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의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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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정체성의 저자인 탁석산씨가 [http]월간미술 2000년 8월호에 '한국미를 주제로 한 특집'에 기고한 글입니다. 월간미술홈에 로그인을 해야 기사를 검색할 수 있게 되어있기에, 글 전문을 이곳에 옮겨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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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의 정체성 -- 탁석산


가모노 마부치(1679∼1769)는 《만엽집》 연구를 통해 일본의 고대 정신이 작위를 배제한 무위자연의 세계라고 파악했다. 즉 거기에는 사람들이 ‘천지 그대로의 마음’으로 살았던 원시 자연의 세계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일본에서 국학운동을 일으킨 사람들 중 하나인데 일본 고대 정신의 파악을 통해 일본적인 것을 발견하려 했다. 이로부터 약 170년 후 야나기 무네요시는 동양 예술에서 조선은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그 독자성은 비애의 미, 가느다란 선의 미, 무작위의 미라고 제시했다.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무작위의 미가 한국미의 요체처럼 자리잡았다.

고유섭은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 ‘비정제성’ ‘무관심성’을 한국미의 본질로 열거했고, 이어서 김원용은 ‘자연주의’를 한국미술의 기조라고 말했는데 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 재현하려는 개념이며 또한 자연적 관조를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최순우는 한국미의 특질 중 자연미를 언급하면서 미추를 초월한 미 이전의 미를 비인위적인 자연미로서의 무관심성을 말하고 있다. 한국미를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들의 견해를 정리해보면 결국 ‘무작위의 작위’가 한국미의 요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무작위의 미’가 한국의 미인가?

이런 견해의 시원은 야나기 무네요시다. 그는 1922년에 발표한 《조선과 그 예술》에서 조선의 미에 관해 논했는데, 이후로 한국미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주장한 조선의 미 중 ‘비애의 미’는 동의를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선의 미’와 ‘무작위의 미’는 이후 한국미 논의의 중심을 차지했다. 나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그의 논의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 그가 주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조선의 공예품과 도자기였다. 즉 공예품과 도자기에서 보고 느낀 것을 조선의 미로 확장한 것이다. 공예나 도자기가 한국미술의 전부가 될 수 없다. 그런데 어찌 해서 부분의 속성이 전체의 속성으로 확장된 것일까? 둘째, 그의 논의 주장은 서로 모순된다. 예를 들어보자. 1919년에 발표한 《석불사의 조각에 대하여》에서 그는 석굴암에 대한 찬탄을 숨김없이 표출한다.

역사적 배경까지 고찰한 매우 긴 이 논문에서 그는 “모든 석불은 주도 면밀하게 배치된 듯하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그 배치에서는 정연한 균제(symmetry)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석굴암에서 그가 느낀 것은 주도 면밀하고 정연한 균제였던 것이다. ‘정연한 균제’와 ‘무작위의 미’는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까? 석굴암에서 그는 무작위의 미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논문에서 보여주는 김대성이 만들었다는 석불사 석굴암 평면도가 무작위를 논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왜 이런 상반된 느낌을 화해시키려 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셋째 이유 때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주관심사는 일본의 민예, 다시 말해서 민중적 공예였다. 사실 ‘민예’라는 말도 그가 가와이, 하마다와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야나기는 자신이 원하던 미를 조선의 공예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를 일본의 민예품에서 찾으려고 했다. 따라서 그는 단지 자신이 원하는 미를 담은 조선의 공예품이나 도자기에 관해 말하면 그만일 뿐 석굴암의 균제미와의 정합성 유지를 모색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조선 미술사 연구가에게 바란다’라는 글에서 “조선에 대한 연구는 곧 중국을 또한 일본을 명확히 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이리하여 오직 일본인만이 이 연구를 위해 유일하게 남겨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위자연의 세계’를 일본 정신이라 여겼던 가모노 마부치의 정신이 야나기에게 이어진 것은 아닐까?

야나기의 논의가 공예품과 도자기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가 말한 한국의 미는 한국미 전반에 해당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회화·조각·건축·문양 등으로 대상을 확장할 때 ‘무작위의 작위’라는 미가 적용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야나기 이후 고유섭·김원용·최순우 등은 야나기와는 달리 논의 대상을 확장했다. 야나기가 조선에 매여 있던 반면, 이들은 선사시대부터 조선까지 모두를 다루었고 공예품이나 도자기뿐만 아니라 회화·조각·종·건축 등을 다루었다.

