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미래반지의제왕으로부터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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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배운다


1. 들어가는 말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가 한국의 피시방 산업을 일으키고 그 결과 형성된 인터넷 인프라가 오늘날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비롯한 온라인 게임 발전에 결정적 발판 역할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뿌려 놓은 살육과 경쟁의 피에서 자라난 탓일까, 한국의 주류적 온라인 게임들은 아이템 현금거래, PK, 현피, 해킹과 같은 부정적인 무늬를 띠고 있으며 고려말 불가사리란 괴물과도 같이 자신을 공격하는 언론과 정부기관의 질타를 수년 째 먹을 수록 오히려 무늬가 선명해지고 덩치도 커지고 있어 게임내외 사회의 물의를 계속 일으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판타지 온라인 게임을 낳게 한 J.R.R 톨킨의 '반지의제왕'이 영화화되어 우리 나라에서도 대중 문화적 붐을 일으키고 있다. 반지의 제왕 홈페이지 게시판을 가보니 네티즌 혹은 게이머들이 워크래프트나 리니지의 캐릭터들이 반지제왕에서 많이 등장한다고 이야기함을 볼 수 있었다. 그 것은 다중사용자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의 원조격인 울티마나 위저드리같은 1세대 롤플레잉게임이 바로 톨킨이 창조한 요정, 인간, 오크들의 중간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레 수긍되어 질 수 있다.

필자는 98년이래 온라인 게임 문화의 흐름과 최근의 반지제왕 붐을 지켜보면서 한국 온라인 게임의 문제점을 타개할 실마리를 그 사상적 원류인 "반지의 제왕"을 통해 찾아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한 파괴와 살육을 통한 폭력-황금 숭배의 스타크래프트적 잔상(절대반지)을 용기있게 버리고 믿음과 헌신을 통한 사회연대를 실현하자는 톨킨의 오래된 교훈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의 온라인게임은 톨킨의 세계를 빌어 모습만 바꿔 놓은 블리자드(브루드워, 디아블로)의 세상이 아니었던가...

2. 절대반지의 제조자 사우론


아이템 현금거래는 절대반지다. 신자유주의라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타고 만들어진 이 반지는 돈을 주고 이를 소지한 게이머에게 막강한 권력을 한 순간에 쥐어 준다. 반지의 마력은 하도 강해 한번 낀 자는 이를 현실의 어떤 보물보다 애지중지하며 해킹이나 PK로 인해 이를 잃게 되면 거의 광분하게 된다. 반지 소지자는 갑작스레 커진 자신의 힘에 놀라 어리둥절하다 종종 책임감, 동정심을 잃고 자기과시와 공격성, 탐욕에 휩싸이곤 한다.

다른 이보다 늘 뛰어날 것을 속삭이며 시간당 요금을 받아내는 중간계(게임 속 레벨시스템) 속에서 이 절대반지는 더더욱 게이머들의 욕망과 부러움을 확대 재생산한다. 온라인 게임에 이 반지를 도입한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현실에서 지친 이들에게 게임 속에서만큼은 절대 자유를 주고자 기획했노라 토로하지만, 그는 절대 자유가 얼마나 빨리 절대반지로 부패하는 지 목격했을 뿐이다.

자유를 파는 시장논리만 있고 자유를 성숙시키는 민주주의 논리는 없는 게임 속에서 자유는 게임 밖의 악-사우론을 초대하고야만 것이다. 그렇다 사우론은 바로 중세 계급제라는 비민주적 시스템 설정의 허약한 부분을 뚫고 침입한 현대 자본주의적 욕망에 다름 아니다. "너 개인의 힘을 키워라 그리고 다른 이는 믿지 말고 그를 눌러라. 그렇지 않으면 눌림 당하리라...."

3. 반지를 안 끼는 프로도


온라인 게임은 패키지 게임과 달리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가상사회다. 이 사회 속에서 프로도와 같은 게임에의 순수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절반의 게이머들과 아이템/레벨제의 대안을 추구하는 게임사들은 절대반지의 힘의 유혹에 다가섰다가도 용기있게 이를 거부하고 있다.

물론 이런 순수성이, 갈수록 위세를 떨치는 절대반지의 나즈굴들을 얼마나 피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프로도와 같은 게이머들은 절대반지를 손가락이 아닌 목에 걸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 들은 게임 밖 현금으로 게임 속의 파워를 바꿔치기 하는 반지의 힘은 공정한 힘이 아니라 믿기에 이를 실천하고 있다.

