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작곡가. 피아노곡.
에릭 사티, '인간'이라는 종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던, 어떤 외로운 포유동물 ¶
{{|근대 음악은 어느 시대에서나 평판이 나쁘다. 그저께도 그랬고, 어제와 또 오늘도 그렇다. 연주장의 샹들리에 밑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 라모, 베에토벤, 베를리오즈 혹은 바그너.... 대중은 언제나 그 시대 표현 용어와 심미관에서 항상 25년 내지 50여년 뒤떨어져 있다. --어느 프랑스 음악 비평가|}}
어쩌면 음악이라는 것은, 문화의 다른 양상보다 더욱 보수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문학의 독자들을 보면, 현대의 문학이나 다른 세계의 문학에 귀를 기울이며 근년에 등장한 새로운 양상들에 빨리, 변화를 맞이한다. 그러나 음악은, 따지자면 수세기 전의 것에 귀를 가만히 기울이고 있는 셈이다. 연주장에서도, 또 청중이나 레코드에서도. 보수적이라는 것이라든가 빨리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치 판단의 좋고 나쁨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의도는 아니지만, 클래식 음악을 문학에 비교해보자면, 우리는 몇 세기전의 셰익스피어를 주로 읽고 있다거나, 우리 문학으로 치자면 최남선이라든가 현진건 등의 문학을 아직 주류로 읽고 있는 모습인 셈이다. 좋다 나쁘다라고 따질 문제는 아니지만, 음악을 듣는, 레코드를 사는 '음악소비자' 층의 귀는, 언제나 듣고 싶은 것을 결정해 둔 상태에서, 그렇게 정체된 귀를 가지고 정체된 '소비'만을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우리세대, 80년대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닌 90년대 학번 세대들은 (요즘에는 더 심할지도 모르겠지만), 대개 어릴적에 피아노 교습을 받으러 갔었다거나, 하는 경험들이 있다. 음악을 참으로 좋아하거나 이해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등을 떠밀려 어머니들의 등살에 간 경우가 많았겠지만. 그러나 그런 경험들을 토대로, 성장한 뒤에 취미로서의 음악을, 좀더 깊이 접하게 될 수 있을때도 있다. 어릴적 한때 피아노를 억지로 배웠던 나는 대학에 와서야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고, 특히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몇명의 프랑스 작곡가들에 깊이 애정있어 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길을 들어, 프랑스 근대 음악에 대해 조금 듣게 되었는데, 그 감상을 약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프랑스 근대 음악을 듣는 것은 조금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프랑스 근대 음악의 라벨이나 드뷔시 같은 이들은, 같은 시대를 지배한 풍의 바그너적인 감성, 독일적인 허풍(?)을 전혀 견디지 못했고, 그것을 이기고 더 나은 음악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드뷔시도, 라벨도, 이전 시대의 작곡 규칙들이 정한 벽을 깨뜨리고 더 멀리, 더욱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내었다. 고전이나 낭만의 음악에 익숙하던 나는, 현대까지는 못되더라도 근대에 해당하는 그들 음악을 듣는 것이, 쉽지 많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관심이 가는 소재들이었다. 20세기 초, 파리라는 공간에 있던, 그 음악가들에 대해서.
에릭 사티Erik Satie (1866 - 1925)
{{|나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왜 왔을까. 즐겁기 위해서? 형벌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임무를 띄고서? 휴식 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나는 태어나 얼마 안된 아이일때 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래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 일기 중에서, (영화 '사티와 수잔'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임무를 띄고서? 휴식 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나는 태어나 얼마 안된 아이일때 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래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 일기 중에서, (영화 '사티와 수잔'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에릭 사티를 그리는 발레 영화를 보게 된 것이, 에릭 사티는 물론이고 프랑스 근대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기회였다. 에릭 사티는 1866년에 태어나 1925 년에 죽었다. 그는 독특한 인생을 살다간 괴짜였으며, 그 이상으로 그의 음악은 참으로 아름다운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의 음??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짐노페디Gymnopedie' 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죽은 전사를 추모하는 춤을 추는 그림을 보고서 착상을 얻은 사티가, 젊은 시절에 작곡한 것으로서 그의 음악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 음악이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슬픈 어조의 춤곡이랄까. 에릭 사티는 친구였던 드뷔시에게 큰 음악적인 영향을 주고, 라벨이나 프랑시스 뿔랑 같은 후배 음악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는 전혀 명예를 추구한 적이 없었던 탓인지, 그의 음악이 널리 알려진 것은 20세기 전반이 지나고 난 1960년대 가까워서였다.
