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점은 점치기의 가장 궁극의 경지 중의 하나이다. 파자점이 자유스럽게 가능하다면 어떠한 자연 현상을 보고도 점괘를 얻을 수 있다. 주역점은 2^6*6 = 384 개의 code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파자점에는 아무런 제한도 없다. 무한대이다. 그야말로 무의식을 그냥 읽는 것이다.
김창준의 경우, 한창 주역 공부를 할 때 원문을 외우기도 했는데, 주역점을 치다보면 같은 괘에 같은 동효가 나와도 다른 여타 변수들로 다른 해석을 하게 되었다. 즉, 효사는 같더라도 상황과 시각, 점 치는 사람, 앉은 방향, 색깔 등이 모두 변수가 되었다. (사실 나중에는 이런 걸 따지지 않아도 그냥 즉자적인 느낌으로 왔다)
물론 기본적인 원리가 없지는 않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가 뜻글자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해야만 한다. 한자에서는 한 획, 한 획이 모두 의미를 지닌다. 그것이 처음 발생 당시에 주어진 의미이건, 아니면 진화하는 과정에서 추가된 의미이건. 한자는 그 어느 문자보다도 더 다양하게 진화해온 글자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모든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갑골문, 전서, 예서, 행서, 초서, 간자체 등. 이보다 더한 살아 움직이는 무의식의 보고가 인류 역사상 또 있을까? 파자점에서는 한 글자를 가지고도 수많은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글자는 그것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오랜 기간 다양한 의미를 겪은 백전의 노장이다.
한글과 같은 문자는 파자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음에 대한 글자를 가지고 어떻게 파자가 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한글을 창제할때 언어학자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한자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최대한 음과 문자기호 형태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뜻글자가 아닌 한글로도 파자가 가능할 지도 모르고, 실제로 한글의 획수를 세어서 그 숫자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여기서 출발한 방법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음에 대한 글자인 한글에서도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고, 공짜기능이 아니라 최초의 고안에 그것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것은 정말로 위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