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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맑스/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Marxism


인류사 전반에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 -2000년 1월 중앙일보-

Karl Marx (1818-1881) : (누군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류의 위대한 스승 중 하나.

재미있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다윈은 류의위대한스승인가? 빌게이츠는? -- 세리자와

그의 평생의 업적은 자본 Das Kapital에 집약되어 있다. (Das Kapital 원문을 찾는다면, [http]Das Kapital)


2. 맑스 에대한단상

맑스의 주저가 공산주의론이나 사회주의론이 아니라 자본론 인것은 자본주의를 제외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것이다. 또한 맑스의 사상은 자본과 시장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를 잘 알게 해준다.--잡종


마르크스의 사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소련 2000만 중국 2000만 한반도 수백만 현재 북한인민이 고생하는 것은 마르크스 때문이 아닌가? 이런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무리 이론이 좋아도... 현재는 완전히 망한 상태. --산우행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는 또 다릅니다. --musiki
역사상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죽어간 사람... 알라의 이름으로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아직도 서로 죽이고 있다.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ㅎnㅂrㄹrㄱi
Are you being serious or sarcastic? --PuzzletChung
sarcastic한 생각으로 그리스도와 알라을 언급했지만 serious하게 다시 말하면, 해바라기는 맑스때문에 북한인민이 고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씨 일가의 독재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마찮가지의 이유로 이라크 인민의 고생은 알라 때문이 아니라 후세인의 독선적이고 비외교적인 정치행태 때문이겠지요. 현재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1일 8시간의 노동은 맑스의 사상이 그 동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국가가 그나마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한 많은 사회적 장치들은 어디로 부터 나왔는지 다시 생각해보면 북한 김씨나 소련의 독재가들 때문에 맑스가 모독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알라의 이름으로 독재와 반인륜적인 행위를한 사람들때문에 그들이 모독당하지 않는 것과 마찮가지로... -ㅎnㅂrㄹrㄱi

맑스가 뿌린 씨가 자라서 공산주의가 되고, 예수님이 뿌린 씨가 자라서 예수교가되고, 부처님이 뿌린 씨가 자라서 불교가 되고, 공자님이 뿌린 씨가 자라서 유교가 된 것이 아닙니까? ---산우행
결과적으로는 맑스의 사회주의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가 복지화된 계기가 생겼는걸요. 반면 예수가 일으킨 기독교 때문에 종교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것이죠. --PuzzletChung

산우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맹자의 예를 안들더라도 인간 본성은 이웃의 가난을 마음 아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맑스도 그런 생각에서 연구를 했겠지만...
그리고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산우행

webper는 일단 인간의 본성은 어떠하다고 규정지을 수 없으며, 인간이 아무리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존재라 하더라도 사회적 구조 속에서 그 측은지심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예를 들진 않겠습니다. 이를테면 그런 사회적 구조를 타파하자는 것이 맑스의 지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맑스가 없었다면 맑스의 사상이 없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정말 얼토당토 않은 일이지요. 북한이나 중국을 맑스주의를 제대로 실현하고 있는 나라로 볼 수 있습니까? ---webper

맑스는 공산주의사회가 실제로 어떤 형태를 띨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공하진 못했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는 그 청사진을 마련한 레닌, 그리고 그 프레임을 뒤틀어버린 스탈린, 마오, 김일성의 문제일 것이다. -- CafeNoir

물론 역사가 몇몇의 outstanding한 인물들에 의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 요인만 있겠습니까. 몇몇 사람들에게 현실사회주의의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것은 조금 과하지 않을까요? :) 맑스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여 그 생산성이 한계에 다달았을 때야 비로소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했는데, 그의 선동(?)의 힘이 워낙 강력하고 매혹적이었던 까닭인지, 모두들 너무 서둘러서 자본주의 붕괴를 꿈꾸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자본주의는 붕괴는 커녕 변종에 변종을 양산해가며 발전하고 있는데 말이죠. 게다가 이론적 토대와 함께 노동자 의식, 혁명의 경험들을 두루 갖춘 독일이나 여타 유럽국가에서가 아닌 러시아에서 혁명이 성공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트로츠키는 '약한 고리 가설'이라고 합리화를 했지만.) 자본주의 단계를 건너뛴 채, 노동자 계급의 형성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도그마티즘의 함정에 빠진 제3인터내셔널은 그 태생부터 실패를 내포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novembian

