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노스모크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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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in)의 창간호(2002 여름)에 실린 노스모크에 대한 위키기사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어서 그냥 원문을 옮겨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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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문화 읽기

지식의 공유와 진화 - 사이트 비평

조희제 ('71년생. 서강대 사회학과 졸. Schizo 편집진)

'우리는 자율진화 시스템이다. 우리의 활동 방향성은 노스모키안들이 집합적으로 결정해 나간다'

'노스모크는 개별적 지식의 끝없는 탐구를 통해 집합적 지성을 구가하며 동시에 집합적 지식을 이용한 전문화된, 개별적이며 동시에 잡종적인 지식을 모색한다'

-노스모크 선언문(http://no-smok.net/nsmk/NosmokeManifesto) 중

모니터를 앞에두고 그들은 희미한 열기에 휩싸여 있다. 그들이 들여다보는 웹 페이지는 일반적인 다른 웹 페이지와는 달리 비주얼한 요소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빽빽이 들어찬 글자들에 그들은 매료당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텍스트의 부활을 외친다고 예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은 텍스트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이며 외부와 항시적으로 물질대사를 이루는 유기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뉴턴이 말했던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난쟁이'를 떠올리며 자신들의 버그(Bug)잡기가 결국은 노장의 사상에 입각하고 들뢰즈의 리좀적 구성을 가진 진화적 존재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들은 인쇄된 글자보다는 꿈틀대는 유기체를, 개인보다는 집합을, 그러나 역설적으로 잡음보다는 평형 상태를 선택했다.


노스모크(http://no-smok.net) , 담배를 피우지 않는 문화 생산자들의 모임에서 출발했다고 하는 이 웹 공간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저 거대한 단어들을 토해내는 것인가? 노스모크는 메인 페이지부터 심상치 않다. 미니멀리즘이라 해도 좋을 만큼 비주얼적인 요소들은 배제되어 있고 페이지 분할도 없다. 단순한 글자들의 나열, 최소한의 이미지로 이루어진 메인 페이지를 통해 그 내부로 들어가면 외양과는 전혀 다른 텍스트와 링크로 가득찬 미로가 펼쳐진다. 페이지 구성은 단순하지만 웬만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링크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고 외부 페이지로 연결되는 다양한 방식의 경로들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하지만 이 미로는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다.

노스모크는 이 미로를 구성하기 위해 위키 엔진이라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하와이어로 '빨리빨리'라는 뜻을 가진 '위키위키'는 94년 워드 커닝엄(Ward Cunningham)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기존의 게시판과는 달리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모든 웹 페이지를 수정하고 삭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게시판 운영 방식과 비교하자면 매우 반대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일반적인 게시판은 작성해놓은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려면 로그인이나 비밀번호를 적어넣어야 한다. 즉 작성자 자신이나 웹마스터에게 수정과 삭제의 권한이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권한을 한정시키는 것은 네트에 대한 오래된 공포와 오프라인의 권력 관계를 온라인에 적용시키고 유지하려는 시도로 파악할 수 있다. 권한이 없다면 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무한복제 가능성과 익명성을 디지털 문명에서 제거하지 않는다면 문명이나 사회적인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게시판과 로그인은 위계적 질서를 바탕으로 한 인터페이스이다.

그런데 노스모크는 수정과 삭제의 권한을 모두에게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위계적 질서를 해체하고자 한다. 이러한 위계적 질서의 해체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노스모크에는 특별한 운영자가 없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글과 같은 노스모크에는 유용한 길잡이인 '분류', '지도' 등의 구성도마저 이용자들의 자율성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노스모크가 특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류'와 '지도'는 일반적인 웹사이트에서는 사이트 맵에 해당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운영자 없이 운영되는 노스모크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노스모크는 무질서하지 않다. 모든 이용자들이 미쳐 돌아가지 않는 이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권력은 한 개인에 의한 실수와 악의를 충분히 여과시키고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노스모크는 그들의 방식이 혼란스럽기는커녕 오히려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노스모크가 게시판과 크게 다른 또 하나의 특성은 '쓰레드 모드'와 '도큐먼트 모드'의 구분이다. 쓰레드 모드란 게시판에서 볼 수 있는 '답변달기' 식의 방식이고 도큐먼트 모드란 존재하는 텍스트에 수정을 가하는 방식이다.

