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는 게시판이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메타포는 우리 인식의 범위를 한정한다 -- 정신적 모델(mental model)을 제공하는 것이다. 위키를 게시판이라고 호칭하는 순간 우리는 위키를 우리가 가진 "게시판"이라는 개념 속에 구겨 넣는다. 우리가 대상을 어떻게 이름짓고 호칭하느냐에 우리는 스스로 종속당한다. UnlearnTheLearned
우리나라에서 유독 테이블을 이용한 정형적인 웹게시판이 발달한 이유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게시판이란 메타포가 PC통신의 게시판에서 배태되었기 때문이다 -- 정말 우리가 사용하는 웹게시판은 PC통신의 그것을 고대로 본딴 것이다. 이에 반해 영미권에서는 유즈넷이나 메일링 리스트 등의 비교적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의 의사소통 매체가 존재했고, 그들에게 게시판이라는 것은 어떤 개념적 한정을 두는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서로 의사소통 하기 위해 글을 "같은 공간"에 핀으로 붙여 놓는 그런 마당이었다.
만약 위키를 일반 웹게시판처럼 사용한다면 위키는 불편하다 -- 바지를 윗도리로 둔갑시키려는 것이다. 위키는 위키방식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위키는 단순히 PC통신의 게시판이 아니다. 위키는 우리 사고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인식의 전환을 도와주며,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사유보다 공유를 유도하며, 지식을 수집하고 스스로 진화하며, 그것을 체계화하여 축적하는 총체적인 "사고/소통 도구"이다.
동서양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제까지 패러다임에 단절을 통한 변혁을 가져온 사상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었다. AlfredNorthWhitehead가 그렇고 혜강이 그렇고 이제마가 그렇다. 적절한 메타포를 찾을 수 없다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라.
(위키) 게시판이라고 부르지 말고, 위키 혹은 위키위키라고 부르라.
꼭 어떤 메타포를 사용해야 한다면 게시판보다 "화이트보드"나 "칠판"이 어떨까 한다. 우리는 모두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선생님이 시험 범위를 공지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칠판 모서리에 자신이 알고 있는 과목의 시험 범위를 (자신과 남을 위해) 적는다. 만약 나중에 선생님이 시험 범위를 정정하거나, 혹은 칠판에 적힌 것이 잘못되었다거나 하면 누구나 그걸 허락없이 고칠 수 있다 -- 이 때 기존 것을 가위표시하고 새 것을 아래에 쓰는 것이 아니고, 기존 것의 전부 혹은 일부를 지우고, 새로 쓰는 식으로 수정이 이루어 진다. 또 그것을 장려한다.
-- 김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