네. 동의합니다. 저 말은 맑스주의가 맑스-레닌주의가 되며 novembian님이 말씀하신 에러들을 내보이더니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에 이르러 심해졌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당시의 소련, 중국, 북한에서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손에 모든 실권이 잡혀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들에게 현실사회주의 실패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건 부정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좀 더 수정하자면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과 그 추종자들 정도로 하죠. - CafeNoir

3.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

어떤 역사적 시기의 경제적 생산과 거기서 뒤따라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 조직은 그 시대의 정치사와 지성사의 토대를 이룬다.

노동가치론, 역사유물론, 잉여가치론.

4. 마르크스주의는 현재 어디에 있는가?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은 자본주의 경제가 심화되고 난후 거기서 싹튼,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이 혁명을 일으켜 인간과 인간의 착취, 국가의 국가에 의한 착취가 사라질꺼라고, 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이론적 근거는 수정공산주의였고 자본에 의한 노동자들의 혁명이 아니라, 농민에 의한 레닌식 혁명이었다. 1980년대말, 혹은 90년대초,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 있은 후 한국 내에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연구는 사라졌다라는 지적?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이 레닌에 의한 수정사회주의 혁명이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 사상의 변명은 있으리라고 본다. 실지로 마르크스학을 공부하는 혹은 좌파적인, 김수행, 김세균, 강정구, 정성진, 김동준 같은 교수님들이 활동하고 계시고 나처럼, 21세기가 되어서도 마르크스 사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요즈음, 한총련 합법화문제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고, 어쩌면 그것은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고, 그리고 어쩌면 초기 한국의 마르크스주의 사상모임 이였던 서울파, 화요파, 일월파, 등등과도 나와는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인간이다. 어쩌면 마르크스는 인간의 인간에 의한 착취뿐 아니라 인간의 이데올로기로 인한 소외마저도 보아야 했던 것이 아닌가한다. 한총련이 합법화를 위해 발전적 해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학생운동, 을 지향한다고 한다. 한총련과 한국의 초기 사회주의 세력을 비교하는 건 무리이겠지만 어쩌면 그들은 무엇을 바꾸려고 했고, 어찌 보면 선택된 소수의 인텔리들이라는 점에서 비교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통일문제, 민족의 비극, 아니면, 일부 사회지도 세력의 오도로 인한, 민족의 비극이던지, 간에 북한을 아는 것에 있어서 북한 성립의 전반적 분위기 봉건, 가족적인, 성격의 북한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일본에 의해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가난한 거지 생활을 하다 항일유격대 생활을 같이하며 유격대의 밥짓는 사람이었던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인민의 어머니-에 의해 만경대 혁명유자녀학원에서 에서 구제를 받고 했던 사람들이 현 김정일 정권의 중진들이라는 지적으로 보아 일견 이해되지 않는 듯한 북한도, 어찌 보면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고, 현 미국대통령의 이분법적인, 선악 편가르기, 북한에 대한 axis of evil 북한은 악이라는 발언, 나쁜 것은 혼내주어야 한다는 미국식 단순함, 들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르크스 사상이 공상적이고, 준 종교적이라는 지적이 있고, 어쩌면 너무 일찍 세상에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견지에서 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생성, 발전, 파멸, 재투쟁 단계에서 많은 논란거리를 낳는다. 아니 어쩌면 농민을 위주로한 레닌식 사회주의 자체가 모순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초기의 한국에서의 공산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라기 보다, 한국독립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만 영향력이 있었다한다. 실지로 러시아에서 보내준, 금이, 임시정부에서 쓰였으니 말이다. 그 뒤 소규모, 공산단체간의, 시간은 지나고 1925년 코민테른에 인정을 받은 조선공산당이 생기게되지만, 코민테른의 12월 테제에서의 지적인, 인텔리들만의, 노동자 농민의 당이 아닌 파벌적인 성격으로 인해 해체를 맞는다. 그 후 1930년기 자본주의 공황시기에는 사회민주주의 세력 민족주의좌파와의 대립마저도 있었다한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통일단체인 신간회 해체였다.

