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격차의존재이유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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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에서:


1. 빈부격차의 존재 이유

동물세계에서 강자와 약자가 나뉘고 약자는 끊임없이 도태되고 강자와 그의 도전자들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엔트로피가 매우 높아져서 더이상의 변화가 없는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높은 곳과 낮은 곳의 구분이 없으면 물이 흐르지 않고, 변화와 발전이 없습니다. 가난함의 최저수준이 어디냐, 전체적인 분배구조가 어떠한 것이 최적이냐에 관심을 갖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든 사람이 정치와 분배에 민감해져서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을 할 때 가장 최적의 분배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물론 이 때에도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은 나뉠테지만, 그것은 그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빈부의 격차라고 생각합니다.

강한 원동력이 없으면, 적당히 사회가 안정된 상태에서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 버립니다. 어떻게 해도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이 없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적당히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자연자원이 풍부한 지방의 사람일수록 천성이 게으르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름에는 겨울을 걱정해야 하고, 당장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해 내지 않으면 생존의 위기에 몰린다고 할 때, 그 사람이 발휘하는 초인적인 능력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Arag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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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대한 FriedrichHayek의 설명

빠른 경제적 진보는 대체로 이 불평등의 결과이며, 또 그것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급속한 진보는 균일하게 진행될 수 없으며, 그것은 일부가 나머지보다 훨씬 앞서가는 단계적 방식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이미 그 생산방식을 알고 있지만 너무 비싸서 다수에게 제공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신상품은 대중적 수요 내지는 생활필수품이 되지 못하고 단지 선택된 소수를 위한 기호품이 된다. 그러나 오늘의 사치재는 내일의 필수품이다."새로운 물건들은 일정기간 소수의 사치재였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안락한 가정, 교통 및 통신수단, 오락 등의 각종 편의들은 모두 처음에는 한정된 소량만이 생산 가능하였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그 물건들, 또는 유사한 물건들은 좀더 적은 자원으로 만드는 방식을 배우게 되고, 그 결과 보다 다수에게 공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부자들의 지출 중 큰 부분은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이용 가능하게되는 새로운 물건들을 만들기 위한 실험비용지출을 한다....
... 보다 나은 것이 모두에게 동시에 제공될 때까지 모두가 기다려야 한다며, 그런 날은 많은 경우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과거 불평등의 결과 오늘날의 가장 가난한 사람조차 상대적인 물질적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p82~85. 자유헌정론. 자유기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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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진국의 특징은 안정화되어 있다는 겁니다. 사회적 변화가 큰 곳일수록 경제적으로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풍부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50-60년대보다는 지금의 사회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무학인 빈농의 아들이 제 1의 거부가 될 수 있을까요.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습니다. 또 도전에 실패하더라고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나오는 사회보장제도가 그렇습니다. 베버리지보고서로 대표되는 현대의 사회보장 정책의 특징은 National Minimum이라고 불리는 국민 최저선을 보장해준다는 것입니다. 한 국가의 국민은 어떠한 경우에도 주택, 의료, 교육, 소득, 고용의 면에서 이정도는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것은 빈민을 구제한다는 것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도전 정신을 고양한다는 겁니다. 사회가 불안하면 더 많은 비용을 만약을 위해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만약 사회가 기본적인 최저선을 보장한다면 더 많이 투자할 수 있습니다. 윤구현

FriedrichHayek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 재화와 서비스가 생필품이나 사치품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면 윤리적인 판단이 필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백은 월 수백만원이 소요된다. 이것을 생산단가는 비싸지 않다. 그렇다고 값을 인위적으로 내리게되면 제약사의 신약개발 의욕은 떨어진다. 그렇다고 앞으로 10-20년 간은 효과가 있는 약이 있음에도 가격을 부담하지 못하면 쓸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해결할 수 있는 있는 생명의 위협을 방치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일년동안 떨어지는 비행기는 거의 없지만 비행기를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쓰는 돈은 엄청나다.
항공사가 비행기 추락사고를 방지하는 것은 그들의 매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비행기 사고는 자동차 교통사고에 비해 매우 적은 비율이고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보다 비행기 탑승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볼 때 더 안전함에도 불구하고(이것 정말 맞나요? 어쨌거나 적은 비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형 비행기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행기 사고 이후 항공사의 매출이 급감하게 되고 주가가 곤두박질 칩니다. 항공사가 윤리적인 회사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비행기 추락사고에 민감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항공사의 경우는 윤리적 기준과 회사의 이익이 일치하는 운좋은 경우입니다. 예상했던 답이에요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것에 있어서 윤리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한다면, 대부분의 주요 질병에 대한 치료제, 수술 등의 의료처방은 그 사람의 개인적 경제력에 맞추어 가격을 책정해야 할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비용을 많이 지불하고, 돈이 없으면 조금만 지불하고. 실제로 시골의 마음씨 좋은 의사가 동네 주민들에게 치료를 해 주면서 형편되는대로 비용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신약 개발의 경우 도 아니면 모 식의 극단적으로 도박적인 이윤 창출이 문제되는 것이라 보는데, 이러한 신약개발은 대표적으로 민간자본에서 공공자본의 영역으로 넘기고, 신약개발에 대한 부담을 사회전체가 나누어서 개발된 신약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제의 경우, 전세계가 시장이 되기 때문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신약 개발에 따른 높은 이윤을 그냥 방조하는 것이 현실이죠. --Aragorn


