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와에프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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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수씨가 이장 소식지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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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6학년짜리 아들이 산에서 사슴벌레를 잡아왔다. 내가 보기에도 아주 크고 튼튼하게 생긴 놈이었다. 아들은 신이 나서 자기 친구들이 갖고 있는 사슴벌레와 싸움을 시켰다. 아들의 사슴벌레는 패배를 모르는 천하무적이었다. 그 놈은 자기반 아이들의 사슴벌레는 물론, 다른 반 아이들의 것까지 모두 물리쳐버리는 위력을 발휘하여 아들의 기세를 한껏 드높게 만들었다. 나중에 아들 친구에게 들은 말로는, 아들놈이 그 사슴벌레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 요새 아이들은 사슴벌레 싸움 한 판에 천 원씩 걸고 이긴 사람이 그 돈을 갖는 게임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 사슴벌레를 탐내는 중학생 형이 있어서 아들은 거금 삼 만원을 받고 팔았다고 했다.

아들은 사슴벌레를 찾아서 온 산을 다시 들쑤시고 다녔으나 그렇게 좋은 사슴벌레를 다시 잡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번에 잡은 사슴벌레는 덩치만 컸지 겁쟁인지라 그동안 벌어놓았던 돈을 야금야금 잃기 시작했나보다. 열 받은 아들이 드디어 인터넷에 들어가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는데 전문가 아저씨 조언 왈, 당분이 많은 과일을 충분히 먹이고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웬 놈이 톡 튀어나와 "아녜요. 에프킬라 한방이면 직방이에요."했다 한다. 그 즉시 아들은 약골인 사슴벌레에게 에프킬라를 뿌렸는데, 경상도 말로 "휘까닥 디비져" 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 반나절을 '디비져' 있더니 비실비실 정신을 차리더라나. 멜론에 사과에 배까지 듬뿍 먹여 기운을 차리게 했는데, 그 놈은 예전의 사슴벌레가 아니라 공격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연필을 물면 끝까지 잡아 뜯는 것이 여간 사납지 않더란다. 아들은 그 사슴벌레를 들고 나가, 복수혈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사슴벌레들이 공격 의사를 보이기도 전에 돌진하여 무자비하게 공격해, 상대 사슴벌레들이 공격다운 공격 한번 해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바람에 싸움을 중지시킬 수 밖에 없었던다. 그 뒤로는 아이들이 아들의 사슴벌레와 싸움 시키는 것을 회피하여 잃은 돈도 되찾지 못하고 오히려 사슴벌레에게 손가락을 물리는 바람에 고생만 했다한다. 한 성질 하는 우리 아들놈, 손가락을 물리고 가만있을 녀석이 아니어서 사슴벌레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더니 그만 죽어버렸단다.

허..., 참. 난 할 말을 잃었다. 요새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정서가 메마르며 더 거칠고 공격적으로 변한 이유가, 혹시 지금의 심각한 공해와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아들에게 부탁했다. "아들아! 아빠 얼굴에 에프킬라 한방만 뿌려주라." 아들놈이 어이없었던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 서예학원 보내줄라고 그래. 나도 좀 독해지려고." 내 직업이 워낙 겨울에는 한가하기도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일거리가 없어 부득이 아들의 학원을 봄까지 중지할 수 밖에 없었기에 마음이 아파서였다. 그런 내가 제 딴에는 안쓰러워 보였는지 녀석이 말을 돌렸다. 아들은 그 일이 있은 후 강화도에 있는 농장에서 사슴벌레를 분양받아 본격적인 사육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빠, 사슴벌레가 나를 알아본다. 내가 방에 들어가면 자기 집 상자를 바스락 거리며 긁어 소리를 내. 처음엔 우연인 줄 알았는데 언제든지 내가 방에 들어서면 소리를 내서 아는 척을 하걸랑. 밥 달라고 내는 소리하고 내 인기척에 아는 척하며 내는 소리가 전혀 달라 너무 신기해." 사슴벌레를 키우며 아이는 점차 차분해졌다. 나는 아들에게 사슴벌레를 키워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더니, 여름이 오면 산에다 놓아줄 것이라고 했다. 왜 힘들게 키워 산에 놓아 주느냐고 물었더니, 사슴벌레는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거라고 대답한다.

아이는 사슴벌레를 키우며 자연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들은 어느덧 방생의 묘미를 깨우치고 있었다. 아들은 자기가 내동댕이쳐 죽게 만든 사슴벌레에게 무척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슴벌레를 새끼 쳐서 산에 놓아 줄 것이라고 했다.

요새 아들놈은 사슴벌레 키우는 재미에 폭 빠져 있다. 어쩌다 집에서 담배를 피울라치면 사슴벌레 죽는다고 난리를 치며 분무기로 담뱃불을 꺼버리는 불효도 서슴지 않는다. 나는 그런 아들에게 애비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슴벌레 때문에 끄는 것이냐고 짐짓 야단이라도 칠라치면, 밉지 않는 눈을 흘기며 자기 방으로 건너가 사슴벌레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여다본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새로 꺼내 불을 붙이며 혼자 중얼거린다. "짜식 말야, 사슴벌레에 에프킬라 뿌릴 때는 언제이고 감히 애비 담뱃불을 꺼? 나쁜 놈 같으니라고... (중얼중얼)"

&''환경과 공동체를 생각하는 이장 소식지 2003년 2월호, (주)이장 미디어사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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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겁쟁이 사슴벌레에게 에프킬라를 뿌려주니 사나워졌다는 부분이 참 재밌군요. 자신에 대한 본능을 자극시켜서 공격적으로 바뀐것인가요 ? AnswerMe
신경계를 망가뜨린걸까요?
아무튼 무엇을 키워보는 것은 아이들 및 어른들의 정서함양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저도 어릴적에 나팔꽃을 매우 좋아해서 나팔꽃 싹을 캐와서 키웠던 기억이 나는군요. 나팔꽃 화분을 떨어뜨려 깨뜨렸던 적도 있었는데, 그 때 떨어지는 화분을 받으려다 손을 다친 기억도 나고... 그 덕분에 오른손을 다쳐서 짝궁이 매일 필기해주던 기억도 아련하고.. 하군요 ;) --아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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