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겐 살아있는 전설과 신화가 있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전설과 신화는 무엇인가?
성묘를 다녀왔다. 아버지의 고향은 사방이 산으로 첩첩이 둘러쌓인 분지이다. "이야기"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그런 구조다. 일단 초등학생 이전 아이들에겐 "저 산 너머에는"으로만 시작해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된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에는 전설과 신화와 함께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옆 산에 가면 모래도 아니고 돌도 아닌 그런 지역이 있는데, 아이들과 같이 토굴도 파고, 미로(아이들이 사람이 다닐 미로를 만든 생각을 해보라!)를 만들어서 같이 놀기도 했단다. 또, 뒷 산에 가면 키는 140센티 정도의 단신에 허연 수염이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동안의 할아버지가 늘 웃음짓는 얼굴로 망태기를 짊어지고 홀연히 출몰했다고 한다. 어른들은 그 할아버지가 백살은 넘은게 틀림이 없다고 그랬고, 아무도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며칠 몇 시에 앞 산에서 봤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간에 뒷 산에서 봤다고도 하니 아이들은 그게 축지법임에 틀림이 없다고 입을 모으기도 했단다. 앞 산 꼭대기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나무 막대기 하나가 깊히 꽂혀 있는데, 그건 오래전에 그 지역에 홍수가 났을 때 배를 묶어 뒀던 기둥이라고 했단다. 그들은 그런 전설과 신화를 직접 만지고 그 속에서 뒹굴고 놀며, 함께 생활했다.
정말 부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에 아이들의 상상력이 중요하니 어쩌니 하며, 컴퓨터 게임이다 영화다 정말 없는 게 없지만 과연 전설과 신화를 함께 했던 그 아이들보다 지금의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 사는 것인지, 그들의 상상력은 상업주의의 찍어낸 이미지 속에 이미 박탈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이들의 전설과 신화는 무엇일까? TheyHadLegendsAndMyths.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