빈부격차가 사회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논리적 과정을 따르고 있다고 봅니다.

  1. 인간은 경제적 이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다.
  2. 경제적 이익을 가장 쉽게 얻는 방법은 혁신이다.
  3. 혁신은 생산력 증대를 낳는다.
  4. 사회 발전은 생산력(투입대산출비) 및 생산량(단, 투입량이 일정할 때 생산력에 비례)의 증대이다.

    여기서 세 번째 "혁신이 생산력 증대"라는 것만 빼고 저는 모두 회의적입니다. 한 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혁신으로 인한 이익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업(정확히 말하면 자본)입니다. 따라서 개인들간의 소유의 차인 빈부격차가 개인에게 직접적인 혁신의 압력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본은 혁신의 압력의 작용을 받습니다. 이는 첫째, 자본이 이윤 증대를 목적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 다른 모든 자본이 혁신을 하는 상황에서 혁신에 뒤쳐질 경우 저절로 이윤이 감소하기 때문입니다. 자본 내에서 이러한 압력에 대처하는 부위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압력은 항상적이며, 자본 내부의 각 부분은 이러한 압력에 항상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이유로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혁신으로 인한 수혜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본의 이러한 혁신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력 및 생산량이 향상할 수는 있습니다. FriedrichHayek의 설명은 이를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빈부격차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본이 혁신을 위해 조직되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지니계수는 구 소련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빠른 혁신을 거듭해왔습니다. 게다가 사회 전체의 생산력 및 생산량 증대가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분배의 증가로 이어지는 필연성이 없기 때문에 FriedrichHayek의 설명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는 미국이겠지만 대신 미국의 지니 계수는 상당히 높기 때문에 미국 국민 대부분은 미국보다 덜 부유한 국가의 국민보다 가난할 수 있습니다. - 쓴귤

최근의 빈부격차의 존재 이유는 위의 전개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에 의한 부의 축적보다 소위 "돈이 돈을 벌어 들인"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제대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투자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았는데,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공통적인 단어들이 역시 위험수익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위험과 수익은 (실패하지 않았을 경우)동의어라는 것입니다. 현대의 경제체계에서 위험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의 모든 장치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합니다. 결국 적절한 지식으로 무장하고 제어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자가 수익을 낼(부를 축적할) 기회가 더 많게 됩니다. 이미 부를 축적한 측에서는 적절한 지식을 갖추는 것과 위험을 감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미 부를 축적한 측에서는 단지 현재의 부를 그저 유지하기 위한 방어전 혹은 단순한 오락게임에 불과한 모험이 우연히 더 많은 부를 벌어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Adventure capitalist라는 책을 보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책의 저자는 미국의 유명한 모 펀드의 공동 설립자로, 이미 막대한 부를 오직 투자만으로 축적한 후, 세계를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그때 그때 여행지의 땅, 회사, 주식 등에 투자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물론 그사람은 나름대로의 지식을 갖고 판단하여 때로는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국가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소버린 자산 운용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버린은 단 두 형제의, 몇 대에 걸쳐 쓰다 죽어도 남을,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 시스템이 매우 불안한 러시아 등지에까지 투자하는, 저같은 일반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입니다.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모험가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돈 조금 없어진다고 큰일이 생길것도 아니며, 실패해도 과거의 모험처럼 명을 달리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면 바로 다음 모험을 하면 되니 말입니다).

