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고양이와같이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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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디

인디고양이를 정의하면서 인디고양이, 야생고양이, 도둑고양이에 관한 용어 정리가 한바탕 있었다. 그런데 난도가 생각하는 인디고양이의 인디성은 자신과 사람과의 구별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집고양이가 집을 나간 것은 집고양이의 외유이다. 인디고양이가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건 인디고양이의 외유이다. 그러니까 인디고양이와같이살기에서는 인디고양이의 외유와 사람의 공생노력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가 중요해진다.

잠깐 얘기를 돌려서, 동물의 지능이 얼마나 되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침팬지랑 돌고래가 아이큐가 얼마쯤, 개가 얼마쯤 등등의 데이터를 마주치곤 한다. 그런데 최근 AnimalRights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물의 아이큐는 제대로 평가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아이큐테스트가 사람이 개발한 측정도구이므로 사람과 같이 살면서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사람에게 익숙해진 동물은 아이큐가 급속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http]다이고로야, 고마워라는 책에는 어릴때 주워온 원숭이가 자기가 사람인줄 알고 있었다가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또 어느 강아지는 등을 땅에 대고 사람처럼 누워 잔다거나, 주인이 아기를 낳았더니 아기를 질투했다거나 하는,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의 그것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동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난도의 경험을 하나 더 들자면, 이건 난도의 몇 안 되는 범법행위이기도 한데, 지나가다 묶여있는 고양이를 몰래 풀어준 적이 있다. 고양이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쇠줄이었는데다가, 위생상태나, 복지상태가 상당히 열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저렇게 취급하는 사람이라면 저 고양이가 없어도 그만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놈은 목에 달린 무거운 쇠줄을 풀어주었는데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주인에게 자발적으로 목묶임을 당한채 계속 그 자리에 있던 그 놈은 고양이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내가 아는 인디고양이라는 놈들은 사람이 먹을 걸 줘도, 절대 얻어먹는 티 안내고 한 쪽에 가서 먹다가 사람이 접근하면 진짜 무서운 소리로 하-악, 하-악 위협하는 놈들이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진짜 건드리면 안되는 놈은 고양이다.

정리하자면, 고양이의 성질이란 건 집고양이냐 인디고양이냐에 따라 큰 편차를 가지는데,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발현된다는 것이다.


2. 고양이

그대는 정말 아름다운 고양이
창틀 위를 오르내릴 때도 아무런 소릴 내지 않고,
(중략)
때때로 허공을 휘젓는 귀여운 발톱은
누구에게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을테지
(후략)
[http]하덕규, 고양이중에서



자식 없이 오랫동안 고양이만 키우셨다는 어떤 교수님께서 묘심(猫心; 고양이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는걸 들은적 있다. 호기심, 자존심, 독립심이 그것이다. 난도도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난도에겐 할 얘기가 더 있다. 게으름과 열정이 그것이다.

고양이는 게으르다. 사람보다, 개보다, 수면시간이 훨씬 길다. 그리고 자기 신변의 위협이 아닌 이상, 주위 사물에 신경을 쓰는 법이 좀체 없다.

그런데 고양이는 열정적이다. 동기부여가 되면 그렇다. 고양이가 흥미를 가지고 무언가를 탐구하는 모습은 가히 열정적이라 할만하다. 예전에 난도가 키우던 고양이는 양치질한 거품이 떠내려가는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언제 사람들이 이닦으러 오나 목빠지게 기다리곤 했었다. 부뚜막 위에서 자던 한 녀석은 대체 아궁이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이렇게 따뜻한걸까 궁금해한 나머지 고개를 디밀고 연탄불을 쳐다보다 수염을 홀랑 태워먹었다.

그러나 고양이의 열정의 진수는 사랑할때 볼 수 있다. 주위에 보이는 가까운 대상이면 아무하고나 교미를 벌이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마음에 다는 상대를 찍어서 따라 다니고, 연적과 싸우고, 그리고 일정기간을 같이 지낸다. 그리고 서로 보살펴주는 것이 분명한 행동을 한다. 밤에 간혹 들리는 아기울음소리같은 고양이의 소리는 짝을 찾는 부름이다. 그보다 갸냘프고 급한 소리는 어미를 찾는 아기의 소리이다.