사회주의 혁명이 문제냐, 민족해방이 문제냐의, 문제에 있어 그것은 나중에, 경제공황이 계급투쟁에서 반나치 반파시즘, 인민노선을 취한다는 점에서 의외로, 민족해방의 무게가 먼저였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인터넷에 들어가면 자본론 스터디그룹 모집하는 사이트도 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와, 레닌의 사진이 걸린 카페도 있고 한국정당에 사회당, 민주노동당이있다. 내가 알고있는 좌파사이트만 해도 수십 개다. 유럽은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고 그것은, 분배정책을 중요시하는 정당, 의료, 교육의 무료 사회연금제도의 정당이다.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고, 인간소외를 해결하고 유토피아를 이루고자 했던 마르크시즘은 아직도 유효하다. --isang


5. Marx 읽기에 대한 한 가지 생각

어떤 목표/의도/배경지식/선입견을 갖고 읽는다고(혹은 안읽는다고) 해도 그것은 읽는(안읽는) 사람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Marx = 계급투쟁을 선동한 공산주의자"라는 식의 도식적 이해(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 = Marxist 국가"라는 이해)만은 피했으면 좋겠다. Marx 최대의 (이론적) 업적은 공산주의나 계급투쟁의 이론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었으며, 그 핵심을 "1844 경제학-철학 수고"의 소외론에서 찾든, 아니면 "강요 Grundrisse"이나 "자본 Das Kapital"(특히 1장 "상품"장)의 경제적 분석(혹은 상품형식의 분석)에서 찾든, 그것이 Marx의 사상을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핵심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맑스에 대한 도식적인 이해의 반대쪽에서 그를 또 한명의 훌륭한 철학자나 경제학자로만 취급하는 경향 역시 조심해야 한다. 단지 맑스를 스미스나 리카도와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의 반열에 놓아 그의 "가치론"을 하나의 경제이론으로만 이해하며 그의 실천적, 정치적 계기들을 간과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오독일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증오한 혁명가가 맞다. 맑스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글이 노동자계급의 무기로 사용되기를 바랬다. 우리가 그의 글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다양하겠지만, 맑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그가 (그람시가 말했듯)실천의 철학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위치에선 맑스에 대한 오해(이해의 불가능)는 당연하고 그것이 나쁘지만도 않다. 참고로, 해리 클리버의 <자본론의 정치적 해석>(풀빛)은 어떻게 맑스의 자본주의 가치론 분석이 현재의 달라진 생산양식과 관계 속에서 적용될 수 있는가를 훌륭하게 보여준다.

이는 그가 찰스다윈에게 보냈던 편지의 내용을 보아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는 찰스다윈의 자연선택을 자신의 계급/투쟁이론에 적용시키고자 했다. 물론 다윈은 이에 반대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습니다. 다윈에게 편지를 보낸 건 마르크스가 아니라 그의 사위였다는 거죠. 19세기 후반 지식인들에게 진화론은 <위대한 과학>, <과학의 최고봉>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혁명적 성향의 다른 지식인들에게는 마르크스가 사회 과학의 다윈이었죠. 카우츠키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 이론을 다윈과 연관짓고 싶어했습니다. 그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윈과 마르크스 사이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참고로,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는 도미니끄 르꾸르의 글을 첨가합니다.

