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의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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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보수/자유는 사회성의 진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다. 미리 결론을 내리자면 전혀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보수/자유는 사회성이 규정한 의식이며 또한 일종의 '지적재산'일뿐이다. 즉 보수/자유는 사회성 내재적 의식이거나 사회성의 내용중 문예로서 1억원/2천만원과 교환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운동했던 지식과경험은 충분히 엿과 바꿀 수 있다. 잘 바꾸는 사람은 황금과도 바꾼다. 사회성의 진보는 사회성 내재적인 '최적화 원칙'에 의해 형성되어간다. 진보를 계속한다면 당연히 윤리적이다. 진보가 삐그덕 거리면 비윤리적이다.

사회성의 진보


우리의 전문적 이미지(아이디어와 아이콘)을 규정하는 것은 사회성이다. 보수적 이미지나 자유적 이미지도 사회성에 의해 규정된다. 영성은 사회성 외재적이므로 제외한다. 그러면 사회성은 어떻게 진보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복원과 진보는 쌍둥이이며 한길로 간다. 진보는 복원이며 복원은 진보이다. 이하 이글에서는 진보를 자유진영의 전유물로 쓰지 않고 보수진영/자유진영의 공동소유물로 쓴다.

우선 진보가 무엇이냐? 8평집에서 16평집으로 이사하는 것은 사회성의 진보냐?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진학하는 것은 사회성의 진보냐? 도시생활에서 다시 매화꽃피는 전원생활로 귀농하는 것이 사회성의 진보냐? 이러한 질문이다. 한을 대하게 하는 것(大韓)이 진보냐? 국을 민하게 하는 것(民國)이 진보냐? 황금이 더 많아지고 땅이 더 넓어지고 문예(즐거움)가 더 활짝 피는 것이 진보냐?

진보에 앞서 사회성의 내용이 무엇이냐? 일단 황금과 땅과 문예가 사회성의 내용인지를 살펴보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사회성은 개인적 자아성취과 사회적 연대성을 모두 포함한다. 개인이냐 공동체냐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이런 것은 논하지 않는다. 황금과 땅과 문예는 서로 교환가능하다. 그리고 교환이냐 분배냐하는 것도 여기서는 논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형태의 변화도 논하지 않는다:

i) 사회성의 내용 하나 황금의 사회성의 형태변화
황금의 사회성은 유동물의 사회성이다. 과연 황금에서 지폐로 지폐에서 카드로 바뀌어가는 것이 복원이고 진보인가?;

ii) 사회성의 내용 둘 땅의 사회성의 형태변화
땅의 사회성은 부동물의 사회성이다. 과연 전답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주상복합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복원이고 진보인가?; 그리고

iii) 사회성의 내용 셋 문예의 사회성의 형태변화
문예의 사회성은 무체물의 사회성이다. 과연 종교에서 철학으로 철학에서 과학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복원이고 진보인가?

이러한 형태의 변화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우리의 고민은 예를 들면 황금의 많고적음(불균형)이다. 이것이 Topik(문제장소)이다. 이하에서는 황금 한가지에 집중해서 전개한다. 이 논의는 나머지 땅과 문예에 같이 적용될 것이다.

황금의 사회성<<<

황금이 적음의 사회성 / 황금이 많음의 사회성
쉽게 말하면 진보는 >>적음에서 많음으로<<다. 진보는 >>좋음에서 더좋음으로<<이다. 그러면 황금이 적음의 사회성과 황금이 많음의 사회성을 좀더 기술해보자.

1) 황금이 많음의 사회성
돈있는 사람과 돈없는 사람은 생각자체가 다르다. 즉 딴사람이다. 돈있는 사람을 돈키호태라고 한다. 즉 돈: 돈있고 키: 키크고 호: 호탕하고 태: 태평하다. 돈있는 사람은 돈없는 사람과 딴세상을 사는 것이다. 이들은 돈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공포가 있다. 부잣집 맏며느리같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우선 자신이 '부잣집처자'라는 의식이 있다.

2) 황금이 적음의 사회성
이러한 사람은 우선 핍절의식이 있다. 가난의 냄새가 난다. 이것을 빈티라고 한다. 또한 피해의식이 있다. 그리고 황금이 많은 사람이 되려는 갈망이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처녀같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우선 자신이 '신데렐라'라는 의식이 있다.

