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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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70131450]

탁석산 저.

목차
  • 제1장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1. 아프리카로 간 만득이 /2. 정체성 문제 (1) 테세우스의 배 (2) 정체성과 주체성 (3) 집단의 정체성 /3. 한국의 정체성 (1)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체성 (2) 한국의 정체성 탐구방법 /4. 결론
  • 제2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1. 보편적인 것은 없다 (1) 보편성은 이름뿐이다 (2) 바다는 파랗지 않다 (3) 보편적인 것이 가능하다면? /2.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 (1) 홍콩영화의 성공비결 (2) 한국의 특수성 (3)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3. 결론
  • 제3장 정체성 판단의 기준 /1. 고유성 (1) 원조 컴플렉스 (2) 이중 잣대 (3) 고유성의 의미 /2. 창의성 (1) 창의적 수용이란 무엇인가? (2) 토착화의 의미 /3. 정체성 판단의 기준 (1) 현재성 (2) 대중성 (3) 주체성 /4. 결론
  •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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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이나 조선시대의 풍물 혹은 6.25동란을 소재로 하면 무조건 '한국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면서, 왜 현대의 문제나 정서를 담은 우리영화에는 그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가? 우리의 정체성 논의가 언제나 빈 껍데기로 남아있는 이유중 하나는 그것이 극히 난이도 높은 형이상학의 문제라는 점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란 것이 상당히 난해한 문제임을 안다면, 그렇게 쉽게 한국적인 것을 논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문 p.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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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원을 따지는 습관이 있다. 시원을 곧 정체성 판단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원은 정체성 판단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 문제는 현재다. 현재 우리 한국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한국의 정체성 판단을 위한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것도 재현되어 현재에 존재한다면 현재의 것이다.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시원을 탐구하여 우리의 것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재현된 과거만이 현재이고 우리의 정체성 판단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비롯되었든 일본에서 비롯되었든 간에 현재 한국에 존재한다면 일단 우리의 것이 될 자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대중의 지지도와 호응이 없다면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소의 한국인이 즐기고 부르는 판소리가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조용필의 노래가 더욱더 대중적이므로 조용필의 노래에서 한국적인 것을 찾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다시 말해서, <서편제>보다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뒷표지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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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바다를 파란색으로 칠했다. 왜냐하면 기억속의 바다는 파란색이었고, 또 바다는 파랗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훗날 동해 낙산사에서 바다를 볼 때마다 나는 바다가 여러 가지 색을 띤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이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일 때의 바다는 검은 회색이었고, 눈이 부시게 하늘이 푸른 날의 바다는 푸른 빛이었다. 바다는 시시각각 하늘의 색에 따라 변했다. 나는 더 이상 바다 색이 파랗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바다의 색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이 시각 이 바다의 색이 무엇이냐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이 색 혹은 바로 이 바다 색이 될 것이다.

나는 세계가 개별자의 집합일 뿐 보편자들의 예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는 개별자이다. 존재자의 기본단위는 개별자이다. 개별자들의 세계를 임의로 혹은 편의에 따라 분류하기 위해서 우리는 추상개념을 도입한다. 즉 추상개념을 사용해 세계를 분류, 정리한다. 정리된 세계는 우리에게 질서감과 동시에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주는 추상개념에 개별자와 동일한 지위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보편 개념은 추상개념으로서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바다의 색은 시시각각 변하며 어떤 특정한 색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편의상 바다는 대체로 파란색이라고 말할 뿐이다. 사실은 이 바다와 저 바다의 색이 다르며, 이 시각 저 시각 또한 다르다. 우리는 단지 편의상 추상 개념을 사용한다.

세계가 개별자들로만 구성되었다면, 보편자 혹은 보편성의 지위는 명백해진다. 보편자는 개별자들로부터 추상화된 개념에 지나지 않는다. 책상, 나무와 동일한 양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개념속에만 존재한다. 나는 이런 입장을 지지하는 유명론자이다. 유명론에서 보편자는 이름뿐이다. 다시말해서, 그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실제 구성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이름일 뿐이며 선언되면 구호가 될 뿐이다. 세계가 개별자로만 구성된다는 것이 옳다면, 인간성 회복이라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구호대신 개별자, 즉 "철수를 사람 만들자"라는 말이 더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물론 이 때 '사람 만든다'는 말의 의미 또한 추상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좀더 손에 잡히는 구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pp.57~58 |}}


책의 두께나 양에 비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글이었습니다. 기존의 반복되어오던 이상론에서 한발짝 비껴서서, 현실비판적 시각에서 한국의 정체성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글들의 논리가 생각보다 간결/명쾌하고 실제적이어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펼쳤다가 기분좋게 덮을수 있었던 책입니다. --Felix

정체성, 주체성이란 일반 개념을 혼동하고 있던 홍차중독에게 도움이 된 책이다.그런데, 책 후반부에 결론에 대한 설명이 약간 부족하다. 이 책은 폭력과상스러움에서 진중권씨에게 폭탄을 맞았다고 생각했었다. 병호보다 더 황당한 사람이라구 극언을 해서 진중권씨가 실수한 줄 알았다. 하지만, 저자 탁석산도 자신이 파시스트임을 인정한다. 그렇담 그의 책은 극우의 논리를 품고 있는 것일까? B) B) B)


극우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배타주의가 폭력성을 띄게 되는 때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유태인만큼 위험한 극우는 없을 것이다. 유태인의 위험성은 2000년간의 피해에 대한 반대급부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이미 방어의 시기는 지나친 지 오래이고, 드러나지 않는 공격의 칼날이 이슬람과 세계를 향해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만 봐도 그들은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에 대항할 세력은 화교와 EC 정도 뿐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극우란, 그들의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아직 그들과 같은 힘을 갖추지 못했고, 힘을 가진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탁석산의 후속작인 국인의주체성 을 따르면, 우리가 어느 정도의 힘을 보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핵을 가지는 것이다. 이 말에 나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핵이 가지는 전략적 의미와 실제적 효력은 전쟁 소설 프콘 을 참고) 핵이 나쁜, 위험한 힘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대 국가는 도덕성과 명분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후한 말의 조선이 힘이 없이 도덕과 명분만을 주장하다가 국제 사회에서 도태되었고, 결국 식민국가가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의 극우라는 것은 이러한 힘을 갖추어서 스스로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핵을 가진다고 해서 폭력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오랜 분쟁을 보면 극명하다. 파키스탄은 인도에서 독립한 소국에 지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할 국력도 없다. 그러나 핵을 보유함으로써 그들은 인도와 대등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유수의 핵보유국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아직까지 핵을 사용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사용한다고 해도 공멸이 있을 뿐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물론 궁극적으로 핵무장을 해체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미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그것은 명분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는 동북아의 전략적 거점이다. 미국의 북방한계선이고, 러시아의 부동항이 될 수 있고, 중국의 대태평양 진출기지가 될 수 있고, 일본의 대륙 진출 기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현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남북의 대치라는 긴장이 주는 균형이다. 휴전선을 중심으로한, 항상 실전에 대비하고 있는 강력한 군대는 침략을 고려하는데 있어 크나큰 장애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통일이 될 것이다. 통일된 후의 우리나라는 주변국의 모든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극우는 이러한 상황을 가정한, 자국과 국민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극우이다. 언제까지 남의 눈치만 보고 살 것인가, 동북아의 허브가 되자 라는 웅대한 기상 따위는 한 자리 차지하기도 힘든, 생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극우이다. 그것조차도 용인할 수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주변국 하나를 골라서 식민지가 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상 지금도 미국의 식민지와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go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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