠나서, 하나의 철학으로도 가치가 높다. 외국인 중에서는 자기 수련이나 명상을 하기 위하여 불교를 배우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불교인들도 불교의 철학을 배우기 위하여 힘쓰는 경우가 많다. 이 '철학으로서 불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불교의 종교성에 대해서는 종교란무엇인가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불교는 허무주의적인가? ¶
니체 :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 가치 평가조차 하지 않으려는 수동적 허무주의
공(空)
생 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不生亦不滅)
영원한 것도 없고 단절된 것도 없다. (不常亦不斷)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不一亦不異)
오는 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없다. (不來亦不出)
결국 연기성이라는 것은 존재에 있어서 서로간의 관계성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상의성(相依性)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은 곧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의 마음속에 이미 깨달음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 내지 깨달음에 대한 강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마저도 하나의 연기성이기 때문에 '이것이다'하는 실체로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공(空)이기 때문이다. 제법(諸法)은 연기의 성품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공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기의 공성(空性)은 연기설의 근본정신인 중도(中道)와 이를 깨우치는 중관(中觀)에 있다. 바로 이러한 연기와 공의 관계를 용수는 팔부중도(八不中道)로 나타내고 있다. 생 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다. (不生亦不滅)
영원한 것도 없고 단절된 것도 없다. (不常亦不斷)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不一亦不異)
오는 것도 없고 나가는 것도 없다. (不來亦不出)
- 中論 卷1
공(空)은 자칫 '공허한 것', '아무것도 없는 허무한 상태'를 말하는 듯하여 불교의 근본 정신을 허무주의로 이해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불교의 공(空)은 모든 존재에 실체성이 없음을 의미한다. ‘공(空)’의 사상은 원시불교에도 있었지만, 특히 《반야경(般若經)》에서 강조된 이후 대승불교의 근간이 되었고, ‘색즉시공(色卽是空)’등의 표현으로 널리 알려졌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갖가지 조건에 의해 생기(生起)하는 것이지 영원불변한 실체성은 없으며, 인간 존재에 대해서도 ‘오온(五蘊)’의 어느 하나에도 실체적인 자아(自我)는 없다고 하는 '인공(人空)'과, 외적인 모든 존재 영역에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하는 '법공(法空)'으로 대별하여 가르친다. 또한 ‘공’은 ‘유(有)’와 대립하는 ‘무(無)’와는 다르다. 존재라는 것은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동적(動的)인 모습 또는 단순한 관념적 이해가 아니라, 유와 무를 초월한 ‘중도(中道)’의 실천에 의해 직접 체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 매력을 느낀 이유 ¶
집안의 종교가 불교라 평소에 꽤나 접할 수 있었습니다. 친척 중에 스님도 계시구요. 뭐 목사인 분도 있긴 합니다만. 하지만 저는 한국의 조계종으로 대표되는 불교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한때, 불교 라는 종교 자체를 부정 했지요. 그러다 한번은 존재에 대한 물음과 몇가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 종교서적, 철학 서적을 탐독하고 꽤나 탐구 했었지요. 저는 그때 제가 찾는 답의 일부를 불교의 이야기에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독교에선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믿으라 라는 이야기의 연속일 따름.)
전 일반적 기준에서 불교 신자라 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불교신자라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포괄적인 부분에서 신자다 라고 하면 할수 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측면에서 제가 말하는 불교는 이미 종교의 영역이 아닙니다.
불교 라는 종교는(어쩌면 사상은) 이성적 관점에서 참 매력적입니다. 기독교와 달리, 철저히 이성적입니다. 믿음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고와 고찰이 따르는 철학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알게 하고, 느끼게 합니다. 불합리성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불교 그자체도 부정할수 있는 기반을 만듭니다. 그것이 이 종교에 매력을 느낀겁니다. 이미 이런 측면에서 불교는 일반적인 종교가 가져야 할 조건을 버려버립니다.
자아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불교는 참 매력적입니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의 힌트를 주고, 완성의 길을 이야기 해주는 면에서 불교는 매력적입니다.
뭐 저는, 이 것에 대해 포교를 할 가치도 느끼지 못합니다. 포교라는 것이 필요한가도 의문입니다. 이미 불교의 본질은 종교가 아니거든요. 그리고 제 믿음을(기독교와 같은 기성 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말로 표현 하기가 어렵습니다. 느낀바 있으되 느낌을 말로 할때는 이미 그 느낌의 본질이 아니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포교라고 말할수 있는 관점에선 벗어나 버린 상태입니다.
--ziozzang
See also 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