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죄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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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뉴스에서 <급진 좌파>란 황당한 말이 난무한게 언제부터였던가. 처음 저 말을 들었을땐 정말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 정치판의 어디에 급진 좌파가 있던지? 개중 가장 왼쪽에 있을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조차도 아무리 봐도 중도 좌파 정도로밖에 안보인다.

사실 <진보>, <보수>만 나와도 얘기가 골치아파진다. 어떤 20대가 "난 보수적이야"란 말을 자랑스럽게 하겠으며, 어떤 386이 "난 아직도 진보적"이라고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겠는가. 부인 옷 사건으로 이름을 떨친 김태정이 대학교 때 교수에게 너무 급진적이라는 걱정어린 충고를 들었다 하니, 사회에 대한 불만이란 젊음의 특권 맞다.

문제는, 나이가 들면서 좌우 어느 쪽을 보고 있건 오른쪽으로 슬금슬금 게걸음질 해야 하는 것은 그닥 유별난 일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부모 돈 받아먹으며 편하게 사회와 국가와 기득권 비판하는 것은 입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스스로 남의 돈 먹으려면, 직장 상사에게, 자기 조직에게, 나아가 모든 권력에 싫든 좋든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할 것 아닌가. 자본가 욕하면서 대기업 다닐 수 없고 국가권력 욕하면서 공무원 될 수 없다. 언론 욕하면서 기자 할 수 없고 학계 욕하면서 교수자리 꿰어찰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물론 그게 밸이 뒤틀려 반골로 찍혀 살건, 관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건 그것도 선택이다. 거기서 나오는 금전적 격차와 승진 순서를 비롯한 수많은 불이익은 정신적 자유를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일 터이다. 그래서 3,40대에도 여전히 운동하는 이들이 대단한 거 아닌가.

그리고 그 어떤 선택도 딱 두 가지로 나뉘어지지도 않을 것이며 각자의 선택에 나름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의구심이 드는 것은 오른쪽을 보면서 또 오른쪽으로 갔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다. 가끔 신문에 칼럼을 쓰는 서울대의 모 교수는 죽어도 한겨레의 청탁은 받지 않으며 또 썼다하면 반드시 조선일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고는 한다는 소리가 '국제정치학이란 학문은 사람을 보수적이고 현상유지적으로 만든다'는 헛소리다.

대체, 국제정치학이 무슨 죄가 있는지? 얘기인 즉슨, 어떤 발견을 할 수 있는 다른 학문과는 달리, 국제정치학은 기왕에 존재하는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생각이 나올 여지가 없단다.

그러면, 사회학은 원더랜드나 가상현실 연구하는 데라서 그렇게 발전적인 연구가 많이 나오나? 경제학은 2차원 그래프 속의 세계 연구해서 마르크시즘 나왔냔 말이다.

기왕에 존재하는 세계를 파악하지 않는 사회과학은 없다. 무슨 물리학이나 지질학 생각하고 존재하는 세계 운운한 거라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우향우하다못해 앞으로나란히 까지 한 자세를, 학문을 끌여들여 변명하는 모습은 조야하기 그지없다. 그래, 서울대 교수쯤 되려면 왼쪽은커녕 일말의 붉은 기운이라도 휘돌지 않도록 끊임없이 단련해야 했겠지. 듣자 하니, 이 교수의 생활은 정재계 인사들과 모여 벌이는 파티의 연속이라 하니 별 타협도 없이 순조로운 사고의 흐름을 타도 무방했겠다.

학문만 모욕당하는 건 아니다. 수많은 주의와 사상들이 그렇게 먹칠을 당한다. 결국 권력에의 욕망에 애달아 몸부림치면서 '원조 보수' 운운하는 모습은 어떤가. 보수주의는 좋은 거다. 기왕에 존재하는 좋은 가치들을 쓸데없이 뒤집어엎지 말고 잘 보존하자는 거다. 하루에 12시간 일하는 사람들 파업한 거 전경 동원해 깔아뭉갠다고 보수주의자 되는 거 아니란 말이다. 신자유주의도 그렇다. 경제적 장벽 열어서 효율 극대화하자는 거지, 직원 마음대로 자르고 국민 세금으로 기업 빚 갚아주라는 주의 아니다. 자기 손에 틀어쥘 권력 바라보면서, 주머니에 들어올 돈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다 끌어들이는 인간들 때문에 그 모든 주의들이 와전되고 욕먹는다. 말은 바로 하자. 그 사람들이 보수주의를 고수해서,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자라서 그런게 아니라 탐욕에 눈이 멀어서 그런 짓거리들을 태연하게 자행하는 것이다.

모든 정치적 성향은 개인의 문제이나, 그 성향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사고가 먼저 존재하고 그에 따라 교차한 씨실과 날실의 흔적이 삶이고 지금 현재의 좌표다. 원래는 상당히 급진적이었는데 살다보니 학문 탓에, 직업 탓에, 그 모든 것 탓에 살다보니 이렇게 오른쪽 끝에 와버렸더라 하는 건 너절한 변명에 불과하다. 영화 'No.3'의 대사처럼, 죄는 죄가 없다. 죄짓는 놈이 나쁘다. 마찬가지로 학문도 죄가 없다. 사상도 직업도 죄가 없다.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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