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타할아버지의 편지 ¶
초등학교 3학년 말의 어린이들은 소위 초등학교에서의 "중학년"이며, "애"와 "어른"의 중간쯤에 있다고 스스로를 생각한다. 코를 찔찔 흘리는 1학년과 머리가 굵어 말 안 들어먹는 6학년 사이에 위치하는 그들은 1학년보다 많이 자랐고 6학년보다 덜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알 건 다 알고 모를 건 다 모른다.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때도 대개 이 때쯤이다.
초등학교 3학년 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나는 친구들과 크게 다퉜다.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마다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산타 할아버지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선물을 주는 것은 부모님이라고 말했다.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선물을 받아온 나는 그런 "거짓말"을 절대로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발칵 화를 내며 외쳤다. "그래, 알았어! 증거를 보여 주면 될 거 아냐!"
크리스마스 이브 밤 늦게,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산타 할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손바닥만한 카드에 빨간색 펜과 은색 반짝이풀로 나는 이렇게 썼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 늦게,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산타 할아버지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썼다. 손바닥만한 카드에 빨간색 펜과 은색 반짝이풀로 나는 이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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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께.
산타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산타 할아버지.
지구의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굉장히 바쁘시겠지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제 친구들이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요.
내일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답장을 해주세요.
지구의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려면 굉장히 바쁘시겠지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제 친구들이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요.
내일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답장을 해주세요.
상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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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트리에 카드를 옷핀으로 매달아 놓고서 나는 푹 잤다. 다음날 아침 나는 카드 뒷면에 매우 빨리 쓴 듯한 답장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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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야, 빨리 떠나야 하기 때문에 글씨가 엉망이다.
착한 사람 되어라.
그리고 훌륭한 사람 되어야해.
내년 크리스마스에 또 만나자.
상호야, 빨리 떠나야 하기 때문에 글씨가 엉망이다.
착한 사람 되어라.
그리고 훌륭한 사람 되어야해.
내년 크리스마스에 또 만나자.
산타 할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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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넘은 옛일이지만 나는 산타 할아버지의 답장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바빠서 흘려 썼다는 산타 할아버지의 글씨가 사실은 일부러 흘려 쓴 어머니의 글씨라는 것도, 매해 크리스마스마다 내가 원하는 선물을 주었던 산타 할아버지가 사실은 크리스마스에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물어보셨던 부모님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의 거짓말 덕분에 그 후로도 2년을 더 크리스마스의 환상을 가지고 있을 수 있었다.
때로는 거짓말이 참말보다 더 진실할 때가 있다. 산타 할아버지의 흘려 쓴 답장처럼. --irenchel
2. 산타클로스는 없다 ¶
{{| 얼마 전 여섯살짜리 어린이에게 "산타는 없다"고 가르친 호주의 한 교사가 해임됐다고 한다. 동심을 죽이는 자질 없는 교사에 대한 적절한 조치라는 생각이다. -- 동아일보에서 |}}
나는 어릴적부터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았다. 어른들이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줬다'라고 하거나, 텔레비젼에서 '산타클로스는 있다'는 내용의 영화를 방송해도 (이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연말이면 재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의 맘 한 구석에는 '그런 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입 밖으로 감히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왜,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이 알게되면 동심이 죽는다고들 생각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산타클로스와 동심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나라에 서구문명이 전해지기 훨씬 전에, 산타클로스라는 단어가 있기 훨씬 전에도 동심은 있었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아이에게도 동심은 있다. 산타클로스가 없어도 동심은 있다.
애시당초 산타클로스라는게 있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산타가 없다고 가르친 교사를 벌할 것이 아니라, 산타가 있다고 가르친 모든 매체와, 산타가 있다고 믿게 만든 주위의 어른들을 벌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산타클로스 자체만 거짓말일 뿐만 아니라, 산타클로스에 관련된 대부분의 얘기가 모두 거짓말이다. 얘를 들어 '산타클로스는 울면 선물을 주지 않는다', 혹은 '산타클로스는 착한 애들에게만 선물을 준다' 라는 거짓말이 그것이다. 이런 말을 듣는 애들 치고, 선물 못 받는 애들은 없다. 일년 중 얼마나 울었건, 얼마나 나쁜 짓을 일삼고 다녔건 (어린이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선물과는 상관이 없다. 선물은, 부모들이 얼마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느냐와 더 상관이 있는 것이다. 결국 집이 잘 살면 더 좋은 선물을 받고, 선물을 받으면 착한 아이라는 얘기라면, 부유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얘기가 되는 것 아닌가? 선악과 그에 따른 상벌을 왜 경제적인 부와 관련을 짓는가?
다른 한 얘기는 산타클로스와 관련되는 루돌프 사슴코 얘기다. 이 얘기는 악한 마음으로 가득차있다. 루돌프 코가 밝아서, 루돌프의 친구들은 루돌프를 왕따시킨다. 루돌프 코가 선생님(산타클로스)에게 인정을 받고 나자, 친구들은 서로 루돌프와 친해지려고 한다. 이 얼마나 악한 이야기인가? 결국 이 이야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능력있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 혹은 '무슨 짓을 해도 선생님께 잘 보여라'는, 동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는 아닌가?
