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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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8970631755]

언더그라운드는 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의 연장선상에 거하는, 넌픽션의 르포형식의 소설이다. 무라카미하루키는 그가 그렇게도 염증을 내던, 기계문명의 총화인 컴퓨터와 태엽감는새속에서 화해하더니만, 이 글을 적기 위해서 "맥"을 사용하였고, 나중에는 이런 컴퓨터가 없었다면, 방대한 분량의 옴진리교 지하철 독가스 살포사건의 피해자들과의 인터뷰를 정리해서, 한권의 책을 만드는 작업은 불가능 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다.

어떤 종류의 인명 살상 사건이건, 피해자와 가해자는 필연적으로 매스컴에 보도된다. 그러나 아는가, 매스컴이 주시하고, 보다 나쁘게 바라보고, 멱살을 잡고, 각종 분석자료 등등을 보도하면서, 집중하는 것은 그 가해자가 얼마나 나쁜 놈들이었느냐이며, 피해를 입은 "덩어리들"로 바라보는 피해자들은 얼마나 불쌍한가로 이야기를 종결하고, 이 사회에는 나쁜 놈들이 많으니 조심해...라는 이야기로 간단히 말하고 마는 일들을 얼마나 명랑하게 즐기고 있는지?

그러나 이러한 사건이 미연에 방지될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그렇게 되지 못했다면, 사회의 공권력이나, 매스컴의 역할이 사정없이 재판대 위에 오른다는 사실을 그들은 간단히 말해서 은폐하고 싶어한다.

옴진리교의 실상을 추적했던 검사나, 일련의 단체들은 모두 옴진리교의 테러에 의해서 가볍게 처단당해왔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료의 방영이 매스컴 쪽에 계속적으로 요청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당연했을 일이다. 그러나, 아무 골치아픈 문제가 일단은 없기를 바라는 매스컴의 검열 체계, 그리고, 방대한 비용이나 신경쓰는 일이 많은 테러대책 정도야 그냥 그럭저럭 넘어갔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치안, 행정당국은 그것에 대해서 좀더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조처를 취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것이야말로, "경비문제"라는 측면이다. 돈이 많이 들고, 귀찮아진다.

피해자들과의, 매스컴적 인터뷰 방식을 벗어난, 하루키와의 생생한 인터뷰는 밝힌다. 그 사건은 어느정도 방지될 수 있었던 것이며, 그 피해상황의 구석구석에서, 얼마나 피해자들이 최소한의 피해를 내기 위해서 고군분투 서로를 도우려했는지. 그리고 살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발휘하고, 자신의 전 인생을 다시금 되돌아볼 기회를 이것으로 삼았는지, 그리고 정신적 외상(Trauma)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인격을 통해 어떻게 저항하는지, 이를 통해서 완전히 전과는 다른 인생의 상황 속에 빠져들었는지를. 그들을 보듬어 줄 수 없고, 그들의 존재감을 명확히 세상에 알릴 수 없는 것이 매스컴이라면, 이는 다시금 제2와 제3의 테러를 막을 수 없는 길이 되고만다.

누가, 그 하나하나 명확히 실체가 드러나는 대상들을 향해, 독가스나, 폭탄, 그리고 증오의 살인 기계를 쉽게 들이 댈 수가 있겠는가? 하루키는 질문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당해야 했었냐고, 그리고 사회시스템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위급 상황 속에서 보다 능동적이고, 효율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존속해 나갈 수 있겠냐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다보면, 이른바 비상 사태를 위해서 준비되어있다는 시스템 모두가 바로 그 위급한 순간,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일례를 들어, 병원 시스템조차, 독가스 치료를 위한 아무런 샘플링이나, 의료진에 대한 적절한 정보 전파가 없어, 바로, 의료진들조차 같이 독가스에 감염되는 일까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처리 중에, 보다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치료할 병원의 갯수를 줄이려는 멍청한 짓거리도, 국가시스템은 마다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사후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별다른 수단을 취하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솔직히 참여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의 글은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노후한 시스템과 고도자본주의 사회화에 의해서 벌어지는 각종의 피폐한 상황들을 끊임없이 그의 책을 통해서 비판해왔고, 나름의 방법을 통해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새로운 방식의 저항 전략을 살포하는 노릇은 해왔었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만큼, 실제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고 직접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방도를 찾았던 적은 그 이전이나 그 이후 가시적인 것은 없어왔다. 그는 그 작업 속에서, 정말로 광대한 현실의 무게와 질감을 보다 많이 깊게, 절절히, 체험이라도 한 듯이,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그 수많은 자신의 책을 읽어준 독자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본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의 존재감의 하나하나를 되새겨, 느끼게 해주는 이 책을 만들어내었다.

