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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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의 역사

1.1. 개괄

불교는 석가 생전에 이미 교단(敎團)이 조직되어 포교가 시작되었으나 이것이 발전하게 된 것은 그가 죽은 후(B.C 544)이며, 기원 전후에 인도 ·스리랑카 등지로 전파되었고, 다시 동남아시아로,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교권(敎圈)이 확대되어 세계적 종교로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4세기 이후로는 이슬람교에 밀려 점차 교권을 잠식당하고 오늘날에는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세력이 약화되었으나, 아직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캄보디아, 티베트에서 몽골에 걸친 지역,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지역에 많은 신자가 있으며,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1.2. 형성

[http]최인근 - 나와 다른 남
싯다르타가 태자였던 2,600여년 전의 인도에도 차별과 폭력은 있었다.
경전에 보면 싯다르타의 나이 열 두 살이 되던 해 농경제가 있었고,
태자는 새장 같은 궁궐 생활을 벗어나 들판으로 나온다. 
그리고 비로소 민중들의 삶의 실상을 목격한다.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맨발의 농부는 땡볕 아래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쟁기를 단 소의 등을 채찍으로 후려친다. 
소는 힘겹게 발을 떼며 쟁기를 끌고, 쟁기가 흙을 뒤집자 그 속의 벌레는 두 동강이가 났다. 
하늘에서 새가 날아와 동강난 벌레를 집어삼킨다. 

경전에는 싯다르타 태자가 그 모습을 보고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었다고 했다. 
이것은 물론 현실을 외면해서 두 눈을 감아버린 것이 아니다. 
싯다르타 태자는 화려한 옷을 입은 그늘 속의 자신과 땡볕 아래 벌거숭이 농부의 현실을 목격했다. 
그는 중생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똑똑히 보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왜 나와 남은 다를까. 
왜 차별과 폭력이 존재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가.
불교는 인도의 여러 사상과 종교들 중에서도 이단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인도의 어떤 사상도 평등을 말하지는 않았다. 
바로 모든 이가 평등하며 모든 이가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이치는 불교의 출발점이 아닐까.

선각―자(先覺者)[―짜][명사]
남보다 앞서서 사물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 (준말)선각. (비슷한말)선지자. 

싯다르타는 불교의 창시자이자 교조이기 전에 철학적, 사상적 선각자라 할수 있다.


See also 인도철학

1.3. 불교의 기원

불교의 기원(紀元)으로부터 헤아리는 불교의 햇수. 불교의 기원은 석가모니가 타계한 연도를 기준으로 하며, 한국불교는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결의에 따라 이 불기(1956년이 불멸 2500년)를 따르고 있다.

1.4. 소승불교/대승불교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로부터 열반후 100년까지를 원시불교 또는 근본불교라고 하며 그후 기원전 1세기까지를 부파 불교라고 하여 교단이 분열 불교가 형식적이고 사변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는데 이를 소승블교라고 한다. 소승의 의미는 혼자타는 수레라는 뜻이며, 홀로 수행을 중시하였다. 이는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장로 불교로 일컬어 지기도 한다. 참고: 개인주의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대승 불교가 흥기 하는데, 석가 당시 불교로 돌아가자는 불교 개혁운동의 연장선에서 일어났다. 대승불교는 소승불교가 자기 해탈을 중시하는 대신에 대중의 구원을 선행할 것을 중시하였고, 열반의 상태에 안주해 버리는 소승의 최고 성자 아라한 대신에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적인 인간상(지상에 아직 깨닫지 못한 이웃이 있는 한 나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아미타불, 지옥에 이웃이 한 사람이라도 남아있는 한 나는 지옥을 나오지 않겠다는 지장보살, 사상을 초월하는 자비심을 가진 관세음 보살 등)을 제시하였다.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진행된 이 운동의 결과 반야경, 화엄경, 법화경, 아미타경 등을 비롯한 수많은 대승경전이 출현하였는데,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불교 경전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소승에서의 이상상은 아라한이며 예배의 대상은 석가모니 한 분과 과거 여섯 불과 석가불, 미래불인 미륵불이 있을 뿐이다. 대승에서는 理陀行의 실천을 강조하고 서원을 실천하는 보살의 개념이 등장, 많은 보살이 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의 대상으로 조각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대승불교의 흥기와 무척 관계가 깊다.


