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반론 ¶
{{|
장애우 과연 시혜적이고 차별적인 용어인가?
지난 해 말, 한 일간지 독자 코너를 통해 '장애우'라는 용어가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간혹 '장애우'가 어떤 의미에서 쓰여지는 용어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기는 했어도, 이렇게 '잘못된 것'이라는 단정적인 비판은 공식적으로 처음이었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용어 사용의 비판적 해석에 동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안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리 함께걸음은 이 논쟁의 당사자로서, 용어 사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알다시피 '장애우'라고 하는 용어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걸음이 만들고 사용해왔습니다. 아마 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용어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보면, 처음 이 용어를 만들어 낸 동기나 과정, 이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재 비판이 논쟁이 되고 있는 지점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실제 함께걸음은 '장애우'라고 하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공식용어로 자리매김 하기를 원하지도, 주장한 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장애우'라는 용어를 방송이나 신문 등이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의미전달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전해지고 있고, 오히려 단순히 '부드럽고 친근한 표헌'이라는 이미지의 확대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장애우'라는 용어는 저의희 입장과는 관계없이 '장애인을 대체하는 용어'로 인식되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떤 존재로, 계층으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정의를 함께 고민하고 합의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장애우'용어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의미를 설명하는 차원에서 그치기 보다는 이 논쟁이 좀 더 발전적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서 장애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장애가진 사람'이 자주성을 가진 존재로서 당당히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하는지 논의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 알다시피 '장애우'라고 하는 용어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걸음이 만들고 사용해왔습니다. 아마 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용어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보면, 처음 이 용어를 만들어 낸 동기나 과정, 이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재 비판이 논쟁이 되고 있는 지점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실제 함께걸음은 '장애우'라고 하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대표하는 공식용어로 자리매김 하기를 원하지도, 주장한 바도 없습니다. 하지만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장애우'라는 용어를 방송이나 신문 등이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의미전달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채 전해지고 있고, 오히려 단순히 '부드럽고 친근한 표헌'이라는 이미지의 확대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장애우'라는 용어는 저의희 입장과는 관계없이 '장애인을 대체하는 용어'로 인식되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떤 존재로, 계층으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정의를 함께 고민하고 합의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장애우'용어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의미를 설명하는 차원에서 그치기 보다는 이 논쟁이 좀 더 발전적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에서 장애개념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해야 하는지, '장애가진 사람'이 자주성을 가진 존재로서 당당히 사회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하는지 논의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우선 현재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연구소와 함께걸음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현재 '쟁애우'논쟁에서 핵심이 되고 있는 사안을 살펴보면 '시혜적이다, 차별적이다,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는 용어이다, 1인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장애인을 계층이 아닌 비사회적인 집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선 장애우라는 용어가 '시혜적이고 차별적 단어이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걸음은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용어 사용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이 단어가 생겨난 1987년 당시만 해도 '장애인'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 없는 단어였습니다.
'장애자'라는 용어가 공식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장애자'라는 단어보다는 '장애'에 초점이 맞추어진 '병신, 절음발이, 맹인, 벙어리, 바보'등의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장애우들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긴 하지만, 교육을 받을 권리나 노동할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항상 '장애'에 무게중심이 더 가 있어서 곧바로 능력이 없는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또한 해방이후 상이군인 등이 국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분노를 일반 시민과 상인들에게 쏟아냄으로써 사람들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 나라 국민들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의 하나도 비장애우들이 '장애'를 개별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는 '청각, 시각, 지체, 언어, 정신지체'등 다양한 영역이 있지만 뭉뚱그려서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하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들을 반영해 어떤 모습으로 단정짓고 마는 것입니다. 구체적 함께함이 없는 속에서 '장애 가진 사람'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거부감으로, 그리고 두렵고 포악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와는 '틀린 사람'으로 규정짓는 것입니다. '다르다', 즉 차이로 인한 풍부함과 긍적적 요소를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틀리다'의 문제로 장애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하고 독재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강요받고 인간이 원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잊고 지내왔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일반 국민들의 인식수준을 익히 알고 있었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창립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우'라는 용어를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장애 가진 사람들이 만든 장애우라는 용어 현재 '쟁애우'논쟁에서 핵심이 되고 있는 사안을 살펴보면 '시혜적이다, 차별적이다,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는 용어이다, 1인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 장애인을 계층이 아닌 비사회적인 집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선 장애우라는 용어가 '시혜적이고 차별적 단어이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걸음은 절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용어 사용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선 이 단어가 생겨난 1987년 당시만 해도 '장애인'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 없는 단어였습니다.
