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화 또는 사례 ¶
백화점에서 사과를 하나 사는데 몇 번 째 고객에 선정되었다며 사과 한 박스를 주겠단다. 난 그냥 필요한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고, 하나만 사왔다.
조화로운삶의 니어링 부부는 일년 양식을 만약 그 해가 가기 전에 모두 벌었다면, 더 이상의 잉여생산을 하지 않고, 글을 읽고, 사색하고, 책을 쓰는 등 자유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필요 이상의 재화에 현혹되는 것은 곧 삶의 질은 뒤로한 채, 모든 번뇌로 가는 지름길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재화에 대한 욕망이 필요한만큼만, 그 이상을 넘지 않으면 자본주의 사회가 존속할 수 있을까.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 나오는 라다크라는 곳에서는 가구당 평균 5에이커의 경작지를 갖는다. 가끔 한 가구가 10에이커를 가지고 있는 수도 있다. 적정 경작면적은 가족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데 집안의 노동인구 1인당 약 1에이커이다. 그 이상의 땅은 별 소용이 없다. 경작할 수 없는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다. 이것은 라다크인들이 땅을 가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땅을 잰다는 사실에 반영되어 있다. 경지의 크기를 '하루', '이틀' 하는 식으로 표현한다.
성경의 주기도문의 일부에 이런 말이 있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용할 양식 == 하루 먹을 양식. 인디언에 관련된 일화를 알고 있는데, 인디언들은 필요한 만큼만 동물을 잡는다고 써 있더군요. 아침에 토끼 덫을 놓고 저녁에 그 덫을 확인 하러 간 어떤 인디언 노인과 꼬마가 있었답니다. 덫에는 토끼 세마리가 있었고, 노인은 토끼 두마리만 잡고 한마리는 풀어줬다지요. 꼬마는 왜 한마리 토끼를 놓아주었는 지 궁금해서 노인에게 물어봅니다. 노인은 말하길 "너와 나 우리 둘에겐 두마리 토끼면 족하지" ㅎㅎ -- 아무개
일용할 양식 == 하루 먹을 양식. 인디언에 관련된 일화를 알고 있는데, 인디언들은 필요한 만큼만 동물을 잡는다고 써 있더군요. 아침에 토끼 덫을 놓고 저녁에 그 덫을 확인 하러 간 어떤 인디언 노인과 꼬마가 있었답니다. 덫에는 토끼 세마리가 있었고, 노인은 토끼 두마리만 잡고 한마리는 풀어줬다지요. 꼬마는 왜 한마리 토끼를 놓아주었는 지 궁금해서 노인에게 물어봅니다. 노인은 말하길 "너와 나 우리 둘에겐 두마리 토끼면 족하지" ㅎㅎ -- 아무개
조금 다른 맥락에서의 필요한만큼만으로 Alistair Cockburn이 말하는 "Barely Sufficient Methodology"가 있다. 그이는 애자일 메쏘돌로지가 필요한만큼만의 메쏘돌로지라고 말하며,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고 한다.
뚜웨이밍 교수는 유교의 장점을 가르침이 적고 꼭 필요한 만큼만 있다는 데에서 찾는다. 친구에게 유교를 권했는데, 그는 "기독교(혹은 불교)에는 유교에 있는 가르침이 모두 다 있고, 그것이 더 파워풀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유교에는 없는 가르침이 더 있다. 그래서 기독교(혹은 불교)가 낫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뚜웨이밍 교수는 이에 대해, 유교가 오히려 필요한만큼만의 가르침만 있기 때문에 더 보편적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는 유교를 인간이 되기 위한 최소조건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답니다.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한 농부가 전하는 말이지요. 처음 읽었을 때는 '어떻게 이런 생각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었답니다. 아무튼 현재의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해요. --맑은 2008.3.21(금)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화학비료를 사용해 보았답니다. 이 비료를 친 땅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수확을 거두었지요. 이 같은 결과에 감탄한 농부들이 마을의 한 어르신께 가서는 "어르신, 백인들이 주고 간 이 가루를 썼더니, 수확량이 두 배나 늘어 났습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이에 어르신은 "잘되었네, 친구들. 내년에는 농사를 반만 지어도 될 테니 말일세."라고 대답하셨다지요. <미래를 심는 사람> p305|}}
1.1. 낚시하는 노인 ¶
다음은 난도씨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
어떤 노인이 호수가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지나치던 "명문 MBA 출신"이 노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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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노인이 호수가에서 느긋하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지나치던 "명문 MBA 출신"이 노인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제가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죠. 일단 날마다 몇 시간 이상을 여기 나와서 고기를 계속 잡고 그걸 어디 어디에 찾아가서 팔고 ......."
노인이 물었다. "그럼 뭘하지?"
"그렇게 돈을 벌으면 이제는 생선 통조림 공장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 MBA 출신의 말쑥한 사내는 장황하게 어떻게 돈을 축적할지 설명을 계속했다.
"그러면 또 뭘하지?"
제가 들었던 내용과 느낌이 조금 다르네요
{{|어떤 노인이 호수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젊은 청년이 노인에게 얘기를 꺼냈다.