나는 산타클로스에 대한 모든 거짓말을 어린이들에게 털어놓고, '사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순간 어린이들이 충격을 먹을지는 모르지만, 진실은 그 자체로 어린이들을 보호해줄 것이다. 어린이들은 환상이나 거짓말이 아닌 진실에 의해 동심을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Pion
3. 속고싶었는데 ¶
영화 '34번가의 기적'이었나, 어떤 옛날 영화에선가 산타노릇하는 할아버지의 수염을 어떤 깜찍한 여자아이가 잡아당겨보면서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할아버지, 이거 가짜수염아니예요? 진짜예요?' '아야야~ 물론 이건 진짜지...' '어, 수염이 진짜네.' 그 산타분장 할아버지는 잠시후 어떤 다른 어린이가 실수로 수염에 껌을 붙여놓는 바람에 세면실에서 열심히 수염에 묻은 껌을 떼어낸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저 정도 리얼리티를 뵈줘야지 애들이 속아도 속지..."
Felix는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산타가 실제로 '우리나라에는'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속았다 배신당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정보들을 종합해본 결과였다. 산타의 존재가 시각의 레이다에 잡히기 시작했던 건 뚜렷한 기억이 없지만 아마도 영화나 만화영화, 카드그림등이었을 것이다. 그런 영화나 그림등에 산타가 등장할 때의 배경은 북구등의 추운 지방, 순록이 살고, 겨우내 눈이 쌓여있는 곳, 마을 한 가운데 교회당이 있고 거리에 썰매가 달리는 동네... 집에는 벽난로나 굴뚝이 있는 곳. 그리고 산타는 분명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조선족이 아닌, 분홍빛 얼굴을 한 백인이었잖는가. 그런 산타가, 물론 세계방방곳곳의 어린이들을 챙긴다고 쳐도...(멀더와스컬리의크리스마스에서와 비슷한 생각을 했음...) 일단 우리네 가옥구조가 산타의 선물운반 시스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만약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착한 일을 하면 명절날 선물을 주고가는 할아버지가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면, 산타와 같은 캐릭터가 아니어야 더 실제감이 있을 것이다. 일단 아귀가 맞지가 않는다... 애들이 그렇게 허술한 줄 아는지. 우리 부모님들은 선물을 주실때 산타의 존재뒤에 숨지를 않으셨었던 것도 이유가 되겠다. 산타얘기는 우리집에서는, 남 얘기였던 것이다... (아니 크리스마스라고 따로 선물세례라는 것이 별로 없었다.)
유치원을 다닐때, 선생님이 방학식에 부모님들을 모셔놓고 산타분장을 한 할아버지를 모셔온 적이 있었다. 동화구연으로 유명하다는 이** 할아버지였다는데, 빨간 옷을 입고 나오셔서 아이들을 하나하나 차례로 이름을 불러 앞에 세워놓고 얘기를 하고 선물을 주셨다. " 아무개는 평소 편식을 한다지? 이제부터는 골고루 잘 먹고....아무개는 이제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등등 그 아이의 특징이 될 만한 얘기를 줄줄 해주시는데, 아, 신기하다 어떻게 아실까 하기 이전에, 할아버지가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줄줄 읽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눈에도 산타할아버지는 유치원선생님과의 공모자임이 뚜렷했다. 그냥 선생님이 고마웠다...이런 이벤트를 마련해주신 것이.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채 산타할아버지의 가짜수염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산타가 배나오고 뚱뚱한, 흰수염달린 발그레한 볼의 할아버지 캐릭터이긴 하지만, 실제로 어린이들 앞에 설때는, 정말로 아이들을 납득시키고 싶다면, 수염정도는 사극에 쓰는 분장용 수염을 달고, 가짜 배는 내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솜으로 붙인 수염과 막 아래로 떨어져버릴 것 같은 베개와 숨뭉치로 두른 배는 설득력이 없다... 즐겁게 해주시려고 열심인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나도 좀 멋지게 속고 싶었다... 좀 더 사실성이 있었으면, 나도 속았다 깨거나 했을텐데... 어린이적에, 아이들과 놀다가, 친구들이 '넌 언제 산타가 없는 걸 알았니'라고 물을 때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라고 얘기하면 썰렁하다는 듯이 보곤 했다. 그런데, 왜 꼭 선물을 산타가 줘야 해? 난 나와 상관없는 산타가 날아와서 떨구는 선물보다, 우리 부모님들이 어려운 살림중에 틈을 내어, 선물을 마련해주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니면 친구가 용돈을 모아, 내게 주려고 선물을 고르고 다닌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만일 내가 훗날, 내 자녀나 누군가에게 산타노릇을 해야한다면, 좀더 치밀한 계획을 세워서 아귀가 맞도록 해서 깜쪽같이 해주거나, 아니면 아예 산타뒤에 숨지를 말든가 할 것이다. 아마 그래도 아이들은 속아주는 척 하면서 고마워하겠지만 말이다... --Fe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