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외하기란 ¶
과외란 보통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또는 성인이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또는 초등학생을 상대로 학업에 도움을 주면서 일정한 경제적인 대가를 받는 아르바이트 행위를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과외를 해보거나 혹은 당해본 경험이 있을것이다. 과외를 하는 입장에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고소독을 올릴 수 있는 (혹자는 대학생의 특권이라고도 한다)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당하는 입장으로서는 절박한 심정에서의 비상구랄까.. 너무나 상대적인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나도 과외를 당해보기도 하였고 해보기도 하였으나 과외는 수용자의 태도에 따라 그 효과가 엄청나게 클수도 있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그저 시간낭비일 수도 있다는 점은 과외의 효용성에 대하여 의심케 한다.
나도 과외를 당해보기도 하였고 해보기도 하였으나 과외는 수용자의 태도에 따라 그 효과가 엄청나게 클수도 있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그저 시간낭비일 수도 있다는 점은 과외의 효용성에 대하여 의심케 한다.
보통 아르바이트의 시간당 임금은 3100원 정도이다. 물론 이는 최저임금을 고려하여 책정된 수치이다, 이에 비해 과외는 지역과 시간에 따라 차이가 아주 많겠으나 평균적인 액수로 주 2회를 기준으로 최소 30만원 정도의 보수를 보장 받는다. 이를 시급으로 계산하면 (주2회*4주*2시간 = 월당 16시간, 30만원/16시간=1.875만원/시간 ) 시간당 약 19000원의 액수가 나온다. 이는 시간당 3100의 아르바이트에 비하면 엄청난 폭리가 아닐 수 없다.
왜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또는 초등학생을 둔 부모님들은 이런 엄청난 시급을 지불하면서 과외를 계속 할까? 이는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일종의 불안감의 해소 방법이라고 본다. 과외를 함으로서 부모의 부담감을 자식이나 과외 선생님에게 전가시킬수 있고 이는 부모의 영혼의 평화와 심리적 부담감의 감소를 가져온다고 본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일련의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부모님들의 왜곡된 교육열과 우리나라의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어쨌거나 이를 통해서 득보는건 대학생을 비롯한 과외교사들이다.
--newtype
2. 원인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리적인 비평가능 ¶
이런 이해하기 힘든 일련의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부모님들의 왜곡된 교육열과 우리나라의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도 한몫을 한다고 본다.
부모님들의 왜곡된 교육열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것입니까? --Jimmy
자식들이 가진 진정한 재능을 살려주기 보다는 획일적인 대학진학에 대한 강요나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 약간의 과시욕 또는 체면치례등이 포함된 학업에 대한 강요가 왜곡된 교육열이라고 봅니다. newtype
그 근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이 한국의 부모들을 왜곡된 교육열로 몰아부쳤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회 구조적인 전반적인 통찰없이 사회집단의 일부를 지목하여 문제거리로 만든다면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오리라고 생각하시는지? 비평을 함에 있어 이런 자세가 합리적인 것인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해 봅니다. 한국교육구조에서 피해자는 학생뿐아니라, 그 학부모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인식을 못하는것 같습니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근본적인 문제를 묻는 것입니다. --Jimmy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조선시대의 사농공상 정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士를 중요하고 높게 평가하는 사회에서는 교육, 즉 자식을 士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심화될수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예술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라면 자식을 예술가로 만들고자 하는 부모가 많아지겠죠..문제는 그 정도에 있는것이겠죠. 과거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새대가 지금의 학부모임을 감안할때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볼수도 있겠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교육열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제가 문제 삼고자 한것은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이 아니라 과외라는 비효율 적인 교육방법을 유지하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서 입니다. 이는 제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에너지를 다른쪽으로 발산 하면 좀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newtype