'장애자'라는 용어가 공식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장애자'라는 단어보다는 '장애'에 초점이 맞추어진 '병신, 절음발이, 맹인, 벙어리, 바보'등의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던 때였습니다.
장애우들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긴 하지만, 교육을 받을 권리나 노동할 권리를 갖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항상 '장애'에 무게중심이 더 가 있어서 곧바로 능력이 없는 사람 취급당하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또한 해방이후 상이군인 등이 국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분노를 일반 시민과 상인들에게 쏟아냄으로써 사람들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 우리 나라 국민들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현재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의 하나도 비장애우들이 '장애'를 개별적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는 '청각, 시각, 지체, 언어, 정신지체'등 다양한 영역이 있지만 뭉뚱그려서 사람들은 장애인이라고 하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습들을 반영해 어떤 모습으로 단정짓고 마는 것입니다. 구체적 함께함이 없는 속에서 '장애 가진 사람'의 모습은 익숙하지 않음에 대한 거부감으로, 그리고 두렵고 포악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와는 '틀린 사람'으로 규정짓는 것입니다. '다르다', 즉 차이로 인한 풍부함과 긍적적 요소를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옳고 그름의 '틀리다'의 문제로 장애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민지와 분단을 경험하고 독재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강요받고 인간이 원래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잊고 지내왔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일반 국민들의 인식수준을 익히 알고 있었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창립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우'라는 용어를 만들고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장애우라고 하는 용어는 87년 장애우 권익문제연구소의 설립과 함께 합니다. 함께걸음 창간호인 88년 3월호에 실린 이성재 현 이사장(당시 소장, 변호사)의 창립취지문 '장애우들에게도 문명의 건강한 동반자로서 살아갈 능력과 권리가 있다'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장애자'라는 단어의 개념이 이 사회 속에서 잘못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장애우'라는 단어를 선정했습니다. 우연하게 신체적 손상을 당한 사람들이 이 사회 속에서 늘 도움이나 받아야 하고, 국가나 개인의 눈물어린 동정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비치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장애를 입은 사람도 완전한 인격체로서 나머지 능력만을 가지고도 이 사회속에서 얼마든지 문명의 동반자로 살아갈 능력과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에게 알리고 설득시키며, 이 작업에 일체의 사심없이 헌식적으로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러니까 '장애우'라는용어에 대한 고민의 출발은, 장애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무지와 잘못된 편견으로 '동정과 일방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낙인 찍히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비장애구 아니라 바로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였던 것입니다.
함께걸음 2003년 2월호
2003년 3월호에 계속
|}}그러니까 '장애우'라는용어에 대한 고민의 출발은, 장애 가진 사람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무지와 잘못된 편견으로 '동정과 일방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낙인 찍히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지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비장애구 아니라 바로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였던 것입니다.
함께걸음 2003년 2월호
2003년 3월호에 계속
※ 함께걸음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지이다.
의견 ¶
그렇겠군요. 장애인 자신이 스스로를 장애우라고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장애우만큼 우호적이고 적당히 정치적인 문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자라는 표현도 있는데, 이것은 요즘 중고딩 친구들이 애자라는 속어를 만들어 사용하더군요. (따끔하게 혼내줬지만) -- 고무신
제가 아는 장애인분이 하시는 말씀이 장애자는 대놓고 욕하는 것, 장애우는 속으로 욕하는 것이니 그냥 장애인이라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그러시더군요. 아! 특히 사람들이 애자라는 속어를 쓸때에는 자괴감마저 든다고 하시네요 =_=; --무아
'장애인 이동권연대'의 한 아저씨를 알고 있는데, 스스로 장애우라는 어휘에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고 하네요. 타자에 의해 강제적으로 설정된 어휘라는거죠. 장애인보다 장애우라는 표현이 우호적이라거나 부드럽다는 생각은, 그것이 장애우가 친근한 표현이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에 터부시되고 멸시되는 의미가 박혀져있기 때문일테죠. --구설수
장애인을 부르는 명칭
70년대 까지 병신, 불구자 따위 (아주 장애인을 멸시하는 단어)
80년대 장애자 (전보다 나아졌지만, 놈자 자를 씀으로써 비하의 뜻이 있음)
90년대 장애인 (전보다 많이 나아지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보다 객관적이게 됨)
최근 장애우 (객관적인 명칭에 더해서 친숙함을 더하기 위해 인을 우로 바꿈)