무엇보다 고양이는 가끔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불가능한 일을 할 때가 있다. 난도가 아주 어렸을때, 우리 할머니가 살아계셨을때 이야기다. 할머니의 임종을 앞둔 어느날 처음보는 커다란 인디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우리 집에 침입을 했다. 그러더니 마치 잘 아는 집인듯 우리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더니 발치에 쭉 누워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기겁을 하신 어머님이 막대기로 쿡쿡 건드려도 꿈쩍도 안 하고 곤하게 한참을 자더니 불쑥 일어나서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체 그 고양이는 무엇이엇을까? 할머니랑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었는데 돌아가실 날이 며칠 안 남은걸 알고 인사드리러 왔던 걸까? 고양이가 영물이라는 민간의 전설은 아마 이러한 행동의 관찰이 축적되어 나타난 것이리라.


3. 같이 살기

난도의 집은 한옥이다. 옛날에는 장작 쪼개서 아궁이에 때우던 난방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장작아궁이가 연탄 아궁이로, 연탄아궁이가 마침내 몇 년 전 도시가스보일러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난방시스템의 변화는 고양이와 어울려 사는 삶을 갈수록 불편하게 만들었다.

겨울철, 우리 집을 드나들던 고양이의 잠자리는 부엌이었다. 고양이가 들락거릴 수 있도록 고무줄로 문을 잡아 매 놓았었다. 고양이는 언제고 앞발로 문을 당기고 머리를 디미는 절차만 거치면 부엌을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솥이 걸려있는 널직한 아궁이에서 정말 편안하고 따뜻한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날, 난도의 가정형편이 좋아지면서 가옥개량을 단행했다. 실외를 거쳐야 접근이 가능했던 부엌은 실내로 편입되었고, 바깥으로 열을 마꾸 방출하던, 즉 열효율이 좋지 않던 아궁이는 가스보일러로 대체되었다. 가스보일러는 높은 열효율을 자랑하며 자신의 밖으로 아무 열도 내뿜지 않았다. 거기엔 고양이가 깃들 자리가 없었다. 새로 단 두꺼운 유리문은 고양이가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식구는 담장을 지나가는 창밖의 고양이를 바라보기만 하기 시작했다.

옛날엔 우리 집의 효용성을 감지한 인디고양이가 이 집에 나 좀 재워줄 수 있냐는 신호를 보내거나, 어린 나이에 홀로된 혹은 상처를 심하게 입은 불쌍한 인디고양이들에게 우리 식구들이 자발적으로 동거의 신호를 보냄으로써 인디고양이와같이살기가 이루어졌었다. 그 놈들은 자신이 필요한만큼만 우리 집에 머물렀고, 우리도 그럴 걸 알고 붙잡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에게 잠자리와 약간의 식사, 그리고 필요하다면 다른 고양이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했고, 그들은 우리에게 정서적 피드백을 주었다. 그것은 행복한 공생이었다.

고양이가 사라진 우리집엔 몇가지 변화가 생겼다. 먼저, 생선 소비의 패턴이 바뀌었다. 예전엔 고양이 먹을거리를 위해서 다듬지 않은 통 생선을 사다가 고양이에게 뼈와 부산물을 제공했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소비해줄 고양이가 없어서 다듬어져 있는 생선을 산다. 그리고 예전에 잘 사지않던 오징어를 사기 시작했다(고양이는 오징어를 먹지 않는다). 생선대가리를 깨끗이 빨아먹는 어머니를 보며, 저건 옛날에 고양이가 맡았던 몫인데, 생각했다. 나는 이담에도 생선 대가리를 빨아먹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생선대가리만큼의 엔트로피가 이 행성에 증가할 것이다.

두 번째 변화는 쥐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쥐 수의 절대값이 많아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고양이에게 유리한 서식환경은 곧 쥐에게도 유리한 서식환경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쥐에 대한 체감공포지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쥐와 자주 마주쳤고, 또 고양이가 먹다남긴 쥐 찌꺼기를 자주 치우기도 했다. 그러나 인위적인 환경속에서 사람이라는 종(種) 이외의 생물은 안 보고 살다보니 이제 쥐를 보면 훨씬 많이 놀란다. 예전의 쥐와의 마주침이 산에서 다람쥐 만나는 정도의 감흥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뱀을 만나는 정도의 놀람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단언컨데, 우리의 삶의 폭이 좁아졌다. 인디고양이를 매개물로 우리 삶에 끼어들었던 자연의 역동성과 번식력과 신비함이 사라졌다. 고양이가 밤에 내뿜는 신비한 푸른 안광, 고양이가 잠자리를 잡아먹으며 우리에게 보여주던 놀라운 동작, 밖에서 싸우고 피칠갑이 되어 돌아와서 내쉬던 가쁜 숨소리, 그리고 어느날 훌쩍 떠나며 우리에게 안겨준 배신감까지. 그 생생한 세계는 고양이와 함께 멀어져갔다. 우리 앎의 영역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할 뿐이라는 토마스 쿤의 논설은 난도에게 그런 방식으로 이해되었다.