절대반지를 낄 것이냐 걸 것이냐는 것은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가 골라야 했던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간의 선택과 같다. 게임 외적 자본의 논리로부터 게임 속 삶을 조종당하길 원한다면 그 자본의 힘으로 게임 속 판타지의 힘을 대치하길 원한다면 아이템을 사러 가라. 그 순간 한때 프로도와 같은 호비트 족이었던 지금의 불쌍한 골룸을 닮게되리라.

4. 언제나 목마른 골룸


아이템 현금거래라는 절대반지 맛을 본 게이머들과 게임회사들은 골룸의 뒤를 따르기 쉽다. 그 들에게 더 이상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 황금의 투기장, 욕망의 주식시장이다. 골룸 자신도 절대 반지가 주는 레벨업의 유혹을 잘 알기에 더욱 번민하고 괴로워한다.

불쌍한 골룸. 그러나 골룸을 비난하지 말자. 반지를 끼지 않으면 언제 죽을 지 모르게 되어버린 중간계의 공포, 게임에 접속하여 살아가기 위해 계속적으로 게임 이용료를 월 5만원 가량 부담해야만 하는 중간계의 무게가 골룸을 낳은 것이지 골룸이 자유의지로 반지를 낀 것은 아니므로.

프로도는 골룸의 도움을 통해 절대반지의 경로를 추적해나갈 수 있다. 골룸이여 프로도와 함께 반지를 파괴하는 원정대의 길에 올라라. 그리고 절대반지가 어떻게 하여 호비트였던 자신을 골룸으로 변하게 했는지를 추적하라. 레벨업 공장 속 아이템 기계의 설계도를 찾아라. 그 길만이 골룸을 결국 구해내리라.

5. 반지를 맡겨 달라는 보로미르


프로도와 함께 원정을 떠난 이 가운데는 곤도르의 기사 보로미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도가 반지를 버리려는 것을 무모하다고 믿고 오히려 그 절대반지를 사용하여 사우론과 대적하려 했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아이템 현금거래의 관계에 있어 보로미르는 누구에 해당할까? 필자는 표면적으로는 게이머의 아이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대변하면서도 정작 책임 소재가 생길 경우 자신의 면책을 주장하는 아이템 중개회사들이 보로미르가 아닌가 싶다. 그들의 아이템 현금거래 양성화 주장은 보로미르가 반지를 자신에게 주면 사우론을 퇴치하겠노라고 프로도를 회유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보로미르는 절대반지의 유혹에 꺽인 부러진 칼이자 악을 악으로 바꿔치고자 한 어리석음의 화신이다.

6. 배반자 사루만


그는 게임 밖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충실히 게임 안으로 도입한 자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속칭 헤이샵을 운영하면서 게이머들을 산악 트롤처럼 사슬에 매달아 성문 여닫이 시키듯 24시간 노동시키는 사람들, 게임 속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이, 아이템 약관으로만 게이머들을 몰아 넣고 돈을 챙기는 자본주의자들.

판타지(또 다른 세상에 대한 열정적 꿈)의 배반자 사루만. 게임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할 뿐인 그들의 검은 욕심이 언제쯤 하얀 망토 뒤에서 드러날 것인지.

7. 반지를 분화구에 던져라


절대반지는 그 것이 탄생한 모르도르 화산의 분화구에 던져야만 사라진다. 모르도르 산의 분화구가 무엇인가? 그것은 공격성과 탐욕만 낳는 시스템, 이익과 시장법칙만을 우선시하고 게이머의 위엄과 존경을 무시하는 시스템, 초보자도 고랩 게이머도 소속감없이 공허함을 느끼는 경쟁적 개인주의 시스템, 99만만 바라보고 다른 이보다 1레벨, 1시간이라도 더 앞서야 하기에 상호 신뢰는 바보들이나 하는 시스템이다.

