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FrontPage|FindPage|TitleIndex|RecentChanges| UserPreferences P RSS
경쟁을 부정적 시각에서 본다면 [http]늑대 사냥법이란 짧은 이야기와 통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긍정적 시각? 따로 적지 않아도 당연시 할 수 있으리만치 충분히 세뇌되어 있다. 작금에 경쟁 없는 필드를 상상할 수 있는가?

{{|에스키모들은 늑대를 사냥할 때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날카롭게 날이 선 칼에 동물의 피를 묻히고 얼려서 그 칼들을 늑대가 다니는 길 위에 칼날을 하늘로 향하게 하고 묻어 둔다. 칼에 묻은 피가 녹으면서 피냄새에 이끌린 늑대들은 칼날을 혀로 핥기 시작한다. 동물의 혀는 예민해서 처음에는 혀를 베지 않고 피를 핥을 수 있지만 차차 차가운 칼날에 혀를 베어 피를 흘리게 된다. 늑대는 처음에 핥았던 피와 자신의 피를 구별하지 못하고 쓰러질 때까지 칼날을 핥다가 결국에는 기진해서 쓰러지고 사냥은 끝이 나는 것이다. --에스키모인의 늑대 사냥법|}}

인간이 그렇듯 지혜롭게 늑대를 사냥했는지는 모르지만, 인간 자신에게도 그 지혜로운 방법을 바보같이 적용하고 있는데 '경쟁'이 바로 그것이라 생각한다. 비단 인간 자신만의 자살법은 아닌 모양이다. 살아남기 위한 군비확장경쟁에 노출된 생태가 다 그러한 것이 아닌가.

그러한 경쟁에 순응할 것인가, 인간답게란 말이 성립되도록 경쟁을 극복할 것인가? '인간답게'라는 구별을 갖자는 것이 인간의 오만이기만 한 걸까? 그 당연시 하고 있는 경쟁이 우리 삶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가? 경쟁은 정말 필요악일까? 경쟁 없는 사회를 구상해 볼 수 있을까? ......

경쟁이 자살법이라면 그 진행에 브레이크를 걸어 곰곰이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오늘 경쟁에서 승리했다 하여 축배를 들 때, 그 포도주가 "네 피를 짠 술"인 줄 알고 벌컥벌컥 들이킬 때 어느 샌가 내 피를 짠 술을 마시고 있을 야릇한 축배의 비린내를 음미해 볼 것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신을 유심히 들여다 보자. 그 피맛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 자신을.


경쟁의 승자와 패자

패자는 승자의 그늘 뒤에 가리워져 패배에 따른 굴욕감(인간의 경우)과, 생존 경쟁에서는 배고픔을 더불어 느끼게 된다. 자신은 패자이면서 경쟁의 희생자가 된다. 정신이 건전하지 못한 경우, 대구지하철방화참사와 같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인간의 경우) 때문이다. --아름다운아이디

경쟁 없는 사회의 실현 가능성

  1. 사람의 모든 욕심, 기본적인 생존에의 욕구, 감정의 욕구(사랑, 질투 등) 등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2. 위의 가능성이 비현실적인 허구라고 생각한다면, 최대한 사람들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떨어뜨리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하도록 만든다. 눈에 안 보이면 경쟁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3. 사회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고 삶의 양식을 표준화시켜 경쟁하더라도 아무런 추가적인 이득이 없도록 만든다. 또는 경쟁의 낙오자에게 심한 처벌을 가하여 경쟁의 주체들이 경쟁 자체를 회피하도록 유도한다. 전자와 유사한 상태가 복지부동 상태에 빠진 회사나 공무원 조직이고, 후자와 유사한 상태가 선착순 뺑뺑이에서 다들 눈치보며 요령피우는 경우이다.

경험 나누기


경쟁에서 살아 남은 자만이 그 능력을 인정받는다?

언젠가 스터디를 조직하였던 적이 있었지요. 한 달 일정표에 각자의 주제를 박아 놓음으로써 발표자 뿐만이 아니라 전원이 관련 사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운영을 했었지요. 일정을 짰다 하더라도 중간에 주제의 변경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었지요. 주제에는 제한이 없고 각자가 발표할 주제를 선정하기로 하였지요. 그리고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주제들을 선정하는 것은 강요하지 않아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었고요. 그런데 회사의 '짱'이 말하길 "세상 공부는 각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라고 하며 저지를 하더군요. 업무시간도 고려하여 스터디 시간도, 하루의 일을 목표를 두고 꾸준히 하기에는 너무도 어정쩡한 토요일을 선택했고 토요일의 시간 중에도 점심식사 이후의 시간을 택했었는데 말에요. 문제시 하는 것은 주제도 시간도 아닌 참으로 애석하기 그지없는 이유였던 것이었어요. 저지를 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만을 선택할 것인데 함께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함께 해서 살아남은 자라면 그 자신의 능력이라 볼 수 없다." 이런 정도의 논리였습니다. 스터디 운영하다가 권력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진, 쓸쓸한 --맑은