ShowMeTheSource for 토마스 쿤의 논설

인디고양이와같이살기는 그래서 화두이다.


난도님의 글은 다큐멘타리 인디고양이를 보는 것 같군요. 감동적입니다. ^^ 제게도 사라져버린 것들이 몇 개 있죠.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운동장 전체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 뒤에 있었던 커다란 태양과, 어릴 때 마루에 누워 바라보다가 잠들곤 했던 구름들...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상은

음, 하여튼. 잘 봤습니다. 고양이에게 푹 빠져있어있으면서도 고양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가족들 덕분에 키우지도 못하고 있는 저로선 ^^; 언제한번 러시안 블루나 페르시안을 키우고 싶은데 잘 될까.... 음. 아무래도 안 될것 같군요. 갑자기 마음을 바꿀 가능성도 거의 없는데다가 여기는 아파트 촌에다가 또래 고양이들이 없어서 심심할것 같네요. --flycat

Roman 동의어로 도둑고양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근데, 가만보니, 역시 인디고양이가 더 정확한 표현같습니다. 나에게도 이미 했던 이야기가 있어서, [http]도둑 고양이 그녀를 줍다라는 건데요. 이곳에 놓아둡니다. 글이 담고 있는 주제는 간단합니다. 유머란에도 나오는데, '사람이 먹을 것과 집, 따뜻한 배려를 해주면, 개는 "아, 신이 틀림없어"인데, 고양이의 경우는 "내 매력이 그만큼 되는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했다'는 정도. 그래서 이 단문을 읽은 사람은 제 인용문은 그냥 뛰어넘어도 상관없습니다. 인디고양이이가 담장을 넘듯이...--Roman

인디고양이는 재밌는 표현입니다. 독립성은 항상 폭력성을 동반하지는 않는데 유독 인디(?) 고양이 종자들은 그런 경향이 크더군요. 저는 그래서 인디고양이라는 말을 듣기전에는 깡패고양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 어떤 고양이 한마리가 새끼를 마당에 떨어뜨리고 가서 키웠습니다. 잘 자라고 있는데 역시 난폭한 성격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사람이든 고양이든 개든 이 녀석은 자기를 건드리면 공격합니다. 전혀 친해질 줄을 모르더군요. 아주 이기적이고 폭력적입니다.

고양이는 사람이 길들이려면 최소 생후3주이전에 사람과 긍정적인 경험으로 접해본 적이 있어야합니다. 또한 한국은 고양이든 개이든 또는 다른 어떤 동물이든 가장 큰 위협은 사람인 거 같습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폭력성은 본성이외에도 인간의 폭력에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닐까요? 참고로 길고양이들의 평균수명은 2~3년정도라고 합니다(무슨 논문자료에서 본것 같은데 출처가 기억이 안납니다.). 먹이부족이 주요인이라고 하는데 교통사고나 인간에 의한 상해도 주요인이라 하더군요. 고양이 이외에 다른 동물들도 사람과 공생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전 인디고양이를 꼬셔서(정말 꼬셨다는 말 외에는...^^;) 7년간 살아봤습니다. 원래 산책고양이라서 안전한 집에 있기를 거부하더군요. 간혹 1달이상 산책이 계속되고 난후 들어온 녀석의 몸에는 사람의 소행(담배빵이라든가 면도기로 털을 밀어버린 자국, 혹은 날카로운 무언가로 찔린 상처)이 분명한 상처를 달고 집으로 귀환하곤 합니다. 저는 조용히 치료해주고요.. 그리고 몇달 머물고 다시 또 산책을 시작합니다. 어느날 6개월이상이 지났는데 들어오지 않는 것을 알았고 1년이 지난후 그 녀석이 살아있지는 않을 거라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당하면서도 저를 믿고 찾아와준 그녀석에게 항상 고맙더군요.
예전 우리집 근처 인디고양이는 그 녀석을 닮은 고양이가 많습니다. 아마도 그 녀석 자손이겠지요. --아직심장은뛰고있다

인디고양이라. 제 닉이 뮤즈캣인데도... 인디고양이들인 왜 절 싫어하는거죠! 히잉. -- 뮤즈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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