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인 종 (Biological Species Concept)
생물학적으로 종을 정의하면 대략 이렇게 될겁니다. :자연상태에서 교배하여 생식가능한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생물집단
따라서 라이거나 타이온을 낳는 호랑이-사자의 조합은 같은 종이 아니죠. 대부분의 경우 다른 종들을 교배시키면 자손조차 생기지 않기 때문에 종간의 구분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격리된 종의 경우 좀 문제가 있죠. 어떤 종이 있었는데, 이 집단의 일부가 어쩌다가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으로 가서 두 집단이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두 집단이 교배할 가능성이 없겠죠. (ReproductiveIsolation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교배를 시키면 처음에는 생식가능한 자손이 나오겠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두 집단의 유전자풀에 서로 다른 변화가 누적되면 언제까지 교배가 가능할지 알 수 없겠죠. 분명히 변화가 누적되다보면 언젠가는 완전히 다른 종으로 분화되어버릴 겁니다. 종분화 (Speciation) 은 또 따로 다루어야 할만한 주제인 것 같고.. 하여간 현생 생물의 경우에는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그런대로 어떤 동물을 놓고 이것이 무슨 종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검증방법은 교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태학적인 종 (Morphological Species Concept)
화석생물들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화석 기록은 이미 죽은 생물들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생긴 생물과 저렇게 생긴 생물이 서로 같은 종인지 알아보기 위해 교배를 시켜볼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형태를 가지고 종을 결정해야 하죠. 형태의 경우에도 한 종의 생물이 암수가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괜찮겠지만 SexualDimorphism 이 있어서 어떤 거미처럼 극단적인 크기 차이가 나거나 모양이 아예 다른 형태라면 다른 종으로 분류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화석기록을 가지고 종을 구분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화석 기록의 증거로는, 생물종들은 10만세대에 걸쳐, 심지어 100만세대 이상을 진화하지 않고 생존하며, 대부분은 멸종될 때까지 거의 진화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건 화석기록이니, 실제 기능적인 부분은 많이 간과되었겠지만요.
일단 화석 기록으로 보는 종은 기본적으로 '형태학적인 종' 입니다. 그 안의 유전자풀의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기 힘들겠죠. 한 번 종이 만들어지면 비교적 안정된 형태로 오랜 시간동안 지속될 겁니다. 종 (혹은 인간이 종이라고 인식하는 생물집단) 이 만들어 졌다는 것은 그 환경에서 그 생물집단이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생물들에 비해 우세를 점했다는 뜻이고, 환경이 안정적이라면 한 번 점한 우세를 쉽게 내주지 않겠죠. 여기서 환경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환경 뿐 아니라 다른 생물들과의 관계도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캄브리아기대폭발 의 경우는 물리적인 환경 변화에 의해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포식자 (predator) 의 출현과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외피 (shell) 의 발달로 인한 사건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어느 카오스 관련 책에선가 (제목이 기억 안나는데..) 끌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포유류 늑대와 유대류 늑대를 비교하면서 두 종류의 "늑대" 가 만들어진 환경을 비교해 보면 기능적으로 거의 비슷한 동물을 만들어 낼만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하더군요. 환경이 상당히 다르게 보일지라도 어떤 공통의 특징만 만족한다면 기능적으로 거의 동일한 두 종류의 (포유류 <-> 유대류) 서로 다른 동물이 만들어 질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늑대" 라는 형태가 일종의 끌개 StrangeAttractor, 혹은 LocalOptima 인 것 같다는 말이죠.
