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고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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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결과가 나와 주지 않는 실험은 밤을 세울 만큼 고통스러웠다. 항상 하던 버릇처럼 기숙사로 내려오던 길위엔, 어느새 가을을 맞이한 듯 쌀쌀한 바람이 외로운 길손을 맞아주었다. "생각을 말자"라고 굳게 다짐하며 밝게 떠오른 달을 보고 웃었지만 기숙사의 침대는 고민으로 만들어진 돌인냥 거칠게 굳어 있었다.

딱딱한 침대에서 일어나 생각을 날리고자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 잘못된 실험은 잠시나마 모니터의 뒷편으로 날아간 듯 했다. 그래서 잊은 줄 알았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는다.....

역시 잊지 못했다. 머리속엔 낮에 찍어 둔 사진이 아른거린다.

'이전 실험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 데이터만 숨기면 모든게 완벽하지 않을까? 교수님에겐 비밀로 하고 그냥 덮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지만 혹여라도 다른 연구자들이 알게된다면...?'

실패에 대한 깊은 생각은 악효과를 낳는다.

"잠깐, 난 과학자야" 라고 외치며 일어나 앉는다. "과학"이라는 단어에는 "양심"이라는 의미가 깊이 배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다시 눕는다. 눈을 감으니 과학자라는 이름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곤 했던 대학시절이 떠오른다. 과학도라는, 초라하지만 소박한 호명을 과학자로 바꾸기 위해 난 이곳에 서있는게 아닌가?

"그래, 졸업은 해야지"

실험이야 어떻게 되든 시간이 지나면 그 뿐인 것이다. 마음속에 안정이 밀려온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순간 한무리의 신경호르몬이 좌뇌 신경세포의 한 Module을 자극했다. 처음엔 매우 작은 신호로 출발한 그 자극은 이내 Positive Feedback의 소용돌이를 이루며 하나의 거대한 신호가 되었다. 해마 깊숙히 자리잡은 탓에 한동안 잊었던 기억이 이내 반응했고 곧 좌뇌의 한 부위로 그 기억을 끄집어 낸다.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호지자불여락지자)

오래전에 과학하는 자세로 삼고자 다짐했던 그 문장이다. 운동신경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조용한 미소가 되어 얼굴근육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미소와 함께 정신이 깨어난다.

"이봐, 이봐. 너. 즐기고 있었나?"

미소는 곧 커다란 웃음소리로 바뀌었다.

"이봐. 보라구. 재미있잖아? 도전할 거리가 생긴거라구. 즐겨봐. 이건 놀이야"

이럴 땐 세네카가 말했던 "생명이 있는 한, 사람은 무엇인가 바랄 수 있다. "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 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StephenJayGould가 좋아하던 말 "과학은 예술이다" 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얼마나 많은 과학자가 자신의 작업을 예술이라고 느끼겠는가? 모든 사람이 해탈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이름 없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가 마음에 평화를 건낸다.

"나는 과학도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과학도들의 이야기란, 인간의 원초적인 호기심과 순수한 정열을 나이를 먹고서도 잃지 않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이며, 때로는 시처럼 내 가슴 속에서 나를 이끄는 삶의 동력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모니터 앞에서 인터넷을 뒤적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은 곳이 이곳이었다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테지...

2002년 다시 마법의가을을 맞이한 김우재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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