결국 과거의 이유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현대적인 빈부격차의 존재 이유는 우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 지식에 의해 약간의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부를 축적한 측이 그렇지 않은 측보다 유리한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으로도 부를 축적한 측에서 그렇지 않은 측에 분배를 하지않는 이상 빈부의 격차는 점점 커질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 동일한 조건이라고 가정할 때, 부측은 빈측보다 항상 이미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있으므로 쉽게 모험의 기회가 더 많고 언제든 원할 때 그만둘 수 있습니다. 만일 부의 분배가 이루어 지지 않는다면, 빈측은 어쩔 수 없이 제어할 수 없은 위험을 무릅쓰거나 무지의 힘으로 과도한 모험을 하는 수 밖에 없고, 성공하면 소위 "난리통에 부자난다"는 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확률은 지극히 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Lis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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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상대적 빈곤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인가

빈곤은 상대적이다. 이전에 비하여 빈곤해졌다이거나 타인에 비하여 빈곤하다거나 타국에 비하여 빈곤하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육체적,정신적 생존의 개념과 분리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이정호는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상대적빈곤이라는 단어를 계속하여 사용할 것이다. 인류는 도구를 사용하면서 여타동물군들과 달리 가장 많은 그리고 가장 안정적으로 재화를 조달해왔다. 현대에 와서는(산업혁명이후) 사람까지 공장에 몰아 넣고 그들을 도구로 사용한다.(이는 영국의 경우, 지주들이 토지를 농사가 아닌 양목장으로 사용하면서 노동력만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대규모 공장들이 이들의 저임노동력을 필요로 하면서 가능했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성장했다.)

집단적 노동은 분명히 개별적 노동보다 생산성이 더 있다. 문제는 이것이 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즉 연구와 투자재화를 조달하는 수단이 저임의 강도높은 노동이라는 사실이다.(이에 대하여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본론을 한번만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자본론에 콤플렉스가 있으면 21세기의 미래와 같은 책도 사례를 충분히 제공한다.) 남한은 이를 원조와 보상, 저축, 해외노동, 용병의 파견으로 조달했다.(여기서 일한 것은 노동자인데 돈은 이정호보다 나이가 적은 이재용이 다 가지고 있다. 이런 빌어먹을!) 소련은 이를 다른 방식으로 조달하여 생산성을 높임으로서 유럽사회에 사회민주주의가 정착되는 계기를 주었다. 소련은 폐쇄경제를 뚫지 못하고 결국은 망했지만,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존을 위해 가진 것이 노동력밖에 없는 사람의 존재가 자본주의의 형성 초기에 반드시 필요했다. 누군가는 공장안에서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빈곤을)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볼 순 없다. 집단적 노동으로 연구의 효율성과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온 것이 현대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금은 다들 전세계적으로 공동개발하는 오픈소스와 위키 또는 노스모크에 주목하고 있다.

많이 벗어나지만, 이정호는 빈곤의 비생산성과 저임노동을 겪어본 그리고 아직까지 자본에 그다지 헌신적이지 않은 노무현을 지지한다. 아름다운 노동은 노모키안을 비롯한 각 사회구성원들이 만들어 간다고 보지만, 노무현은 최소한 방해는 하지 않을 것 같다. --- 가진거라고는 불알두쪽밖에 없는 이정호

2. 몇가지 질문과 답

2.1. 사회의 발전과 변화는 무엇입니까?

대충 정의한다면, 사회가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하는 것 자체를 발전과 변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지난 인류의 역사를 통해 과학, 기술은 항상 발전해 왔다고 말할 수 있고, 사회제도 또한 항상 발전해왔다고 대충 말할 수 있겠습니다. Aragorn
사회가 과연 발전해 왔는가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과학, 기술'의 측면에서는 사회가 발전했을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변수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아사망률, 평균수명도 개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는 퇴보한 것도 있습니다. 종교를 사회발전의 기준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현대는 분명 신실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우리사회도 어른에 대한 예절의 측면에서는 떨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불균형한 영양상태에 있고 더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도 역시 적응하고 진화한다고 보고 싶습니다. 생물학적 진화가 진보를 의미하지 않듯이 사회적 진화도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더 적응된 사회가 더 잘 존속되겠지요. 윤구현
동감입니다. 저는 과연 발전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사회변화에 발전이라고 가치부여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도 거시적인 변화를 발전이라고 합리화시키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무의미한 삽질로 전락하고 맙니다. 발전과 퇴보를 가려내기는 너무 힘듭니다. 지금 우리의 시야가 좁아서 엉뚱하게 판단할 가능성도 높겠죠. 예를 들어, 핵무기 개발기술이 2080년에 이르러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의 우주함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Aragorn

