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
영후는 히딩크 국가대표팀 감독의 비판적 지지자이다. 부임 초기때부터 그를 지지했다. 그가 한국 대표팀의 감독으로 있었던 동안 그는 한국 축구에 한 획을 그었다. 히딩크 감독은 세계 축구의 변방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약간의 장점들 만으로 변화를 모색해 오던 한국 축구를 세계 선진 축구의 흐름에 편승 시켰다. 우리는 더 이상 한발 쳐져서 외롭게 막아내는 스위퍼 홍명보를 보지 않고, 팀 전체가 유기적인 토탈사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축구를 볼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투박한 측면 돌파에 의존하지 않고 상대와 중앙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 그리고 주도권 다툼에서 승리하면 게임을 지배한다. 그는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푸른눈의 이방인으로서 사회 곳곳에 산재한 '낡은 한국적 시스템' 을 거부하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있다. 비록 축구에 한정된 효과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도 히딩크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당신들이 하루 하루 조급해 하는 동안, 나는 올해 6월을 준비해왔다. - (MBC 다큐멘터리에서 히딩크의 말)
이정호는 히딩크와 같은 의식을 지닌 사람이 국내에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회의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사람이다. 그가 우리나라 축구팀을 4강에 올려놓은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세대교체를 무리없이 이끈 것도 사실이지만, 세대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게 하고, 생각하는 축구를 하게 하고, 스포츠과학을 도입하고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영후님 같은 분이 지속적으로 지지해 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히딩크를 포용한 계기로 하여 깡과 오기를 넘어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의 사회를 바란다.
이 글을 쓴 지 얼마되지도 않아 국가대표팀이 사고를 쳤다. 이런 유럽의 키쟁이들을 상대로 4대 1승이라니... 흠 위의 글에 첨언이 불가피하다. 외부의 지적 충격은 항상 필요하다. 세계의 지성인들을 한국에 많이 부를 필요가 있다. 히딩크는 지와 덕을 용을 갖춘 보기 드문 사람이다. 현 시대에 지도자가 부가적으로 가져야 할 쇼맨쉽과 창의력과 언어구사력까지 적절하다. 그가 선수들을 바라보는 눈길은 아름답다. 이거 참... 그나저나 반드시 이기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든 스코틀랜드 감독은 X됐다.(참고로 히딩크의 출사표는 전력평가이다.) 다시 한번 히딩크를 주목하며 --이정호
이 효과(?)란 것이 일시점에 그치면 안된다. 장기간의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제갈공명 하나론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제갈공명이라면 자기와 똑같은 클론을 만들어야한다. 그의 능력이 어떤가를 파헤치고 그것이 다음 사람에게 전달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한다. 히딩크는 네델란드 사람이다. 그가 아무리 우리나라를 좋아한다해도 결국은 몸값을 유지보수하는 인적자원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를 클론화시킬 대체품을 요구한다. 분명 그는 본보기가 되었다. 그는 좋은 투터리얼이다. 하지만 자습서는 자습을 해야만 자습서이다. --rururara
카더라통신에 의하면 히딩크감독이 성공할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한국어를 잘 모르기때문"이라나.신문과 방송에서 뭐라고 욕을 해대든 무슨말인지를 모르니까 그냥 생각대로 쭉 밀고나갈수 있었다나...--황원정
bloodlust는 축구를 싫어하지만 히딩크의 업적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생각해본 적이 많다. bloodlust가 생각하는 히딩크효과란 '한일전을 개무시한 것'이다. 여태까지 한국축구가 그 투자비용에 비해 큰 효과를 내지 못하였던 것은 '한일전'이라는 동네잔치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고 '일본을 이기는 축구'에 급급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전국구 깡패가 되려면 전국구적으로 놀아야 하는 법. 전국구로 진출하는 것보다 조그만 깡촌에서 죽도록 미워하는 놈 하나 때려주고 기뻐하면서, 곧 전국구 깡패가 될 것처럼 뻐겨왔던 것이 한국 축구의 과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축구를 하지 않은 것이 히딩크였다. bloodlust가 조사해본 바로는 히딩크는 한일전을 한 차례도 치르지 않았다. 과잉해석일지는 모르지만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