절대반지에 안주하지 않더라도 사우론과 사루만 두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위적 공포에 맞설 수 있는 세상, 같은 목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꿈들을 펼쳐가며 선의의 경쟁을 겨루는 세상을 위해 절대욕망의 반지는 모르도르의 분화구에 던져져야 한다. 이제 아이들의 놀이감이던 게임은 국민적 '산업'으로 발전했지만 그 성장 엔진이 게임사의 자체 능력보다는 게이머가 참여한 가상사회성에 있는 만큼 사회적 '문화'가 숙성되어야만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8. 샘의 격려


최근 프로도 곁에 샘이 다가서고 있음이 느껴진다. 파티제와 게임 속 길드를 강화한 게임, 퀘스트의 성과를 아이템이 아닌 캐릭터의 능력치로 보상하는 게임, 핵 앤드 슬래쉬가 아닌 다채로운 퀘스트와 드라마적 요소를 많이 투입한 게임, 캐릭터의 삶에 불교의 윤회사상을 도입한 게임, 힘과 마법외 다른 재능도 키울 수 있는 스킬제형 게임, 제작자의 권한을 일부 게이머들에게 양도한 게임 등 모두 'I am Sam.'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과다한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서 일정 시간 플레이(연속2시간, 일일 누적 4시간)를 할 경우 캐릭터의 활력치가 떨어져 원할한 플레이를 어렵게 하고(The Sims 참고) 이는 실제로 로그아웃하여 온라인에서 게이머가 나가 일정시간 지나야만 다시 충전되도록 설정하는 방안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최근 협회에서 제시한 게임시간 표시제로는 도덕적 호소말고 달리 현실적 유인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판 혹은 엔딩 개념이 있는(달리 표현해 게이머의 플레이는 엔딩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초기화되는) 블리자드 게임에 매겨지는 요금 체계를 게이머들의 부가가치적 기여도가 부각되는 엔딩없는 MMORPG에도 그대로 적용, 초보나 고랩, 킬러나 리더를 불문하고 종량제에 따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현행 통신 요금 체계에 대한 개선책이 모색되어야 프로도를 골룸이 되라고 유혹하는 사우론의 혓바닥을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소설 '반지의 제왕' 2편에서 나오는 샘의 격려글을 인용한다.

{{|"그건 그래요. 그리고 우리가 길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 대해 좀더 알았더라면 여기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일이란 게 그렇기 마련입죠. 옛날 이야기나 노래 속에 나오는 용감한 행동들이 다 그렇잖아요, 주인님. 모험담이라는 것 말이에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훌륭한 이들이 찾아 나서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이 신나는 데 비해 삶이란 건 좀 따분한 편이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건 아마도 일종의 유희나 다름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그 얘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는 건 그런 게 아니겠죠. 그들은 대개들 그냥 그런 일에 뛰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들에게도 우리처럼 발길을 돌릴 기회가 많았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또 그들이 그렇게 했더라도 우린 알지 못할 테고요. 왜냐하면 그랬다면 그들은 잊혀졌을 테니까요. 우리가 듣는 건 계속 전진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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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미래반지의제왕으로부터배운다에 대한 절대반지동맹 웹사이트 [http]게시판의 반응입니다. --미야코

온라인 게임에 대한 문제점은 모두들 알고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내용도 거의 비슷비슷하고, 대부분 외국 온라인 게임의 방식을 따오려는 수준에 머물고 있지요.

외국 게임들의 경우에는 문화적인 차이나 즐기는 방식의 차이라고 보여지는데요. 국내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된 게임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로 솔로잉보다는 파티나 길드를 중심으로 하고 자잘한 이벤트를 많이 넣는 등이 큰 차이죠.

하지만 거기서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발생하는 문제점은 대동소이합니다. 아이템 현거래나 사용자들간의 비매너 플레이 등은 게임 제작사의 문제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이머들이 즐기는 방식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달라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가상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사회와 별로 다른 점은 없죠. 또 하나의 사회일뿐이니까요.

그리고 시간 제한등의 문제는 참 애매한 부분인데요, 시간 제한이 들어가면 그시간에는 또 다른 캐릭터를 키우고 있겠죠. 지금도 24시간돌리며 여러가지 캐릭터를 키우는 경우는 상당히 일반적(?) 이거든요.

생각보다 온라인 게이머들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아무개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한 파괴와 살육을 통한 폭력-황금 숭배의 스타크래프트적 잔상(절대반지)을 용기있게 버리고 믿음과 헌신을 통한 사회연대를 실현하자는 톨킨의 오래된 교훈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요.. 믿음과 헌신을 통한 사회연대를 실현하자는 말은 좀 불편하군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만연하군요. 저는 자본주의가 정말 유익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자본주의를 배척하고 믿음과 헌신으로 사회연대 실천하자는 주장은..상당히 감정적인 방향으로 치중된 것 같습니다.... 불편하네요. 제가 여기서 이념갈등을 야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글 내용에 그러한 분위기가 만연한 점은 꼬집지 않을 수가 없군요. 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사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게임 내부의 현금시장이 좀 더 발달하도록 지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GreenTea

