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마는, 맹자, 순자, 고자로부터 이어온 유학의 논쟁거리인 성선설과 성악설을 종합하여 진화론적으로 요약한 틀을 만들었다. 그 틀은 이기적유전자인가, 이타적유전자인가를 초월하고 있으며, 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상의학의 性情을 "사상체질의학의 진화론적 고찰",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3(1), 1997. 에 근거하여, strategy for survival 로 볼 때, "게임이론"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동의수세보원의 용어를 빌려서, 무조건 협동하는 전략을 "保", 조건적으로 협동하는 전략을 "助", 무조건적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전략을 "侮", 조건적인 투쟁, 배반 전략을 "欺" 라고 하자.
무조건 협동 전략인 "保"는 주로 친족 관계에서 볼 수 있는 전략이다. 이것은 종족을 이어가기 위해서 프로그램된 무조건적인 본능이다. 조건적으로 협동하는 전략인 "助"는 이타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다분히 조건적이다. 협동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이롭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전략인 "侮"는 생물학에서는 고전적인 시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은 이러한 시각을 가장 잘 대표한다. 게임의 룰에 "배반"에 대한 개념이 들어가게 되면, 단순하지가 않다. 상대방의 전략에 따라서 자신도 전략을 수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것은 조건적인 투쟁 전략인 "欺"가 된다.
타고난 체질에 따라서 인지(知, 性)와 반응(行, 情) 측면에서 선호하는 전략이 다르다. 물론 인간은 한가지 전략만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체에 따라서, 분명히 자주 쓰는, 더 잘 쓰는 전략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상체질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세상은 이러한 생존전략들이 서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상태에 있는 어떠한 사회는 이 비율들에 어느 정도의 패턴이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어떤 체질은 매우 희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가설은,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 게임이 계속되기 위해서 이 비율을 스스로 조절하는 어떤 기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적 상황에 따를 것이다. 왕조 시대나 전쟁 때, 사회가 안정된 상태일 때 다를 것이고, 식량이나, 생식에 관련된 조건들에 따라서 또 다를 것이다.
게임은 지속된다. 어떤 게임이던지, 룰을 제대로 알아야 재미가 있다. 그렇다면 룰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호하는 규칙들이 다르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체질이론이나, MBTI유형과 같은 성격유형이론을 통해서 설명되어진다.
이제마는 "知人"이라는 표현을 썼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같고, 다른 것을 아는 것이다. 같고 다른 것을 알았을때, 그것을 인정해 주고,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룰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만났을때, 내 룰을, 내 규칙을 따르라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반드시 싸움으로 이어진다. T와 F, S와 N 간의 갈등, 서로 다른 체질끼리의 이해의 어려움 등은 모두 서로 다른 규칙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을 서로 이해하게 된다면, 관계는 투쟁이 아니라 보완의 관계가 된다.
요점은 CelebrationOfDifferences 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이 삶이 게임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가 아니라 그 밖에서 지켜보는 관점으로의 시점전환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치 "데이토나USA" 나 "오프로드" 할 때처럼... 뭔가 인간 관계가 풀리지 않을때, 시점전환 단추를 누르라. 그리고 문제를 바라보라. 문제가 상대방의 악의인가? 그렇다면 분노모드로 돌변해서 응징하라. 만약 그것이 아니고 단지 서로간의 차이일 뿐이라면,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서... 웃어주라. 아마도 이렇게 한다고 해서 게임에서 큰 손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 다르냐건 웃지요가 되는 것이다.
룰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게임을 하면, 항상 시비가 그치지 않는다. --지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