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 Este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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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자신을 많이 좋아하고 자신의 행동과 능력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는 자세. 자존감 또는 자신감.

높은 Self Esteem을 가지는 것이 인간의 복지에 필수적이고 반대로 낮은 Self Esteem은 각종 범죄나 사회악 그리고 일탈적 행위들의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왔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낮은/높은 Self Esteem의 효과와 관련된 연구들과 페이퍼가 넘쳐나고 사회적으로는 학교마다 재활원마다 Self Esteem을 고취시키는 프로그램들이 범람했다. 즉 "네가 자신감이 적을수록 무엇이든 더 잘 못하는 것이고, 자신감이 많을수록 무엇이든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해서.

그런데 Self Esteem을 높이려는 프로그램들의 효과를 살펴본 결과, 이 Self Esteem이 "혹시라도" 각종 범죄와 일탈들의 '범인'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원인성이 너무 과장된 나머지 Self Esteem을 높인다고 해서 '치료'가 되지는 않을 수 있음이 간과되어왔다는 지적이 일었다. 즉, Self Esteem이 낮다고해서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특히 위해한 인간이라고 해석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 (따라서 무작정 Self Esteem을 높이려는 노력들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

가령, 낮은 Self Esteem이 형편없는 학업성적의 원인도 아니며 Self Esteem이 낮은 사람도 일상생활에서 Self Esteem이 높은 사람 '못지않게', 사실 많은 경우 더욱더 많이 노력하기때문에 종종 '더 잘'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오히려 Self Esteem이 높은 사람들이 더욱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도.

그래서 최근에 들어서는 이제까지의 therapy방식들, 즉 무작정 자기자신을 칭찬하고 자기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는(i feel good about myself) 말을 수십번씩 암송하며 자기암시를 하는 식의 치료방식이 Self Esteem 관련한 부적절한 therapy방법이 아닌가 하는 지적들까지 있었단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단순하지만 실제적인 '행동'들(예: gardening)을 무조건 행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느끼게 하는 방법들, 혹은 무조건 자신을 잘났다고 좋게만 자꾸 생각하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느끼고 바라보게 하려는 방법들, 혹은 자기자신에 대한 개별적인 자신감만 부추기는 방향이 아니라 상대방(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방법들이 더 건강한 방향이 아니겠는가하는 의의에서 제기되어 행해지는 곳들이 있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고도 있다고 한다.

Self Esteem, 이것은 마치 하나의 유사종교처럼, 현대사회, 특히 미국사회를 규정하고 한정짓는 전통 속에 뿌리깊이 엮여있다. 자신의 '가치'를 꼭 잴 필요없이 '자신 혹은 자아 (the self)'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자아'와 '가치'라는 두 개의 개별 개념들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문화적 개념이 된 채로 꼭 함께 붙어다녀야하는가. 최근 이런 문제제기들을 접했다.

범람하는 자기계발 서적들, Self-Help 서적들, 그리고 수많은 자기계발 프로그램들 속에서 보이는, 신념을 규정짓는 언어의 힘 역시 이러한 문화에 한몫을 하고 있는 듯도 하다. "모든 것은 개선되기 위해서 존재하며 그렇지못한 것은 가치가 없다"는 신념을 바탕에 깔고서말이다. 이런 문화 속에선 '자아(self)' 역시 마찬가지로 '개선'되고 '향상'되어야할 대상으로서 인식되고 존재하는 것같다. Self Esteem은 서구문명의 승리를 가져왔음과 동시에 이러한 강박적인 문화를 양산한 측면도 있지는 않을까.