< 1880년 가을, 마르크스는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당시 준비중이던 {자본}의 영역판을 그에게 헌정할 생각임을 알리면서 그의 허락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다윈은 그의 편지의 특징인 흠잡을 데 없이 극히 정중한 문투로 이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다. 아직도 인용되곤 하는 1880년 10월 13일자 다윈의 편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저는 그 편 또는 권이 제게 헌정되지 않았으면 합니다(당신이 베풀어 주시려 한 영예에는 감사드립니다만). 그같은 헌정은 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출판물 전체를 제가 승인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의미하게 될테니까요." 마가렛 페이(Margaret A. Fay)와 루이스 포이어(Lewis S. Feuer)가 엄밀하고 열정적인 역사 연구에서 수사관 같은 열의와 명석함을 경쟁적으로 발휘하고, 이들 연구의 결과가 얼마 안 있어 토마스 캐롤(Thomas Carroll)과 랠프 콜프 2세(Ralph Colp, Jr.)의 작업에 의해 대부분 확인된 이후, 이 일화가 순전히 허구라는 점에 대해선 한가닥의 의심도 남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영역판을 다윈에게 헌정하려 한 적이 결코 없었다. 찰스 다윈의 육필로 쓰였고 마르크스의 문서들 가운데서 발견된 편지 한 통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그 유명한 거절의 문구도 거기 눈에 띄게 들어 있긴 하다. 그러나 편지 본문을 전체적으로 다시 읽어 보면, 마르크스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명백히 어울리지 않는 몇몇 문장들이 보인다. 특히 맨 앞부분에서 다윈은 이렇게 쓰고 있다. "저의 저술에 대한 당신의 논평을 어떤 형태로 출판하든 사실 저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가 없는 것에 제가 동의한다면 우스운 일이 될 겁니다." {자본}의 출판에 대해 다윈의 승인을 요청하는 마르크스가 상상되는가? 게다가 다윈은 비록 자신이 말하듯 '그 출판물 전체'를 읽지는 않았다 해도, 교정지의 일부를 편지와 함께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제의를 사절하면서 쓴 것처럼 그 책에 대한 그의 이해가 '올바르건 그릇됐건', 어떻게 {자본}에서 자신의 저술에 대한 '논평'을 읽을 수 있었겠는가? 이에 더해 다윈은 문제의 저작 전체가 그같은 논평들로 요약된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분명히 {자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사실 이런 짐작들을 고려하면서 다시 읽어볼 때 편지의 끝부분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거절에 대한 어떤 오해도 막으려는 듯 자신이 "모든 주제들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의 강력한 옹호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다윈은 자신이 받은 책에서 "기독교와 유신론에 반대하는 직접적 주장들"을 발견하고서 불편해 한다. 그는 그같은 주장이 "대중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며, 사상의 자유를 가장 잘 촉진하는 것은…인간 정신의 계몽인바 이는 과학의 진보에 뒤따르는 것입니다"라고 마무리짓는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자본}에서 어떻게 기독교와 유신론에 반대한다는 그 "직접적 주장들"을 발견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 저작 전체를 자유사상의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내가 지금 그 성과를 기꺼이 보고하려는 연구 이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실, 즉 다윈의 편지가 수신자의 이름을 언급지 않고 익명의 대상에게 예의를 표하는 관례적 어구인 "근계"(謹啓, Dear Sir)로 시작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하여 과연 이 편지가 다윈의 문서 중에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마르크스의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쓰여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진지하고 얼마간 첨예하게 제기된다. 사실에 입각한 유일한 논거, 분명 회피할 수 없으며 표면적으로는 모든 의심과 부정합성을 반박하면서 이 이야기의 고전적 판본을 뒷받침해 주는 논거는 이 유명한 편지가 보존된 장소가 다름 아닌 마르크스의 편지들 사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 논거 자체가 갑작스레 돌아서서, 어떤 물적 증거의 뒷받침도 있기 전에, 그것의 대체 명제를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잘 확인해 주게 되었다. 마르크스 저술의 관리자는 과연 누구였는가? 그의 사위인 에드워드 에이블링이었다. 우리는 에이블링이 일군의 자유사상가 중 가장 활동적인 사람들 중 하나이자 {무신론자의 신조}(Credo of an Atheist)의 저자이며, 무엇보다도 1880년에 {국가개혁자}(National Reformer)지에 실린 논문들을 모아 1881년에 펴낸 {학생을 위한 다윈}이라는 책의 저자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윈의 편지에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이 책이며, 따라서 편지의 수신인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에이블링이라는 생각이 아주 쉽게 떠오르게 된다. 그럴 경우 다윈의 어조와 고려 사항들은 전적으로 적절하며 앞뒤가 맞는다. 이런 가설 아래 토마스 캐롤과 랠프 콜프 2세는 에이블링이 1880년 10월 12일자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의 저자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여기서 에이블링은 그의 일련의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면서 다윈에게 서문 집필을 부탁하는데, 이 부탁을 덧붙인 데는 정치적인 고려가 없지 않아 보인다. 다윈은 바로 다음날 서둘러 답장을 쓴다, "근계…"라고. 사후(死後)에 잘못된 자리로 보내졌다가 (이 문제를 추적한 연구자들의/역자) 매력있는 개념적 집요함 덕분에 그것을 결코 분실한 적이 없는 수신인과 결국 재회하게 된 이 편지의 운명으로부터 형이상학적 교훈을 이끌어내는 과제는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보다 저명한 추종자들에게 미루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의 제안과 다윈의 거절을 기록하고 있는 이 일화가 완전히 허구일 뿐 아니라 돌아보면 글자 그대로 앞뒤가 맞지 않는 근거에 의존하고 있음이 불을 보듯 환한데도 백년 동안이나 진실로서 얘기돼 왔다는 점이다. 우리는 진실이 다시 밝혀진 1975년 이후에도 이 이야기가 계속 번성해 왔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마치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듯 이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저술가들이 결코 적지 않은 것이다......>