그 비효율적인 교육방법을 유지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을 저도 묻고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학부모들이 보상심리때문에 돈 쳐들여서 그다지 신뢰도 가지 않는 사교육비를 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리포트 쓰는 중인데, 언제 날잡아서 차근차근 써야 할것 같군요. 제가 걱정하는 점은, 한국의 교육문제를 사람들이 참 쉽게 단정적으로, 이거다, 저거다. 이게 문제고, 저게 문제고, 개판이다 라고 말하는 자세입니다. 문제가 간단하면 해법도 간단하겠지요. 문제가 간단치 않기에 문제가 많은걸겁니다. --Jimmy 제가 문제 삼고자 한것은 과외를 시키는 부모들이 아니라 과외라는 비효율 적인 교육방법을 유지하게 만드는 원인에 대해서 입니다. 이는 제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에너지를 다른쪽으로 발산 하면 좀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해서 입니다. --newtype
솔직히 좀 혼란스럽습니다.^^;;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지 않고 논제를 꺼낸 저의 불찰이겠지요. 저도 우리나라의 교육이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문제는 있는데 그게 어딘지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는 중생중 한명입니다. 제가 과외 하면서 느낀점은 이건 무언가 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보수를 받아야 마땅한가"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생각이 나서 적어본 글이었습니다. 좋은 생각 감사합니다. --newtype
교육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보십니까? --Jimmy물론 없어지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줄어들것이라고 봅니다.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은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는것이 사실이고 이는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여 별로 효율적이지 않은 과외라는 형태의 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지리라고 봅니다. --newtype
교육정책이 이리저리 뒤바뀌기는 했지만, 올바른 교육, 평가를 위한 한 방편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차피 심지가 굳고 기본이 잘 다져진 학생은 어떤 입시제도라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지요. 교육정책을 이리저리 뒤흔듬으로 쭉정이를 걸러내고, 불안해진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털어 전체 사회의 부의 재분배에 조금 더 도움이 된 것은 아닐까요? 공교육이 뒤흔들린 부작용은 있었지만. --Aragorn어차피 심지가 굳고 기본이 잘 다져진 학생은 어떤 입시제도라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부분엔 저도 공감합니다. 잘하는 학생이야 교육정책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문제는 잘 하지 못하는 학생이죠. 머가 있어야 대비라도 할것이 아닙니까. 해마다 널뛰는 수능 난이도, 거의 매년 바뀌는 입시요강들은 공부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대비를 아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정책을 이리저리 바꾸는것이 과연 쭉정이를 걸러내는것에 도움이 될까요?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자 하는 학생의 의욕을 꺽어 버리지는 않을까요? 이런 이유에서 교육정책의 일관성 부재는 사교육의 일종인 과외에 의존하는 현실을 만드는데에 일조했다고 봅니다. newtype
3. 사교육 열풍의 원인 or 한국 교육문제의 원인 ¶
사교육 열풍의 원인/한국 교육문제의 원인은 몇가지가 조합된 것으로 볼수 있다.
- 교육, 학력을 통한 손쉬운 계층상승, 신분상승의 욕구 : 이것은 조선조나 그 이전부터 과거제도를 통해 이어진 전통이기도 합니다. 종교, 무력이 사회를 지배했던 서양과는 달리 文이 사회를 지배했던 중국, 한국 등은 모두 유사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의 학벌, 士자 붙은 직업 선호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로열패밀리 계층이 엷고, 재력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士자 붙은 직업을 갖게 되면, 배우자가 열쇠 몇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장원급제, 암행어사 등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 80년대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가정사정과 상관없이 성실하게 노력하는 학생이라면 남들처럼 소위 명문대에 진학도 가능했고, 어느정도 신분 상승도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학자들이나 교육학자들이 잠정적으로 결론 내리고 염려하는 것은, 이제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이 현저하게 두드러져서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신분의 상승 가능성이 없어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령 쉬운 예로 강남 부유층몰려 사는 곳의 자제들이 명문대 들어가고 좋은 직장 구할 가능성이 더욱 탄탄해지고, 지방 시골아이들이 그만큼 가능성이 적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미 대학입시에서 이런 현상이 표면위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 피지배계층의 상대적 박탈감, 절대적 빈곤 : 지배계층, 피지배계층을 구분하는 것이 잘못된 구분일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계층은 살기가 힘듭니다(어쩌면 지구상 어디나 보편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신분상승, 계층상승에 대한 직접적인 욕구가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육의 기회는 다시 직업선택의 기회로 이어지는 장치가 됩니다. 이러한 문제가 학력의 상품화를 더욱 부추기면서, 학력의 상품화 경향이 사교육의 열풍을 가속화 하고 있습니다.