'자본주의적'이란 용어의 등장에 대해. 맑은이가 읽을 때는 그것이 자본주의를 배척하자는 뜻으로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정확히 꼬집어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라고 명시도 되어 있고요. 맑은이는 미국식 자본주의라 말만을 가지고는 그 글의 전부를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다는 아니라도 이런 정도의 자본주의는 분명 맑은이도 함께 비판하는 바입니다. 민주주의는 없고 자본주의만 있는,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돈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한 번 경쟁에 들어서면 브레이크가 고장나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려 무한경쟁의 논리로만 움직여지는, 그런 자본주의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닐까요? GreenTea님은 이런 자본주의라면 그것조차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다는 얘긴가요? 그건 아니라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까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우리 두 사람은 대화불능 상태가 되어 버리잖아요. 한 번 더 꼼꼼히 읽어보시면 GreenTea님이 그 부분에 관한한 오해를 하고 있음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으로 GreenTea님은 "게임 내부의 현금시장이 좀 더 발달하도록 지지해야한다고" 하여, CyberLaw님과는 반대의견임을 언급하셨습니다. '아이템 현금거래를 양성화하자'는 주장들이 먼저 있었고, 오래된미래반지의제왕으로부터배운다에서는 그것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의견 자체를 나무라는 게 아니라 흐름이 그렇다는 것을 지적해 두고 싶네요. 이런 아주 단순한 생각 한 번 해 보셔요. "GreenTea님이 억만금을 가지고 있다한들, GreenTea님이 신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게이머 자신의 게임능력은 일천한데, 돈으로 그 능력을 올려 놓아 지존의 위치에 앉아 있다면, GreenTea님은 그 능력을 그 자리를 인정할 수 있겠는지요? 꼭 그렇게 극단으로 치우치기만 하겠느냐, 아이템 현금거래를 양성화 하되, 여러가지 규율을 만들어 건전하게 운영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다면, 이것이 바로 프로도에게 골룸이 되라고 하는 바로 그 유혹입니다. 그 유혹에 홀려 얻어진 힘은 사상누각이 아니겠는지요? 사상누각은 힘이 없습니다. 힘은, 진정한 힘은, 돈과 같은 요행으로 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시간과 노력과 인내심으로 쌓고 쌓고 또 쌓는 것이 아닌지요. 힘은 생겨나는 것이지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저기 있던 힘을 이쪽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힘은 기르는 것입니다. 심지어 스스로는 자신이 힘이 생겼음을 알지 못하는 그런 흐름 속에서 말이지요. 저 놈의 아이템을 사면 내게 힘이 생겨, 이게 아니란 말입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 하시길 바랍니다. 돈 대신.