수많은 르포와 수많은 수기, 그리고, 수많은 소설들 속에서, 하루키의 어쩌면, 여유있는 작가로서의 하나의 퍼레이드로 끝나버린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노력을 흉내라도 내는 작가가 우리 주위에 있는가에 대해서 난 힘빠지는 의문을 느낀다. 이시대의 우리나라의 지식인이나, 문화창작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과연 현실의 이세계를 위해 시늉이나마 자신의 전력을 기울여 나서볼, 단 하나의 동기라도 가지고 있는가? 하루키의 작가적 생명이 혹 끝났더라도, 그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언더그라운드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oman


여담입니다만,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하철 안에서 다 읽었습니다. 물론 몇 번에 나뉘어서 였지만요. 처음에는 단지 한 번 읽어나 볼까하는 심산으로 집었는데 페이지를 여는 순간 앞뒤 페이지를 몇번이나 왕복해가며 읽지 않을 수 없게 되더군요. 언더그라운드로 인해 무라카미하루키상은 매우 얻기힘든 현실감각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언더그라운드로 인해 그의 일부를 얻었겠지요. Roman님의 의견에는 정말 동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Khaosmos

주류 종교집단에 속해있건, 비주류 종교집단에 속해있건, 광신자들은 살인기계로 둔갑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의 지성이 어떻건, 교육을 받은 것이 어떠했든. 잠재적인 범죄자들로서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죠. 실제로, 일본은 이 사건 이전부터 지금까지, 일본 내에 있는 종교 집단들에 대한 정보조사 활동을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대형참사가 터졌다는 것은, 바다 건너 나라의 이야기로 그냥 돌리고 말 내용이 아닙니다.

체계적인 방비책과 대비, 그리고 정보수집활동이 있었음에도 두눈을 뻔히 뜨고, 광신자들에 의한 테러를 당하는데, 딱히,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공적인 경계체계나 조직이 공공적으로 활동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 또한 꼭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닐 수 있으니까요. 이미, 그 왜곡된 종교 속으로 광적으로 동화된 사람들은, 자기 집단을 벗어난 타인들의 이야기가 거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 광적으로 참여하는 이유가 진리를 갈구하는 과정에서 도달한 자기 자신에겐 더할나위 없는 궁극적 진리라고 하여 믿거나, 보다 올바른 사유의 궤적을 밟아 믿게 된 것이 그 광적인 신자들의 대부분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으나, 그 이유를 파고들어가다보면, 권력욕이나, 자신의 고통에 대한 전이나 투사, 허영심, 유아적 자기중심주의로 가득찬 자신을 방어하는 외벽으로써 종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보다 그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그들이 바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세속인들을 동화시키고자 하는 그 종교 집단의 사람들이나 기타 보다 건전한 사회적 활동을 전개하는 종교인들의 활동이 곡해되도록 만드는 중요한 장애이며, 동시에 각각의 종교들이 갖고 있는 보다 납득이 가는 중요한 의미들을 세속인들로 하여금 오해하게끔 만드는 주범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데에는 종교 자체의 문제보다 자기 자신들의 문제가 큰 경우가 상당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옴진리교도로서 독가스를 살포한 그 교주와 그 일당들은 다른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서조차도 살인을 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심지어 종교 집단 내에서도 자기자신과 종교적 견해를 달리하는 동종의 신도들조차 자신의 판단을 신의 판단과 합성하여 끔찍한 방식으로 처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신이나 종교적 진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무소불위의 권력과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절대적인 존재일뿐이기 때문입니다.--Roman

글쎄요. 그 부분은 인터뷰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것 같네요. 왜냐하면 사린가스를 살포했던 사람들중 많은 사람이 그 행위에 대하여 매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다만 그 집단에서 그 행위를 거부할 힘을 가지지 못했다는 증언을 하거든요. (사실은 모릅니다만) 어떻게 이렇다하고 딱 떨어지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키가 옴진리교 지하철 사린살포사건을 자신만의 견지로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모아 책을 낸 의미도 최대한 여러 사람의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그 사건을 보자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Roman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으시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 사건의 경우에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존재를 원하는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상식적 양심과 소속된 극단적인 집단의 강요(표현이 이상합니다만) 사이에서 혼미한 상태로 갈등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더 많다고 느껴집니다. 일을 저지르는 사람에는 물론 자신만의 극단적인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유부단한 채로 떠밀리는 사람도 많거든요. -- Khaosmos