맑스의 비문 :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 맑스,<<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중의 11번째 테제(1884년)

6. 표기법에 대한 생각들

맑스를 마르크스라고 쓰느냐 맑스라고 쓰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쓴귤의 일천한 독일어 실력으로는 "마륵스"가 맞지만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마르크스"가 바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짧다. 그게 맑스라고 쓰는 이유다.

  • 개인적으로 맑스는 "맑다"라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맑스를 선호하는 편이다.
  • 원래 맑스라고 써놓았으면 '막스'라고 읽어야하는데, 그냥 '맑스'라고 읽는다. '마륵스' 발음과도 비슷하다. 한국어의 변칙적 사용.

    전에 어떤 분이 '마릌스'로 써야 옳다고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맑스, 마륵스, 마릌스보다는 현시점에서는 '마르크스'를 쓰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radio의 표기법이 현시점에서는 '레이디오우'가 아니라 '라디오'인 것처럼 말이죠. - kcjun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맑스로 6000건 마르크스로 13000 정도입니다. 마르크스가 더 일반적이죠 --isang

[http]도올도 '맑스'라고 쓴다네요. 인터뷰 내용이랑 상관없는 듯 하지만.. (김용옥이 쓴다고 해서 맑스가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D ; -- litconan

마치 라디오를 라디오로 발음하면 촌스럽고, 레이디오라고 발음하면 멋져보이는 것 같은 느낌. 맑스의 원어가 어떠하든 우리말 표기에서는 마르크스가 맞습니다. 일본 애들이 라디에이터를 라지에타라고 하는것이 촌스러운 것이 아니듯이 말이죠. --Nairrti

북한에서는 "맑스" 로 씁니다. -- CafeNoir


7. 맑스 소개서

Aladdin:[ISBN-8971843217] 마르크스평전, 프랜시스 윈
Aladdin:[ISBN-8995130601] 마르크스의 사상, 알렉스 캘리니코스
나머진 캘리니코스 책 끝부분의 추천도서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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