우산님 말씀대로 self-esteem은 mental health의 중요한 개념으로 서구에선 이미 자리를 잡아버렸지요. 가장 압축된 표현으로 "social vaccine"이란 말만큼 자아존중감을 표현하는 말도 없을 듯합니다. 이 말이 갖는 사회적 영향과 함의를 생각하는 것 못지 않게 생각해 볼 중요한 문제는 self-actualization이나 self-worth, self-respect 같은 self에 대한 강조 자체가 이미 서구의 개인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음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self help를 위한 도구들이나 개념들의 암묵적 전제는 간과된 채 self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 또는 실현할 것인지를 말한다는 그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한국(동양)은 흔히 집단주의 문화권이라 분류됩니다만, 사실 이런 좁은(!) 틀과는 무관하게 서구적 개인주의(이를테면, Triandis가 강조한 미국의 "횡적 개인주의") 전통과 사뭇 다른 문화권인 것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말입니다만)우리 사회에서 '나'보다는 '우리'가 강조된다는 경험적 사실들이 다수 존재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서구권 문화에는 "자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것이 구성되는 방식과 기능, 가치가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self-esteem에 대한 서구와 같은 열광이 우리에게는 다른 문제로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니 전혀 다른 형태로 '문제시'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산님이 마지막에 지적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겠지요.)

참고 삼아 덧붙이면,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기존의 획일적(서구 편향적) self-concept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드문드문 발표되고 있는데, Markus와 Kitayama(1991)가 쓴 <Culture & the Self: Implications for cognition, emotion, & motivation>이란 논문에서는 서구권과 동양권의 self concept의 차이를 independent와 interdependent self라는 개념으로 나누어 개관하고 있습니다. 또 서구의 이상적 자아관이 비서구문화권에서는(위의 개념을 빌어 말하면 interdependent selves한테는) 그 자체로 억압적인 방식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서구에서의 self가 어떻게 심리학적 개념의 핵으로 등극하게 되었는가를 꼼꼼히 짚어나간 Baumeister(1987)의 <How the self became a problem> 같은 논문은 매우 가치로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좁은 영역에 한정된 얘기긴 하지만, 심리학에서 self-esteem은 일반인을 위한 '자기개발(Self Help)'을 설명하기 위한 명목으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물론 심리학자들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개념간 조합하고 새로이 검증하는 많은(그중 다수는 소모적인) 논문을 생산해내고 있지만요.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그 유명한 A. Bandura의)과 같은 보다 task-specific하고 context-sensitive concept들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self-esteem의 모호함을 극복해보려고 하는 일군의 학자들도 있습니다만, self가 지니고 있는 서구편향적 개인주의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이상, self를 둘러싼 기존의 논의들(특히 self-esteem 같이 '겁없는' 개념들)은 그다지 발전을 보일 것 같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누

진짜 비누님 말씀대로 self-esteem은 이제는 심리학에서의 학문적인 개념으로 연구되기보다는 therapy의 명목으로 더 많이 발전되고 있다고해요. 미국 중산층이 자신의 Self Esteem을 높이는 therapy나 프로그램에 쏟는 돈이 장난이 아니라는군요..-_- 그래서 self esteem이랑 therapy program 업계(?)가 상조적으로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고 하고 있다고나할까. 역시 개인주의문화랑 관련이 많아서 그렇겠지요.

음..집단주의문화인 한국에서는 그게 다르게 나타날까요? 집단주의적 성향(이 용어가 적합치않다면 개인주의적 성향이 서구보다 약하다 정도로)의 문제보다는 한국에서는 therapy에 대한 인식이 서구에 비해 유연하지않기 때문에(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영향을 좀 받을 것같다는 생각은 드네요. 그런데 therapy랑 무관하게 한국에서도 자기계발(self help) 문화가 발달하는 것은 서구의 개인주의(나아가 자본주의)의 영향하고 뗄레야 뗄 수가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자기효능성(self efficacy)은 초기의 반두라의 실험이나 개념에서는 비판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이 된 것같습니다. 가령, 정치참여에서의 자기효능성같은 것은 냉소주의랑 대비되는 긍정적인 참여의욕 같은 것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개념으로, 외재적/내재적 효능성 등으로 다양한 차원에서 개념분화되기도 하는 등 '개인주의'와 별 관련없는 방향으로도 꽤나 유용하게 발전해온 측면도 있는 것같아요.