Khaosmos님의 견해가 보다 인터뷰의 내용에 가까운 내용이 맞습니다. 위에 추가적으로 쓴 내용은 그 책을 읽은 다음에 보고, 듣고 생각해본 바를 좀 더 얘기한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종교 집단에 대한 정보 수집과 감시를 하는 기관이 이미 수십년 전부터 있어왔다는 사실을 차후에 알게 되었고, 그 범죄자들의 검거 이후의 행동에서 사건의 책임에 대한 추궁에 일말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사건 이후에도 옴진리교는 건재하게 아직도 그 종교 단체로서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만약,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모두가 돌아와서 다시금, 그 단체에 그대로 있는 상황이라면, 또한 그 중에서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사람들까지 같이 있다면. 아마도, 그 옴진리교가 그대로 세속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명맥을 이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이야기가 언더그라운드의 내용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간 바가 있었습니다만, 실제의 인터뷰 내용 상에서도, 인터뷰어와의 대화 상에서 한 인터뷰어가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 중의 한 사람에 대해서 그런 범죄를 어디에선가 꼭 저지를 사람이었다고 개인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는 도중에 본 상태에서 판단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일단은 그 맥락과 맞는 내용으로써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Roman도 이런 얘기하면 웃기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볼모로 살인을 의뢰하거나, Roman의 목숨을 위협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살인을 의뢰한다면,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실제로 좀 우유부단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최근의 노스모크에서 벌어진 소동을 보다보니, '도덕적 개인과 부도덕한 사회' 또는 '비도덕적인 개인과 도덕적인 사회'의 괴리가 좁게는 종교 집단과 우리의 공동체 상에서 일어나고 있음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특정 종교 집단이라는 환경 자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나, 그 종교 집단에 속한 사람의 성향이나 경향 그 자체도, 그 집단이라는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이고, 그 집단의 활동자체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See also [http]최근기사일본은옴진리교와아직도전쟁중, [http]교주는절대로책임을인정하지않았다), 그 교주가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하고,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가면, 그 신자들은 광신도들이였다기 보다는 교주에게 사기를 당한 순진한 사람들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도면밀하게 범죄를 계획하고, 수차례 연습하였고, 결국에 모두가 실제로 범죄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곳까지 이끈 이유와 그들을 그곳까지 밀고간 이유들 중에는 광신이라는 것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수만명에 달하는 신도들 중에 독가스 살포 사건에 가담한 신도들 29명 중에는 독일의 아이히만처럼 주어진 일이니 그냥 처리해버린 사람들도 있고 우유부단하게 말려들어가 일을 행한 사람도 있겠지만, 옴진리교라는 종교집단에 대한 광신에 이끌려 교주에게 충성과 신앙을 보여준 사람들이 분명히 적어도 반수는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광신의 배면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독선이라고 불리울만큼의 자기자신이 경험하고 느끼고 알게된 한정된 세계 안에서의 '진리'에 대한 거의 절대적인(또는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신뢰일 수 있고, 좀 더 자기 양심과 자기 생각에 입각해서 살기보다는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지하고, 그 존재에게 대부분의 판단과 행동의 키를 맡기려는 어리석음 그 자체라는 것이 말하고자 했던 내용입니다. 자신만의 극단적인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면 차라리 다행일 수도 있지만, 교주의 극단적인 생각마저도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문제였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Roman

그렇군요. 어떤 상황이든 과유불급이란 옛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Roman님은 왜 사회에서 안정적 지위에 있고 명예도 가지고 있는 소위 슈퍼 엘리트들 또한 그런 광신에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인 과학자들이 말이죠. -- Khaosmos

Roman은 엘리트나 과학자는 아니지만, 소수의 엘리트들이나 과학자들 중에서 사회적 권력이나 지위의 면에서 정점에 오르고자 하는 희소 일부가 갖고 있는 성향 자체는 여러의미에서 광신과 맞물리는 면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이단이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종교 집단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인 위치에서 보다 정점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회적 권력에 대한 맹목적 지향은 여러의미에서 종교를 통한 자기 반영의 확장과도 맞물리는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는 일반적인 소양을 가진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양태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수동 타자기를 발명한 유명한 수학자 파스칼의 경우는 도박사에서 기독교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무한 등비 수열과 도박의 확률 개념을 기독교를 믿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할 정도이기까지 했습니다(그의 저서인 "팡세"와 "시골사람으로부터의 편지" 참조요망). 또한 개인적으로 Roman은 이성의 극단은 감성의 극단과도 맞물리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가 말한 폭력 혁명론은 그 사회적 배경을 떠나서, 마르크스의 이성이 극단에 이른 부분을 보여주는 바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Roman

gerecter무라카미하루키에게 크게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연 일독할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글 잘 쓰는 사람이 공들여 조사해 서술한 논픽션은 대개 픽션보다 쉽게 감동을 주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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