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기차위에중립은없다

FrontPage|FindPage|TitleIndex|RecentChanges| UserPreferences P RSS

Chanhee구루무소유MBTI주기도문성공하는사람들의습관 달리는기차위에중립은없다

[ISBN-8988105575]

  • 평가
    • 홍차중독: :) :) :) :) HowardZinn 의 자전적 역사 에쎄이, 자신의 운동과정과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그의 삶은 20세기 후반의 미국 반전, 반인종차별 운동의 역사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오만한제국에서의 내용이 몇몇 곳에서 등장한다.

정리 및 발췌

{{|
사람들은 경험이 풍부하다. 그들은 변화를 바라지만 무력하고 고독하다고 느끼며, 다른 것들보다 웃자란 잔디 잎사귀가 되어 잘려나가길 원치 않는다. 다른 누군가가 첫번째나 두 번째로 움직여 신호를 보내길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어떤 시기에서는, 대담한 사람들이 나타나 위험을 무릅쓰고 첫번째로 움직이고 다른 이들이 그들이 잘려나가지 않도록 신속하게 뒤따르게 된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그러한 첫 번째 움직임을 만들 수도 있다.

이는 터무니 없는 공상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에, 심지어 아주 가까운 과거에도 거듭해서 이루어진 변화의 방식이다. 매일매일 우리에게 쏟아지는 사진과 이야기들의 홍수에, 현재에 너무 압도당한 나머지 우리가 희망을 잃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p.19)

조지아 주 포사이스 출신의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저처럼 조지아 주의 소도시 출신이라고 해봅시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태어난 날이 바로 처음 편견과 맞닥뜨리는 때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제 부모님은 병원의 하나뿐인 인큐베이터가 '백인 전용'이라는 이유만으로 갓 태어난 쌍둥이가 죽어 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p.31)

...이는 미국 저널리즘(아마도 사회 비평 전반)의 공통된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행위자나 개인들에 피상적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깊은 분석을 할 경우 드러나게 될 사실 - 정부 그자체, 사실상의 정치체제의 실패 - 을 감추는 것이다. (p.72)

의심의 여지없이 어떤 나라의 사법체제든 정치적 반대파에게는 커다란 역경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가 아니며, 순응을 강요하는 압력이 아무리 강력하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은 불의라고 간주하는 것에 대항하여 감히 자신들의 독립을 선포하게 된다. 그러한 역사적 가능성에 희망이 존대한다. (p.223)

훌륭한 교육은 책을 통한 가르침과 사회적 행동 참여를 결합시키는 것이며, 그 둘은 서로 서로를 풍부하게 만든다고 나는 줄곧 주장했다. 나는, 지식의 축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혹적인 것이지만, 세계의 숱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매혹을 경험할 기회가 없는 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기를 바랬다. (p.281)

우리에겐 지금 이순간에 보는 것을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정치권력은, 그것이 아무리 엄청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허약하다.(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소심한지를 유념하라).......혁명적 변화는 한 차례의 격변의 순간(끄런 순간들을 조심하라!)으로서가 아니라 끝없는 놀람의 연속, 보다 좋은 사회를 향한 지그재그꼴의 움직임으로 오는 것이다...............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이 복잡한 역사에서 우리가 강조하는 쪽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게 될것이다. .......... 그리고 아무리 적은 것일지라도 우리가 행동을 한다면,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미래는 현재들의 무한한 연속이며, 인간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대로,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될 수 있다. (p.289)


- 미디어나 다른 곳에서 객관성과 학문성이 "해롭고 사실을 오도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는 놀라운 언급을 하신 적이 있지요?

그에 관해서는 두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첫째, 그건 가능하지 않습니다. 둘째, 바람직하지도 않고요. 가능하지 않다는 건 모든 역사는 무한한 수의 사실들에서 취사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택을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자신의 생각하기에 중요한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정보의 선택자로서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어느 족이든 이미 편향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갠관성과 학문성이 불가능한 겁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객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건 가장 나쁜 짓이죠. 물론 우린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어떤 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자신들의 배경이 무엇인지에 관해 말해야 하며, 자신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하여 역사를 읽는 젊은이들과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사료에만 의지하지 않고 많은 사료를 찾아보도록 미리 알려줘야 합니다. 따라서 객관적인 건 불가능하며 만약 가능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시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역사, 다시 말해 객관적이지 않은 역사가 필요합니다. 인간적 가치, 인도적 가치, 형제애와 마재애, 평화, 정의, 평등의 가치를 높이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제가 가장 가까이 이용할 수 있는 건 독립선언서에서 표명된 가치들입니다. 생명과 자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권리와 평등이 그것이지요.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역사가들이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적극적으로 공표해야 할 가치입니다. 그렇게 하려고 중요한 일들을 왜곡하거나 생략할 필요도 없어요. 만약 역사가들이 이런 가치들을 염두에 둔다면, 역사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하고 전쟁을 없애며 모든 형태의 정의를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를 자라나게 만들 그런 일들을 역사에서 강조할 겁니다. (p.299)


|}}


"; if (isset($options[timer])) print $menu.$banner."
".$options[timer]->Write()."
"; else print $menu.$banner."
".$time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