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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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주의란

회의주의는...

과학과 회의주의에 대한 우화

"과학"이라는 나라에 어떤 무술인이 살고 있었다. 그의 필살기회의주의라 불리는 일종의 다리걸기 기술로서, 한번 제대로 걸리면 빠져 나오기 힘든 무서운 기술이었다.

그는 보다 강한 이들과 겨루어 보고, 넓은 견문을 얻고자 길을 떠났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가치판단"이란 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어떤 마을에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예를 겨루게 되었다. 그는 싸우는 족족 이겼다. 회의주의라는 기술로. 하지만 그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그렇다. 그들은 그레코로망 선수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다리걸기 기술은 승리를 얻어내는 방법이 될 수가 없었다.

회의주의 자체는 과학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것이 없다면, 과학이 성립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물에 언제나 양면이 있듯이, 가치판단의 영역에서 회의주의가 과학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회의주의자들은 흔히 어떤 과학적 가설이나 의학적 치료법이 충분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올바른 자세이다. 하지만, 일부의 회의주의자들은 여기에 덧붙여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런 치료법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러한 판단의 많은 부분은 과학 뿐 아니라 가치판단의 영역과 중복되어 있다. MargieProfet이 의학적 검증 없이 Protecting Your Baby-to-Be라는 책을 출판하고 임신초기에는 Plant Toxin으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자극적인 야채를 피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다.

회의주의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따라서 판단을 보류한다" 는 것이어야 한다. 회의주의를 가지고 "그것은 틀렸다" 라고 규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유형 선수가 그레코로망형 선수에게 다리 걸어서 이기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회의주의 뿐 아니라, "가치중립"이라는 것 또한 과학의 자세이다.

그러나

회의주의의 압력이 없다면 인간에 대한 모든 실험들이 충분한 증거 없이 이루어 지고, 정상과학과 의사과학의 경계가 모호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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