See also 기복신앙

1.5. 불교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

첫째, 붓다는 무엇보다도 신으로부터의 자유와 인간의 위대함을 선언하였다. 세계의 중요한 종교들의 중심 개념이었던 창조신이나 주재신 등의 실재성을 부정하면서, 여래는 이러한 신의 개념에서 자유로워졌다〔장부경전: 브라흐마자라경(梵網經)〕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붓다는 인간은 신의 의지에 복종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은 진리에 의지해야 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불교를 제외한 대다수 종교의 가르침은 신적 실재나 궁극적 실재에 대한 신앙에 기초해 있다. 이에 반하여 불교는 궁극적 실재의 개념 자체의 해체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체론적 사유와 연기론적 사유의 패러다임의 차이라 할 것이다. 붓다는 이 세계는 연기의 법칙에 따라 운행되고 있음을 설파하였다. 여래가 이 세상에 나타나든 출현하지 않든 간에 연기법은 존재하는 것이며, 여래는 다만 이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드러내 보이고 가르쳤을 뿐이다. 참고: 종교를거부한인간

둘째, 붓다는 지혜의 깨달음을 통한 의 길을 제시했다. 붓다는 여래의 깨달음에 대한 믿음(Tatagata bodhi saddha)을 강조하였다. 이란 믿는 것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으로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가 없는 믿음은 맹목적인 길로 잘못 인도될 수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믿음은 필요하나 충분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바른 이해와 실천과 균형이 될 때 바른 깨달음이라는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깨달음은 누구나 가능한 것임을 보여 주었으며, 누구나 초월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도 자기 내면의 빛을 투시함으로써 완전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참고: 만다라

셋째, 붓다는 이성적 신앙의 길을 제시하였다. 그의 제자들이 자신에 대한 을 갖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스승의 인격에 대한 완전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스승인 부처 자신의 행동도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한다고 설했던 것이다. 이러한 교권주의적 카리스마의 배격에 대해 프랑스의 불교학자 마담 데이비드 닐은 위대한 세계종교의 창시자중에서 부처님만이 오직 그 스승의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한 성인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칼라마경에는 거듭 들어서 얻은 지식이나 소문이라 해서, 전통이나 종교적 권위를 지닌 성전 때문에, 추측이나 그럴듯한 논리 때문이나, 이것은 우리 스승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어떤 교설에 이끌리지 말라라고 설함으로써 불교가 이성적 비판정신과 자유로운 진리 탐구의 태도를 가르치는 종교임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넷째, 붓다는 인간의 평등과 자유, 다른 존재에 대한 관용과 평화의 덕을 가르쳤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에는 현대 민주주의 이념이 이미 모두 내포되어 있는 종교라 할 수 있다. 불교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 그리고 평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사상과 탐구의 자유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인종적 계급주의나 성차별 등에 반대하여 만인의 평등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2. 종교란무엇인가(불교는 종교인가?)


4. 참고할 페이지

[http]불교입문 - 인터넷 불교대학



기독교에 대한 불교적 상상으로 JMS와 같은 종교는 기독교에 불교의 개념을 이용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주변에 많은 소위 사이비나 이단은 이러한 스스로의 완성이라는 불교적 사고가 덧붙여 진게 아닐까? 멋지다마사루와 같은 코미디적 상상이지만, 한번쯤 이야기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웃기다. 아무래도 유머분류로 가야할 것 같다) --ziozzang


불교는 파고 들면 들수록 깊이가 있다. 20년 정도 불교를 연구하고 생각하고 책도보고 했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그 과정에서 인생과 세계, 윤리와 철학, 물질과 정신, 선과 악, 이 모든 것,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였다. 끊임없이 자기를 수정하는 과정이 불교를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더 배워야 하는 진리가 있다. 그것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무상정등정각)이라 한다. 우리의 조상들 중에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 많다. --산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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