--맑은
맑은님도 인정하셨듯, 절대반지가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고 있죠. 이것을 용기있게 버리고 믿음과 헌신을 통한 사회연대를 실천하자는 게 글의 요지라고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어요. 단지 용기있게 버리자는 말이니, 그걸 '배척'이라고 규정한건 제가 좀 심했군요. 그럼 '버리다'라는 단어를 사용할께요. 위에서 밝혔듯, 이 글의 요지라고 명시한 게임내부의 미국식 자본주의를 버리고 믿음과 헌신으로 사회연대를 실천하자는 주장 때문에 제가 문제를 제기한 거예요. 저 주장을 보면서 맑은 님은 어떠한 느낌을 받으셨나요? 이미 밝혔다시피, 전 아주 불쾌합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단점을 제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정말 단점을 제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린 대화불능 상태가 되겠네요. 그럼 제가 왜 불쾌하느냐? 우선 문제가 발달된 게임내부로 시선을 옮겨보죠, 억만금을 가진다고 신이 될 수는 없지만, 법의 둘레 속에서 억만금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아이템 현금거래를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여러 문제들 때문에 제재해야한다는 생각이 바로 사상누각입니다. 머그게임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 자체가 이미 현실적인 비용을 초래하는 셈인데, 굳히 현금은 안된다라는 규제는 어불성설아닌가요? 게다가 만약 그렇게 하였다 치더라도 개인의 이기심을 위배하는 체제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겠나요. 이기심의 충족을 배제한 채 믿음과 헌신을 통해서 사회연대를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정말 사상누각이 아닐 수 없어요. 맑음님과 저의 주장사이의 차이점은 머그게임에 개인이 투자하는 종류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규정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규정의 틈바구니에는 평등과 불평등에 대한 이해관계가 삽입되어 있군요. 지극히 '머그게임'의 규칙에 한 해서 생각한다면 현실세계의 현금을 이용해서 게임내부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요행'이라고 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게임산업의 본래 취지와 그에 순응하는 개개인의 이기심을 고려했을 때, 그건 요행이 아니라, 또 다른 투자형태로 인정해야 합니다. 돈의 투자는 충분히 시간, 노력과 상응한 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되도록 더 큰 효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러한 방법을 취하는 게 현명한 처사입니다. 만일 돈의 투자가 시간과 노력으로 얻어내는 결실에 미치지 못할 경우 돈의 투자를 선택하는 개인은 없겠지요. 돈과 시간,노력 중에서 개인이 느끼는 가치의 비중은 개개인마다 다르며 그중 어느것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입니다. 어디까지나 게임현금시장은 게임회사들이 소비자들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욕구가 선택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 두셨으면 합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투자한 이들을 골룸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심했다고 생각해요. 이것은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빚어진 불만 아닌가요? 허나 게임현금시장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있고, 그런 형태의 게임이 싫다면 다른 게임을 하면 됩니다. 게임서비스는 전적으로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추어지고,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는 게임들을 선택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러한 특성을 띤다면 그건 그만큼 그런 방식을 환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소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윤을 포기하는 게임회사가 과연 있을까요? 온라인게임회사들이 게임내에서 각종 현금서비스를 만들어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이윤을 내는 과정 중에서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부당하게 비춰지는 문제들이 다소 발생한게 사실이고, 이것을 미국식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미국식자본주의 즉, 게임속의 아이템이라는 가상의 자원을 대상으로한 현금시장의 형성이 게임산업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 이예요. 지극히 실리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 미국식 자본주의를 버리고 믿음과 헌신으로 사회연대를 실천하자는 주장은 '다함께 평등하게 가난해지자' 라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폐해'라고 말할 수 있는 여러가지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리스크가 두려워 여러 모험적인 요소들을 하나씩 줄여나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도태' 뿐입니다. 차라리 기존의 머그게임이 싫다면 머그게임이 아닌 머그게임, 즉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창출하자고 주장하는게 괜찮겠네요. 기존의 머그게임에 융합된 톨킨의 세계관은 소비자들의 욕구에 의해 이미 변형될 대로 변형되었으니까요. --GreenTea

"법의 둘레 속에서 억만금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이건 참으로 무서운 생각이 아닌지요? 맑은이는 동의할 수 없는 견해입니다. (1) 법을 잘못 적용했거나 판결을 잘못하여 억울한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마당에, "법안에서 내 맘대로"를 주장하다니요. "불법은 아니지만, 윤리적으로 인정받지 못할 일들이 많습니다." 1) 상한선을 정해둔 모든 법적 제약들이 그러합니다. "00 ppm 이상이면, 어쩌구 저쩌구"라고 된 법규에 관련된 공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네들은 그 용량의 공해 물질이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어떤 피해를 가하는지 그것이 축적되면 인간이 어떻게 되게 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지요. 오로지 배출량 커트라인만 안 넘기면 그 걸로 그만이지요. 법을 집행하는 이들 중에는 아무도 그것을 나무라는 사람이 없을테니까요. 2) "황우석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에서, 연구원의 난자를 실험용으로 사용한 일"이 또한 그러합니다. (2) "억만금으로 무엇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돈을 쓰는 것도 모두 가장 자유롭지 못한 곳이 우리가 사는 공동체 사회가 아닌지요? 돈 잘못 써서 쇠고랑 차는 일, 매일의 뉴스에 너무도 자주 오르내리는 일들입니다. 돈 버는 거요? 지금 매춘으로 돈 벌면 안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돈을 버는 게 자유롭습니까, 돈을 쓰는 게 자유롭습니까.