한 번 이런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어떤 종이 점진적인 환경변화에 맞게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모양이 바뀌었습니다. 100 만 년에 걸쳐 변화가 일어났고 100 만 년 후에는 원래의 형태와 상당히 다른 모양이 될 수 있겠죠. 집단이 분화되지 않고 변화를 겪었다고 가정하면 이 두 가지 형태의 생물을 유전자풀의 관점에서, 혹은 계통발생학적으로 보자면 같은 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화석을 보면서 형태적으로 분류를 하면 서로 다른 종으로 기록되겠죠. 종과 종 사이의 경계선을 어디에 그어야 할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제 지도교수님은 "지질학에서 100 만 년이라고 하는 시간은 일상생활에서 나노초와 비슷한 수준의 정확도를 가진다" 는 말씀을 하곤 하셨죠. -_-)
린네가 분류체계를 제안했을 때는 종이란 것이 변하지 않고 고정된, 절대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죠. 지금에 와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요. 생물학적인 종의 개념을 가지고 생물을 분류하는 것은 현생생물에 대해서는 매우 유용할 것입니다. 그런데 화석기록에 생물학적인 종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일단 화석기록의 한계 때문에 매우 어렵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형태를 기본적인 방법으로 놓고 분류하다 보면 화석생물에서 종을 이야기하는 것과 현생생물에서 종을 이야기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차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푸네스에 대한 글을 링크시킨 이유는 저 글 안에 있습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GoedelEscherBach 에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말하자면 뒷집 마당에 사는 누렁이의 앞모습과 옆모습을 보고 그 두 개의 서로 다른 모습이 하나의 개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죠. 조금 확장시키면, 두 개의 종(species)이 같은 속(genus)에 속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연계에 원래 그런 계층적인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이해하기 쉽도록 인위적으로 계층구조를 만들어 놓은 것인지? 우리가 동등한 분류단위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연 동등한 분류단위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 - 예를 들어 10만여종이 기재되어 있는 연체동물문(Phylum Mollusca) 와 100만여 종이 기재되어 있는 절지동물문(Phylum Arthropoda)을 동등하게 문(Phylum) 으로 취급하는 것은 타당한가?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릅니다. 그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알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_-a;;
질문응답 ¶
Q : 오래전부터 궁금하던 것이었는데, 이 기회를 빌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라이거"나 "노새" 같은 것들은 서로 다른 종간의 생식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유전자의 불균형 때문에, 생존에는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생식기능이 없어서 자손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에는 다른 동물과의 이런 "잡종"이 가능합니까? 아니면 불가능합니까? 불가능하다면, 왜 불가능한지에 대한 이론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윤리적 문제 때문에 아예 실험 자체를 안 해 봤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까? 약 13년전 어떤 선생님이 나치가 말의 정자를 가지고 human 의 여자에게 임신시키는 실험을 자행했었는데, 임신은 했지만 유산했다는 내용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과연 이것이 사실이었을까 다분히 의심은 가지만, 이런 거 물어보면, 비정상으로 취급당할 것 같아서 자제했습니다. 하지만 이 페이지를 보니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제발 누가 저의 궁금증을 풀어 주셔요.
한가지 가능성은 같은 종에서는 염색체의 쌍이 그 상동성 때문에 감수분열할때 동일하게 늘어서는데, 서로 다른 종에서는 homology 가 없으니까 제멋대로 되어서 감수분열시 염색체가 정확하게 분리되지 못하고 따라서, 세포들이 금방 다 죽어버리는 경우일 것 같군요. 그럼 일단 말과 사람은 안될 것 같은데... 침팬지와 사람도?
잘 모르지만, 참고하시라고... 염색체갯수만 보자면 침팬지, 고릴라등은 24쌍, 인간은 23쌍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2번염색체는 다른 유인원의 두개의 염색체가 융합된것이라고 하네요. 2번염색체의 융합을 제외하고는 침팬지와 인간은 거의 똑같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음... 서열은 거의 비슷하지만, 염색체 갯수의 차이가 클것 같습니다. 수정시 침팬지의 두 다른 염색체가 2번염색체와 정확히 만날 확률이 상당히 적지 않을까요? --yong27
A : (답일까..) 쉽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렇다고 본질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습니다. 말씀대로 실험 자체가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기 때문에 쉽게 시행될 것 같지 않구요. 만일 실험을 한다면 인간과 가장 가까운 관계인 침팬지를 대상으로 해야겠죠. 침팬지와 사람의 염색체 (그리고 유전자) 는 거의 비슷하니까 상동성 문제도 크지 않을 것 같구요. 보르네오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하는 비루테 갈디카스의 에덴의 벌거숭이들 을 보면 오랑우탄 수컷이 인간 여자를 강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가끔씩 있는 모양이더군요. 오랑우탄과 인간의 잡종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없으니 임신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고.. -_-; 말의 정자로 임신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인 듯. 수정이 될 것 같지도 않은데다가, 수정이 된다고 해도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군가의 주장에 따르면 수정된 난자가 착상에 성공해서 태아로 자라는 경우는 1/5 도 안된다고 하더군요. 염색체 이상이 있는 수정란, 건강하지 못한 수정란 등은 착상이 아예 되지 않거나 착상 초기에 모체에서 거부해 버려서 떨어져 나간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모체와 수정란 간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드신다면 다윈의학을 다룬 인간은왜병에걸리는가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 JikhanJungSee also 이종교배의번식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