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세계와 문학> 100호 기념 특별 기획중 '산해경 역주' 의 정재서 교수와 보스톤 칼리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지냈던 김주환 교수의(지금은 연세대에 교수로 계신다는군요.) 대담중 일부입니다. 아래는 모두 김주환 교수의 의견입니다. --영후
{{| 지금은 역사를 크게 봐서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로 나누지 않습니까? 선사 시대는 문자로 된 기록이 없는 때고, 인류가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역사 시대가 시작되지요. 하지만 저는 디지털 텍스트로 역사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아는 바의 역사는 끝이다, 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일단 시간성의 문제부터 보죠. 우리는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 대상이 변해 가는 정도에 따라서 <시간의 감각sense of time>을 느낍니다. 칸트가 얘기했듯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직접적 경험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죠.
모든 것은 변화 가능성과 견고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죠. 상대적으로 다를 뿐이지. 우리가 만나는 사람도 10년이 지나면 변하니깐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시간으 느낄 수 있는 건데, 디지털 텍스트는 시간이 가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게 제 기본 전제입니다. 왜냐하면 디지털 텍스트는 그림, 사운드, 동영상 할 것 없이 완벽한 복제성을 갖기 때문에 원본과 복사본의 구분이 없습니다. 30년 전 것을 카피하면 30년 전 것이 두개 생기는 거에요. 하지만 아날로그 텍스트는 30년 전 것을 복제하면 하나는 원본이고, 하나는 복제한 것이지요.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는 거죠.
만약 30세기에서 역사를 돌이켜보면 20세기부터 큰 획을 하나 그을 수 있을 겁니다. 30세기에서 보면 15세기에 세종대왕이 어떤 목소리로 얘기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악센트, 어떤 사투리로 얘기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어요. 하지만 20세기 이후부터는 생생하게 그 기록이 남을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얘기하고 김정일과 만나서 어떻게 악수하고, 그런 기록이 사라지지 않을 거거든요. 디지털 정보로, 동영상으로 그대로 남아서 카피되고 카피되어서 천년 뒤에도 생생할 거고요. 30세기에 보면 이 시대는 삶의 자료가 남아 있죠. 20세기엔 이미자가 노래하고 21세기엔 H.O.T가 노래하고 하다가 갑자기 19세기부터 깜깜한 거에요. 목소리를 들을수도 없고. 거의 선사 시대 수준으로 깜깜하게 느껴질 거에요. 물론 역사가 없어진다는건 아니고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구분하는것 이상의 두꺼운 선을 여기다 분명히 그을 거라는 얘기죠. |}}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세기가 지난 후에도 그 디지탈정보를 읽어들일 수 있을런지 의문입니다. 불과 10년전의 아스키코드(아래아 한글도 아닌!!!)로 작성된 문서를 지금은 읽어들일 수 조차 없습니다.
이유는 지금 제게 애플 컴퓨터도 없고 애플용 FDD도 없기 때문입니다. 10세기 후에도 아니 10년 후에도 지금 우리가 디지탈 정보를 저장한 것을 읽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i디어펍
이유는 지금 제게 애플 컴퓨터도 없고 애플용 FDD도 없기 때문입니다. 10세기 후에도 아니 10년 후에도 지금 우리가 디지탈 정보를 저장한 것을 읽을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i디어펍
CowBoyBebop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는군요. Beta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 마치 유적발굴이라도 하듯 박물관을 뒤져서 플레이어를 찾아오죠. 하지만 다행인 것은 비트로 기록되는 것들은 보통 아날로그로 된 미디어에 담기게 되고, 그것의 소실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죠.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하는 인간들은 재생방법을 만들게 될겁니다. --DrFeel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