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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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론 Reductionism

개념

환원론 : 데카르트의 망령(확실하지 않음. 그냥 김우재의 기억속에는 그렇게 각인되어 있음...)이라 불리우는 과학적 방법론의 하나. 극단적 환원주의라 불리며 공격받는 이기적유전자RichardDawkins 를 참고할 것. 그를 알면 환원주의가 무엇인지 대충 개념은 잡힌다. 건강한 환원주의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환원론에 대한 경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명의그물의 카프라나 그외 신과학 운동은 이러한 환원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였다. --김우재

환원론 혹은 환원주의, Reductionism : 쪼개고 쪼개고 쪼개서 그 조각을 모모하는 것으로, 전체를 모모하려는 방법. 예) 프로그램 작성할 때 사용하는 DivideAndConquer.

환원주의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나누어진 조각들간의 상호 관계가 간과된다는 것이다. 예) 여러 명이 나누어 짠 프로그램을 합칠 때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히 큰 경우.
만일 DivideAndConquer로 문제를 풀었는데, 나누어진 조각들 간의 상호관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간과된 것이라면, 잘못푼거죠. --; 게다가 여러 명이 나누어 짠 프로그램을 합치는 것은 DivideAndConquer가 아닙니다. --naya
첫번예와 두번째는 다른 얘기를 한건데, 지금 읽어보니까 의미가 연결되어 DivideAndConquer의 문제점을 얘기한 것 처럼 되어버렸군요. 원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줄바꿈을 합니다. --june8th

Reductionism이라는 것은 생물연구에 있어서 그것을 구성하는 저수준의 것을 이용해서 고수준의 것을 설명하려는 방법을 말한다. 즉, 생명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기관이나 조직을 이용하고, 기관, 조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것을 구성하는 세포를 이용하고, 세포를 설명하기 위해 세포기관을 이용하며, 궁극적으로 화학물질을 이용해서 생명체를 설명하겠다는 것이며, 최근(?)에는 원자, 심지어는 양자단위에서 생명을 설명하겠다는 것이 바로 환원주의이다. 말하자면, 생화학이란 게 환원주의의 대표적인 산물이랄까.. 환원주의의 대가였던, 노벨상을 탄, 웬 생물학자(교과서에 나왔는데 까먹음.. ㅡㅡ; )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생명을 알기위해 세포를 연구하고 세포를 연구하기 위해 화학을 연구했는데, 이제는 생명이 뭔지 모르겠다."

(격나는대로 쓴 거라.. 좀 다를 수 있음.. 쩝) 화학물질사이의 어떤 변증법적인 상승일런지(창발성), 아니면, 애초에 구냥 생명 자체를 위해 화학물질들이 필요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있어야 되겠지만, 어쨌든 생명체가 단순한 화학물질이 단순히 모인 것은 아닐 거 같긴 하다. 단순한 화학물질들이 왜 그토록 생존을 갈망하는지, 왜 살려고 애쓰는지, 어째서 세포 속에서조차 공생과 협업이 이루어지는지, 거기에는 반드시 뭔가 밝혀지지 않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기적인 유전자같은 그러한 이유말이다. --naya

환원론자는 철학적으로 게으르다. 물리학자의 거의 대다수는 환원론자이다. 어떤 연유이든 musiki 역시 환원론자이다. 거시적 설명보다 RichardDawkins 식의 분자단위 생물학을 선호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성향때문에 왕따를 당하곤 한다. --musiki
개인적인 생각으로 물리학자의 거의 대다수가 환원론자가 아닌거 같다. ^^ 오히려, 물리학자들은 뭐랄까.. 신비주의에 가까운 성향이 더 많다. 말하자면, 뭐, 4차원적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정신적인 능력, 인간의 신체의 자기장과 같은 것에 훨씬 매력을 느끼는 물리학자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뭐랄까.. 환원주의자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물질에 모든 원인을 두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병이 걸리거나 하는 모든 이유는 생화학 반응에 의해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뭐.. 그런 사람들이 환원주의자라고 불리울만한데 주로 뭐 현대 의사들 아니 현대의학이라고 해야하나.. (잘 모르니 단어선택이 힘들군.) 암튼 현대의학이 그런 경향이 강하다. 병의 주된 원인을 화학반응에서만 찾고, 일단 병에 을 쓴다는 사실이 바로 그러한 것을 반영한다. 그러나 물리학은 오히려 한의학에 가깝다. 인체의 경락에 관심을 갖는 것은 현대의학에서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것은 물리학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떄문은 아닐까 한다. ^^; 잘은 모름. --naya
맞습니다. 과학적으로 환원론자이면서 신념적으로 신비주의자인 두얼굴의 사나이들이 역사속에 많이 두각되기도 한 듯 합니다. :) --musiki

환원주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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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생명에 관한 미시적 눈을 제공했던 환원주의는 폐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칼 포퍼는 철학적 환원주의와 방법적 환원주의를 구분하면서 서구과학적 세계관의 오류를 지적하면서도 무조적적인 환원주의의 부정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그는 세계관으로써의 환원주의는 문제이지만 방법론으로써의 환원주의는 미시적인 세계의 이해에 있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생명을 무조건 물리화학적 상호작용으로 환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만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포로, 유전자로,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적 과정의 대상으로 나누어 그 특성과 전체의 특성간의 상호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은 아직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종덕은 환원주의가 존재론적 환원주의, 인식론적 환원주의, 방법론적 환원주의로 구분된다고 하였는데, 그도 또한 포퍼와 마찬가지로 환원주의를 무조건 배격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과정적 방법으로서의 환원주의는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이상원은 인식론적 환원주의와 존재론적 환원주의를 구별하였다. 그는 이렇게 예를 들었다. "인식론적 환원주의자는 사회를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개체들의 단순한 합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인간 개체들 각각이 갖는 모든 속성들을 합쳐 놓아도 새로운 단위와 전체로서의 사회가 갖는 모든 속성이 고스란히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행동에 대한 사회생물학의 환원주의적인 주장은 인식적 허구이지 존재론적 실재가 아닌 것이다."

