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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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 과거를 넘어서 현대로

{{|'이 음악은(드뷔시의 음악들) 듣지 않는 것이 좋아. 그렇지 않으면 결국에는 거기에 익숙해져버려 결국 (이 해괴한 음들이) 좋아지고 말 위험에 사로잡히고 말거야.' --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젊은 스트라빈스키에게!!|}}

{{|'나는 태생이 뱃사람이야. 그런데 어쩌다 잘못길을 들어서서 작곡을 하고 있는거지.'
-- 끌로드 드뷔시, 라 메르(La Mer - 바다)를 작곡한 해에, 친구에게 보낸 서간 중에|}}

{{|
'드뷔시의 등에
눈이 또 내린다.
1950년대의 막역한 친구들이
골방의 외로움을 털고 일어나
백합을 본다.'
-- 시인 마종기의 시(詩), '음악회' 중에서 |}}

드뷔시는 고등학교때의 음악교과서에까지 등장하는 인물인지라, 그의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었다. 그가 5음계열을 잘 사용하고, 수많은 독특함을 남겼다는것까지도. 그러나 막상 그의 음악을 아는 것은 없었으며, 들어본 것은 더욱 없었다. 라 메르의 이름을 들어본 정도나,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작곡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도였을까. 끌로드 드뷔시를 듣게 된 것은, 사티로부터 프랑스 음악 전반에 대해 관심을 넓혀 나가던 중에 우연히 사게 된 두장의 시디로 부터였다. 드뷔시의 전주곡 제 1집(피아노곡)과 라 메르(La Mer, 바다, 교향곡) 연주가 담긴 시디.

끌로드 드뷔시는 1862년에 태어나 1918년에 죽었다. '쇤베르크를 제외하고는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현대음악가는 없다고 해도 좋을것이다...' 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유명하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초기에는 에릭 사티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으며, 한때 바그너의 음악에 잠시 취해있기도 (금방 그것을 진솔하게 능가할, 독일을 뛰어넘을 프랑스적인 음들을 찾았지만) 했다. 그 이전 세대의 프랑스 음악가인 포레와 달리, 그는 고전적인 작곡 수법들을 아주 쉽게 부수고,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나 다른 이색적인 지방의 음색을 가져온다거나 하는 등의.

드뷔시의 음악들 중 초기의 음악도 몇개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드뷔시 곡집의 악보를 통해서 먼저 접하게 된, '두개의 아라베스크' 라든가, '달빛Clair de Lune'이라든가의 곡들이었다. 이 초기곡 들은 내가 듣기에 그다지 낭만 시대의 음악과 다름이 없게 들렸지만.... 그러나 중기 이후곡이었던 전주곡집은 잘 들리지가 않았다.

그의 음악에서는 미술이나 시 같은, 다른 장르에서 가져온 요소가 많이 보인다고 한다. 전주곡집의 제목만 봐도, 그런 분위기들이 가득 느껴진다. 전주곡집 1집의 제목들에는, 대강 이런 것들이 있다 ; 델피의 무희들, 돛, 들을 지나는 바람, 소리와 향기가 저녁 대기 속에 감돈다, 눈위의 발자국, 서풍이 본 것, 물에 잠긴 성당... 등.

'대기중에 소리와 향기가 저녁 대기 속에 감돈다'와 같은 곡은 스테판-말라르메의 시를 따와서, 그 시를 테마로 작곡을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제목도 하나의 싯귀라고 알려져 있다. 물에 잠긴 성당, 과 같은 곡도 상당히 특이한 곡인데, 이 곡은 유럽 중세의 전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한다. 신에게 불경을 범해 물(바다인지, 호수인지)아래로 가득 잠겨 버린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던 성당이 그대로 잠겨 있어, 바람이 잔잔해 햇빛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저녁때에는, 수면 아래로 성당의 종탑과 종이 보인다는 전설이다.

그때 마침 조류가 움직이면, 저 깊은 물 아래에서 종소리가 울려나온다는 전설. 그의 그 곡을, 전설을 생각하며 듣고 있노라면, 정말 깊은 수면 아래에 움직임과 종, 바다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런 면들 때문일까. 그는 '인상파impressionism / -ist'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그 시대 화가들이 받은 느낌, 햇살이나 물결을 느낌과 감성 그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것을, 음악에 옮기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의 음악이 영향을 받은 것은 인상파로 부터가 아니라, '상징주의'라는 사조였을 것이다.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라든가, 그의 음악이 띄우는 상징성과 전설 같은 것들.

물론 음악은 문예사조의 정확하게 1:1 대응될 리도 없고, 되지도 않기 때문에, 인상주의라는 부적합함이 널리 알려진 이 명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징주의라고 새로 부르는 것도 적합한 일이 아니겠지만....