- 공교육의 부실 : 상당한 이유가 되기는 하지만, 공교육이 웬만큼 잘 이루어진다고 해도, 여전히 조금이라도 더 높은 성적을 위해 사교육이 행해질 것입니다. 공부를 잘해서 아무 대학, 아무 학과나 골라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교육수준이 매우 높은 사립학교, 특목고에 다니면서도 사교육을 따로 받는 것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근본적으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자원은 없고 인구는 많다는 것도 삶의 경쟁을 치열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서로 뒤엉켜있어서 하나를 해결한다고 다른것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마치 두더쥐잡기 게임처럼 하나를 때리면 다른곳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士자 붙은 직업을 가지게 되면 명예와 높은 신분은 물론 경제적 풍요도 보장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신분 상승을 위한 요인으로서 다른 외부적 요인(경제적 부)이 개인의 노력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士자 붙은 직업과 그렇지 않은 직업간에 어떠한 신분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입니다. 직업이라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자아 실현의 수단일 수도 어떤 이에게는 생활을 위한 방편일 수도 있습니다. (두가지 요소가 복합된 경우가 대부분이겠죠.) 한 사회의 구성에는 어차피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도 필요하지만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 미화원이라는 직업도 필요합니다. 자신의 직업 활동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두 직업 간에 계층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 아닐까요? 물론 실수로 쓰레기 처리를 잘못하는 것과 실수로(?) 인간 생명에 위해가 될 만한 일을 하게되는 것 간에는 큰 차이가 있고, 각자의 직업활동을 하기 위해 투자하는 노력과 시간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업의 가치를 생각하는 관점은 그러한 직업활동을 하기 위해 들인 개인의 노력에 대한 존경 넘어 그 직업을 가짐으로써 딸려오는 부차적인 것들에 보다 집중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분상승= 많은 돈과 그로인한 사회적 힘=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의 관계가 성립하면서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인간은 다양하고 그만큼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들이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그러한 다양한 삶의 가치요소들을 느낄 기회를 주는 것에 인색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육이 해야할 일은 삶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를 수요자로하여금 맛보게 하고 그것들 중 자신에 맞는 것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가치를 실현하는 개인에 대해 (그 가치가 사회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가치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회의 몫이지요. 이런 두가지 조건이 전제된다면 기본적으로 꼭 같지 않은, 자신에게 보다 적합한 가치를 따르고자 하는 인간 본성에 의해 각 개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취사 선택해 이루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demanding한 직업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은 자신의 직업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 것이고, 생계의 수단으로서의 최소한의 직업과 다른 활동을 위한 시간을 원하는 사람은 또다른 방식을 선택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분명히 엄청난 노력을 투자해야만 성과를 볼 수 있는 활동을 소위 '직업'이라하여 많지 않은 보상에도 그 활동에 밤낮 없이 매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단지 좋아서 하는 것이지요. 좋아서.) 현재의 교육은 여러 평행 선상에 놓여있는 가치들을 왜곡하고 거기에 순위를 매김으로써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한다고 해도 경쟁이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보다 다양한 가치와 분야를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바람직한 경쟁을 유도합니다. 그것이 현재 (잘못된 교육과 사회 구조를 통해) 한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모두가 달려야 하는 상황 보다 분명 옳은 것입니다. --흐름
즉, '신분상승= 많은 돈과 그로인한 사회적 힘=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의 관계가 성립하면서 대다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관계가 언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Aragorn은 경제력과 권력이 곧 신분을 규정하는 것이고,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위의 관계가 언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Aragorn은 경제력과 권력이 곧 신분을 규정하는 것이고,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라고 봅니다.
士자 붙은 직업이 선호되는 이유는 당연히 사회적 힘이 부여되기 때문이고, 그러한 사회적 힘을 얻는데 교육 이외의 요소가 거의 작용하지 않습니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돈이 많건 적건, 나이가 많건 적건, 출신지역이 어디이건, 집안배경이 어떻든, 일단 "고시"에 합격하면 - 사법고시, 의사고시 등등 수많은 고시가 있습니다 -, 그것으로 곧바로 상당한 사회적 힘을 얻게 되고, 신분상승을 하게 됩니다.
