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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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회

1.1. 의미

생명이 있는 것, 즉 중생은 죽어도 다시 태어나 생이 반복된다고 하는 불교사상. - 두산동아 백과사전

산스크리트의 삼사라(sa涵s型ra)를 번역한 말로, 전생(轉生)·재생(再生)·유전(流轉)이라고도 한다. BC 600년경 《우파니샤드波尼沙土》의 문헌에서 비롯되어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천상(天上)의 육도(六道:六趣)가 있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현재 우리들 앞에 있는 축생, 예를 들어 파리나 모기 등도 전생에는 인간이었던 것이 바뀌어 태어났는지도 모르며, 또 장차 우리들이 저승에서 파리·모기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도 중 어느 세계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와의 총체인 업(業)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하며, 또한 이 업은 이승에 있는 우리들의 상식을 초월하여 판정되어, 선업(善業)에 의하여 선의 세계에, 악업에 따라 악의 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한편 부분적이기는 하나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사상가 중에도 이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말한 이가 상당수 있었다. 예를 들면 니체의 영겁회귀(永劫回歸)사상 등은 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1.2. 해탈


1.3. 종교적 측면

1.3.1. 불교/힌두교

힌두교불교는 재생의 굴레로 부터의 최종 해방은 인간들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 상태의 함정이나 고생을 통해서만이 영혼은 해탈(moksha) 혹은 사마드히(samadhi)을 보장하는 충분한 공덕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한 영혼은 다양한 생활방식으로 인간의 상태 즉 수많은 환생을 거치면서 도덕적 교훈을 익히는 진화의 대지로 발전한다.

1.3.1.1. 활불(活佛) - 달라이라마

전생활불(轉生活佛)의 약칭이며, 화신(化身) 라마(喇츈:라마교의 高僧)라고도 한다. 티베트어 ‘스프룰스쿠’의 역어로, 인도의 윤회사상(輪廻思想)과 티베트인의 살아 있는 신의 관념이 합쳐져 생겼다. 덕망 높은 승려가 죽었을 때 그를 보살의 화신이었다고 간주하고 그의 죽음은 인생에게 무상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일 뿐, 반드시 전생하여 구제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믿는 데서 비롯된다. 고승이 죽음에 임해서 전생의 방향을 유언하면, 고승이 죽은 지 10개월이 지난 뒤 49일 사이에 그 지방에서 태어난 어린이 중에서 활불을 선정한다.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활불의 시초는 13세기 초엽에 있었으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다라이라마 3세가 된 소남 걈초(1543∼1588)가 활불로 등장한 일이다. 활불제도는 티베트불교계의 중요한 상속방법의 하나인데, 이것이 보급됨에 따라 그 선정(選定)이 정치적 배려로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는 등 폐단이 생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활불로서 유년기로부터 엄격한 훈련을 받은 승려 중에는 티베트의 문화발전을 위해 활약한 사람이 더러 있다. 판첸라마도 그런 활불의 한 사람이다.

1.3.2. 전통 무속

한국 전통 무속에서도 이러한 윤회적 사상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영혼의 존재로부터 귀신의 존재등, 이러한 윤회는 곳곳에서 접할수 있다.

1.3.3. NewAge 운동


1.4. 사상적 측면

1.4.1. 니체의 영겁회귀

독일의 철학자 F.W.니체가 그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내세운 사상.
[http]두산 동아 야후 백과사전

1.4.2. 역학


1.5. 역사적 측면


1.6. 심리학적 측면

1.6.1. 최면요법

[http]김영우 신경정신과의원 - 전생요법에 대한 고찰/전생에 관한 긍정적 견해

퇴행최면(退行催眠)을 통하여 전생을 확인하려는 시도는 계속 되고 있다. 하지만, 불확실한 정보가 많고, 결과 자체가 명확하지 않은것이 많기 때문에, 이것이 진실이라고 할수는 없는 상황이다. 아직은 연구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 된다.

"전생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직 우리가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님이 보았던 그 경험들은 마음속의 콤플렉스가 심상화 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경험들이 최면상태에서 꿈처럼 줄거리를 가지게 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 줄거리는 우리가 각색한 것이 아니고 님의 마음 또는 마음너머에 있는 치료되고자 하는 지향적인 초월적인 그 무엇이 그렇게 님을 안내하여 통찰에 이르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님의 잠재의식 속에는 님이 고통을 통해서 어떤 삶의 의미를 찾도록 이끄는 힘이 있고 이것이 님을 치료한 것이며 치료의 공은 그것에 돌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옆에서 이를 조금 도와준 것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계속 그 의미를 탐구해 보시고 노력한다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 [http]최면치료

1.7. 윤회에 대한 비판/회의론

[http]박찬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주님의 교회 목사) - 뉴에이지 운동을 통해본 환생
DeadLink at 2006-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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