"시간과 노력을 줄이고 되도록 더 큰 효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러한 방법을 취하는 게 현명한 처사입니다." 이 방법론에 반대할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돈을 써서 '더 큰 지위'를 사려 할 때"에 우리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출발점을 갖지 못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돈과 시간,노력 중에서 개인이 느끼는 가치의 비중은 개개인마다 다르며 그중 어느것을 선택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입니다." 맑은이도 같은 생각입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선택이 가져 올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집니다. 우리는 이 아티클이 쓰여지기 전에, 이미 선택했습니다. 지금의 오래된미래반지의제왕으로부터배운다는 "우리들의 과거의 <선택>이 가져 온 오늘의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자 제안된 글"이 아니던가요?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자는 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본 아티클은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온라인 게임 속의 반지가 태어난 바로 그 곳으로부터, 무언가 배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GreenTea님은 그 속에서 또 다른 것을 배울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그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더 나은 답을 구할 수도 있겠군요. GreenTea님 글 마지막 문장, "차라리 기존의 머그게임이 싫다면 머그게임이 아닌 머그게임, 즉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창출하자고 주장하는게 괜찮겠네요. 기존의 머그게임에 융합된 톨킨의 세계관은 소비자들의 욕구에 의해 이미 변형될 대로 변형되었으니까요." 이 문장을 보면 GreenTea님도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을 하고 있음이 역력히 보이는데, 어찌하여 같은 자세로 임하고 있는 CyberLaw님의 결론에 대해 "불쾌하다"고 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두 분 모두 제 부족한 글에 대한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하며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현금거래 플레이어를 골룸에 빗댄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되어 올 여름경 수정판을 적어 본 적 있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 반지의 제왕 >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가 한국의 피시방 산업을 일으키고 그 결과 형성된 인터넷 기반이 오늘날 리니지, 바람의 나라를 비롯한 온라인 게임 발전에 결정적 발판 역할을 제공해주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이다.

그러나 블리자드가 뿌려 놓은 살육과 경쟁의 피에서 자라난 탓일까, 한국의 주류적 온라인 게임들은 아이템 현금거래, PK, 현피, 해킹과 같은 부정적인 무늬를 띠고 있으며 고려말 불가사리란 괴물같이 수년 째 자신을 공격하는 언론과 정부기관의 질타를 먹을 수록 오히려 무늬가 선명해지고 덩치도 커지고 있어 게임내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와중에 판타지 온라인 게임을 낳게 한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영화화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붐을 일으켰다. 반지의 제왕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네티즌 혹은 게이머들이 워크래프트나 리니지의 캐릭터들이 반지제왕에서 등장한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다중사용자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의 원조격인 울티마나 위저드리같은 1세대 롤플레잉게임이 바로 톨킨이 창조한 요정, 인간, 오크들의 중간계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98년이래 온라인 게임 문화의 흐름과 최근의 반지제왕 붐을 지켜보다보니 한국 온라인 게임의 문제점을 타개할 실마리를 그 사상적 원류인 『반지의 제왕』을 통해 찾아낼 수 있지 않나는데 이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한 파괴와 살육을 통한 폭력-황금 숭배의 스타크래프트적 잔상(절대반지)을 용기있게 버리고 믿음과 헌신을 통한 사회연대를 실현하자는 톨킨의 오래된 교훈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의 온라인게임은 톨킨의 세계를 빌어 모습만 바꿔 놓은 블리자드(디아블로)의 세상이 아니었던가….


< 절대반지의 제조자 사우론 >


아이템 현금거래는 절대반지다. 중세 판타지의 게임 속으로 침투한 현실 자본주의의 통로인 이 반지는 현거래 게이머에게 막강한 권력과 부를 쥐어 줄 수 있다. 반지의 마력은 지나치게 강해 한번 낀 자는 이를 현실의 어떤 보물보다 애지중지하고 해킹이나 PK로 인해 이를 잃게 되면 광분한다. 반지 소지자는 갑작스레 커진 자신의 힘에 놀라 어리둥절하다 종종 책임감, 동정심을 잃고 자기과시와 공격성, 탐욕에 휩싸이곤 한다.

다른 이보다 늘 뛰어날 것을 속삭이며 시간당 요금을 받아내는 중간계(게임 속 레벨시스템) 속에서 이 절대반지는 더더욱 게이머들의 욕망과 부러움을 확대 재생산한다. 온라인 게임에 이 반지를 도입한 최초의 프로그래머는 현실에서 지친 이들에게 게임 속에서만큼은 절대 자유를 주고자 기획했노라 토로하지만, 그는 절대 자유가 얼마나 빨리 절대반지로 부패하는지 목격했을 뿐이다.

자유(플레이)를 파는 시장논리만 있고 자유(플레이)를 성숙시키는 공공논리는 부재한 게임환경 속에서 자유는 게임 밖의 악-사우론을 초대하고야만 것이다. 그렇다 사우론은 바로 중세 계급제라는 비민주적 시스템 설정의 허약한 부분을 뚫고 침입한 현대 자본주의적 욕망에 다름 아니다. "너 개인의 힘을 키워라 그리고 다른 이는 믿지 말고 그를 눌러라. 그렇지 않으면 눌리게 되리라…."