노스모크에서도 쓰레드 방식을 허용하기는 하지만 도큐먼트 형식을 더 선호한다. 쓰레드 방식은 최근 올라온 순서대로 게시물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전에 있었던 질 높은 게시물들은 사장되고 이러한 이유로 해서 게시물들 간의, 이용자들 간의 소통이 반복되고 방해받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도큐먼트 방식은 이미 완성된 텍스트가 아닌 점점 완성되어가는 텍스트를 지향하고 있다. 누군가가 텍스트를 올렸는데 그것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면 누구라도 그 텍스트를 변화시킬 수 있다. 또 그 변화가 적절하지 못하다면 다시 누군가가 돌려놓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텍스트는 풍부해지고 정교해지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는 도큐먼트 방식에서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듯하지만 노스모크는 텍스트의 변화를 이용자들이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를 마련함으로써 직접적인 소통이 아닌 간접적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쉽게 뜨거워지고 결과물이 남지 않는 인터넷상의 소통은 그 소통의 주체, 즉 네트의 외부에 있는 익명의 인간에 대한 반응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고 생각할 때, 이러한 간접적인 방식은 텍스트에 대한 집중을 강화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발생하는 감정을 줄일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전체적인 소통의 양은 증가하고 노이즈는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축적되고 정제된 결과물은 이후 이 페이지에 접속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조금 더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노스모크는 텍스트나 결과물이 아닌 행위 자체가 또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공간이다. 물론 노스모크는 텍스트들이 점증적으로 풍성해지고 완성되어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일정 시점에서의 텍스트와 이용자와의 관계 그리고 이용자의 능동적 참여가 항시적으로 문제가 되는 공간이다. 노스모크 공간이 마치 커뮤니티처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용자들의 행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노스모크에서 가장 중요한 메뉴(?) 중 하나인 'Recent Changes'와 '저자동 고유연성'의 시스템 성격은 노스모크가 행위 중심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Recent Changes'는 변화된 페이지를 시간순으로 나열하여 변화된 텍스트에 대한 이용자들의 관심을 유도한다. 하지만 'Recent Changes'에는 그 텍스트를 변화시킨 이용자의 아이디도 함께 표시됨으로써 이용자의 행위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행위의 흔적은 고정된 텍스트 그리고 텍스트와 동떨어진 커뮤니티라는 일반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텍스트와 행위, 그리고 커뮤니티가 결합되는 효과를 생성해낸다.

또 노스모크가 자랑하는 '저자동 고유연성' 시스템은 이용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힘으로써 이용자들이 스스로 시스템에 적응하고 이용하는 방식을 찾아내게 한다. 가장 기본적인 기능만을 제공하여 모든 것을 정해주는 데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을 자극하고 시스템의 빈 곳에 개입하기를 강요한다. 노스모크의 형식과 이용 방식들조차 이용자들의 창조적 행위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노스모크는 위태롭다. 오프라인 정복자들이 말하듯 누군가가 노스모크의 텍스트들을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식의 위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노스모크의 위태로움은 오히려 그들의 복잡한 윤리에서 비롯된다. 궁극적으로 노스모크는 질서를 희구하는 공간이다. 이를 위해 노스모크의 곳곳에는 노스모크를 지켜내기 위한 윤리, 잠언, 주문들이 산개되어 있다. 물론 노스모크가 생각하는 질서는 기존의 질서와는 다른 동등한 권리를 가진 자들이 만들어낸 합의되고 스스로 형성된 질서이며 전혀 새로운 차원의 질서가 될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저자동 고유연, 권력의 분산, 창조성, 자발적 행위라는 장점은 고학력 테크노 친화적인 감수성에 익숙한 사람들로 구성원을 국한시키고 있고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윤리적 강령들은 일반대중과 만나는 지점에서 상상력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테크노 구루(guru)와 사이버 펑크의 경계선을 어떻게 타고 놀 것인가? 노스모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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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새로 창간된 잡지를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글입니다. 이러한 관찰자의 시선이 있다는 것은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관찰 대상은 관찰자가 관찰하는 순간에 고정되어 버리고 왜곡되고 억압되기 쉬운 것 같습니다. 특히 자신이 속해 있는 일상의 영역까지도 관찰되고 재단되는 것은 관찰 대상에게는 즐거운 경험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러나 관찰자를 나쁘게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관찰대상 역시 일정 부분 관찰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관찰자가 공개된 곳에 있는 것이 아닌 관찰 대상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일방적인 시선을 보낸다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노스모크에 개인의 신상이 공개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Recent Changes를 보고 있으면 마치 한 사람씩 무대에 올라와 공연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관객, 그 관객 중에는 비평가들이 숨어있고... 그것은 무대 위의 배우들의 행동을 움츠려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잘못하다간 미셀푸코가 말했던 알 수 없는 감시자에 의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하게 되는 감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에 글 쓰는 사람이 10명 정도일 때 그 글을 읽는 사람이 천 명이 넘은 것은 일 년도 더 됐습니다.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미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배우입니다. 전화번호를 공개하거나 하는 것은 조심해야겠지만 자신의 개인성(individuality)을 감출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 합니다. 김창준 저도 동의하지만, 1000명이라니??? 허걱!!! 너무 놀라운 숫자인걸요... 몰랐었는데, 알게되니 조금 살떨리긴 하는군요.