Aragorn 동감입니다. 하지만, 2080년에 가상의 외계인 침공이 있기전에, 인류문명이 핵무기 한 방에 멸망할 수도 있겠죠. GooGoo22

문제는 사회의 부가 골고루 분배되면, 어느 누구도 생존의 위기에 몰리지 않게 됩니다. 이미 농업생산력이 충분히 높기 때문에, 농산물이 제대로만 분배되면 먹는 것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 되었지만, 아직 이 세상에는 먹고 사는 것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생존의 위기에서 발휘되는 삶에 대한 강한 욕구와 그에 따른 변화의 원동력은, 모든 것이 편안할 때, 순수한 관심과 애정, 욕심에서 비롯된 변화의 원동력과 비할 수가 없습니다.

강한 원동력이 없으면, 적당히 사회가 안정된 상태에서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되어 버립니다. 어떻게 해도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이 없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적당히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자연자원의 풍부한 지방의 사람일수록 천성이 게으르고 문명이 발달하지 않는 것과 유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름에는 겨울을 걱정해야 하고, 당장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해 내지 않으면 생존의 위기에 몰린다고 할 때, 그 사람이 발휘하는 초인적인 능력은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회 어느 부분에선 필사적인 몸부림이 있어야 여기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윤리적인 관점에서까지 빈곤을 정당화시켜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Aragorn

어느정도는 Aragorn의 말에 동의합니다. 무엇이 발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사회/세계가 변한 것은 현 방식에 불만을 가진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가까운 예로, 프랑스에서 있었던 정치적 혁명이나 영국에서 있었던 경제적인 혁명이 가장 극명한 예이겠죠.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본중심의 변화도 그 예일 것입니다. (이 움직임이 무엇으로 불리던, 여기서는 별로 상관할 문제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변화(일단 앞의 두개만 생각해주십시오. 맨 뒤의 것은 아직 진행중이라, 확실하게는 말하기 곤란할지도..)는 결과적으로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죠. 그리고, 결국 세상은 조금 더 '발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해 주십시오.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이 그 변화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물론 모든 것은 상황의 변화에 맞게 변해야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뒤쳐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속도는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쪽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라구요? 그럴지도모르죠. 여기서부터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GooGoo22

2.2. 빈곤의 악순환의 경우에는?

집안이 가난해서 초등학교밖에 못 다닌 A씨는 생존의 위기에 몰려 막노동판을 전전합니다. 노모가 갑자기 죽을 병에라도 걸리면 목숨걸고 강도짓을 할지도 모르겠군요. 실로 이것이야말로 초인적인 능력이라 할 것입니다. 그럭저럭 자식 교육은 시켜줄 수 있는 중류층 가정에서 자란 B씨는 대학까지 마쳤고 하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합니다. 눈을 낮춰 중소기업에 어렵사리 취직했지만 격무과 보람없는 생활에 지친 소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직장을 박차고 나가지 못합니다. 그랬다간 당장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이 생겨버릴 테니까요. 참으로 역동적인 힘과 발전의 저력이 느껴지는 사회가 아닐 수 없군요. '빈곤의 공포'가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는 생각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오히려 사회의 현 상태를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윤리적 관점에서의 비판이 아닙니다. --Khakii

가난해서 초등학교밖에 못 다닌 A씨는 이미 성인이 된 상태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그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면, 가난하더라도 자식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비록 굶는 한이 있어도. 그것이 A로서는 현실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는 우리 가까이에서,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빈곤의 공포'가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빈곤의 공포'에 처한 사람들이 모두 현실을 타개하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B처럼 된다면, 사회가 고착화되어 버립니다. B는 적당히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월급쟁이가 된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B처럼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적절히 부를 재분배하게 되면, 결국 모든 사람들이 B처럼 되어 버리고 말 겁니다. 소시민의 기준은 상대적이고 시대에 따라 바뀝니다.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재산의 상속, 교육, 세대교체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끊임없는 부의 상속, 빈곤의 상속이지, 빈부 의 격차, 그 자체는 아닙니다.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공교육 시스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할 것입니다 -Aragorn
교육적인 관점에서 봤을때 동의한표 see also 대안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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