환원주의는 근대과학과는 필수불가결한 관계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근대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단지 환원주의가 방법적인 범주를 벗어나, 근대과학에 의한 부분의 특성을 생명전체와 절대적인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해석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환원주의가 그러한 결정론적 세계관을 극복한다면 근대과학이 이제까지 이루었던 여러 장점들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유효한 방법론으로써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학과 환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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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론이란 데카르트에 의하여 제창된 과학탐구의 방법인데 연구대상을 필요한 만큼 작은 부분으로 분해하여 연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분석의 원리라고 한다.이것은 전체에 관한 문제의 답은 국소적인 답의 산술적 총합으로 구성된다는 것에 근거한다.이것을 종합의 원리라고 한다. 수학은 이러한 문제에 비교적 잘 부응하였다. 수학에서 가장 응용의 폭이 넓은 미분학을 보자. 미분계수의 정의를 보면 어떤 상태가 알려져 있을 때 그 상태와 아주 가까운 근처의 정보만을 알 수 있다. 즉 미분법의 본질은 국소성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상태의 정보가 알려져 있을 때 충분히 멀리 있는 계의 정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시스템에 관련지어 수학을 생각하면 수학적 대상의 특성은 국소성에 있다고 하겠다. 전일적(holistic) 특성을 가진 계는 국소적 인식으로 전체를 파악할 수 없다. 심지어 기계적인 것도 복잡한 것이라면 부분에 관한 지식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수학 중에도 환원론적 연구에 가장 적합한 수학이론은 선형수학이다. 선형수학은 선형대수와 같은 기본적 수학구조에서부터 선형해석이라는 방대한 응용조직을 가지고 있다. 데카르트의 철학과 라플라스의 과학관에서 선형수학이 태동했다고 보는데 선형방정식은 기본해와 이 기본해들을 결합하여 일반해를 얻는 수법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자연현상은 일반적으로 비선형이지만 행성의 운동같은 것은 비선형 항을 제거하고 선형모형으로 단순화시켜서 연구하였다. 미시적인 차이점이 특이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에는 이러한 방법론이 무난하였다. 그러나 인간이 보다 미묘한 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이러한 방법론은 더 이상 적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혼돈이나 복잡도 이론 등과 같은 분할 할 수 없는 계나 평형과 멀리 떨어진 곳의 연구에서는 비선형 항이 중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선형수학이란 더 이상 효과적인 방법론이 되지 못한다. 미분방정식론에서 이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되었고 그 결과 정성이론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이론도 아직까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러면 전통적인 수학이 복잡계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을까? 수학에서의 중심 키워드는 집합과 함수이다. 이 두 개념은 서구과학의 중심 개념인 양화가능과 인과율의 수학적 표현이다. 집합론에서 먼저 수학적 대상을 구별하고 기본적인 셈하기가 이루어진다. 함수는 두 변량과의 관계를 짓는다. 과거에는 다가함수(multi-valued function)라는 것이 있었지만 이 정의는 인간은 하나의 관찰대상에 한정되는 인지구조 때문에 정의역에서 주어진 점을 공역의 두 개 이상의 점으로 대응하는 것을 피하고 있는데 이것이 현대의 함수의 정의다. 만약 인간의 인지구조가 이 다가함수의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실제로 교통 신호등이라던지 모든 차량은 우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규칙같은 것은 불필요하거나 보다 완만해질지도 모른다. 운전자가 차량 흐름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자신의 최대의 가시거리 안에있는 차량의 흐름이 아니라 극히 주변의 차량의 흐름에 국한된다. 그러나 초보 운전자들은 그나마 그 차량의 수도 한 두 대로 제한된다.

다가함수이던 일가함수이던 변수가 많으면 수학적 접근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복잡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학이 가지고 있는 약점이다. 또 기존의 함수는 정의역에서 x의 값이 주어졌을 때 이 값에 대응하는 y의 값이 다시 x의 값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피이드백 효과를 표현하지 못한다. 또 복잡계의 현상 중에는 창발성이란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창발성이 계의 피이드백 효과의 발현이기 때문에 기존의 함수의 개념이 복잡계를 설명하는 수학적 도구로서 불완전하다는 두 번째 이유이다. 결국 기존의 함수 개념은 복잡계 속에서 행동하는 한 두 개의 현상만 설명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전체의 흐름은 파악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분자의 운동에서 보여주는 고전물리학적 설명과 열역학적 설명의 차이와 유사하다.

From [http]수학과 환원론 -- 링크가 깨지는 경우가 있어서 글을 복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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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Also 창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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