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이가 死語를 포함, 다양한 "온갖" 언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의 전공은 철학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스승은 그를 두고 정말 호되게 야단쳤다.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정말 어중이떠중이 밖에 되질 않는다고.
단지 호기에 의해, 멋 내기 위해 이것 저것 찌르다 보면 잡다한지식 밖에 되질 못한다. 밥을 하려면 땔감을 모으고, 불을 지피고, 또 지긋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잡종적지식은 최소 어느 하나에 깊이 있게 천착한 연후에나 가능하다. 그 이전에는 사치이고, 허영일 수 있다. 잡종적지식을 얻으려다 잡다한지식만 갖추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심각하게 동의를 표합니다.
아직 잡다한지식 과 잡종적지식 의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 단어들의 의미는 알겠는데, 누군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잡다한 지식을 많이 가진 것인지 잡종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누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거죠. 사실 그사람보다 좀 높은 경지에 올라있는 사람이 보면 빤히 보입니다. 근데 그사람보다 많이/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뭐가 뭔지 판단할 수가 없겠죠. -- JikhanJung
잡다한지식은 표현 자체에서 암시되듯 사람을 산만하며 과도하게 수용적으로 만들어 결국엔 행동력을 약화시키는 반면, 잡종적지식은 보다 기민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
르네상스맨항목에서 보게 되면, 아다시피, 르네상스맨은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를 젠척 흉내낼 수 있는 무리가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너무 쉽다. 부모가 책을 자주 사다주고, 아이가 좀 왕따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왕성한 에너지가 발산되지 않을 때, 지적 허영심의 극치가 발휘하는 에너지에 의해서 언제라도 가능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진정한 너비와 깊이를 바로가진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다름아닌 지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나 순수한 지적 쾌략 지향성을 가져야만 하거나 순수한 '학적인 정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어떤 이유로든 불순한 부분이 커지면, 그 지식은 잡다한지식으로 변화할 가능성에 가닿을 수 있다.--Roman
잡다한지식조차도, 때로는 유용하다. 그러나 분명히, 쓸데없는 과정으로 이끌거나, 의미없는 사유와 행동으로 이끌 수 있는 것임에도 분명하다.
남독을 일삼아서 서의 책과 동의 책을 읽는 것을 너무 오랜세월 반복하다보면 뒤쳐져 있는 당신과 어느샌가 만나게 될 것이다.(물론, 소설가나 만화가, 엔터테이너 쪽의 사람들에겐, 조금은 다른 효과를 발휘하기는 한다. 적당한 조미료만으로 먹음직스러워지는 음식과도 같은 것이다.) 만약 제임스 조이스가 의사 공부를 완벽하다시피 제대로 해서 저명한 의사가 되었다면, "율리시스"라는 내과의적 지식을 형식적 체계로 한 소설같은 것은 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이나 만화라는 장르에 투입된 수많은 지식적 요소들은 솔직히 부정확하고 어딘가 극화 상의 진행에 걸맞도록 그 극화 내의 세계에 꼭맞는 대상, 도구가 되는 과정상에서 실제의 지식과는 다른 것으로 돌변하게 되곤한다. 정확한 고증을 거칠 수 있더라도, 그곳에는 어딘가 미진한 부분, 왜곡된 부분이 남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잡다한지식은 정확성과는 다른 기준을 갖고, 창작에 의한 세계와 사물을, 그 지식과 연관하여 새롭게 창조해낸다. 같은 발상이라도 정밀, 정확성을 중시하는 기술과 정보가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소설가나 만화가가 실제의 지식이나 대상 사물과 닮지 않은 것을 닮은양 소개할 때, 소정의 정보를 확실하게나마 쥔 관객은 '옥의 티'라는 것을 들이밀게 될 수 가 있다. 그것은 이른바 창작 과정 속에 필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오류이다. 비평이 창작을 앞서가고, 관객의 권력이 창작물을 제어하는 시대에 이르러서 앞으로 이러한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비평가는 창작분야에 뛰어들 수 있는 무언가가 결여된 존재들이기 마련이고, 관객들은 문화 산물을 소비하는 쪽이지, 확실하게 생산에 참여하는 직접적인 주체가 되기에는 아직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기 마련이다. 적어도 어느부분까지는 왜곡이나 결여됨이 있어도, 그것이 창조자들로부터 창작의권리를 빼앗거나, 작품의 가치를 완전히 비하할 수 있는 칼자루를 비평가나 관객들의 손에 쥐어주는 것은 아니다. 욕조 속에 떼가 둥둥 떠다닌다고, 안의 아이까지 배수구로 흘려내려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o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