분명히 야나기보다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이 제시한 한국미의 특질은 별 진전이 없어 보인다. 즉 ‘질박’ ‘담소’ ‘무기교의 기교’ ‘자연의 미’ ‘미 이전의 미’ 등은 야나기의 ‘무작위의 미’의 변주곡으로 보일 뿐 새롭지 않다. 왜 그럴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해 보인다. 이들은 미술애호가이자 수집가일 뿐이지 미를 논하는 철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술품을 다룬 첫 세대로서 이들의 역할은 미술품의 수집이다.

거의 아무런 기반이 없는 풍토에서 한국의 미술품을 수집·분류·정리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야나기처럼 한국의 미에 관해 논했다. 이것은 사실 이들에게는 벅찬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와 시대가 이들에게 한국적인 미가 무엇인지 밝히기를 요구했기 때문에 이들은 벅찬 일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철학으로 훈련받은 야나기의 논의를 넘어서는 일이 이들에게는 벅찼을 것이다. 게다가 야나기 뒤에는 200여 년간 계속된 일본의 국학운동이 있었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한국미

그렇다면 고유섭·김원용·최순우 등의 주장은 어떤 면에서 부족한가? 이들 주장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그것은 ‘자연의 미’라고 말할 수 있다. ‘무기교의 기교’나 ‘미 이전의 미’나 ‘무작위의 미’나 모두 ‘자연의 미’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지금까지 ‘자연’이라는 어휘만큼 한국의 미에 자주 등장하는 어휘가 있을까? 그런데 ‘자연의 미’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김원용은 “자연에 인공이 끼어서는 자연이 아니다. 자연은 미추를 초월한 미, 미 이전의 세계다. 사람의 꾀에서 생겨나는 인공의 미가 여기에는 있을 수 없다. 자연에는 오직 자연의 미가 있을 따름이며, 자연의 섭리에 입각한 만유의 존재 그 자체의 미가 있을 뿐이다.

미추를 인식하기 이전, 미추의 세계를 완전 이탈한 미가 자연의 미다”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김원용이 말하는 한국의 미인 ‘자연의 미’는 자연 그 자체의 미다. 더욱이 인공이 끼여들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자연을 옮긴 어떠한 작품도 김원용이 말하는 자연의 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미술품도 자연 그 자체는 아니므로 자연의 미는 아니라는 뜻이다. 과연 이런 어설픈 정의가 통할 수 있겠는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자연의 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념 구분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연의 미’란 말이 우리의 미술작품이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작업했다는 뜻인지, 아니면 기법상 자연의 미를 최대한 그대로 살리려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작품에 임하는 정신세계가 무위자연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뜻인지 분명하지 않다. 아니면 이 모두를 말하는 것인가? 대상과 기법 그리고 정신적 세계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는 개념들이다.

김원용은 어떤 것을 의도했는가? 그리고 최순우의 경우 한국미를 “조국에 대한 안온한 즐거움, 담담한 아름다움, 겸허와 실질, 소박한 아름다움, 선조의 높은 안목과 미덕, 의젓하고 넉넉하고 너그러운 아름다움, 필요미, 실용미, 그윽하게 빛나는 아름다움, 자연과의 조화…” 등을 말한다. 얼마나 개념 정리가 안 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미술품과 한국의 자연을 사랑하고 아낀 것은 충분히 알겠으나 한국미가 무엇인지를 제시하기에는 너무 미흡하다. 고유섭·김원용·최순우 등이 말하는 ‘자연의 미’는 아무런 개념 구분도 되어 있지 않은 그야말로 자연 상태 그대로다. 그럼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자연과 예술은 대립적이다. 자연은 자연적인 데 반해 예술은 인공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긴다는 것은 사진을 찍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사진으로 포착된 장면도 사람에 의해 해석된 것이다. 회화나 조각, 그 어떤 장르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해석된 자연만이 예술로 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미를 자연의 미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해석된 자연의 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가가 해석한 자연의 세계, 자연의 미가 작품에 구현될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구현하기 위해 최적의 기법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자연의 미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가? 즉 나무나 꽃, 계곡이나 하늘, 잠자리나 나비 등을 소재로 삼아야 자연의 미를 나타낼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위에 열거한 학자들은 우리의 자연을 찬탄한 후에 아름다운 자연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자연의 미를 구현했다고 말한다. 즉 한국의 작품은 아름다운 자연을 최대한 작위의 흔적 없이 담아내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미술품은 사실 자연을 소재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연을 소재로 삼고 자연의 미를 최대한 살리는 기법을 택하고 무위자연의 세계를 담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자연의 미나 자연의 냄새가 나지 않거나 덜 날 수 있다. 오히려 비자연적인 소재로 자연의 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예를 들어보자. 바다를 그린다고 하자. 바다의 고요함과 적막 그리고 깊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자. 그럼 화면 전체를 바다로 가득 채우는 것이 효과적인가? 바다의 파도와 하늘을 그리는 것보다는 섬을 그리는 것이 바다를 더 효과적으로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섬을 그림으로써 바다를 그린다.