내가 사티 음악을 처음 듣게 된, 발레 - 예술 영화는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에릭 사티의 환상적이고, 조금은 몽롱한 음악에 발레를 통해 표현하는, 그렇다고 해서 백조의 호수 같은 고전적인 양식이 아니라, 현대 무용으로 표현하는 영화였다. 영화의 스토리는, 에릭사티에게 평생 단 한번 깊은 사랑으로 알려진, 수잔 발라둥과의 10여년 만의 재회를 그리는 것이었다. 에릭 사티의 음악, 에릭 사티의 대사. 그 영화에서 말을 하는 것은 딱 한 사람, 작곡가 에릭 사티 자신. 울리는 소리들 역시, 에릭 사티의 음악. 수잔 발라둥 역의 여배우를 포함하여 나머지 모두는 춤으로만 이야기한다.
영화는 사티의 불행했던 사랑을, 그리고 생의 허무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히 말로 설명할수 없는 신비함을, 음악과 춤의 언어가 묘하게 조화된 아름다움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 그의 인생.
사티의 음악은 굉장히 간결하다. 어쩌면, 투명하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짐노페디와 함께 유명한 그노시엔Gnossienne은, 또한 그리스 시대에 바탕을 두고 있다. 크노소스Knossos의 궁전에서 추는 춤, 이라는 간략한 설명이 붙어있다는 이 곡은, 크노소스 사람이라는 '크노시엔'에서 발음을 굴려, 그노시엔을 만들었다고 한다. 간결하고 투명한 음들이, 단순한 듯한 반복을 거치며, 그러나 참으로 낯설디 낯설게, 그러나 무척 아름답게 그려진다.
영화를 가득 채운, 묘하고 그리고 서글픈 분위기와 음악때문인지, 사티의 음악을 챙겨 듣기 이전에는, 영화 영향으로 사티의 대부분의 음악들이 그렇게 어둡고 암울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어두우면서도 참으로 아름답지만. 짐노페디와 같은 곡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곡중 하나일거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GYMNOPEDIE NO 1 - PIANO, PASCAL ROGE Deadlink
GYMNOPEDIE NO 2 - PIANO, PASCAL ROGE Deadlink
GYMNOPEDIE NO 3 - PIANO, PASCAL ROGE Deadlink
그의 인생은 불행했다. 그는 참으로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음악에 있어서만은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의견을 고집했다.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떨어진다고도 할수 있을 그는, 생활에서는 고립되어 있는 외톨박이였다. 화가이자 모델이었고, 현대에도 미술사에 등장하는 페미니스트인, 수잔 발라둥과의 짧았지만 격렬했던 3개월간의 동거 생활은, 사티의 인생 전체에 그림자가 되고 말았다. 수잔 발라둥과 사티는 서로 사랑했으나, 두 사람 사이의 커다란 성격적, 예술적,(사티는 미술을 전혀 몰랐고, 수잔은 음악을 전혀 몰랐다)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깨뜨려지고 만다. 수잔은 어느밤 사티와 격렬한 싸움끝에 사티의 아파트 창 밖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추락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찰과상으로 그치고 말았으나, 그것이 사티와 수잔의 마지막이었다.GYMNOPEDIE NO 2 - PIANO, PASCAL ROGE Deadlink
GYMNOPEDIE NO 3 - PIANO, PASCAL ROGE Deadlink
이후, 사티는 죽을때 까지, 그 누구도, 자신의 아파트에 들여 보내지 않았다. 친구들이 그의 아파트에 들어가 사티의 방을 보게 된 것은, 그로 부터 25년 가량 지나 그가 사망한 뒤였다.
사티의 인생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먼저 듣게 된 뒤라, 나는 사티의 음악에 그토록 기재 발랄한 장난기들이 있다는 것에, 조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티의 악보를, 보게 되었을때, 악보 구석 구석 마다에, 다른 작곡가들이라면 이탈리어어(음악기보)로 속력이나 표현을 적어놓았을 자리에, 불어로 형이상학(?)적인 수식어들을 적어두었다는 것이 참 특이했다. 이를 테면 '이곳에서는 머리를 활짝 열고'라든가, '아 얼마나 좋은 햇살인가..... (몇 소절 뒤에는 이어,) .. 그래, 역시 생은 살아갈 만한 것이야.' 라든가. 지금 봐도 황당한 악보인데, 당대에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카페 음악가였던 그, 에릭사티였지만, 때때로 악보를 출간했고, 출간한 악보를 보고 황당하고 재미있었던 다른 연주가들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따로 악보에 적힌 그런 음악 기호(수식?)를 읽어주는 사람을 두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 소문이 사티의 귀에까지 들어갔는지, 사티는 어느 악보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적어두고 있다.
'내 악보를 연주하는 동안에, 설명을 읽는 것은 엄격히 금지함.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예외도 인정되지 않음.' --- 누가 그 말들 까지 읽어버리지는 않았을까.