노스모크에서 필요 이상의 무거운 주제들과 전문적인 이야기들은 덜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으로써는 노스모크에서는 잡종적 지식이 생산된다기보다는 뒤섞일 수 없는 지식들이 그냥 쌓여가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리좀, 선언문, 우리와 남을 위하기, 집합적 지성과 감성, 계몽적 내용, 전문용어와 영어의 사용, 공부하기와 책읽기 등이 필요 이상으로 압력을 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몸에 알맞는 옷을 입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화려한 의상과 현란해 보이는 동작으로 필요 이상의 관찰자를 불러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좀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만 솔직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비평의 글을 옮겨 적고 의견을 적었습니다. 혼자만 보고 넘길 수 없는 글이었고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단 말꼬리잡기 논쟁이 아닌 의견나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문학인(in)에 글을 쓰신 조희제님이 이 글을 보고 계신다면 이곳에도 의견을 적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비평이 재단이 아니기 위해서는 자신의 비평문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otory

외부에서 본 시각으로는 상당히 잘 쓴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소개도 그만하고, 노스모크의 위태로움은 오히려 그들의 복잡한 윤리에서 비롯된다. 는 꽤 잘 짚어낸 것이죠. 다만,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오해를 부르기가 쉽네요. 그 윤리문제라는게 노스모크를 작동시키는 규칙, 관습, 윤리 문제, 즉 조정의 어려움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채로 배타성으로 작용하는 윤리강요 문제를 얘기하니까, 문제가 축소.왜곡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노스모크의 복잡한 윤리는 어디까지나 노스모크를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아무나 참가하기 어렵게 만드는 배타성으로 작용할 수 있고, 그 사실 자체는 노스모크가 비판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느 생명체나 조직이나 마찬가지로 가져야 하는 기본 배타성이니까요. 이 글은 '대중접근을 억제하는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 정도의 비평을 했군요.) --아말감

저도 동의. 외부인이라면 꽤 오래 관찰했을듯 싶네요. 필명없이 암약중인 OnSider 중 한분이군요. -- 까리용

노스모크의 복잡한 윤리는 어디까지나 노스모크를 작동시키기 위한 것
복잡한 윤리는 "노스모크"라는 커뮤니티의 관점에서이든, "위키위키"라는 시스템의 관점에서이든, 노스모크를 제한하고 속박하는 장애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냥 "노스모크"라는 커뮤니티에서만 갖는 특수한 윤리라고 한다면, 여긴 좀 특이한 곳이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말 수 있지만, "위키위키"라는 시스템이 가질 수밖에 없는 윤리라고 한다면, 위키위키 입장에선 좀 치명적이죠. 빤하게 보이는 한계를 갖고서 극복하지 못하는 셈이 될테니 말입니다.
아, 그리고 Aragorn은 이러한 복잡한 윤리가 "위키위키" 시스템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윤리가 없는 "위키위키" 시스템은 더이상 "위키위키"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냥 그렇게 생각하라고 대꾸해줄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Aragorn이 보는 위키시스템의 생존 요건은 단순합니다. 저자동 고유연 시스템이라는 것이 위키위키를 가장 잘 표현하는 구분이라 생각하고, 그에 맞게 고급인력의 상당한 노가다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윤리도 아니고, 규칙도 아니고, 그저 노가다가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죠. 노스모크가 지금 이 모양을 갖춘 건, 소수(수십, 수백이 아닌)의 엄청난 노가다 덕분입니다.

참여하는가 방관하는가 하는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단체든 문화이든 체험하는 것과 관찰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문제가 대두된다면 그러한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참여하여 문제가 되는 점을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면 그만입니다. 그 방향이 타인의 시각에서 볼때 문제라면 또 그 타인이 참여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면 그만입니다. 그러한 행위를 수 차례 반복한다면, 누가 바라보아도 별문제가 없는(그렇다고 문제가 사라지진 않겠지만...) 상태가 될 것입니다. 다른 문화공간과 다르게 노스모크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ryusory

다른 문화 공간과 다르게 노스모크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음. 글쎄요. 다른 것이 다 바뀌어도 노스모크에서 절대 바뀔 수 없는 것이 몇가지 있습니다.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이 참여하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지 않는답니다.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으니까요. :) --Arag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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