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라는 이름으로 정형화된 학교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학교에 대해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배워야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기존 학교가 가진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대안학교가 필요할까?
1. 한국의 대안교육 기관 ¶
공교육이 바로서야 한다는 말에 동감하면서 도시의 저소득층 밀집지역과 농촌지역의 새로운 대안교육의 틀로서 "공부방"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재 공부방은 초기 개척자들의 눈물어린 고생덕분에 관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아이들과 함께 방과 후 프로그램을 하면서 상근교사를 두면 최소 60만원에서 80만원 정도의 교사수당을 받을 수가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대안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상시대안학교체제로 전환을 할 수가 있다. 공부방이 있는 지역의 부모들의 호응이 좋으면 그대로 하되 지역에서 쓰지 않는 유휴건물이나 시설을 무상, 혹은 싸게 임대해 지역과 함께하는 소박한 대안학교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이 기나긴 과정에서의 필요중분조건은 "아이들을 향한 열정"은 물론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수련하는 자세"다. 어렵고 힘들긴 하나 한 번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도전정신으로 해볼만한 일이 아닌가 한다. --슈레성
2. 누가 대안학교의 교사가 되는가? ¶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3,724명, 교사는 622명(대략 학생 6명당 교사 1명!)이다. 대안학교 교사란 전국적으로 상당히 드문 희귀직업인 것이다. 그래서 SeeReal이 대안학교 교사가 된다고 했을 때 다들 신기해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대안학교의 교사가 되는가?
- 기존 공교육에 한계를 느낀 현직 교사들: 대개 초등학생 이상의 자녀를 가진 경우가 많으며,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부모(주로 엄마)가 딸려가는(!) 케이스이다. 대안학교의 학비는 비싸고 교사봉급은 적지만 이 케이스의 경우 소속자 할인혜택 등을 이용해 자아실현과 자녀교육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 있다. 다년간의 공교육 교수 경험으로 관련분야의 전문지식이 풍부하지만, 더러는 기존의 공교육 현장에서 익숙했던 교수습관과 대안학교의 철학이 충돌하면서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 학교는 싫어하지만 교육에는 관심있는 대졸자들: 공교육을 싫어하기 때문에 교사가 될 생각이 없어 교직이수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인가형 대안학교(특성화 중고)의 경우 교사임용시 2급 교사자격증(교직이수자)을 필수요건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부류는 대개 미인가 대안학교의 교사가 되거나, 인가형 대안학교의 비정규직 교사로 근무한다. 공교육에 대한 비판정신과 호기심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교사지망생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교육학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사가 된 후에도 많이 공부해야 한다. (SeeReal이 이 케이스이다 ^^)
- 임용고시에 떨어진 사범대학 출신자들: 학생은 받아야 하고 과목별로 교사는 채워야 하고... 정부의 지원 없이 운영하느라 월급은 적고 땅값이 비싸 도시에서 떨어진 환경상 대안학교는 항상 인력부족에 시달린다. 그래서 임용고시에 떨어진 사범대 출신들이 아쉬운 대로 2급 교사 자격증 소지자로 많이 임용된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교사로서의 자질은 차치하고라도, 안정적인 사회적 지위와 봉급을 보장하는 일반교사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경우에는 시종 내적 갈등에 시달린다. 또한 공교육을 대비해 받은 교사로서의 훈련은 대안학교에서는 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이 케이스 역시 교사로 임용된 뒤 아예 처음부터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 이상적인 대안교사상: 대안학교 진영 내에서도 그 철학의 깊이와 폭, 교수학습법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안학교의 교사는 '대안'을 만들어내는 존재인만큼, 치열할 정도의 겸손함이 요구된다. 아무리 나이가 많거나 사회경험이 풍부해도 새롭게 배운다는 자세가 필수적이며, 자신이 기존에 배웠던 모든 것들을 다 꺼내어 먼지를 털고 다시금 검증하고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숙사 제도가 많은 대안학교의 특성상 교실 안에서보다 바깥에서 더 많은 배움과 앎의 교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삶 자체를 변화와 교육의 대상으로 삼는 교학상장의 마음가짐 없이는 견디기 힘들다.(see WeAreAllTeachers)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있는 것을 즐겁게 여기고, 즐거워하지 않는 아이들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쾌활한 성격이 무엇보다도 필수적이다.