< 반지를 끼지않은 프로도 >


온라인 게임은 패키지 게임과 달리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가상사회다. 이 사회 속에서 프로도와 같이 게임의 순수성을 동경하는 절반의 게이머들과 아이템·레벨제의 대안을 추구하는 게임사들은 절대반지의 힘의 유혹에 다가섰다가도 용기있게 이를 거부하고자 애쓴다.

물론 이런 순수성이 갈수록 위세를 떨치는 절대반지의 나즈굴들을 얼마나 피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프로도와 같은 게이머들은 절대반지를 손가락이 아닌 목에 걸고 사용하지 않는다. 그 들은 게임 밖 현금으로 게임 속의 파워를 바꿔치기 하는 반지의 힘에 맞서려 한다.

절대반지를 손가락에 낄 것이냐 단지 목에 걸 것이냐는 것은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가 골라야 했던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간의 선택과 같다. 게임 외적 자본의 논리로 게임 속 삶을 누리길 원한다면 그 자본의 힘으로 게임 속 판타지의 맛을 보길 원한다면 아이템의 반지를 사서 끼어라. 그 순간 사우론과 이기도고 절대반지에는 무너진 먼 옛 조상 이실두르를 닮은 자신의 얼굴을 발견하게 될 지 모른다.


< 언제나 목마른 골룸 >


아이템 현금거래라는 절대반지를 끼려하는 자들을 중개하는 중개상은 골룸의 뒤를 따르기 쉽다. 그들에게 게임은 황금의 투기장, 욕망의 주식시장이다. 이런 골룸 자신도 절대 반지가 주는 파워업과 어두운 포스의 운명을 잘 알기에 더욱 번민하고 초초해한다. 그는 반지의 영향권 내에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려 할뿐, 이를 파괴할 마음은 전혀 갖고 있지 아니하다. 그렇기에 그는 끈질기게 프로도의 여정에 동행하고 협력하는 척하는 것이다.SOE의 Station Exchange는 그점에서 한계가 노출된다


한편, 프로도는 골룸의 도움을 통해서만이 모르도르 산에 이르는 경로를 추적해나갈 수 있다. 프로도여, 골룸과 함께 반지를 파괴하는 원정대의 길에 올라라. 그리고 절대반지가 어떻게 하여 호비트였던 스미아골을 골룸으로 변하게 했는지를 추적하라. 레벨업 공장 속 아이템 기계의 설계구를 찾아라. 그 속에 반지를 던져 파괴하라. 죽은 골룸을 다시금 스미아골로 살려내리라.


< 반지를 맡겨 달라는 보로미르 >


프로도와 함께 원정을 떠난 이 가운데는 곤도르의 기사 보로미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프로도가 반지를 버리려는 것을 무모하다고 판단, 오히려 그 절대반지를 사용하여 사우론과 대적하려 했다가 최후를 맞는다.

아이템 현금거래의 관계에 있어 보로미르는 누구에 해당할까? 필자는 명분상으로는 게이머의 게임을 즐길 권리를 주장하고 대변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보유한 아이템에 대한 경제적 가치에 집중하고 연연해마지않는 일부 아이템 현거래 매수인들이 보로미르가 아닌가 싶다. 이들의 아이템 현금거래 양성화 주장은 보로미르가 프로도에게 반지를 자신에게 주면 사우론을 퇴치하고 곤도르 왕국을 지키겠노라고 회유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보로미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강력한 파워의 절대반지의 기에 눌린, 그리하여 반지를 끼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중간계의 공포, 게임에 접속하여 힘겹게 살아가기 위해 계속적 수만원의 이용료를 납부하여야 하는 중간계의 무게에 눌린 그의 딸림을 이해하기에..소설 속에서 처럼 그의 끝은 영웅적이기를.



< 배반자 사루만 >


그는 게임 밖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충실히 게임 안으로 도입한 자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속칭 작업장을 운영하여 게이머들을 산악 트롤처럼 사슬에 매달아 성문 여닫이 시키듯 24시간 노동시키는 사람들, 절대반지의 포스에 저항할 게임 설계에 대한 고민 없이, 운영 약관으로 게이머들을 몰아 넣고 돈을 챙기는 사람들.