흐름님의 직업관, 교육의 사회적 의미 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한국 뿐만 아니라 어디에나 적용될 보편적인 접근이라고 생각됩니다.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이기도 하겠고요.
그러나 여전히 '신분상승으로 인한 많은 돈과 딸려오는 사회적 힘'이 누구나다 추구해야 할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일부 가치들을 마치 누구나다 추구해야 하며, 그런 것들 안에서만 인간 행복이 보장된다고 믿게 만드는 사회 전반의 시각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 시각의 형성에 우리의 교육이 한 몫 한 것도 분명하구요. 말씀하신 듯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단지 노력할 수밖에.
4. 과외교습 보수는 적정한가? ¶
제가 과외 하면서 느낀점은 이건 무언가 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 보수를 받아야 마땅한가"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였습니다.
Aragorn 또한 과외교습을 받아보기도 했고, 과외교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 것이 훨씬 많군요. 과외교습비용의 문제에 있어, 내가 과연 이 보수를 받아야 마땅한가 고민해볼 수 있는데, Aragorn의 답은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적은 액수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일단 지난 20년간의 과외교습비용을 놓고 볼 때, 큰 변화가 없습니다. 20년 전에도 과목당 30~40만원이었고, 지금은 오히려 20~30만원 수준으로 내려간 경향이 있습니다. 상대적인 물가상승 등을 고려할 때, 10배 가량 교습비용이 떨어진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당한 부유층 아니면 과외를 받을 수 없었지만, 요즘은 과외교습받는 계층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보통 고3이 되면 1~2천만원은 사교육비로 들어간다고 간주하고, 부모가 그 비용을 준비합니다.
과외교습비용은 수용자 입장에서는 받겠다는만큼 주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가격결정 요인이 되어 보이지는 않고, 제공자 입장에서 얼마를 받아야겠다는 것이 가격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론 학부모가 주는만큼 받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학부모는 주변 시세에 따라 맞추어 줄 뿐입니다.) 과외교습비용을 정하는 건 주로 대학원생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학원생 상당수가 과외교습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고, 이들이 주당 과외교습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10시간, 보통 4~6시간입니다. 이 과외교습으로 최저생활수준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과외교습 1~2건으로 최저생활비와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힘듭니다. 매달 하숙비 30만원, 용돈 20만원을 지출하고, 학기당 150~250만원되는 등록금을 감당하려면 년에 최소 1,000만원 벌어야 하는데, 늘상 과외교습 3건이 있으면 학교 공부를 전혀 못하게 될 정도이죠.
무엇보다 제공자 입장에서는 과외교습이 자신의 경력, 이력에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과외교습 백날 해봐야 자신의 경력이 도움 안 되고, 공부하는데에도 도움 안 되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시간대에 시간을 허비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또, 우리 사회가 대학생이 1~2학기 휴학하고 다른 일하면서 생활비 버는 것에 관대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군미필자가 휴학을 하게 되면 곧바로 입대영장이 나왔고, 4년만에 졸업을 못하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취직에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대학생 과외를 금지시켰기 때문에, 금기시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위험부담으로 더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 과장해서, 전국 고3 대부분이 과외교습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Aragorn이 현재 회사에서 받는 시간당 급여가 과외교습비용 시간당 2~4만원보다는 훨씬 적지만, 그렇다고 직업을 과외교습으로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과외교습은 하면 할수록 손해보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과외교습비를 시급 3천원짜리 단순 아르바이트와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과외교습은 중고등학교 내내 피나게 공부한 결과를 짧은 시간에 쏟아내는 것입니다. 과외교습 2시간 제공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투자한 시간은 수십, 수백시간입니다. 과외교습 아니어도 2시간짜리 강의에 10만원받는 경우는 허다하고, 돈 되는 영역의 경우, 일당 100만원씩 지급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컨설팅 업체가 1인당 일 수백만원을 요구합니다. 단순히 사람의 인건비를 시급 3천원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Aragorn
--Aragorn
의견입니다. 글을 읽다가 제 생각이 잘못된 건가 알아보고 싶어서요 --홍차중독
맞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에 비해 컨설팅업체가 받아가는 비용은 그 노력이나 그 가치에 비해 매우 높게 책정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론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내부의 조직원이 이미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을 번드르르하게 포장한 것이고, 또는 전혀 엉뚱한 헛다리를 짚곤 합니다. 아무리 고위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위한 전술, 외부의 권위를 업어오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별 것 하지도 않고서 수억원 받아가는 것은 영 그렇습니다.- 컨설팅 업체의 1인당 수백만원은 컨설팅 업체가 정한 단가고, 시급 3천원은 노동자가 받는 실급여입니다. 두 가지를 비교대상으로 삼는 건 부당하다고 보는데요? 두 가지를 비교하시려면 컨설팅 업체의 노동자(컨설턴트)가 실제로 수령 연봉을 시간당 금액으로 환산한 것을 말씀하시는 게 맞겠지요.