3. 대안교육 ¶
그러니까 대안교육! 거기에 관심이 있냐고요? 대안교육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혹 간첩이 아닐까요? 대안교육에 찬성인 사람도 반대인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로 대안교육에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좀 더 희석시켜 버리면 바람직한 교육방법에 관한 관심들이겠고, 대안교육은 그 방법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근데 &맑은& 이는 대안교육의 정석에 관한한 아는 바가 없으며 교육 업무에 종사하고 있지도 아니하며 전공 역시 그와는 거리가 멀고 교육자가 되어 보리라는 꿈조차 꿔 본 적이 없는 사람이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관한 관심이 깊은 편입니다. 그런데 &맑은& 사전에는 교육이란 단어가 없답니다. 그럼, 좀 전에 말한 그 교육에 관한 관심이란 뭔가라는 물음이 이어지겠죠? 그것은 교육법에 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대화법에 관한 관심 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전문적 견지에서의 관심은 못되고 사회적 견지의 관심이랄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도의 가장 가까운 범위에서 보일 수 있는 관심요.
문제가 있으면 비판을 하게 되고 대안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게 바로 운동이라 생각하는데요, 대안교육은 가장 역동적이어야 할 운동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맑은이의 수에 관한 접근방식'이 대안교육과 잘 통합니다." 라고 하니 마치 대안교육의 정석이 따로 있음을 말하는 듯해 보입니다. &맑은& 배움의 길 위에 미리 짜여진 틀이 없길 바랍니다. 다만 뜻을 만나고 싶을 따름입니다. "틀이 없다면, 그 뜻을 어디에 담을 건가?" 라고 묻는다면 "마음에요."라고 답하겠어요. 배우는 이와 가르치는 이의 마음 속에요. 아니, 대화하는 두 사람의 마음 속에요. 교육이란 서로의 마음을 읽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아요. '가르친다'는 말은 사실상 성립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요. 문화의 영역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전수'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맑은이는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교육이란 마음의 대화와 지식의 전수이다, 교육은 잘 다듬어진 한 그루의 정원수를 만드는 것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교육이란 대화의 과정에 조금씩의 지식 전달 시간이 끼어드는 것이다, 그런 정도의 뜻. 요즘의 교육현실과 비교하자면 완전한 주객전도라 할 수도 있겠고요.
같은 사람을 만나도 오늘과 내일의 만남이 다를 것이고 학년을 거듭할 때마다 공간을 옮겨갈 때 마다 만나는 사람과 상황은 달라집니다. "상황이 다르면 해법도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대안교육의 첫걸음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식상한 얘기죠? 그러나 그 식상한 얘기가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누구에게라도 가장 중요한 얘기가 되는 것 같아요. 행동이 필요할 때의 행동은 아주 잘 다듬어진 것이 아니어도 좋아요. 적시를 놓치면 안되죠. 하지만 잘 보면 어떤 이는 완벽함을 위해 기를 쓰는 모습도 엿볼 수 있는데, 그러한 노력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자신의 완벽함을 위한 것인지 배우는 이와 함께 나아감을 위한 것인지. &맑은& 이는 그 때를 놓치는 일이 아주 많아요. 물론 겉으로는 이러죠. "완벽을 기하려던 게 아니라 정성을 다하려 했을 뿐이야"라고. 아무튼 만병통치약은 없습니다, 맞죠? 대안교육에 관한한 특별히 아는 바는 없지만 한 가지 소망을 말해도 될까요?
"대안교육에는 정석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맑은이의 뜻도 마찬가지로 대안교육과 잘 통한다면 좋겠습니다.
--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