이러한 공포와 갈망이 만나는 곳에서 좋은 말로는 공공성(공공성의 공간은 크게 분배공간과 교환공간이 있다)이 형성되고 조금 낮추어서 마피아가 형성된다. 마피아는 본래 '아름다운'이란 뜻이지만 여기서는 나쁜의미로 깡패/창기들의 공간이다. 분배나 교환자체는 논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공공성이 >>>윤리적<<<이냐? 또는 공공성에서 바로 >>>공적<<<이냐? 하는 것이 대두된다. 윤리적이란 가진자와 못가진자 그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가진자와 못가진자가 공포와 갈망으로 만나는 것 자체는 즉 빼앗고 빼앗기는 것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다만 '비윤리적'인 것이 문제이다. 공적이냐하는 것은 공적의 반대는 불공정이지만 공적의 반대는 사적이다와 같은 언어 혼동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공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윤리적이라는 표현을 중심으로 전개하기로 한다.

비윤리적인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비윤리적이란 한마디로 >>>진보의 지체<<<이다.

첫째, 공포와 갈망 자체를 인정하지 않을 때 비윤리적이 된다.
다시 말하면 가지고 있는자에게 유지하려는 마음을 깨부수려한다면 또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 획득하려는 마음을 깨부수려한다면 그것은 비윤리적이다. 붙들려 것과 빼앗으려는 것은 모두 건전한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면 비윤리적이 된다. 다시 말하면 저절로 늘 가진자이고 저절로 늘 가지지 못한자라는 주장은 비윤리이다. 가진자도 붙들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빼앗길 것이고 가지지 못한자도 빼앗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도리어 더 빼앗길 것이다. 이것이 윤리이다.

둘째, 공포와 갈망이 만나 정정당당하게 어떤 구조가 형성되었는데 승복하지 않으면 비윤리적이 된다.
붙들려고 노력하지만 '정정당당'하게 빼앗겼다면 승복해야하며 빼앗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정당당'하게 더 빼앗기고 말았다면 역시 승복해야한다. 패자의 눈물은 당연하다. 이것 자체가 비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경기에서 패한 상대방이 우는 것을 보는 것은 한편 통쾌한 것이다. 패자가 너무 태연하면 오히려 재미없다. 다만 그 눈물이 '억울함의 눈물' '분노의 눈물' 이라면 우리에게 고민거리가 된다. 정정당당했는가?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이상 첫째와 둘째는 다소 형식적인 논의이다.

셋째, 정정당당하지 않으면 비윤리적이 된다.
가지고 있는자가 유지하려고 하지만 그 절차가 부당하거나 가지지 못한자가 획득하려고 하지만 그 절차가 부당하면 그것은 비윤리이다. 다시 말하면 공정경쟁이 아니라 '너죽고 나살고' 이러한 독단적이고 독점적인 절차를 취한다면 비윤리적이 된다. 이것이 윤리성의 본론적인 논의이다. 정정당당하지 않을 때 '타당성 시비'가 발생하면 진보가 지체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윤리적이다.

정정당당: 사실성과 타당성<<<<

{{|갑|}}
//////// (1) 이익구조(위험구조) (2) 타당성구조
{{|을|}}

* 현재의 이익구조(위험구조)는 타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이익적 거래는 원칙적으로 이상성이 있다. 또한 모든 위험적 행위도 원칙적으로 이상성이 있다.

1) 추정이란 1단계 이상성이며 이상적인 상태이다. 추정위협(적법추정유지)과 부당(추정깨짐)은 구별된다. 즉 추정위협이 바로 부당(추정이깨짐)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어떤 법규를 어겼다고 바로 유죄는 아니다.

1.1) 소극추정은 단지 추정을 유지한다. 형법의 구성요건단계 가치판단(추정위협:추정유지)와 같다. 구성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추정위협을 받지만 여전히 소극적이지만 적법추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1.2) 적극추정은 추정위협을 해소한다. 위법성조각단계 가치판단과 구조가 같다. 해소적 판단이다. 적극적으로 추정위협을 해소하여 타당, 적법이 된다. 해소 또는 조각에 치중하므로 소극적 판단이라고도 한다.

2) 다음은 타당성 판단이다. 타당이란 2단계 이상성이며 완전히 이상적인 상태이다. 타당성 판단은 소극적/적극적으로 나뉜다.

2.1) 소극적 타당성판단(추정깨짐)이다. 추정위협이 해소되지 않으면 부당, 불법이 된다. 이는 타당추정이 깨졌거나 적법추정이 깨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소극적이다. "좋지 않은 큰일은 났지만(좋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소극적이다." 위법성을 적극적으로 확인하지만 여전히 '좋은 것은 아니다'는 소극적 부당성이다.