- 위 단락에서 투자된 시간을 말씀하셨는데요. 그런 논리라면 회사에 취직한 사람도 그전까지의 교육비용이나 시간을 다 따져야 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절대적 기준에서 노동의 가치, 상품의 가치를 매기고 비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저 시장에서 그렇게 가격을 매기면, 그것이 맞나보다 생각하는 수밖에 없지요.
과외교습비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구나 과외를 받고 싶어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과외교습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로 제한되어 희소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Aragorn은 누구나 자동차가 필요하고, 누구나 살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조금 탈만한 차는 1년치 월급을 훌쩍 넘어버리고, 조금 살만한 집은 수십년치 월급 모아도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짜증납니다. "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차 사고 집 사기 위해 인생을 허비해야 하는가."라고 한탄하게 됩니다. --Aragorn
한담이지만 과외를 하고 나오면서 닳아간다는 것을 느낍니다. 스스로의 지력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들이 자꾸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스스로를 갉아먹는 듯하기도 하고, 창의력 등을 경제논리에 팔아버린 느낌. 요즘은 학원에서 일합니다. 차라리 과외가 낫겠다는 면도 많이 있지만 그간 없었던 사회 경험을 쌓는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ilzamusik
전 수능이 끝나고부터 과외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2명에 월수입 120이란 엄청난 기록을 세운 적도 있었더랬죠. 초급 정도의 피아노 레슨과 학교 공부를 같이 가르친 관계로 꽤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제 시간 다 가질 수 있었고 보람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 2 여학생을 그룹으로 맡고 있는데 학습, 진로 상담 뿐만 아니라 연애 상담까지^^; 즐겁게 하고 있어요. 입시 학원에서도 배울 수 있는 엇비슷한 지식들 보다는 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나도 겪었던' 그 시절을 이끌어 주는 사람이라는 데서 기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수업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지금의 과외비는 적당하다고 봅니다. 보통 25만~35만원인 것 같은데요, 예전엔 과외비로 등록금을 내고 생활을 해야했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용돈을 벌기 위해 과외하는 성향이 짙지 않나요.
또 하나, 과외비란 것이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예체능계의 경우 보통 학생들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레슨을 받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 적어도 자기가 투자한 만큼은 받아야 하므로 여전히 비싼 돈을 받고 과외를 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일반 과외도 대학생이 하나의 특권 계층이었을때 대학생이 되기 위해선 많은 돈을 투자해서 과외를 받아야 했겠지요. 그때는 가난한 유학생이 많았으니 생계가 유지될 만큼의 액수여야 했을 테구요. 이때부터 과외는 다른 일에 비해 높은 비용이 책정되었고 그것이 돌고 돌아 지금도 그런 것 같습니다. -musica
또 하나, 과외비란 것이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예체능계의 경우 보통 학생들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레슨을 받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 적어도 자기가 투자한 만큼은 받아야 하므로 여전히 비싼 돈을 받고 과외를 하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일반 과외도 대학생이 하나의 특권 계층이었을때 대학생이 되기 위해선 많은 돈을 투자해서 과외를 받아야 했겠지요. 그때는 가난한 유학생이 많았으니 생계가 유지될 만큼의 액수여야 했을 테구요. 이때부터 과외는 다른 일에 비해 높은 비용이 책정되었고 그것이 돌고 돌아 지금도 그런 것 같습니다. -mus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