그의 음악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초기음악은 아름다운 아라베스크나, 베르가마스크조곡집(달빛이 들어있는)처럼, 듣기 쉬운, 조금은 평이한 곡들이다. 그가 여기에서 벗어나 인상주의 수법으로 작곡하기 했다는 최초의 곡들은, 영상(Image)곡집부터라고 꼽힌다. 이때부터 중기로 꼽힌다. 내가 듣기에는, 이 영상 곡집은, 아무래도 전혀 불편했다. 차라리 그 이후곡들은 귀에 들어오건만....

그가 인상주의 수법으로 묘사하기 시작한 얼마 뒤의, 유명한 곡으로는, 아마 라 메르(La Mer)가 있겠다. 라 메르(La Mer)는 말 그대로 바다를 묘사한 것이다. '교향적 묘사' 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곡은, 광할하고 넓은 바다, 잔잔하고 희롱하는 바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각각 묘사하는 세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 비교적 짧은 곡인 이 라 메르는, 당시에 처음 초연되었을때 많은 악평을 받았다고 한다. '이상하고 불편한 울림들...', '불협화음과 귀를 간지럽히는 음들...' . 그리고 한 당대의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한다. '우리는.... 넓은 바다를 보러 갔지만, 접시에 담긴 물 밖에 보지 못한 셈이다.' 라고.

그러나 내가 막상 들었을때에는, 난해함 같은 것은 없이 편히 들렸다. 라 메르는 딱 듣기 좋은 음악이었고, 불협화음이라고 걸리게 들리는 부분도 없었으며,오히려 영화음악에 쓰이면 딱 좋을 정도의, 바다를 절로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었다. ... 차라리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 더 나른하고 기이하지 않았을까. 혹은, 이미 근대적인 음악의 요소가 내 귀에 자연스러워 진것일까. 여하간에, 라 메르를 들으면서 드뷔시가 조금씩 마음에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신의 오후 전주곡은, 그 유명한 춤의 신 '니진스키'가 이 음악에 맞추어 안무하고, '목신의 오후' 춤을 추어낸, 바로 그 곡이다. 디아길레프, 니진스키... 참, 20세기 들어서는 무렵의 파리에는, 대단한 인물들이 다른 나라에서까지 몰려와 있었구나, 싶다. 아니, 그렇게 따지자면 피카소가 그림을 맡고, 장콕토가 대본을 썼으며, 기욤 아폴리네르가 해설을 맡고, 에릭사티가 음악을 하고, 디아길레프가 주최한 최초의 전위 발레, '퍼레이드'가 억울해 하겠다. 콕토나 피카소, 사티, 드뷔시등은 각각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듣고 읽다 보면, 이 녀석은 저 녀석 이랑 알고, 저 녀석은 요 녀석이랑 알고... 연결되는 법인데... 참, 당대의 파리는 대단했던 것 같다.

드뷔시는, 사티와 절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사람좋은 사티와 달리, 드뷔시는 꽤나 이기적이어서인지 다른 친구들이나 음악가들에게 종종 멸시당하거나 절교 당하기도 했다. 특히나 그는 여자 관계에 있어서는 엉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거하던 여자를 버리고 그녀의 친구와 결혼하는가 하면, 그렇게 살다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아내는 자살 소동을 벌이고...) 다른 유부녀와 결혼하기도 하고... 물론, 그렇게 심한 것은 아니다. 그도 많이 마음아파했겠지만... 어쨌거나 사티를 제외하고는 한때 몄은 시절의 대개의 친구들이, 일시적이거나 영속적으로, 드뷔시와 교제를 끊었었다. 사티와 드뷔시도 좋게 끝난 것은 아니지만... 사티는 언제나 드뷔시의 편을 들어주는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드뷔시가 나빠보아야, 저 독일의 허풍쟁이이자, 독일 신화에 미치광이이자, 숭악하고 사악하기 그지 없는 바람둥이 바그너의 발끝에도 못따라가니, 그래도 드뷔시는 착한 사람이었을거야, 하고 말해 보고 싶다.

드뷔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고자 하는 야망이 전혀 없던 사티의 음악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린 사람이기도 하다. 젊은 두 사람이 만났을때, 드뷔시는 사티의 곡 중 짐노페디에 감탄하게 되고, 그 곡을 편곡해서 관현악곡으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이 공연에서, 사티의 짐노페디가, 드뷔시 자신의 곡보다 더 인기가 있어서 꽤 토라졌다는, 속 좁은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드뷔시는 처음에는 사티에게 조금 영향을 받았으나, 사티가 발견하고 사용한 기술 대부분을 더 이상으로 끌어올려, 피아노나 관현악 및 작곡의 여러 분야에서 최대한의 빛과 기술을 끌어낸, 벽을 넘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음악은, 그것이 이야기 하고 있는 소재나, 주제, 스타일도 전혀 다르다. 전혀.)