여튼 self esteem 관련해서는, therapy의 문제는 별개라고 하더라도, 건강한 자기계발의 방향이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더라고요. '가치있는' self esteem, '가치없는(혹은 가치가 적은)' self esteem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개선과 발전의 여지가 없으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방향이 아닌, 높은 self esteem은 정상이고 무조건 좋은 것이고 낮은 self esteem은 비정상이며 부끄러워해야하고 고쳐져야만 한다고 무의식 중에 압박하는 방향이 아닌, 그리고 너무 단순도식적으로, 너무 파편화된 의식으로 무조건 "나는 좋은 애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나는 잘났다."를 외우면서 암시하는 방향이 아닌, 또다른 건강한 어떤 방향이 있지않을까 머 이런 것에 대한 모색이랄까.. --우산

네, 우산님 말씀에 크게 공감하고 있고 평소 제가 갖고 있던 생각이기도 합니다. 그 부분이 정말 중요한 문제라 여기구요. ^^ 저는 단지 아주 좁은 측면에서 self esteem의 개념상 한계랄까, 그런 걸 더해본 것뿐이지요.

조금 사족을 달자면(^^;), 최근 들어 한국이 집단주의 문화가 아니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고, 일본은 이미 더 전부터 집단주의라는 그런 성긴 이분법적 틀로 설명되지 않고 있는데, 사실 Triandis의 개념틀엔 문제가 (엄청!)많지요. 그럼에도, 우산님 지적대로 근대화가 진행된 국가일수록 개인주의적 특성을 보이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한 그러면서 매우 복잡한, 때론 미묘해서 무시할 수 있을 만한 차이들이 생겨나구요.

그런 비슷한 양상으로 나가면서도 같아질 수 없는 차이에 주목해서 보자면, 자기계발이 미국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지는 않을 듯하다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사실 여기에는, 한국이란 곳이 심리학을 펼치기엔 얼마나 불모의 땅인가를 절감했던 저의 개인적인 한탄도 녹아 있습니다. 흑~). 한국에서 therapy가 공공연하지 않은 것부터가 저는 self의 개념 차이(더 나아가서 mind가 구성되는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헐리우드에서는 그들이 찾는 상담가의 이름을 보고 배우의 유명세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이 떠돌 정도라고 합니다(상담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으면 인기인도 아니라고 하구요). 아마, 한국 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상상하려면 몇 년으로도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들에겐 self를 꺼내 보이고 "self 전문가(심리학자)"와 의논을 하는 것이 마치 헤어 전문가를 찾아가서 머리를 다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인데, 아마 하나의 entity로서 self를 이해하는 그들의 자아관 때문이겠지요. 다른 문화권에서는 많은 행동의 레퍼런스가 상황이나 관계에 더욱 초점이 맞춰지는 반면, 이들은 다름아닌 self가 레퍼런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self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문화권, 우리의 예를 든다면, 미국에서처럼 therapy가 일반화되려면 우선 그에 대한 문턱부터 낮아져야 할텐데, 그걸 어렵게 하는 것이 바로 기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아닌가 싶어요. 다시 말하면, therapy에 대한 '요청'을 부끄럽거나 쉬쉬해야 할 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한국인의 자아관이 레퍼런스로서의 self가 아니라 agent(!)로서의 자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비근한 예로 전자가 "나를 찾는다"고 할 때 후자는 "마음을 먹는다" 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self가 mind의 핵이 되는 이런 개인주의 전통 덕분에 미국이 심리학의 종주국이 되었다고 역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지요. 그러나, 대중적인 self help의 확산이라는 그 현상만큼은 저도 문화적이라기 보다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금 맥락을 달리해서)푸코의 통찰이 self help에서도 빛나고 있다고 생각하구요. :)

