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구조/위기그리고과학이론의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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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과학혁명의구조/이상현상그리고과학적발견의출현에서 파괴와 건설의 양 측면을 지닌 발견이라는 놈이 패러다임 변화의 원천임을 확인한 바 있다. 토마스쿤과학혁명의구조/위기그리고과학이론의출현에서 이러한 발견만이 패러다임변화의 유일한 원천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그가 지적하는 또하나의 원천은 대폭적인 새로운 이론들의 창안이다.

이미 우리는 앞장들에서 과학에서의 사실과 이론, 발명과 발견은 범주상으로 그리고 영속적으로 확연히구별되는 것이 아님을 논의 했으므로 이장의 내용들은 앞장의 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중복된다. 하지만 완전히 동일하다고는 볼 수 없는데, 앞장에서 살펴 본 발견들의 유형은 단독으로 코페르니쿠스의 혁명, 뉴턴혁명, 화확혁명, 아인슈타인의 혁명등에 버금가는 패러다임변천을 일으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퍼즐풀이로서의 정상과학 - 발견의 추구를 이론의 추구보다 지향하는 성격을 지닌 -에서부터 어떻게 이러한 이론들이 탄생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것이다. 이미 이상현상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종류의 현상의 출현에 한몫을 한다는 것을 살펴 보았음으로 정상과학으로부터 대폭적인 새로운 이론들의 창안이 발생한다는 것은 따로 대답할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의 혁명들은 이상현상에 대한 매우 오래된 인식으로부터 야기되는 위기감 에 의해 탄생했다. 이러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태는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좀처럼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에 관해서 지금부터 세가지의 예를 살펴보자.

1 :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의 탄생

코페르니쿠스 이전시대에는 프롤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체계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러한 이론은 항성과 행성의 변화하는 위치를 설명하는 데 잘 들어 맞는 나름대로 완벽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잘 들어맞는 것과 성공적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세차운동에 대한 관측은 프롤레마이오스 쳬계와는 잘 들어맞지 않았다. 프롤레마이오스의 후계자들은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줄이기 위해 연구를 수행했으며 그것이 정상천문학의 주요과제가 되었다.하지만 한곳에서의 모순수정은 다른곳에서 모순을 드러내곤 했다. 결국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은 코페르니쿠스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기 시작하는 데 요구되었던 선행 조건이었다.

이러한 천문학내부의 퍼즐풀이 붕괴외에도 달력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과 같은 외부 압력이 세차운동이라는 퍼즐을 시급한 문제로 몰고 갔다. 이러한 외부 압력요소와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한 당시의 비판과 신플라톤주의의 등장등 역사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상의 붕괴가 위기의 핵심인것은 분명한 것 같다.

<토론주제>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붕괴의 시기를 결정하고, 특별한 관심을 유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외부적 요인들에 대해 논의 해보자. 쿤은 과학혁명의구조내에서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2 : 라부아지에의 산소이론

19세기에는 공기가 유일한 종류의 기체라는 믿음이 화학자들 사이에서 고수되고 있었다. 이를 플로지스톤 이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체화학의 융성과 질량관계에 대한 의문들은 플로지스톤 이론에 대한 수정안들을 창출했다. 라부아지에 이전에 이미 수많은 수정안들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처럼 하나의 이론에서 수정안이 무성해 지는 것은 위기상황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물체를 태울 때 나타나는 무게의 증가는 18세기를 거치면서 일반화되기 시작했는데, 뉴턴의 중력이론이 이를 틀림없는 사실로 주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화학자들이 플로지스톤 이론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왜였을까? 그 이론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정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조정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패러다임은 유지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하게 수정된 플로지스톤 이론들은 마치 패러다임 이전시대의 여러 학파간 각축을 연상하게 하는 데 이런 현상은 위기의 또다른 특징이다

3 : 상대성 이론의 탄생

19세기 말의 물리학의 위기가 특수상대성이론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위기의 뿌리중 하나는 17세기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철학로서 라이프니츠는 절대공간 개념에 대해 뉴턴을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자연철학자들)의 비판은 순전히 논리로 일관된 것이었으며 18세기에는 사라졌다. 그 후 19세기 말 특수상대성이론의 등장과 함께 관계를 맺으며 부활되었던 것이다. AnswerMe 우리는 이렇게 소멸되었던 선구자들이 부활되는 사례를 더 찾아볼 수 있을까?

빛이 뉴턴 법칙의 지배를 받는 기계적 에테르(Ether) 를 통해 전파되는 파도운동이라면 지상계와 천상계 모두에서 에테르를 통한 흐름을 검출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천체관측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잡을 수 없었고 여러 이론학자들은 수정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정안은 상당히 그럴듯하게 그 현상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20년 사이에 등장한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은 이러한 에테르 이론에 위기를 초래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맥스웰 자신은 뉴턴주의자였다는 것이다. 즉 맥스웰 이론이 뉴턴적 기원의 명료화의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그것이 파생되었던 패러다임을 향해서 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결국 앞의 두가지 예에서 살펴본 것 처럼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이 난립하게 되었고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다.

위의 세가지 예들은 매우 전형적인 것들이다. 새로운 이론은 정상적 문제풀이 활동에서의 현저한 실패를 본 후에야 비로소 출현 했다. 또한 위기를 고조시키는 이론들은 새로운 이론 선언의 십년 또는 이십년 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즉 새로운 이론은 위기에 대한 직접적 반응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붕괴가 일어났던 문제들이 모두 오랜세월에 걸쳐 인식되어왔던 형태라는 점이다. 즉 위기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예상은 무시된다. 이처럼 위기를 강조하는 것은 이장과 다음장에서 다루게 되는 문제들 나아가서는 이 책전체의 내용이 정말로 과학자들의 심리학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와 다른 문제로 완벽한 예상이라는 문제를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예를 들어 이미 기원전 3세기에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서 코페르니쿠스적 태양중심 체계가 제안되었다. 그렇다면 그리스 과학계가 조금 더 현명했었다면 태양중심 천문학은 18세기쯤 앞당겨 이루어졌을 것인가? 이러한 것은 역사적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제안이 이루어졌을 당시에는 지구중심체계가 압도적으로 모든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즉 위기감이라는 것이 형성될 어떤 조짐도 없었던 것이다. 너무 앞서가면 과학이 아니되는 것이다. 웃긴다 정말... B)

하나의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도구들이 패러다임이 정의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과학은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활동하며 이러한 경우 대안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과학연장을 만드는 것은 비생산적인 일이다.

{{|위기들의 의미는 도구를 바꾸어야 할 단계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지표가 된다|}}

<토론주제>로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붕괴의 시기를 결정하고, 특별한 관심을 유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외부적 요인들에 대해 논의 해보자. 쿤은 과학혁명의구조내에서 그러한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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