그럴 경우에는 어떤 것이 해결책이 될지... 회사의 정책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가요... 아... --홍차중독

일반적인 경우라면 위의 논리는 '정책'이라기보다는 '독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물론 경험적 현실 역시도 그 논리가 독단임을 보여줍니다. 오십이 넘은 이사님께서도 젊은 놈들의 끼를 배워보겠다고 그럴듯한 주제가 있는 날에는 꼭 참여를 하시곤 했었지요. 다른 부서에서도 부러워 했어요. 칼날 위에 선 듯한 조직 생활에서 "여럿이 함께 공부한다"라는 본보기는 신선한 충격이었거든요. 물론 이전에 근무한 다른 어떤 회사에서는 신선한 충격이 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요. 위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오히려 "함께 공부하지 않음을 타박"했었답니다. 돈 안들이고 짜게 공부하는 것에 대한 기대에 앞서 "당신들이 스스로 토론할 꺼리를 찾지를 못하는 것이냐? 그렇다면 교육비를 줄테니 제발 공부들 좀 하여라. 일정 교육비를 지출하지 않는 사람은 요주의 인물이 될 것이다." 등등. 이런 경험들에 비추어 볼 때 부딪힘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것이고 그러한 권력과의 충돌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답은 "모두가 함께 행동하고 유익한 결과를 보여주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던 일을 접어둔다고 욕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학습과 토론은 결코 결과중심의 일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직의 핵심인물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강행하여 유익한 결과를 증명해 보이지 못했을 때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전술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그러나, 그 전에 멈추어서는 곤란할 것이라 생각해요. 다음 행동에 방향을 제시할만한 내부적 성취를 공유하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되겠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앞 문단의 논리에서는 유익한 결과가 있다해도 반대할 권력은 끝내 반대를 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체로 권력은 승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가 보더군요. 왜냐하면 한 번 내 뱉은 자신의 주장을 걷어 들이게 되면 사업의 추진력과 조직의 지도력에 손상을 입게 된다고 생각들 하나봐요. 긍정적인 면을 뻔히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는 사례들을 많이 봅니다. 아무튼, 우리들이 그 답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도 살벌하고 실망스러운 배경이 있어서 우리는 진도를 내지 못했답니다. 혹시 동일상황에 부딪히게 된다면 제 말이 참고가 될까요? 그러나, 위 문단에서 제시된 상황은 결코 일반적 사례도 빈번한 사례도 아니라고 생각기에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미리부터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아도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의견이랍시고 구구절절 써 보았지만 어차피 대처방법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으로 무엇보다 전하고픈 마음이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지금의 느낌 그대로 충분히 즐길 때만이 '희생양'이라는 사슬로부터의 해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경쟁'을 싫어하는 만큼 '희생양'이라는 의식에 대해 거부감이 큽니다. '경쟁'이 환경이 씌운 사슬이라면 '희생양'은 스스로 뒤집어 쓴 사슬이라 생각합니다. 경쟁의식은 시작점에서, 희생양 의식은 끝점에서 각각 반목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맑은

:)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위의 저 '늑대 사냥법'이란 이야기의 원 출처가 궁금하군요. 정말 있는 사냥법일까요? 비슷한 이야기가 불경에 나옵니다. 흔히 다음과 같이 번역되는데요.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마치 칼날에 붙은 꿀을 어린아이가 빨아먹는 이치와 같다 - 사십이장경

혹은,

재물과 색은 마치 어린애가 칼 끝에 꿀의 단 맛을 탐하는 것과 같다. 한 방울의 꿀을 먹으려다 혀를 베일 근심이 있다 - 사십이장경|}}

혹시 누군가 에스키모-혹은 이뉴잇-의 이름을 빌어 만들어낸 우화는 아닐까요? --ChatMate

구글 검색결과 ( Google:wolf hunting eskimo blood knife )를 보면,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지만, 세계적으로도 퍼진 이야기군요. -- 최종욱
late 1800's and early 1900's 라고 나오는걸 보면, 사십이장경이 최소한 1600년 이상 연대가 앞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십이장경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설이 있습니다만, 아무리 늦어도 서기 166년 경에는 벌써 한역본이 돌고 있었습니다) 실제 에스키모의 사냥법에 대한 신뢰할만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면, 단지 널리 퍼졌다는 것으로 원전에 대한 증명을 대신할 수는 없을듯 하군요. 상기 인용한 부분은 사십이장경 이십이장에 나오는 내용임을 확인했습니다. --ChatMate
에스키모가 몽골계니까요 :) .

견제에의한 균형으로 풀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경쟁으로 풀려는 시도가 너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잡종

"; if (isset($options[timer])) print $menu.$banner."
".$options[timer]->Write()."
"; else print $menu.$banner."
".$time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