간단히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장애인 분들이 장애우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다면 장애우라는 말을 써야 할까요? 전 그냥 주관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냥 객관적인 명칭인 장애인 이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을 더하고 해도, 그렇게 불리우는 대상의 분들 대다수가 거부하신다면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가시리
70년대 까지 병신, 불구자 따위 (아주 장애인을 멸시하는 단어)
80년대 장애자 (전보다 나아졌지만, 놈자 자를 씀으로써 비하의 뜻이 있음)
90년대 장애인 (전보다 많이 나아지고, 장애를 가진 사람이란 뜻으로 보다 객관적이게 됨)
최근 장애우 (객관적인 명칭에 더해서 친숙함을 더하기 위해 인을 우로 바꿈)
간단히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장애인 분들이 장애우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다면 장애우라는 말을 써야 할까요? 전 그냥 주관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그냥 객관적인 명칭인 장애인 이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을 더하고 해도, 그렇게 불리우는 대상의 분들 대다수가 거부하신다면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가시리
이 페이지에 올라와있던 글들을 충분히 읽어보셨다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텐데요. 우선 이 단어가 생겨난 1987년 당시만 해도 '장애인'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에 없는 단어였습니다 라는 내용이 바로 윗글에 올라와 있지요. 여기서 말하는 '이 단어'는 물론 '장애우'라는 단어를 가리킵니다. '최근 장애우'란 말씀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지요. '불구자, 장애자'가 멸시, 비하의 뜻이 있다는 것도 오해입니다. 같은 놈 자(者)자를 쓰는 '환자'라는 말에선 감기 등 질병에 걸린 사람을 멸시하는 비하의 뜻이 전혀 담겨있지 않습니다. 특기자, 군필자 등 다른 예 역시 얼마든지 들 수 있겠지요. --ChatMate
노인과 어르신 ¶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바꾼 이유는 장애자라는 말 속에 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인이라는 단어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인이라는 말 속에 나이 많은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가 포함되었다고 생각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그들 자신이 나이 먹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했어야 하구요. 노인라는 단어가 비하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면 그건 현상이지 본질이 아닙니다. 아직 65세 이상의 사람을 의미하는 법적인 단어는 노인입니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위 장애우라는 단어가 받는 비판을 그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어르신이다'라는 말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죠. --윤구현
장애인의 영문 표기 ¶
AnswerMe 마침 생각난 것인데, Disabled 대신 Handicapped를 써야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일전에 화장실 전용칸에 영어문구가 Handicapped로 되어 있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오더군요. 어떻게 써야 할까요? --DaNew
음... 둘 중 어느 것이 굳이 틀렸다고 하기 좀 그렇구요. 미국 장애인법의 정식명칭은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입니다. 그러나 1980년 WHO에서 국제장애분류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의 정식명칭은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s, Disabilities and Handicaps( ICIDH )입니다. 즉 세 가지 상황의 합이라는 거죠. 사실은 이것도 2001년에 바뀌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실재 미국 화장실에 무엇이 적혀 있는가죠. 언어라는게 그렇지 않습니까. 장애의 정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장애인페이지에 정리했습니다. --윤구현
저는 handicapped 대신 disabled를 써야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둘 다 옳은 표현인가 봅니다. --PuzzletChung
저는 handicapped 대신 disabled를 써야 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둘 다 옳은 표현인가 봅니다. --PuzzletChung
장애인페이지에 정리해놓을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애를 handicapped로 볼 것인가, disabled로 볼 것인가는 좀 더 복잡한 배경이 있습니다. 실재 장애인 정책을 펴는데 상당히 중요한 기준이 되죠. disabled는 간단히 말해 물리적인 장애를 말합니다. 하지에 이상이 있어 보행에 불편이 있다든지, 상지의 운동에 이상이 있어 특정한 작업을 못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그러나 handicapped로 보게 되면 개인의 건강상 문제와 상관없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는 집단이 모두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북유럽 일부 국가는 노스모크에 오는 사람들이 자국에 들어오면 대부분 장애인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 말을 못하니까요. 자신들의 말을 할 수 없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런 이유로 일정한 사회적, 경제적 지원을 합니다. --윤구현
서강대학교에서는 시설물에 Handicapped 대신 Challenged 라는 단어를 쓰더군요. 이 단어는 어떤가요? -- sun121전 영어에 자신이 없어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여쭈어 보시는 것이 좋을듯... 아무리 그래도 challenged는 조금 비약이 있는거 같습니다.
시각장애자를 뜻하는 소경이라는 단어는 원래 우리나라 관직 이름이였다네요. 시각장애자들만 가질 수 있는 관직이 있었다는 뜻인데, 기우제같은 것을 관장했다고 합니다. 다른 정신 지체 장애자들은 '밥충이'로 박대받았었던 당시 시대상을 생각할 때 좀 놀랍네요. @o@ --고무신
맹인으로서 복술을 배우는 경우가 있는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잡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