드뷔시는, 그렇게 소위 '인상주의' 적인 중기를 잘 보내고, 말기에 들어서서는, 조금더 추상적인 세계로 가야 하는가의 고뇌에 들어섰던 것 같다. '음악이있는풍경' 이라는 훌륭한 클래식 음악 감상서를 쓴, 시인 김정환은 드뷔시의 말기에 대해 쓰기를 ; "그는 ... 황폐해지고 남은 것이 없지만 현실인 바깥 세계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한없는 표현과 발전이 가능하겠지만, 닫혀 있는 추상의 성 속에 갇힐 것인가를 고뇌하다가, 그의 마지막 피아노 연습곡, 에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추상의 성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한 것이다."

드뷔시의 연습곡과 같은 그의 후기 음악은, 이전과는 꽤 다르고... 잘은 모르겠지만, 쇤베르크같은, 완전한 무조 음악의현대성이 조금쯤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느낌 뿐이고 이론을 전혀 모르는지라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음악들은,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드뷔시는 유명하지만서도, 전반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곡은 아닌듯 싶다. 선율이 명확하지 않고 (인상주의적인 두리 뭉실한 묘사랄까), 따라서 명확한 선율이나 박자가 아닌지라 기억에 쉽게 다가가지 않는 탓일까.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달빛'과 같은곡이 드뷔시를 대표할수 있는 곡이 아닌데도, 실지로는 제일 유명한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드뷔시는, 여자문제가 조금 복잡했지만, 두번째 결혼 이후에는 행복했었던것 같다. 아내와 사이에 딸 '슈슈'가 태어났고, 그 딸아이에게 바치는 '어린이 차지'라는 곡집을 쓰기도 했다. 그는 1918년, 한 해 전에 받은, 지병에 대한 수술이 악화되어, 죽었다. 그가 말년에, 추상속으로 들어가는 음악을 쓰고 있었을때, 그는 이미 병으로 크게 고통받고 있었다.

-- nayas

끌로드 드뷔시는, 참 흥미로운 음악이면서도 제게는 '착' 달라붙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에 대한 평도 어쩌면 불만일지도 모르겠네요. 음악사적 위치에서 에릭사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자리지만서도... 전 사티가 훨씬 더 좋거든요. 뭐랄까요. 제 버릇같은 선택 경향인데, 드뷔시는 제가 안좋아해주어도 세상 많이들 아껴주겠지만, 사티는 꼭 좋아해주어야 할 것 같은 느낌. ... 그래서, 제 글 공정하지는 않을거에요, :) 읽어보니 표가 팍팍나네요. 흐음.... :) --- nayas


오.. 드뷔시는 one of my favorite composers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단연코 바하니까 그 정도와 비교할 수는 물론 없지만(;) 그래도 거의 그 다음가는 정도로 상당히 좋아하는 그룹에 속하는 사람이죠. 이 얘길 듣더니 누군가가 "너 참 신기한 애다.." 그러더군요..-_-; 저는 "영상"이랑 "어린이차지" 참 좋아했었는데 "영상" 별로 안좋아하시나보군요. (전 개인적으로 유명하다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이 좀 불편하던데..;) 특히 "영상 1집"에 있는 "물에 비친 그림자"를 들으면서 너무나 아름다와서, 정말로 물에 비쳐 살랑살랑 아른아른거리는 영롱한 그림자의 미세한 움직임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고 느꼈었습니다. 이미지들을 손에 잡힐듯이, 눈앞에 선히 보이듯이 음악으로 표현하는 그 느낌이 매력적이었어요. 아 읽으면서 하나 궁금한 것이 있던데 그가 인상주의이기보다는 상징주의라는 편이 적합할 것이라는 것은 얼마나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이야기인가요? --우산

오옷, 저도 "영상","어린이차지" 좋아합니닷...("목신의 오후 전주곡"도 좋아하고)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드뷔시가 20세기 후반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영화음악계에 지대한 공헌을 했을것이라는... -Felix

제가 알기로는 드뷔시의 음악은 쇤베르크에게도 역시 영향을 주고 있는거 같습니다. 쇤베르크의 'Five Pieces for Orchestra' 의 몇몇 악장을 들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드뷔시의 후기 작품중에 발레음악 'Jeux' 를 들어본적이 있었는데 마치 어릴때 봤던 만화경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Jeux'의 스토리는 정말 충격적입니다. 어떤 남자가 한밤에 테니스를 치다가 공이 숲으로 떨어져서 주으러 갔는데 그곳에서 연인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장면을 발견합니다. 그 연인은 동성애자 였고, 공 주으러 간 남자는 그 둘 사이에 합류하기를 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교수님에게 들은 이야기이고 직접 발레를 접한것은 아닙니다. 단지 음악만 들었을뿐. -- wite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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