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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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dit 라는 텍스트 에디터를 기억하시는지?

유닉스/리눅스 계열에 접속해서는 vi 를 주로 쓰지만, 윈도우즈 환경에서는 가끔가다 한번씩 (혹은 그 자리에 UltraEdit 가 없을 때 급히 홈페이지에서 실행파일만 다운로드받아) gvim 을 쓰고 평소에는 UltraEdit 를 쓴다. 돈주고 사서 두고두고 뿌듯하게 사용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오늘도 UltraEdit 에서 코딩을 하다가 문득 10 년도 더 전에 즐겨 쓰던 QEdit 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였으니까 90 년도에는 분명히 QEdit 를 사용하고 있었다. QEdit 로 뭔가를 정리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을 보면.

QEdit 는 무척 작았다. 실행파일의 크기는 고작 50KB 정도. 그 작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선 그리기, 블럭 설정, 들여쓰기, 창나누기, 매크로, 검색/치환, 기타등등. 수많은 기능들 중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키 재정의 기능이었는데, 통신망의 자료실에 QEdit 의 키를 재정의해서 아래아 한글과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설정파일이 올라오기도 했다. 50KB 의 용량으로 저런 기능을 모두 구현하다니.

요즘같은 환경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때는 10MHz 초고속 CPU 에 20MB 하드디스크가 달린 호사스러운 PC 환경에서조차 640KB 의 메인메모리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autoexec.bat, config.sys 를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EMS 와 XMS 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해 문서를 들여다 보고 mem /c/p 를 두들기던 시절이었다. 512MB 의 메인메모리에도 별로 놀라지 않고 200GB 짜리 하드를 붙여놔도 며칠만 동영상 다운로드하면 가득차 버리는 지금과는 노는 스케일이 달랐던 것이다. 1000 배, 혹은 10000 배의 변화가 겨우 십수 년 만에 일어나 버린 셈이다.

며칠 전에도 QEdit 가 생각나서 검색엔진으로 찾아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엉뚱한 결과만 나와서 실망한 적이 있다. 방금 글을 쓰면서 하이텔에 들어가 자료실을 뒤졌더니 역시 거기엔 QEdit 가 있었다. 아.. 이거 타임캡슐이 따로 없다. 얼마전에 천리안을 해지했고, 하이텔도 언제까지 사용할지 모르겠다. 거의 15 년 전부터 들락거리던 PC 통신망이 이제는 낡디낡은 다락방처럼 변해버린 느낌이다. 그 다락방 한 구석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던 QEdit 를 찾아내 먼지를 한 번 털어보긴 하지만.. QEdit 가 다시 내 책상의 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5 년 전에 어떤 선배가 Visual C++ 로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도스창을 띄워 QEdit 로 리소스 편집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긴 하지만, DOS 환경과 그 위에서 돌아가는 모든 프로그램들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히 사라져 가는, 빛바랜 사진과도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아직은 남아있는 내 젊은 나날들, 그 기억의 일부와 함께.

2003.3.17 Jikhan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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