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hip By Sho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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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컴퓨터 전문가 MartinFowler가 삼일 동안 열리는 "컴퓨터 도사(guru)들의 컨퍼런스"에 참석했었다.

첫째 날, 모든 사람이 예외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끊어먹고 있었다. MartinFowler는 할 말이 있을 때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가만히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러면 잠시 후에,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알아보게 되고 MartinFowler는 자신의 할 말을 하게 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가만히 자신의 손가락을 내리곤 했다.

셋째 날, 모든 사람들이, 할 말이 있을 때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MartinFowler가 보여줬던 것은 "리더쉽"인가? 그렇다. 그는 단순히 자기가 행동하기 원하는 대로 행했던 것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다르게 행동하도록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굳이 설교하지 않았다.

&[KentBeck의 ''ReluctantLeaderReluctantFollower''에 나온 일화를 김창준이 적절히 축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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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변화를 주고 싶다면 직접적인 설교보다 그 행동 자체를 직접 보여주고, 스스로 그 모범사례가 되고, 자신이 남에게 대우 받길 원하는 대로 남에게 베푸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실제로 뭔가 실행하거나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리더쉽은 KnowingDoingGap을 줄이는 주요한 방법이다. --세리자와

DeleteMe 음.. 이런 잠언, 명언들에 대해 더이상 머라 말하기 참 힘듭니다. 물론 이런 방법이 효율적일 때가 있겠죠. 그놈도 가끔 그런걸 느낍니다. 하지만 토론을 제의할 때도 있습니다.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지라도요. 아니면 아예 싸울 때도 있고 무시할 때도 있죠.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구체적 현상을 이른바 '삶의 교훈'정도쯤 되는 층위에서 조망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하고 싶은 겁니다. 차라리 조직관리론이라던가 심리학이라면 뭐라 반박하기라도 하지, 이게 다 사는데 도움이 되는 말이다식의 담론들은 우리의 직접적 대꾸가능성을 넘어서는 어떤 '삶의 진리'층위을 설정하게 합니다. 아직 어릴때 객기로 한번 개겨보다가 차츰 인생을 알게 되면 깨닫는다는 그곳 말이죠. 교훈 한둘 정도 알게된다고해서 별 문제야 없겠지만, 우리의 언어가 존재에 갖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잠언, 인생의 교훈들로 이루어진 '삶의 진리'차원을 설정하는 사람의 불행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나 교훈을 얻어야 하고 여하한 일이든지 훌륭한 말로 규정해야 속이 풀리는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도대체 삶의 저저분하고 모순적이며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로움은 어디로...

또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삶의 교훈은 보수적입니다. 알맞은 정도의 냉소, 인내의 위대함, 사회적 전망의 부재. 비약이겠지만, 만약 위의 행동 자체를 직접 보여주는 방법이 정말 효과적이라면 그 방법은 다양한 차원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점도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를 규정하는 일상의 규정들을 앞에 던져 토론하기보다 암묵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나쁜 방향의 관습이 되어버리는 경우들도 많으니까요. 사실 이런 경우 아주 많지 않나요? 이런 행동들이 체계를 이루고 사람들의 행위를 대부분 규정하는데, '효과적일 때가 있다는 것'을 이유로 그것이 삶의 교훈이 되어버린다면, 가령 위의 컴퓨터 회의에서 관습이 되어버린 그 손가락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감정같은 비효율적인 사고는 무시해도 좋다는 식의 (귄위적)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아.. 오바인가요? 허나 불행히도 더 불행한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위의 글이 이런 의도를 가지고 쓰여진 건 아니겠지만, 이런 글이 가지는 형식의 내용과 내용의 형식이 가진 의미가 절 생각하게 하는군요. 머 속 좁은 비판이지만, 결코 세상 달관한 듯한 비판은 하고 싶지 않아서..

매우 권위주의적인 Leadership의 전형이다. 상상해 보라. 연구실에서, 회사에서 열띤 토론 중이다. 교수나 상사가 자리에 앉아서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을 하나 세워들고 있다. 또는 찌뿌린 얼굴로 입을 닫고 있다. 모두 조용히 하라는 것인가? 좀 더 말이 되는 토론을 하라는 뜻인가? 손가락에 뭐가 묻었는데 화장지를 가져다 달라는 뜻인가? 아침에 먹은 것 때문에 소화가 안 된다는 뜻인가?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인가? 누군가의 손짓 하나에 신경 쓰면서 눈치를 보라는 뜻인가?
예가 그리 적절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위의 Martin Fowler는 회의의 좌장이거나 보스가 아니고 남들과 똑같은 위치의 사람이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사람이 이런 흉내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럴 경우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 동감합니다 -- 사실 권위주의적인 사람이 뭘 하건 모두 부정적인 효과가 나지 않을까 합니다. --김창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설교도 아니고 손짓 하나에 신경써야 하는 권위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하는 자리에 항상 필요한 발언권의 통제, 토론을 매끄럽게 끌어가는 진행자가 필요하고, 진행자는 토론을 시작하기 전에 주의사항을 간단히 전달해 주어야만 한다.
--Aragorn
회의를 진행해주는 사람을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것들은 모두 전통적으로 퍼실리테이터가 해주어야 할 역할에 속하는 것이죠. 퍼실리테이터는 특히 회의 전에 "회의할 방식, 프로세스"에 대한 컨센서스를 이끌어 낸 후에 회의를 시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LeadershipByShowing을 하는 사람이 미리 "리더"나 "퍼실리테이터"여야 한다는 조건은 없습니다. 퍼실리테이터가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저마다 자기 소리를 내려고 교통정리가 잘 되지 않는 상황 말이죠. 어쨌건, LeadershipByShowing이 효과적일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창준

물론 정도의 차이를 고려한다면, 토씨 틀린거 고쳐주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시겠죠. --무신 DeleteMe
토씨 틀린 것 고쳐주는 것을 두고 Leadership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Leadership이라는 것은 남들이 자신의 명시적인, 암시적인 지시에 따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Aragorn
이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어떤 관성때문이 아닐까요 ? 원래 비평할때 말수가 많아지면 여러 사람의 공격대상이 되기 쉬운 법이니까 ? 이럴땐 말없이지켜보기가 속편하니까 :p -- 무신
이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죠. 그동안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적잖이 있었지만, 어느새 다 정리되어 사라지고 없습니다. 밥 먹고 사는데 아무 상관없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미 짜여진 틀을 건드리는 것은 귀찮은 일이죠. -- Arag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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