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문화의 문제
1. 유용한 표현이 부족하거나 찾기 힘든 문제 ¶
한국사람들이 사소한예의에 약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으로 이런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영어를 쓰는 사람들과 생활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hi', 'hello', 'bye', 'see you', 'later', 'thank you', 'my pleasure', 'excuse me' 등의 표현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줍음을 많이 타서 싹싹한 표현을 잘 못 씀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런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쓰다보니 표정과 몸짓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hello'나 'hi'는 '안녕하세요'보다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기는 너무 무게가 들어가는 것 같지만 'hi' 정도는 어럽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같은 의미를 가진 한국말의 표현들이 영어에 비해 길고 딱딱하다는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thank you' 라는 표현은 정말 유용한 것 같습니다. 전 요즘도 상점에서 무언가를 사고 나올 때 '안녕히계세요',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등의 표현 중에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배려를 받게 될 경우에도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을 쓰면 너무 오버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게 될 때도 많고요. 그런데 'thank you'라는 말은 의미의 부담도 적고 더욱 넓은 의미에서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cuse me'도 같은 이유로 '실례합니다'나 '죄송합니다'보다 훨씬 부담스럽지 않게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사소한예의 불감증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다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표현을 고민해보고 만들어 보는 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dotory
2. 한국문화에는 말로 전달안되는 감성표현적 예의가 따로 존재한다 ¶
표현이 적어서 사소한 예의에 민감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원래 우리 문화에서는 사소한 것으로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례한 것이었습니다. '친구끼리는 미안한 거 엄따'라는 말, 옛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을의 어른을 길에서 만나면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 예의이지, 옆에서 작은 거 도와줬다고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예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서로 눈인사하고, '고마 가이소.. 수고 했니더.', '내사 한 거 엄따'라고 말해주는 것이었고, 서로 이웃끼리 집안일을 도와줄 때에도 당연히 어려운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고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공동체적 삶의 문화와 그때 그때 고맙다고 말하고 때우는 개인주의 문화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은 것, 나쁜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Aragorn
휘랑은 한국인으로서 적으나마 한국 땅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 때로는 작은 일에 대한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등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습관화된 '실례합니다'와 '감사합니다'는 상대에게 적으나마 위화감, 나아가서 불쾌감마져 줄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가 그런 사소한 예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또 익숙하지 않아서... 라고 한다면, 꼭 익숙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여 익숙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3. 세태나 문화의 변화에 따라 이에 걸맞는 예법도 요구된다 ¶
사회의 모습이 그 사회의 언어의 쓰임새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그 언어의 쓰임새가 사회의 모습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 한국의 사회는 이미 전통적이라고 여기는 공동체 사회와는 그 형태가 크게 다른 것 같습니다. 삶의 방식,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크게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삶의 형태의 변화에 따라 더 나은 방식의 소통의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윗 글은 공동체의 문화와 개인주의의 문화 중에 어떤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한국에는 사소한예의가 부족하다고 주장을 하는 대중매체의 공익광고 등은 너무나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원인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지 않고 개인의 도덕성만을 탓하며 서구 자본주의, 개인주의의 삶의 형태에서 나온 문화만을 옳다고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시대 이전에 주를 이루었던 삶의 형태만을 우리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엄따'가 통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소통을 위한 사소한예의에 대한 고민은 어떤 사회에서든지 꼭 필요하고 계속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do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