사실 바다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바다보다는 섬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바다가 우리에게 바다를 더 느끼게 해준다. 다시 말해서, 인공을 통해서 자연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 치열한 인공적 작위가 더 세밀하고 정치한 자연의 미를 드러낼 수도 있다. 일본의 현대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빛의 교회’를 보면 자연이 듬뿍 느껴진다. 하지만 이 조그만 교회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자연스러운 곡선도 없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이 교회에서 우리는 자연을 느낀다. 콘크리트 구조물 전체를 감싸는 자연의 내음, 이것이 작품 속에 구현된 자연의 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국의 자연의 미가 지금까지 너무 소재와 기법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미를 난초나 대나무·소나무 등에서 찾거나 전통적인 기법에서 찾는다면 한국적인 미는 생명력을 잃어 박제화될 것이다. 어설프게 옛것 흉내내기는 예술가에게서 활력을 앗아갈 것이다. 자신이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면 된다. 정해진 한국의 미가 있는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한국적인 미를 찾는다면 ‘무작위의 작위’나 ‘자연의 미’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탐구해야 할 것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작품을 다룬다면 다양함과 함께 활력과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어떤 기준으로 한국미를 판단해야 하는가?

필자가 《한국의 정체성》에서 제시한 세 가지 기준, 즉 현재성·대중성·주체성을 적용해보자. 현재성은 지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한국적인 것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과거의 것이라 해도 재현되어 우리가 지금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면 한국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한국미를 논할 때 현대를 제외하고 조선까지를 범위로 잡아 작업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해서 발견된 미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박제된 미가 될 것이다. 이 기준을 적용한다면 ‘무작위의 작위’라든가 ‘자연의 미’는 한국미 후보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대중성을 든 이유는 소수의 전문가가 즐기는 미보다는 대중이 선호하는 미가 한국미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거형태의 반을 넘어선 아파트의 색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색은 무엇인가? 한국의 색을 정할 때 가장 대중적인 색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흰색은 책 속에서나 한국의 색이지 거리에서는 더 이상 한국의 색이 아니다. 또한 주체성도 한국미의 기준이 되는데 이것은 창조에 대한 압박감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미에 주체성이 존재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지만 문화교류는 불가피하므로 우리의 독자성이란 문제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주체성이란 우리의 선택에 강세를 두는 기준이므로 아무리 외국의 미와 흡사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면 우리의 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래에는 한국미를 탐구할 때 중국·일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미를 제시하려 애썼다. 이것은 우리의 탐구를 종종 방해하곤 했다. 진경산수화의 독특함만을 부각시키면서 중국의 영향을 애써 배제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중국의 지대한 영향하에 탄생된 것이라 해도 우리의 선택에 의해 취한 것이라면 우리의 미가 되기에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미에 대한 탐구의 역사는 일천하고 수준도 낮은 편이다. 아니 시작 단계이므로 수준을 논할 시기도 아닌 것 같다. 첫 세대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허허벌판에 집을 지으려고 자재를 모으고 설계도를 그린 것만으로도 첫 세대의 업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집을 지어야 할 때다. 목수는 많을수록 좋을 것이며 연장도 단단하고 예리할수록 좋을 것이다. 새로운 탐구를 기다린다.

-- [http]월간미술, 2000년 8월호 Special Fea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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