아참,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말을 잊은 것 같네요. 아마도 "아직"이라는 말이 그것일텐데, 그건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차이에 대해 '아직'이라는 단서가 붙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 지식이 보잘 것 없기 때문에 '아직'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생각도 더 많이 해보아야 할 부분이고 연구도 거의 없는, 문제의식도 이제 갓 생겨나기 시작한 영역이라는 초라한 변명을 남기고 저는 이만 공부하러 가보겠습니다. ^_^; --비누

근데 정말이지 저도 therapy에 관해서는 아직 생각이나 견해가 확실히 정립이 되지않아서 좀..그래요.. 정신적인 고통이 있을 때 다른 사람과 (그것도 전문가라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와중에 고통이 가라앉고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나쁜 것같지는 않은데사실 미국에서는 어찌나 활성화돼있는지, 학교마다 있는 카운슬러 센터에는 애들이 애인이랑 헤어지고나서 마음이 상처가 났을 때도 가서 상담하고, 집에 불이 나서 재해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이 있을 때도 상담하고 등등 "상담"이라는 것이 상당히 일상화돼있으니까요. 해본 이들의 말에 따르면 별거 아닌 일들에도 상담을 하는 게 의외로 도움이 꽤 많이 된다네요, 하긴 그러니까들 그렇게들 열심히 하겠지만서도.. 그리고 혼자서만 오랜시간 앓으며 다른 이들과 대화를 청하지않고 고립돼 있으면 자살에 이를 수도 있고 몹시 해로우니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진전이고 다행인 거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이거든요 그런데 이 정신과 상담이라는 게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많은 경우 약물치료를 겸하잖아요. 최근에 가장 잘 나간다는, 그리고 Bobos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항우울증 치료제 같은 것들, 리탈린이나 프로작, 졸로프 같은 것들은(엄청 비싸대요 viagra같은 prescription drugs니까..-_-;) 정말 효과가 엄청나서 우울증을 확실히 줄일 뿐만 아니라 효과가 하도 크니까 그 사후의 지속효과에 대해서도 우려가 조금씩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우울"이라는 것도 인간본성(human nature)의 아주 기본적인 상태의 하나이고 자연스러운 감정상태의 하나일 수 있는데 이것이 점점 병리화되고 또 치료받아야한다는 것을 일상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우울"을 전혀 느끼지않는 상태가 건강한 모습인 것으로 인간을 바꾸어놓고 나아가 저마다 다를 수 있는 인간의 감성적 특성을 획일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며 "인간본성에 미래가 있는가"라는 얘기를 하더라는...(이부분은 사회생물학의 주장에 대한 논의나 바이오테크놀로지의 개발방향성 논의와도 연관이 되더군요..). 그런데, 그래도 역시 '고립'된 상태에서 혼자서 '보통이상의' 고통을 받는 줄도 모르고 지속적으로 고통받는 상태란 정말 위험한 것임에 분명하고, '상담'받는 것 자체만으로 '정신병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치료에 더 도움이 안되고 안좋겠지요. 근데 또 단순한 일상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상담'하기 위해 전문가를 자꾸만 찾는다는 것은 개인의 사회적 관계가 활성화되어있지못하고 현대로 올수록 고립될 여지가 더 많기 때문에, 즉 개인의 인간관계-사회활동참여가 건강하지못한 경향을 반영하는 면도 있는 것같으니까 그런 쪽을 활성화하는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는 나아질 것이라고도 보이기는 해요.. 하지만 역시 어떻게 해도 그런 것이 불가능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전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따로 있는 거겠지요. 여튼, therapy와 마음의 문제는 관련된 문제들이 구석구석에 참 많아서인지 생각이 명확한 가치를 가지고 깔끔하게 정립이 잘 안된다는...-_-; --우산


See also SelfHelp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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