2.2) 적극적 타당성 판단(책임지움)이다. 책임성이란 소극적으로 적법추정이 깨지거나 타당성추정이 깨지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비난가능한 것(좋지 않다에서 나아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제재를 위해 발동하는 단계"이다. 돌로치기위해 손을 드는 단계이다. 행위자입장에서는 '죽여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책임성은 [[[벌책성]]]이다. 책임이 없는 경우에 책임을 조각한다. 좋지 않은 큰일은 났는데 책임이 없다고 할 때 '정정당당'의 시비가 가장 많이 생긴다. 하지만 책임이 없으면 분명히 정정당당이다.

위의 1단계 이상성과 2단계 이상성을 모두 만족시킬 때(책임없을 때) '정정당당'하다고 할 수 있으며 윤리적이라고 할 수있으며 사회성이 '진보'를 지속한다. 사회성은 재구성되는 것이므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처지가 뒤바뀐 것 자체는 고민이 아니다. 고민은 '공정한 절차'인 것이다. 그리고 공정한 절차로 지속적으로 사회성이 진보해 나가면 부의 치우침이 점점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을 '흔들기'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수월하게 흔들려' 꼬솝고 즐거운 드라이브가 되기를 소망한다.

진보의 황금률

진보의 출발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너가 뭘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너는 내가 뭘했으면 좋겠니? May I help you?" 요구가 되기 전에 먼저 응답이 되어라. 이것이 사회성의 황금률이며 진보의 황금률이며 출발지점이다.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 황금률은 사회성 밖에 있지 않고 사회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출발질문이라는 점에서 진지하게 상대방의 요구를 경청하고 나는 응답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는 것일뿐 구체적 형성은 '최적화의 원리'를 따른다.

적용해보기 할아버지 떡 뺏어먹기

할아버지는 떡이 있고 손자는 떡이 없다.
0. 떡과 '안마'의 교환자체나 분배자체는 문제장소가 아니다.
1. 손자는 할아버지 떡에 절대로 탐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윤리적이다.
2. 할아버지가 떡을 '정정당당'하게 빼앗겼다면 승복해야하는데 승복하지 않으면 비윤리적이다.
3. 손자가 할아버지의 떡을 가져갔다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첫째, 이것은 타당성이 추정된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강제해서 떡을 가져갔다면(협박) 추정위협이 된다. 또는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엉덩이 한번 대주고 떡을 가져갔어도(유혹) 추정위협이 된다.
그 나라에는 할아버지는 자신이 가진 떡을 손자에게 나누어줘야한다는 '법'이 있다면 손자는 그 법을 인용하여 강제적으로 떡을 가져갔다면 추정위협이 해소된다. 떡을 빼앗긴 할아버지는 승복해야한다.
둘째, 하지만 추정위협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손자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수있다. 다시 말하면 손자는 지금 아사직전이어서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에게 책임을 도무지 묻지 못한다면 '정정당당'하다. 다시 말하면 할아버지는 떡을 빼앗긴 것에 승복해야한다.

또는 할아버지가 떡을 숨겨놓았었는데 손자가 몰래 훔쳐갔다면 '친족상도례'에 의해 벌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도 집밖에서는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떡을 빼앗긴 것에 승복해야한다. 다만 이 경우는 국가에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가정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좀 특이한 경우이다.

적용해보기 운동경력 엿 바꿔먹기

나는 운동경력이 있고 그는 엿이 있다.
0. 위에서 문예와 황금은 교환가능하다고 하였으므로 교환자체는 문제장소가 아니다.
1. 운동한 사람이 황금을 전혀 탐내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윤리적이다.
2. 운동한 사람이 정정당당하게 엿있는 사람과 같이 일을 했으며 운동으로 축적된 지식을 주었더니 엿을 주었다. 정정당당한데 승복하지 않으면 비윤리적이다.
3. 엿 바꾸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첫째, 이러한 형성은 타당성이 추정된다.
하지만 내가 그로부터 협박당했거나 유혹받아서 그러한 형성을 했다면 추정위협이 된다.
둘째, 나에게 도무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 예를 들기는 그런데 남모르는 사정이 있다. 다른 사람도 이해한다. 그러면 나의 형성은 윤리적이다.

진보의 황금률 적용해보기 죽어줘

출발질문: 너는 내가 무엇을 하길 원하니?
대답: 죽어줘

형성(응답): 꼴까닥
이러한 형성에서는 죽는공포와 죽이려는갈망이 만난다. 또는 죽는공포와 의로운죽음(문예적재산)의 갈망이 만난다.
공포와 갈망의 만남의 결과 '죽음'이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단 타당성이 추정된다.
타당성판단절차는 생략

정정당당했다. (->) 사회성은 진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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