판타지(또 다른 세상에 대한 열정적 꿈)의 배반자 사루만. 게임을 사랑하지 않고 이용할 뿐인 그들의 검은 욕심이 언제쯤 하얀 망토 뒤에서 드러날 것인지.


< 운명의 산에 반지를 던져라 >


절대반지는 그것이 탄생한 모르도르 운명의 산 분화구 안에 던져야만 사라진다. 모르도르 산 분화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격성과 탐욕을 자극하는 시스템, 이익과 시장법칙만을 우선시하고 게이머의 위엄과 존경을 경시하는 시스템, 초보자는 물론 고레벨 게이머도 소속감없이 공허함을 느끼게 하는 시스템, 고레벨만 바라보고 다른 이보다 1레벨, 1시간이라도 더 앞서가게 만드는 입시전쟁식 시스템이다.

절대반지에 안주하지 않더라도 사우론과 사루만 두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위적 공포에 맞설 수 있는 세상, 같은 목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꿈들을 펼쳐가며 선의의 경쟁을 겨루는 세상을 위해 절대욕망의 반지는 모르도르의 분화구에 던져져야 한다. 이제 아이들의 놀이감이던 게임은 국민적 '문화산업'의 문턱에 다다랐지만 그 성장 엔진이 게임사의 자체 능력보다는 게이머가 동참하여 이룩한 공동체성에 있는 만큼 그 내재적 '문화역량'이 숙성되어야만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샘의 격려 >


최근 프로도 곁에 샘이 다가오고 있다. 파티제와 게임 속 길드를 강화한 게임, 퀘스트의 성과를 아이템이 아닌 캐릭터의 능력치로 보상하는 게임, 핵 앤드 슬래쉬가 아닌 다채로운 퀘스트와 드라마적 요소를 많이 투입한 게임, 캐릭터의 삶에 불교의 윤회사상을 도입한 게임, 힘과 마법 외 다른 재능도 키울 수 있는 스킬제형 게임, 제작자의 권한을 일부 게이머들에게 양도한 게임 등 모두 'I am Sam.'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직접적이고 본질적으로는

(1) 현거래의 게임시스템적 기제라 할 게임 속 아이템 증여(gifting) 프로세스에 대한 리팩토링
Barry Kearns,http://vektor.blogs.com/vektorblog/2005/04/draft_of_nocash.html

(2) 양도허용, 양도불가, 양도제한 아이템 카테고리 선정(WoW의 귀속 시스템 참고?)

(3) 아이템을 비록한 콘텐츠 창출에 플레이어가 참여 내지 주도할 수 있는 자율적 정치경제체제
Second Life의 atomistic construction, neolith님의 예쁜 빈칸?

등이 진지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그 중(1),(2)는 시스템 코드에 의한 규제로서 청소년 이용가 MMOG에서, (3)은 자율적 규제로서 성인 이용가 MMOG에서 보다 그 활용도가 높으리라 보임} 다만 아이템 거래가 커뮤니티 형성에 갖는 긍정적 측면을 최대한 살리는 조율의 미덕이 위 고려에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관련하여 단판 혹은 엔딩 개념이 있는(달리 표현해 게이머의 플레이는 엔딩과 함께 사라져버리고 초기화되는) 블리자드 게임에 매겨지는 요금 체계를 게이머들의 부가가치적 기여도가 부각되는 엔딩없는 MMORPG에도 그대로 적용, 초보나 고랩, 킬러나 리더를 불문하고 종량제에 따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현행 통신 요금 체계에 대한 개선책도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 '반지의 제왕' 2편에서 나오는 샘의 격려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그건 그래요. 그리고 우리가 길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 대해 좀더 알았더라면 여기 있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런 일이란 게 그렇게 마련입죠. 옛날 이야기나 노래 속에 나오는 용감한 행동들이 다 그렇잖아요, 주인님. 모험담이라는 것 말이에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그 훌륭한 이들이 찾아 나서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이 신나는 데 비해 삶이란 건 좀 따분한 편이어서 그랬을 거예요. 그건 아마도 일종의 유희나 다름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그 얘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는 건 그런 게 아니겠죠. 그들은 대개들 그냥 그런 일에 뛰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들에게도 우리처럼 발길을 돌길 기회가 많았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또 그들이 그렇게 했더라도 우린 알지 못할 테고요. 왜냐하면 그랬다면 그들은 잊혀졌을 테니까요. 우리가 듣는 건 계속 전진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 -- CyberLaw 2005-11-25 09: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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