사티의 가장 독설스러운(?)곡은 아마도 벡사시옹(Vexation)일 것이다. 뜻 그대로 왕짜증인 이 곡에 대해서, 사티는 다음과 같이 적어두고 있다.
"이 곡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이 곡에 내가 지루함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담았다."
이 곡은 1분 조금 더 되거나 못되는 짧은 소절을 840번 반복하라고 되어 있다. 지시 그대로 840번을 연주하면 13시간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속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왕짜증스러운 벡사시옹의 공연은, 실지로 있었다. 60년대 초에, 역시 사티 적인 장난기를 이해한 어느 피아니스트와 기획자들이, 3명의 피아니스트가 차례로 돌아가며 지루하디 짝이 없는 이 악상을 8시간 넘게 연주했던 것이다. 그저 유명한 연주자라니까 작곡가의 곡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정장 차 림으로 왔던 신사 숙녀들은,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고 있다 슬금 슬금 다 빠져나가고, 그냥 잠이나 자고 가자라는, 거렁뱅이 청중들(??) 10여명이, 저녁에 시작되어 새벽에 마친, 이 공연을 끝까지 지켰다는 전설이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공연이 몇번 더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첫 공연때와 달리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것이, 아마 사티적인 음악의 생각과 일치할 것이다.
겨우 100여년도 안된 이전이지만, 사티의 시대와 우리 시대의 음악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대에는 살롱 음악이라든가, 실내악이 있기는 했지만, 음악이 생활의 배경으로 깔리는 일은 별로 많이 없었다. 클래식 음악이 그렇게 되는 일은, 유럽에서는 생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사티는 '가구주의'라고도 불리는데, 즉 음악은 가구처럼 배경에, 커튼 처럼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한번은 6명의 연주자가 6개의 다른 악기와 6개의 다른 악보를 한번에 한 장소에서 연주하도록 한 적도 있다. 그것을 행한 장소는 주로 그가 연주 생활을 해오던 카페들 중 하나였는데, 그 카페에서 사람들이 멍하니 어느 음악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의아해 하고 있자, 그는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고 한다. "뭐든지 해요! 아무거나 하라구요! 대화를 하든지 수다를 떨든지 책을 보든지! 다만 듣지만 말아요!"
워크맨을 귀에 꽂고 다니고, 카페나 식당 마다 음악이 나오는 현대를 미리 내다본 셈일까. 커튼이나 가구처럼 음악이 장식되는. 여하간에 그는 음악에 권위를 싣는, 그런 권위주의자는 전혀 아니었던 셈이다.
사티는 57세로 죽었다. 죽을때 까지 그는 혼자였으며, 죽은 뒤에 그의 방에 들어간 친구들은 그의 방문 위에 걸려 있는 두장의 그림을 볼수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사티가 그린, 수잔의 초상화(유치하게 못그린). 곁에 걸린 다른 하나는, 수잔이 그려준 사티의 초상화(수잔의 그림중에서도 한 기간을 풍미해 주는 것으로 꼽히는, 인상적인 유화)였다.
-- nayas
정말 멋진 이야기군요..그간 에릭 사티 짐노페디 하나는 알고 아주 좋아했었지만,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줄은..- 전에 그 <그린파파아향기>에서 에릭사티 음악 자꾸 나와서 괘씸해했었죠..-0-;;(에릭사티 맞죠? 에릭사티스름하게 만든게 아니라..오래 되어서 기억이 좀 흐릿하네요.) 아말감
캬륵 캬륵 저는 에릭 사티를 너무나 좋아한답니다. 그의 악보들, 그의 저술(이라고 해봐야 낙서들이지만)들, 야금 야금 모으고 있답니다. ... 언젠가는 아카이브 만들어야지, 하고 게을러서 생각만 하고 있지만요... 제게 사티는 음악을 듣기가 아니라 연주하기로 접근하게해 준 사람이라서, 또 더 특별하답니다. 괜히 너무 긴 글, 혼자만의다큐먼트모드 하는거아닌가, 흠... 하며 올렸는데, 기쁘네요... 감사드려요... 의외로 많은 노스모크 사람들이 사티, 들으셨군요. 좋아라... -- nayas
"101번째 프로포즈"에 나왔던 사티의 곡을 기억합니다. 저에겐...한없이 늘어지던 곡조가 여주인공(김희애분)의 우수와 섞여서 인상적이었는데...환상적이긴 한데 우울할 때는 헤어날 수 없이 만들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건 영화 때문일까요..? --숙영
사티를 좋아하신다면, 그의 생애를 그린 소설 "에펠탑의 검은 고양이"를 추천합니다. --Nekrosius
앗! 저도 그 책을 읽고.. 사티라는 사람에게 빠지게 되었죠 --붉은눈의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