청년: "왜 일을 하지 않으시고 낚시를 하나요 ?"
노인: "자네는 왜 일을 하는가 ?"
청년: "돈을 벌게요"
노인: "그래서 ?"
청년: "그래서 사장이 될겁니다"
노인: "그런다음 ?"
청년: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죠 !"
노인: "그 다음은 ?"
청년: "네? 음... 하고 싶은 거 하죠"
.
.
.
.
.
노인: "그런가 ? 지금 나는 (낚시를 가리키며) 하고 싶은 것 하고 있네"
|}}
현대 자본주의는 윗글의 노인조차 일하게 만드는 함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더 좋은 낚시용품이나 낚시터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노인은 그 정도의 욕심은 없는듯 하지만...... --Pouch
노인: "자네는 왜 일을 하는가 ?"
청년: "돈을 벌게요"
노인: "그래서 ?"
청년: "그래서 사장이 될겁니다"
노인: "그런다음 ?"
청년: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죠 !"
노인: "그 다음은 ?"
청년: "네? 음... 하고 싶은 거 하죠"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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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그런가 ? 지금 나는 (낚시를 가리키며) 하고 싶은 것 하고 있네"
|}}
현대 자본주의는 윗글의 노인조차 일하게 만드는 함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더 좋은 낚시용품이나 낚시터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물론 노인은 그 정도의 욕심은 없는듯 하지만...... --Pouch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선택하는 방법같네요. 전진호
제가 들었던 것도 추가해도 되겠죠. 약간 깁니다만..
{{|
한 보트가 작은 멕시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인 관광객은 멕시코 어부가 잡은 물고기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거 잡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
그러자 멕시코 어부왈, "별루 오래걸리진 않았어요"
"왜 좀더 시간을 들여 잡지 않아요? 더 많이 잡을 수 있을텐데.." 그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멕시코 어부는 적은 물고기로도 자기와 자신의 가족들에는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인 왈, "그럼 남은 시간에는 뭐하세요?"
"늦잠자고, 낚시질 잠깐하고, 애들이랑 놀고, 마누라하고 낮잠자고...밤에는 마을에 가서 친구넘들이랑 술한잔 합니다. 기타치고 노래하고...아주 바쁘지요..."
미국인 그의 말을 막았다.
"나는 하바드에서 MBA를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도울수 있어요! 당신은 매일 좀더 많은 시간을 들여 낚시질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거예요. 더 많은 수입이 생기고 더 큰 보트를 살 수 있겠죠. 더 큰 보트는 더 많은 돈을 벌게 하지요. 그러면 두번째, 세번째 보트를 살수있게 되고, 어업회사를 세울 수 있습니다. 중간상과 씨름할 필요없이 제조공장(물고기)과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되구요, 어쩌면 당신의 제조공장을 갖게 될수도 있지요. 당신은 이 조금만 마을을 떠나서 멕시코 시티나 로스앤젤레스, 혹은 뉴욕으로 이사할 수 있다구요!"
"그렇게 되는데 얼마나 걸리죠"
"20년..아니 25년 정도요"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 그 다음에는 신나는 일이 있죠"
그렇게 말하고 미국인은 웃었습니다.
"당신 사업이 진짜로 커졌을 때는 주식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되는 거예요!!!!!"
"백만장자요?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은퇴해서, 바닷가가 있는 작은 마을에 살면서, 늦잠자고 아이들이랑 놀고, 낚시질로 소일하고, 낮잠자고...그리고 남는시간에 술마시고 친구들이랑 노는거죠!"|}}
-- 아무개
{{|
한 보트가 작은 멕시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미국인 관광객은 멕시코 어부가 잡은 물고기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거 잡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
그러자 멕시코 어부왈, "별루 오래걸리진 않았어요"
"왜 좀더 시간을 들여 잡지 않아요? 더 많이 잡을 수 있을텐데.." 그 미국인이 물었습니다.
멕시코 어부는 적은 물고기로도 자기와 자신의 가족들에는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인 왈, "그럼 남은 시간에는 뭐하세요?"
"늦잠자고, 낚시질 잠깐하고, 애들이랑 놀고, 마누라하고 낮잠자고...밤에는 마을에 가서 친구넘들이랑 술한잔 합니다. 기타치고 노래하고...아주 바쁘지요..."
미국인 그의 말을 막았다.
"나는 하바드에서 MBA를 한 사람으로서 당신을 도울수 있어요! 당신은 매일 좀더 많은 시간을 들여 낚시질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거예요. 더 많은 수입이 생기고 더 큰 보트를 살 수 있겠죠. 더 큰 보트는 더 많은 돈을 벌게 하지요. 그러면 두번째, 세번째 보트를 살수있게 되고, 어업회사를 세울 수 있습니다. 중간상과 씨름할 필요없이 제조공장(물고기)과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되구요, 어쩌면 당신의 제조공장을 갖게 될수도 있지요. 당신은 이 조금만 마을을 떠나서 멕시코 시티나 로스앤젤레스, 혹은 뉴욕으로 이사할 수 있다구요!"
