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무슨동물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오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기린"이라고.
노천명이었나? 사슴을 일컬어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고 했는데 기린은 사슴보다도 배는 더 길어서 슬프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동물원에 가게되면, 언제나 기린이 어디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어떤 동물들은 날을 잘 못 택해 가면 우리가 비어있거나 해서 헛탕을 치게 만들지만 기린들은 웬만해서는 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후가 썩 맞지 않을텐데도, 잘 견디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나도 한겨울엔 동물원엘 안갔어...^^;)
기린은 내가 보기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재미있다. 귀옆에 달린 작은 뿔같이 생긴 돌출물이나, 길디긴 속눈썹, 왕방울같은 순한눈, 우물거리는 입, 시선을 한참 훑어내려야 눈에 다 들어오는 긴 목, 가파른 등, 가늘은 다리, 그린듯한 얼룩... 움직임은 언제나 슬로우 모션. 나는 기린들이 한번도 급하게 우리안을 배회하거나 빠르게 요동치는 걸 본 적이 없다. 언제나 그 길고 큰 덩치로 슬슬다닌다. 울타리안에 있는 것만을 봐서일까? 얘네들도 아프리카 초원에서는 날쌔게 처신할 때가 실은 있는 것일까?
간혹 가다가 동물의 왕국을 보면 그 체형구조로, 할 건 다한다는 게 또 기린의 신기한 면이다. 다리를 주악 펼치고(접은 상다리 펴듯이) 목을 척 내려서 웅덩이에 있는 물도 마시고, 급할땐 또 제법 속력을 내어 달리기도 한다... 이 동물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저 녀석들은 진화의 결과로 저렇게 된 것일까? 조물주의 조화로 저렇게 빚어진 걸까? 어느쪽이라 하더라도 참 공교롭고 오묘하구나 싶어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Felix
아주 어릴적부터 지니고 있는 동물모양 브로우치가 있는데, 기린모양이다. 상자속에 묻혀있다가, 뒤늦은 소지품정리중에 나왔다. 책상위에는 나무로 깎은 기린모양의 토속장식물도 있다. 길죽하게 특징만 살린 소박한 나무인형인데, 퍽 좋아하는 것이다. 이 나무 장식물을 보면, 기린이 꼭 긴 바지의 얼룩무늬예복을 갖춰입고 다리를 모은 말쑥한 신사같이 보인다.
기린이 더욱 슬픈 이유는 그 긴 목 때문에 평생 죽을 때까지 바닥에 눕거나 업드리지 못한 답니다. 잠도 서서 잘 수 밖에 없다는군요.--zephid
평생 서있는데도 다리가 그렇게 가늘수있다니... @.@ 한번도 누워보지 못했다면, 그냥 그러려니 살겠군요. 누울수 있는 동물이 못누우면 힘들겠지만 평생 못 눕는다니, 누울 생각은 안하겠군요...
기린은 하루에 십분만 자도 너끈하다고 그러더군요. 부럽습니다.
듣고보니 정말 슬픈짐승인가보네. 그래서인가? 멀쑥하니 굼떠가지고는 아무도 해치지 못할것같은 모습이 제겐 인상적인가봐요. 그렇게 묘하게 생기고, 살아가기도 불편할텐데, 여지껏 살아남은 거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전 동물원에서 기린을 발견할 때마다 상당히 초현실적인 느낌을 받아요. 쟤네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참 낯설거든요. 마치 공룡을 보는 것 처럼 낯설답니다... 그리고 그 존재에 연민이 간다고나. --Felix
See also 내가사랑하는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