"그렇게 되는데 얼마나 걸리죠"
"20년..아니 25년 정도요"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 그 다음에는 신나는 일이 있죠"
그렇게 말하고 미국인은 웃었습니다.
"당신 사업이 진짜로 커졌을 때는 주식을 팔아서 백만장자가 되는 거예요!!!!!"
"백만장자요? 그 다음에는요?"
"그 다음에는 은퇴해서, 바닷가가 있는 작은 마을에 살면서, 늦잠자고 아이들이랑 놀고, 낚시질로 소일하고, 낮잠자고...그리고 남는시간에 술마시고 친구들이랑 노는거죠!"|}}
-- 아무개
윗 이야기들의 원 저자가 가진 뜻이 어땠는진 모르지만, 저로선 MBA가 하는 얘기가 어이없는 얘기로 들리지가 않네요. 저 MBA의 얘기를 듣고서 "아니, 낚시로 소일하는거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하고 있지 않은가? 대체 이것을 위해서 별도로 그 고생을 해야 할 이유가 어디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필요한 만큼만 충족하면서 사는 삶"보다는 "여건이 되는 만큼만 허락되는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요? 그 좋아하는 낚시를, 자기 의지와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시간이 되는만큼만, 돈이 되는만큼만, 건강이 되는만큼만 즐기고 그 이상을 허락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클것 같습니다. "필요한 만큼만"의 의미가, 생존에 지장받지 않는 최소한만큼만을 말하는 것인지, 희망이 닿는만큼을 말하는 것인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sirocco
2. 이래서 필요한만큼만 살지 못한다 ¶
- 가족 : 내가 부모에게 받은만큼 부모에게, 그리고 내 자식에게 해 주어야 한다.
- 청교도적 윤리 : 일생동안 최선을 다해 근면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쌓은 재산은 사회로 환원시켜야 한다.
- 조직 : 내가 멈추면 내 조직이 다 멈춘다. 나는 부품이다.
- 원대한 꿈 : 큰 포부는 현재의 여가를 희생시키기 마련이다.
- 불안 : 우리나라 같이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한 나라에서 노년에 덜컥 암이라도 걸리면 어쩌라고.
청교도적 윤리도, 포부도, 장래에 대한 불안(그것이 오래 잘 살고 싶은 욕망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면)도 결여되어 있고, 꽉 짜여진 조직에도 속해있지 않은 사람에겐..남은 요인은 가족뿐인가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가족이야말로 가장 끊기 힘든 선이니. -- 아무개
'필요한만큼'의 실천이 힘든 것은 '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기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주 사소한 일에서일지나마 진정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언제가부터 잊고 내지는 덮어두고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불분명한 채 '필요한만큼'을 논한다는 것은 사상누각이 아닐까. 물론 그것이 절정의 수준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아련하게나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 때가 좋았지"라는 추억이 있을 것이다. 지금 아둥바둥 살고 있다면 그 때 그것을 '행복'이라 해 두자. 그러한 '행복의 조건'을 얼마면 살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것들은 한결같이 살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일면 그것들을 돈을 주고 사려했기에 '무한경쟁의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은 아닐까. 살 수 없는 것을 사려는 행위는 목적에 도달할 수 없으니 영원한 것이 되지 않겠는가.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욕심일뿐 삶이라 할 수 없는 것. 우리는 진정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산다는 것'에 대한 답을 얻는다면 그것이 바로 필요한만큼만을 잴 수 있는 저울이 되지 않을까?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그 답은 참으로 쉽고도 쉬울 것만 같기도 하고... (아직도 살고 있는 것인지 살아 내고 있는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맑은
뱅기는 이런 필요한만큼만의 미덕이 사라진 것은 이 세상에 마케팅(봉이 김선달식의 오늘날의 마케팅 개념)이란 개념이 생겨난 후가 아닌가합니다. 내가 뭔가를 생산하고, 또 다른 사람이 뭐가를 생산해서 그것들이 서로 교환되는 사회에선 정말 필요한만큼만 가지면 됐었죠. 그런데 더 이상 생산은 하지 않으면서 남이 생산한 재화를 교묘한 방법으로 판매를 함으로써 이득을 보려는 개념이 생기면서 필요한만큼만 이라는 개념은 설자리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기심이 생기고, 이기심으로 인해 욕심이 생기고, 욕심으로 인해 불균등이 생기고.... 이제는 남보다 더 많이, 필요 이상을 가지고 있으려하는 생각이 지배를 하는 세상이 되버린 거죠.
노인처럼 그냥 잊어버리면 되나요 ?
요즘 같은 고용불안시대에는 갈수록 정년은 빨라지고 사회복지는 아직도 미미하여 실제 성인남자의 경우 27살에 취직을 한뒤 만 55세까지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평균수명 72세까지 살려면 28년을 벌어서 총 45년을 살아야 합니다.즉, 수입이 없는 기간을 만 55세부터 72세까지 본다면 약 17년동안 되는데 더구나 이 시기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각종 질병에 노출이 되기 쉬운 나이가 되어 서글퍼지게 된다. from 서글퍼라
부유한노예를 보면 어느정도 설명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